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제목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글쓰기 작법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은 작가의 삶을 감추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단순히 장르 안으로 한정되지 않을 수 있었던 깊이 안에는 쉽지 않았던 그의 성장 과정에서 체득한 것들이 쌓여 있다. 특히 두 살 터울의 형 데이브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는 각종 육체 노동을 전전하며 형제를 홀로 양육해야 했던 어머니를 뒀던 외로운 형제의 삶이 단지 음울하고 고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형제는 말도 못하는 개구쟁이에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창출해 냈으며 어머니에게 각종 자랑거리와 생각지도 못한 걱정거리를 선사하는 다이나믹한 아이들이었다. 형은 아우를 사랑했으나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아우를 골탕먹일 수 있을 지를 늘 고민하는 사색가이도 했다. 과학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하여 수퍼막강전자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벌인 일들은 마을에 소방차까지 출동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개구지다' 남의 일일 때에는 읽으며 키득거렸다. 하지막 막상 이제 갓 두돌을 지난 둘째 아이가 드디어 사내애의 개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니 매일이  심적으로 놀랄 일 투성이다. 일단 며칠 전 화장실에 들어 와 있을 때 딸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달려가 보니 티비 화면에 무참히 금이 가 있었다. 티비 고장 중 가장 비용이 높다는 액정. 수리도 안 되고 아예 교체를 해야 하는데 정확히 구입해야 했던 비용의 반이었다.

 

다음 날, 가까스로 사람 안 다친 걸 다행으로 알자고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데 만년필 잉크를 책상에 쏟아 자신의 발과 손, 내 손을 검게 착색시켰다. 씻어도 씻어도 지문과 살결에 스며든 잉크는 끝끝내 버티었다.

 

오늘 아침. 부엌에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절규하는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문을 잠근 모양이었다. 온갖 집에 있는 도구를 다 활용하여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꿈쩍도 않는다. 급한 대로 각종 수리 및 열쇠를 취급하는 아저씨에게 전화하니 하필 지방이란다. 관리소에 전화해 보니 특정 도구가 있으니 빌려주겠단다. 아이는 화장실 안에서 절규하고 큰 애는 등교 시간이 다가오고. 머리 산발을 하고 관리실에 달려가 도구를 빌려 오는 길에 아는 분을 만나니 구멍에 젓가락을 넣어 들어올리란다. 관리실에서 빌려 온 도구로도 꿈쩍 하지 않던 문이 젓가락을 넣어 살짝 들어 올리니 눈물, 콧물 범벅의 아기와 재회하게 해 주었다.

 

 

아, 이런 거다. 이런 거였다. 개구쟁이를 키우는 것. 나처럼 순발력이 떨어지고 정해진 루틴을 중시하는 사람한테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일. 하지만 지나고 나면 또 별 것 아니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빙긋이 웃게 하는 일. 그러고 보면 지난 일들은 다 이야기가 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는데 닥친 일들은 언제나 급박하고 약간은 격한 반응을 끌어낸다.

 

그 개구쟁이 형제는 장성하여 어머니의 마지막을 성숙하고 아름다운 나름의 방식으로 지킨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훈계도 보호도 필요치 않게 된 시간들, 형제는 자신들을 먹이고 키웠던 그 위대한 몸이 이제는 병마로 줄어버릴 대로 줄어버린 최후의 어머니의 곁에 나란히 선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

 

"내 새끼들."

 

그래, 내 새끼를 키우는 일은 이런 것일 테지. 그리고 시간은 또 하염없이 가서 나와 이 개구쟁이의 관계를 역전시킬 것이다. 나는 작아질 것이고 약해질 것이고 아이는 크고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이별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 그루딘이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재의 사건을 좀 더 큰 시간적 맥락 안에서 보는 습관을 키워야 겠다. 그래야 나중에 덜 아쉬워하고 덜 후회할 테니까. 나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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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9-2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구진 아이들이 벌이는
엄청난 짓... 놀이... 삶을
지켜보고 돌아보면
허허 너털웃음도 나오고 고단하면서도
즐겁고 재미있어서
가만히 보면
새로운 기운이 솟습니다 @.@

blanca 2015-09-23 20:27   좋아요 0 | URL
고단하면서도 즐겁고 재미있다,는 표현이 정말 적절하게 느껴집니다.^^ 나중에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에 몰입하고 순간 순간 즐거움을 찾아야 아쉽지 않을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15-09-2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화장실에 갇힌 적이 있는데(저의 집 화장실은 문고리가 개모양이라 밖에서 잠그게 되어 있어요. 제가 설치를 잘 못해서..), 그 때 핸드폰 들고 화장실에 들어간 게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하루종일 갇혀있을 뻔 했어요. 아들냄 무서웠을 거에요. 잘 달래주세요.

blanca 2015-09-23 20:28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댓글을 읽고 반성했어요. 사실 저의 당혹감에만 집중해서 아이가 놀라고 무서웠을 생각은 미처 헤아리지 못해서 야단만 치고 말았어요. 그게 화장실 문이 정말 집마다 구조가 달라 최악의 경우 전문가가 아니면 못 연다고 하더라고요. 기억의집님이 경험했을 상황도 상상만 해도 두렵네요.

라로 2015-09-2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에서 묻어 나오는 블랑카 님의 글,, 점점 깊어지는 걸요!!^^*

blanca 2015-09-23 20:28   좋아요 0 | URL
아, 아마 죽을 때까지 배우고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인생은 학교가 맞아요.^^

WGS 2015-09-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비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네요. 반가운마음에 댓글달아요^^

blanca 2015-09-24 12:37   좋아요 0 | URL
플레님, 그렇다면 지금 시작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일단 아주 재미있으니까요.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희선 2015-09-2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는데 저런 게 있었던가 했습니다 글을 봐서 그런지 형과 지낸 일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이건 앞에 글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글 쓰는 것과 함께 자기 이야기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개구쟁이 글에서 볼 때는 재미있게 보여도 가까이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다르겠군요 아주 모르는 아이도 아니니 어떤 일은 웃어 넘길 수도 있겠죠 지금은 알고 하기보다 잘 모르고 하는 일이 더 많지 않을지... 그렇게 개구진 것도 한때겠죠

명절 식구들과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blanca 2015-09-26 08:26   좋아요 0 | URL
희선님, 정말 곁에 있는 것과 좀 떨어져 귀여워하는 것은 천지차이랍니다.^^ 그래도 참 예쁘긴 하네요.
희선님도 명절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