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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평점 :
<파리 리뷰>에서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이유를 함께 얘기해 달라 요청해서 만든 단편선집이다. 열다섯 명의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작가들의 문체들과 서사의 구현 방식에 끊임없이 적응했다 나오는 건 정신적으로 품이 드는 일이었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아 기쁨으로 울렁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인정 받은 소설가로서 인정 받은 작가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을 선정했으니 그 작품의 수준이 어떨지 짐작할 만하다. 특히 좋았던 작품들은
<궁전 도둑> 이선 캐닌
상류층 자제들이 많이 다녔던 사립학교의 역사 교사로 퇴직한 화자가 정계의 거물이 된 45년 전 자신이 가르쳤던 문제아 제자와의 재회를 그린 작품이다. 자신이 은근히 반감을 가졌던 제자의 거대한 기만극에 의도치 않게 동참하게 되는 삶의 잔인한 역설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언뜻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의 회고가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 이 역시 구도는 다르지만 주인에게 충성한 세월이 결국 거대한 기만극의 일부였던 것으로 드러나는 결말을 지니고 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 스티븐 밀하우저
유년의 여름에 대한 그 끝날 것 같지 않은 막막한 아름다운 정조가 이야기 전반에 스며 있어 추억을 곱씹으며 읽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유년 시절의 그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환상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닮아 있다. 주인공이 그 양탄자를 더 이상 타지 않고 구석에 넣어 놓게 됐을 때 우리는 아쉽지만 그가 어른의 세계로 가파르게 진입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세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눈부시게 구현된 작품이다. 감각의 향연은 불가능한 세계를 마치 눈앞에 놓인 것처럼 완벽하게 재현한다.
<늙은 새들> 버나드 쿠퍼
도입부부터 눈길을 확 끌었던 작품이라 흠뻑 빠져 읽었다. 언뜻 보면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것 같은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그 내밀한 여운에 마음이 한동안 슬퍼 쉽게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오후, 건축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장례식 예약을 해두었냐고 묻는 아버지. 그게 아버지의 것인지 아들의 것인지 묻는 아들에게 우리 둘 다가 될 거라고 단정 짓는 아버지...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주변 사람에게 묻지 않고는 알아차릴 수 없는 늙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의 끝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건축가 아들의 건물 청사진은 그런 '늙은 새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스톡홀름행 야간비행> 댈러스 위브
엽기적이고 잔혹한데 아름답다. 놀라운 작품이다. 문학적 성취, 세속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씩 차례로 포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이루지만 나의 몸은 절단 난다. 이것은 거대한 은유다. 비단 문학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신체를 포기해서 언어로 남기는 이야기. "우리는 산산이 분해되어 단어로, 문장으로, 단락으로, 서사로 들어간다."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세세하게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일반화와 추상화에 실패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보르헤스는 역시 천재다. 그것이 결코 본질이 될 수 없음을 간파했다. 결국 우리가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것들로 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색깔들의 이야기가 빛나는 대목은 겹친다. 내가 미처 언어화할 수 없었던 내가 살며 느꼈던 그 감정들. 나 혼자만의 것이라 여기며 고독하게 여몄던 슬픔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곤 하는 그 어두운 체념들. 이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는 그 기민함. 문학은 이 지대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