로스토프 백작은 연금형을 선고받은 1922년부터(백작은 1889년생이다) 메트로폴 호텔을 떠나는 1954년까지 삼십여년을 갇혀 지낸다. 그는 신사답게 자신의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슬기로운 방법으로 여러가지 살 방법을 궁리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삼십년 동안 어떤 사건들이 과연 일어날까 싶은데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 이 소설은 정말 재밌다. 몽테뉴의 <수상록>으로 시작해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로 끝나니.... 다음 읽을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로 당첨.
신사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백작이 나중에 호텔의 웨이터로 멋지게 활약하는 장면도 소피야의 가슴 뭉클한 성장기도 모두 가슴 깊이 남는다. 결론적으로 백작은 환경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연금형을 선고받은 불행한 이 사람은 친구 미시카의 말대로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었다. 앞으로의 인생은 모를 일, 그렇기에 쉽게 희망을 가지지도 절망하지도 말 일이다.
에이모 토울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어 이 작가의 팬이 되는 것은 매우 쉽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것이 딱 2권이다! 새로 나온 신간도 어서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12세에 이미 그리스 철학자들의 삶에 매료된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는 상상대로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며 학문을 좋아하는 모범생 황제였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이러한 면모들이 제국을 지위하는 황제로서도 훌륭했을까,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가 죽은 뒤 로마가 쇠망으로 가는 길의 초입에 들어선 이유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들 콤모두스(재위 180-192)를 제위에 올렸기 때문이다. 또 마르쿠스가 차기 황제로 지명된 뒤 40세까지 지방에서의 실제 체험이 전혀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콤모두스는 폭정으로 무고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방탕한 쾌락, 야생 동물 사냥 등을 일삼았다. 방탕했지만 예술을 사랑했던 네로와도 다르다. 콤모두스 이후 내란의 시기를 지나(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프리카 출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재위 193-211)가 제위에 오른다. 비로마적인 전제군주, 로마제국의 군사 정권화로 방향키를 돌린 통치자로 평가되는 그는 군단병에 대한 처우 개선과 파르티아 전쟁 비용으로 인한 국가재정의 파탄 등으로 국가기반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로마제국 쇠망사>와 같이 읽으니 요약도 되고 좋다. 이제 4권 남았다.
5권은 마르셀이 오랫동안 몽상의 대상이었던 게르망트 부인이 사는 파리 게르망트 저택의 별채로 이사하면서 시작한다. 부인의 관심을 끌고자 생루에게 게르망트 부인에게 자신에 대해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엘스티르의 그림을 보고 싶어한다고 전해달라고 한다. (질베르트와 알베르틴은 잊은 건가?) 생루와 라셸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책의 중반이후에는 빌파리지 부인의 오후 모임에 참석,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비롯하여 포부르생제르맹의 여러 귀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데 샤를뤼스 남작의 기이한 제안이 다음권의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초반에 게르망트 공작 부인과 게르망트 대공부인이 헤깔렸는데 마르셸의 여인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 ㅋㅋ 귀족들의 작위를 좀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아직까지는 게르망트 부인의 이미지가 잘 잡히지 않는다. 올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권까지 겨우 읽었다. 민음사 패밀리 데이때 7-10권을 헐값에 사들이고 배불러 하는 중. 그런데 확실히 소설은 한번에 집중해서 쭈욱 읽어야 좋은 것 같다. 드문드문 읽다보니 그 소설만의 감정에 빠져드는데 시간이 걸리고 주석을 읽었는데도 앞권에서 등장했나, 하는 의문이..... 그런데 쉽게 잘 읽히는 재밌는 소설들이 줄을 서 있어서 이것이 문제다.
세상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평온하게 집안 구석에 머물러도 되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 자체도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내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p.133
책의 서문처럼 아름다움이란 늘 바깥에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온다. 삶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혹은 삶의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문학을 읽는다.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에서처럼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아마도 작가는 오랫동안 순수미술 화가와 출판 미술가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 온 것 같고 이제서야 원하지 않던 동화 일러스트 작업을 한 것도 어찌보면 자신이 순수미술 화가의 길을 택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던 것 같다. 이상적인 화가의 삶과 그럼에도 생활인으로 살아야하는데서 오는 갈등은 예술가들에게 특히나 크지 않을까. 몇몇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23년이나 키운 거북이를 마당에서 잃어버리는 이야기 ㅠㅠ 자연속에서 살아가며 그린 그의 그림이 더욱 알차게 생명력을 품고 그 풋풋한 기운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길 응원한다.
정지돈의 에세이에서 언급된 책. 짤막한 글들 자체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의 기이한 삶의 이력에 눈이 간다.
1878년 스위스 베른 주 비엘의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출생. 가정형편상 중학교를 14세에 중퇴하고 학업을 중단. 처음에는 배우가 되고 싶어했으나 하인학교에 등록했고, 슐레지엔의 성에서 집사로 일하며 겨울을 보냈다. 나중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1956년 크리스마스 날 눈 속에 얼어붙은 시신으로 쓰러진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발견되었다. 산책길에 심장발작이 왔던 것이다. p.381
하인학교? 집사로 일했다고? 죽을 때까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읽어봐야겠다.
4권에서는 모리어티 교수에 대한 등장이 시작된다. 살해당한 남자가 조직의 우두머리를 배신한 뒤 어떻게 복수당하는지 보여주는데 그 중심에 향후에 중요인물로 나오게 될 모리어티가 있다. 사이비(?)단체와 관련된 범죄 이야기는 이전의 책들과 비슷하고 셜록홈즈가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고 해결하는 것도 비슷하다.
거의 12월 한달 동안 나를 잡고 있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재밌는데 뭔가 기운을 쏘옥 빼놓는 것 같아 다른 책들을 동시에 읽기가 힘들었다. 정말 대단하다.... 이런 소설도 있다니.
우선 소설을 읽는 것 자체에 드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무수히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대를 넘나든다. 아드리아의 유년기부터 생의 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스토리오니의 바이올린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의 시간들, 인류의 대표적인 악의 표상이라 말할 수 있는 종교재판이 이루어지던 시기, 나치의 홀로코스트 학대 등 시대를 달리하는 인물들이 동시에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한 문단이나 한 문장 안에서도 서술어의 주어가 누군지 헤깔리게 한다. 이러한 독특한 기술이 마치 여러 차원에서 다각도로 사건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한다.
'악'은 추상적인 것 같지만 구체적인 사건 또는 인물로 표현된다. 그러한 악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자신의 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평생을 헌신하며 사는 뮈스 박사(아라베이트 보이트)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생을 마감하는 하임삼촌의 모습, 부당한 방법으로 펠릭스 아르데볼이 갈취한 스토리오니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지 갈등하는 아드리아의 모습은 악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개 개인이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인류의 악을 멈추도록 하는데 어떤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악의 모습은 여러가지 형태로 반복되어 왔을 뿐 반성을 전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누가?)
아드리아와 베르나트가 서로의 음악적 재능과 글쓰기 재능을 부러워하며 평생 맺어가는 우정어린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겪은 삶의 아픔을 생체험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학술적인 연구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작가의 시선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을 재밌게 읽고서 일종의 계보를 그렸다거나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해 공부한 노트를 번역가에게 보여주었다는 이곳과는 아주 먼 곳에 사는 카탈루냐 독자들의 마음을 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십분 이해하겠다. 나도 2권의 24장에서 니콜라우 에이메리크 1900년?? 뭐지 하며 여러번 다시 읽고 검색해보기 까지 했는데 3권에 가면 많은 사건의 아리송한 부분들이해결된다. 물론 아직 남은 의문점도 많고 그래서 1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 너무 재미있다 ㅠㅠ
*
2021년에는 구십 여 권을 읽었다. 할 일 전혀 없는 백수시절에는 130여권을 읽었고, 할 일 조금 있는 백수 시절에는 100여권 정도를 읽는 것 같다. 올해는 오래간만에 복직을 하게 되어 아마도 한 60여권 쯤 읽지 않을까.... 1주일에 한 권 정도가 나에게는 적당한 것 같다.
알라딘 <도스토옙스키 200주년 전집>을 사두는 바람에 올해는 예상치 않았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다시 읽을 것 같다. 얼마전에 파주출판단지 미메시트 아트 뮤지엄에 갔다가 도끼옹 전시도 보고 <분신>과 <백야>까지 집어왔다 ㅠㅠ 읽고 있던 잃시찾도 마저 읽고 로마인이야기도 읽고~~ 새해 결심 따위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독서계획은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른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립니다.
고마워요 알라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