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인 김경재 교수는 하나라는 숫자적 개념과 최고신이라는 우리의 집착을 비판하며,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취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지구상의 모든 역사적 종교를 포용할 수 있는 종교 다원론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내 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이기심을 버리고 많은 이름으로 우리 인간의 마음에 자리 잡은 진리의 하느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한민족과 함께 역사해 온 무교, 불교, 유교, 동학의 시천주, 원불교의 일원상의 핵심 진리가 하느님의 진리와 절대적일 수는 없다. 역사 속의 현실에 존재한 종교는 문화적, 사회적 영향 속에서 수용되고 이해되어 왔으며 응답하며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사고의 교수의 저서에 동감했던 터라 열심히 읽기는 했으나 많은 부분이 전문적이고 심도 있게 다루어져 소화해내기 어려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의 정도를 짤막한 요약으로 정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특정 공동체의 종교는 탄생한 역사, 지리적 조건, 문화, 사회적 제반 조건에 반영되어 있기에 외양 차이는 있으나 추구하려는 내면의 가치는 숭고한 삶의 실현을 지향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등잔 모양은 다양하지만 비쳐 나오는 불빛은 동일하다라는 은유적 비유가 말해주듯이.

 

궁극적 실재로서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고 이해될 수 있다. 신적 실재에 대해 처한 상황 아래서 서로 다른 인간들의 응답으로 형성된 다양한 인식의 구체적 표현이 각 종교의 이름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일곱가지 다양한 색깔이 모여 무지개를 이룬다고 종교 다원론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종교적 전통은 신적 실재의 순백 광선이 인간 경험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수많은 전통과 교리, 종교로 굴절되어 각 종교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는 표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색깔은 많은 부분을 흡수하고 나머지 반사한 빛 자체이므로 종교의 외견상 형태는 본성의 전부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산의 등정로는 다양하나 호연지기는 서로 통한다라는 비유 또한 용어가 구원, 해탈, 모크샤, 眞人 등의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종교인의 본래적 모습의 공통점은 서로 상통하지 않겠는가.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유한하며 한계를 지닌다.

위대한 원래 종교도 그 민족의 고유한 영성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통적 개방성을 허락하며, 생명적으로 이해되고 확장될 수 있다. 마치 농부가 접목을 통해서 더 좋은 과일을 생산하듯이.

 

이 책의 저자는 요한 복음 4장의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요약하고 있다. 고달픈 삶에 지친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낮에 우물가에서 솔로 물을 기독 있다. 갈릴레아 지방으로 향하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우물가에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예수님은 연민의 마음으로 여인에게 진리의 대화를 건넨다. (여인은 남편이 이미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살고있는 또 다른 남편이 있는 처자로서 구원에 목말라 하고 있는 처지)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 이 산이다또는 예루살렘이다라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19)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24)

 

영적으로 참되게’(in spirit and truth)는 성전 시대 율법종교, 교리종교, 민족종교, 문명신 종교를 벗어나, 즉 종파적 신앙에서 벗어나 바르게 숨 쉬는 사랑의 실천인 생명의 바다로 나아갈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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