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갑자기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나는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진심으로 해본 적 없었다고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말이 수치감의 매듭을 풀어버렸다. 말하기 괴로웠지만, 나는 이해했다. 내가 군대에서 원한 것이 죽음뿐이었다는 건 거짓이라고. 나는 군대 생활에 어떤 관능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다고. 그리고 이 기대를 지속시킨 힘이라는 것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원시적인 주술에 대한 확신, 나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확신에 지나지 않는다고……-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