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바로 대학병원이 있다.작년 폐렴에 걸려 입원하여 밤새 뒤척이며 고열에 시달렸던 아이를 억지로 휠체어에 태우고 엑스레이실 앞에 줄을 서던 기억이 난다. 제발, 오늘은 좋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고작 아침 일곱 시 언저리의 엑스레이실 앞은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침상에 누워 거의 의식이 없는 사람도 제 발로 서서 엑스레이를 찍을 능력이 있는 사람도. 모두의 표정은 지쳐있고 삶이란 것을 희구하면서도 그 삶에 넌더리가 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김훈의 말마따나 삶은 결국 던적스럽다. 그 춥던 으시시하던 기억. 호랑이 캐릭터가 점점이 박혀 있던 그 어린이 환자복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많이 아팠던 아이. 그리고 그 수많은 아픈 사람들. 그럼에도 하늘에서는 그때도 정말 눈이 부실 만큼 흰 눈이 내렸었다. 그 눈이 정말이지 너무 서러웠다.
어제 하늘에서는 또 미친듯이 눈부신 눈이 내렸다. 발코니 전창 앞에서 세상에 태어난 지 고작 석달인 아가에게 이 눈부시고 마구 언제까지나 살고 싶게 만드는 눈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기만일지라도 그런 것들에 기대어 삶은 지속되는 것같다.
읽은 책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모교 구내서점에서 만난 날, 김연수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 낭만적인 이름의 작가의 팬이 되기로 했다. 뭐랄까 아주 서정적이고 명철한 작가의 시어 같은 문장들이 속살거리며 다가왔다. 단편집이니 만큼 전부 좋았다고는 못하겠고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는 너무 좋아 잠시 멈추고. 이런 이야기.
나는 나의 열세 살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나? 1982년, 중학교 1학년. 프로야구 개막. 봄바람에 흔들리던 성당 초입의 벚꽃들. 브라보콘과 키스바의 여름. 봉고에 음식을 잔뜩 싣고 가족들과 찾아가던 일요일의 계곡. 응접실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의 모습. 여름에도 서늘하던 본당의 건물. 형형색색의 빛으로 반짝이던 스테인드글라스.
-<파주로> 중
이야기 속의 '내'가 열세 살을 떠올리게 된 것은 선배의 열세 살 딸내미 앞에서 그와 같은 나이였던 소녀 '안네의 일기'를 떠올리면서였다. 좁은 곳에 갇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음에도 소년과 사랑에 빠져 달콤함에 젖어들었던 안네. 언제 '안네의 일기'를 읽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훨씬 축약되고 민감한 내용이 삭제된 안네의 일기에 기대어 나도 어린이에서 사춘기 소녀로 건너가던 기억만은 남아 있다. 서쪽의 창가. 밤이면 봄이면 벚꽃과 노을이 아련하게 걸어들어왔던 그곳. 김연수는 추억을 불러내는 재주가 있다.
왠지 이런 책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뻔한 이야기라도 두서 있게 조곤조곤 일러주는 사람을 한 명쯤은 곁에 두면 삶의 질서가 잡힌다. 정갈하고 소박한 이야기. 삶에 있어 모든 곁다리 같았던 것들을 제자리에 두고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되새김. 법정의 책을 오랫동안 곱씹어 보며 읽다 못내 아쉬워하며 돌려준 친구에게 불현듯 선물하고 싶어져 감행했다. 순간 티비를 보며 무기력해있던 친구는 이 책을 시작했다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머리가 덜 아팠으면.
반값 세일이길에 표지가 너무 크리스마스틱하길래 구입했는데 딸아이가 종일 오리고 붙이고 모아두고.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을 만들 수 있는 책. 눈꽃결정 모양은 창에 붙이면 손쉽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낼 수 있을 것같다. 집에 온 아이 친구가 자기도 갖고싶다고 해서 두 권 더 주문해서 아이들이 좀 엄마들을 덜 귀찮게 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모빌을 만드는 부분은 좀 어려워서 어른의 손이 가야 하기는 하지만. 가격대비 알찬 책이고 꼬마 친구들에게 선물해 주고 생색내기도 좋다.
벌써 크리스마스고 벌써 연말이다. 전도연은 티비에서 나이 먹으니 정말 진심으로 너무 좋다고 하던데 그녀보다 어린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좀 덜 망아지같아지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자꾸 철이 드는 게 좋기만 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이해받고 용인받을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이다. 자꾸 범람하는 추억들. 할머니가 되면 그 추억들 한 복판에서 좌초할 것같다.
정말 제대로 된 기억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분명 뒷산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위해 키작은 나무 하나를 베어 왔고 우리는 그렇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졌드랬다.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든 내가 고작 내 허리밖에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내어놓자 아이는 어찌나 실망하던지 꼭 자기 키보다 더 큰 트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 아빠는 정리를 잘 하면 그러마 하고 약속하고 나는 어수선해서 안 된다고 딱 자른다. 잘 모르겠다.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저러지는 말아야지 했던 어른들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귀찮고 어처구니가 없어도 했던 많은 것들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그 게으름은 성숙이 아니라 비겁한 타협일 텐데 때로 그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며 씁쓸하다.
우아하게는 어렵더라도 덜 추하게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