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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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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모르게 세연의 주장에 동조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것이 6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우울증 때문이라 할지라도, 꽉 짜인 세상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은 좌절을 경험하고 있기에 그 주장에 혹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최근에 읽은 「닥치고 정치」가 생각났다.

  노력만으론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사회구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아. (중략) 그러니까 니들은 니들이 못나서 그런 거라는 말이지. 성공한 우의 전형적인 사고 패턴이야.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장악한 시스템 자체에 대해선 시비를 못 걸게 만드는 거지.  - 「닥치고 정치」37쪽

  특히 인상적이었던 김어준 식 좌파 우파 설명 중, '노력만으론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사회구조'가 이 소설에서 전제로 한 '완전한 세계'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부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고, 그 경쟁에 실패했을 때는 나의 무가치함과 무능을 탓해야 하는 사회. 어쩌면 나는 이런 사회구조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우울과 좌절을 경험하는 중이기에 더 혹했던 것은 아닐까.

 

  김어준의 사회구조와 「표백」의 완전한 세계는 차이가 있다. 김어준의 사회구조는 우파가 만들어낸 것이고 표백의 완전한 세계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작가는 성공한 젊은이의 자살을 통해서만 변화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는 온수와 냉수일 뿐이니 아무 의미도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작가가 '동아일보'의 기자라는 사실은 확실히 코웃음칠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고 생각하고 투표 따위 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의 부패한 보수 정권에서 바라는 바 아니던가. 죽기까지 해야만 변화할 수 있는 세계, 그나마도 소설 속에서 증가하는 자살 선언들은 사회 변화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희망(?)이라면, 이것이 말 그대로 허구의 이야기, '소설'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해도, 재미를 위하여 그 변화의 계기로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차용했을 가능성이다. 또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이트가 그 논리에 대한 반박이나 비판을 거부하고 고립되며 점차사이비종교처럼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소설다운 마무리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말 작가가 '너희가 죽음으로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작가의 가치관이며 관념들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자신이 이뤄낸 것을 직접 목격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살아서 이룰 수 있는 변화가 가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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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은 『캐비닛』이었다.
솔직히 그 책은 온갖 재미와 호기심을 한껏 불어놓고 흐물흐물해져 끝나버려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해 이 책은, 휴우, 읽으면서 작가가 그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이 책은 거의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그 이유는 자취하는 지역과 집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만 읽었고,
그나마도 책을 가지고만 다녔지 읽지 않은 적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읽던 중간에 멈추지 않기 위해 한 장(章)을 읽고 덮으면
한동안 래생과 책의 분위기에 젖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창밖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래생의 옆에 앉아 같이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는 래생의 옆에서 또 같이 책을 읽고  
가끔은 그냥 왠지 다독여주기도 하고 한 번 끌어안아주고 싶고,
래생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책이 자꾸만 줄어갔다. 그래서 가지고'만' 다녔다.
그래도 결국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래생이 죽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읽다 말 걸.
웃는 게 예쁜 미사라면 큰맘먹고 봐줬을텐데, 결국 죽었다.
잔인한 작가..
다음엔 더 커져서 오셨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다시 4년 쯤은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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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  쓰고보니 스포일러가 들어갔네요 '-'  --------------------
(저는 책의 중후반 부분을 얘기하는 것 자체를 스포일러로 여긴다는 사실!!)

 

잠 안 오는 열대야,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컴퓨터를 켰다. 정말 오래도록 읽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위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이 책이 추리소설인 줄 알고 택했다. 내 책장에는 충동구매한 책들과 도서관에서 빌린(혹은 앞으로 빌릴) 책들이 무수히도 많이 쌓여있다. '무수히'라는 말로는 지금 내 옆에 꽂히고 쌓인 책들을 묘사하기에 부족할 정도. 그 와중에, 비록 착각해서였다고 할지라도 이 책을 고른 것은 이제 운명이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자폐아는 복중에서 이미 치료를 마치고 태어나는 시대이다. 그리고 루 애런데일은 태어난 후에 사회적응훈련을 거쳐 사회에서 생활이 가능한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인가.
항상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고 직장을 다니고 펜싱을 하며 친구를 사귀는 루가, 단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하고 폭탄을 제조하고 총을 휘두르는 돈보다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루가 자폐증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한 사람은 …(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진 포넘 박사나 돈, 크렌쇼 등 자칭 '정상인'이 잘못된 것이다.

책을 읽는 사이 나는 루에게 점점 몰입되어갔다. 루처럼 생각하고 루처럼 느끼고, '폴 위트커버'의 말처럼 그와 공감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덮으면 잠시동안이지만 나의 사고(思考)도 루의 그것과 유사하게 돌아가곤 했다. 사실 루의 생활을 살피면 전혀 자폐증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조금 서툴다고, 감각이 예민하다고, 생활패턴이 고정되어 있다고(심지어 가끔은 융통성이 발휘될 수도 있는데!), 세상 모든 것들의 패턴을 빨리 깨친다고 그를 전혀 다른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런 것들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하고자 한다면 세상에 정상인으로 여길만한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의 바람과 달리 루는 실험을 결정했다. 그 실험으로 그는 성장했다. 실험의 불확실성과 위험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루가 실험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는지 그는 알까. 그러나 어쩌면 정말 자폐인의 생각과 느낌이 이럴 것이라는 공감에 너무 빠져들어 루의 내면을 더 알고 루의 소리를 더 듣고 싶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는 자폐증, 나아가 장애인이라고 규정지어진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지(無知)를 깨기 위한 루 애런데일의 소리가 가득히 담겨있고, 나는 루의 그 소리에 공명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책장이 아까운 책, 그 세 번째

이 소설과 어울리는 음악 세 개!!
Willis - Word Up
Keane - Sunshine
Maximilian Hecker -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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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 마음을 읽는 괴물, 헤라클레스 바르푸스의 복수극
카를 요한 발그렌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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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향수>를 언급했길래 낼름 샀고

맛있는 과자를 조금씩 조금씩 떼어먹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었는데.

휴-

대체 어디가 <향수>와 비교될만한 부분인 거야.

<향수>에서는 '사랑'도 없고 '복수'도 없다. 주인공 그루누이가 지녔던, '향'에 대한 뛰어난 능력은 적당히 사실적이고 적당히 매니악적이며 살인에 대해 이해할만한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그 집념, 실행, 전개, 결실, 결말도 모두 만족스럽다.

<가면>에서는 헤라클레스와 헨리에테가 함께 사랑한 기간도 길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나는 그 둘이 정말 사랑한 것인지조차도 모르겠다. 사실상 책의 대부분을 헤라클레스가 죽도록 고생한 것만 줄줄이 나열하는 데 할애했다. 그 고생 끝의 재회와 행복은 짧고, 헨리에테의 죽음은 두루뭉술하고 너무 순간이어서 하마터면 헤라클레스의 꿈인 줄 알고 넘어갈 뻔했다. 복수의 진행도 실로 사랑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사랑 때문이라면 정신병원의 간수 형제는 죽을 이유가 없고 정작 헨리에테를 살해한 범인은 제일 먼저 죽었어야 했다. 복수는 잔인하나 너무 간단히 설명되고 그 과정 또한 간접적으로 전달되며, 그 복수가 끝나는 이유는 허탈하고 어이없고, 끝은 밋밋하다. 특히 살인을 위한 계획도 집착도 노력도 아예 전무하다. 있다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 헤라클레스의 능력은 '있을법한' 능력이 아니라 초능력이다. 이 능력으로는 못 할 것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동물을 조종하고 사람을 조종하고 손 하나 까딱 않고 사람을 죽인다. (아, <데스노트>가 생각난다.) 게다가, 그런 능력이 있는데 '살인'을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헨리에테를 죽일 수 있게 했다는 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난 홍보문구에 낚였다.

<향수>를 들먹이지만 않았어도 별 네 개를 줬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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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그후 - SF거장 14인이 그린 핵전쟁 그 이후의 세상
노먼 스핀래드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김상온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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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연히 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책과 유사한 내용의 영화였는데 핵폭탄이 터져 파괴된 땅, 그리고 남겨진 방사능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할퀴고 간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장면은 방사능에 의해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진 여자친구에게 역시 머리가 많이 빠진 남자친구가 모자를 쓰고 와서 머리핀을 선물로 주는 모습. 살아남은 의사가 체육관을 가득 메운 방사능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자신의 집이 있던 곳에 가서 폐허가 된 집터에서 가족의 추억을 찾아내고 그 곳에 머물러있는 난민가족에게 여기는 자신의 집이라며 울부짖는 모습. 그리고 그 난민가족이 그 의사에게 먹을 것을 내미는 장면(아마 이 장면이 엔딩씬이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내게 전쟁, 특히 핵폭발 후의 절망에 대해 암시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동안 잊고 있던 전쟁과 최후의 날에 대한 절망을 일깨워주었다. '거대한 섬광'과 '터미널 해변'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외의 단편은 작가 나름대로의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루어져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최후의 날 이후를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여러 작가들이 다양한 소재로 글을 썼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이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개인의 끝없는 탐욕에 의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고 그 후에 남겨진 절망과 고통.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모두 좋지만 "세상을 파는 가게"와 "그대를 어찌 잊으리, 오 지구여……" 두 편이 가장 좋았다. "세상을 파는 가게"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난 후 과거의 평범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그대를 어찌 잊으리, 오 지구여……"는 지구를 떠나야했던 인간이 멀리서 지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폐허가 된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의 비참함보다 더 와닿았다. 아, "현대판 롯"은 냉소적인 유머까지 겸비한 단편. 결말에서 웃음이 났다. 

북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핵을 보유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전쟁과 폭탄은 안 돼!"라고 무작정 막기보다 "그 후를 생각해서라도 안 돼!"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별 다섯개도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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