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밤중에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며칠 전 시험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을 뒤적이고 대한항공 사이트를 들쑤시며 여행계획을 짜는 중이라서 마음은 계속 구름 높이에서 훨훨 날고 터질 듯 부푸는 중.
20살에서 21살로 넘어가던 그 겨울에 무슨 배짱인지 혼자서 덜렁 파리로 여행간 적 있었는데, 파리에 친척오빠가 유학 중이라 마중에 배웅까지 얹혀간 느낌. 그래도 내가 대학 다니면서 제일 뿌듯한 행동은 그 때 여행간 것이다.
이번 겨울은 런던과 주변 도시들을 찍어볼까 했는데 런던 가겠다는 말만 하면 다들 "와~ 근데 런던만 가게? 비행기값 아까워."라는 반응이라 다른 데도 갈까 흔들거리던 찰나, 누군가가 스페인을 추천했다. 여행계획 급변경. 런던 찍고 파리 잠깐 들렀다 스페인을 가야겠다. 설날 전에 입국하려고 했는데 그냥 설날을 여행에 먹여버릴까도 고민 중. 계절학기 신청 괜히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이런 게 좋다. 갈까? 가자. 이거 탈까? 타자. 언제든 급변경 가능, 내키는 대로 행동 오케이. 잘못되면 대놓고 티는 안내도 남 탓 하게 되는 이 성깔에 남하고 같이 가면 못 본 거 잘못된 거 다 남의 잘못으로 떠넘길 거 뻔하니 차라리 내가 다 알아서 하고 잘돼도 내 탓 못돼도 내 탓 하는 게 낫다.
'로망이 정확히 뭐지?'하고 지식인에 검색까지 해본 입장에서, 이제 겨우 평균수명의 4분의 1 정도 산 입장에서, 나를 가장 가슴뛰게 하고 설레게 하는 건 바로 여행이다. 국내야 나중에 천천히 다녀도 되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말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지구 반대편에 덩그러니 놓여져 완전한 이방인이 되는 그런 느낌.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겪는 신선한 경험. 언제나 새로운 날들을 꿈꾸는 내게 여행은, 곧 로망이다.
런던, 파리, 마드리드. 이제 곧 간다. 이렇게 자랑스레 글까지 써놓다니, 어떻게 해서든 꼭 간다. 어쩌면 또 급변경될지도 모르겠다. 원래 혼자 하는 여행에 충동이 더해지면 그런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