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은 항상 우리 인간을 위한 표 상입니다. 이 표상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에게서 오고성부), 하 느님께서 몸소 인간에게 다가오시고(성자), 모든 존재의 근원을 명 확하게 이해하는(성령) 한 인간의 삶에 대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를 하느님의 신비로 인도하는 구원의 표징입니다 - P77
우리는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표상으로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도 해석됩니다. 많은 일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기적인 자아Ego로부터만이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로써 남의 눈에 띄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빛은 금세 없어집니다. 이와 달리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다르게표현하면 그리스도에게서, 즉 나의 내면의 원천으로부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 나를 관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P85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성경 말씀으로 상처를 받고 모욕을 당하고 무시당하는 모든 상황과 병고의 상황을훑어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고통과 질병, 타인에게 받은 상처가 내 안의 어느 부분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과같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인 것이지요. 세상도 이에대해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빌라도에 대한예수님의 반응을 묵상하는 것은 나의 길을 새로이 가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고통과 질병을 못 본 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도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상처 주거나 해칠 수 없는 영역이 내 안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 P88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은신앙이 깊은 이들에게 매료되지만 그들의 신앙을 모두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 저는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Jean-BaptisteRoger de Saint-Exupéry, 1900~1944년?)의 말을 약간 바꾼 "신앙을 갈망하는 것은 이미 신앙이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다른 이의 신앙에 매료된 사람은 자신도 그처럼 확고한 믿음이 생기기를 갈망합니다. 바로 이 갈망에 이미 신앙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흔적을 더욱 뚜렷하게 하려면, 나에게 이미 신앙에대한 갈망이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139
성경 말씀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면 성경 말씀을 제대로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자신의 두려움과 도덕적인 잣대로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 P141
개신교 신학자 바르트는 신앙과 종교 사이에 극단적입 대립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순수한 신앙의 편을 들었고 종교를 의례의 구조이자 문화적 특징으로 여기며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이러한 대립이 인위적이고, 모든 것을 뒤엎는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 신학은 여러 종교 안에서도 늘 인간의 갈망과체험이 표현된다고 보았습니다. 가톨릭 신학은 종교를 거부하지않고, 각 문화에서 그리스도교 문화를 발전시키려 시도합니다. 이는 마치 종교에게 세례를 준 것과 같습니다. - P148
셋째, 이 말의 치유적 차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마치 뛰어난 영성 지도자인 듯 따라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 곁에 계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내적 스승이자 교사로 활동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며 그분의영 안에서 이 세상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위해 열심히활동하면서도 하늘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경직된 행동주의에서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 P157
잠에서 깼을 때1.에세이,시집,필사책,단편소설최소 30분 이상을 수면 압력이 강해질 때까지2.영화나 자연 다큐멘터리,여행 프로그램 보기3.음악,라디오 듣기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4.실내 공간 걷기5.호흡법으로 몸 이완하기
이처럼 잠재의식은 뇌 속의 네 가지 감정 시스템 중 하나다. 우리 감정의 4분의 1만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4분의 3은 다른 감정 시스템에서 연유한다. 잠재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감정은 전체 감정의 일부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잠재의식이만들어내는 감정이 우리 삶을 망쳐놓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다른 감정 시스템이 허락하는 유익들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면좋을 것이다. - P41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여섯 편의 자전적 소설 시리즈 「나의 투쟁』 (한길사, 2016) 집필 작업을 ‘통제력을 포기하는 훈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글을 쓰기 위한 이상적인 상태는 저자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으로 문장을 따라가면서 스스로가 수동적인 파트너인 것처럼 느낄 때다. - P160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본다는 표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숲을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숲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게더 나을 수 있다. 숲은 너무나 방대하고 어두컴컴한미지의 공간이다. 대신에 단 한 그루의 나무를 선택하자.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를 보고, 관찰하고, 거기서 시작하자.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를 써 내려가는 고통을이겨낸 유일한 방법은 매일 한 줄씩, 한 장씩 글을쓰는 것이었다. 작품 전체를 생각하는 일은 너무나숨이 막힌다. 그는 매일 책상에 앉아 조금씩 글을 썼다. - P29
미국 소설가 E. L. 닥터로는 훌륭한 말을 남겼다."글을 쓰는 것은 밤중에 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우리는 헤드라이트 너머를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 목적지가 불확실하더라도 걱정하지 말자. 창조의 과정에서는 그것이 오려 장점이 될 수 있다. 영국 화가 브리짓 라일리를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목표를 가지는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로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우리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목적지를 만난다. 이것이 우리가 발견해낸 사실이다." - P30
전혀 반갑지 않은 공허함과 마주할 때면 이노는스튜디오 밖으로 나가 (마감이 코앞에 있을 때조차) 무언가 반직관적인 일을 한다. 그는 심연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영감을 쫓는 일을 그만두고 싸움을포기한 채 권한을 넘겨버리는 순간, 그의 운명은 전환을 맞이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포기하는 순간나는 갑자기 다시 한번 살아난다." 아이디어는 서서히, 언제 그랬냐는 듯 되돌아온다. 이 일은 억지로아이디어를 따라다니는 노력을 그만뒀을 때만 가능하다. -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