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그 찰나의 감정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해 그는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모르는 영역 中>

- P28

생이 그럴 여기까지 데려와놓고 그가 이제 어떻게든 살아보려니까 힘을 설설 빼며, 이제 그만, 그만 살 준비를 해, 그러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어, 그는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차라리 단칼에 끊어내고 싶다. 증발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

<모르는 영역 中>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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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를 환영하고 설렘으로 받아들이는 건 멋진 일이다. 변화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뭔가에 의존하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뭔가를 끊고 버리고 포기한 이후엔 항상 이걸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했다. 그 후회는 방만함이나 낭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진작 더 가벼워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버릴수록 풍성해진다 中>

- P58

가족끼리 모여 먹은 할로윈 캔디가 나중에 당뇨병의 원인이 될지, 가족과 보낸 즐거운 시간이 면역력을 높여줄지, 알 수 없다. 삶이 그렇다. 그 불확실함을 사랑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나쁜 일을 방지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나쁜 일은 생기겠지만 그래도 삶의 구석구석을 만끽해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렇게 살았을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니까.

<무엇보다 기쁨으로 먹는 것 中>

- P64

누구든 한 번의 인생을 사는데,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의 선택을 쌓아가는 일이다. 선택이란 오로지 하나를 택하는 것인데 자연히 버려진 무한히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 가지 않은 길 말이다. (...) 하지만 그들조차도 무수한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보지 않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들은 할 말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이 든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하겠다는 치기 어린 반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정한 겸허한 태도를 만나게 된다. 인생의 성공과 완벽에 대한 기준을 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사는 것이지 ‘잘‘ 살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아무도 ‘잘‘ 살 수가 없다.

<가르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中>

- P106

돈이 쌓이기만 하면 됐다. 돈은 안 쓴 만큼 정확하게 쌓였다.
돈이 주는 행복은 이토록 정확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일은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데, 돈을 모아서 대출금 통장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일은 극치의 행복이었다. 그토록 확실하게 행복을 손에 쥐었다고 확신했던 시간은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돈의 기쁨과 슬픔 中>

- P143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던 20대 후반에도 나는 먼저 한 가지를 받아들였다. 내가 어떤 아이를 낳든, 나는 아이를 최고로 키우지 못할 것이다. 대단한 부자도 아니고, 인격이나 지혜가 딱히 월등하게 훌륭하지도 않고, 뚜렷한 사회적 명예나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을까. 그래도 아이를 낳았던 건 나도 아이도 누군가의 눈에는 불쌍하게 비치고 후회도 하겠지만, 산다는 것 자체가 꽤나 좋은 일이라는 개인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욕 앞에서 나를 지키는 시선 中>

- P162

동생에게 지금이라도 내가 왜 결혼했는지, 나의 진짜 목적이 뭔지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 벌 때도 경제적 수입은 넉넉했던 동생이 결혼한 것은 정서적 동반자를 원해서일 수도 있고 제도권에 속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아기를 같이 기를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일단 남편한테 네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려. 그러고 나서도 남편이 행동을 안 바꾸면, 그때 네가 선택하면 돼. 서너 달에 한 번 소리 질러도 결혼에서 네가 원하는 게 충분하면 그냥 참기로 결정해.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걸 얻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면, 누가 뭐라고 하든 이혼해버려. 그러니까 이제라도 이 결혼에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거랑 남편이 소리 지르는 거랑 비교해서 네 마음대로 결정하면 돼."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中>

- P187

그를 향한 과도한 처사를 보면 어쩐지 유태인 사회 전체가 그를 두려워한 것처럼 느껴진다. 피가 낭자한 종교개혁을 이끈 사상가들과는 달리, 그는 정치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논쟁을 즐기기는커녕 겸손하고 조용했다.(...) 그가 조용히 신을 부정하는 것이 불러온 공포감은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의문을 던진다. 바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 스피노자는 인간의 행위에 개입해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 대신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오로지 인간 내면에서 나오는 힘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의 매 순간을 그의 철학으로 만들었다.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中>


- P193

스피노자가 삶의 매 순간 추구하고 획득했던 자유를 상상하면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실체‘와 ‘양태‘가 쉽게 다가온다. 실체는 변하지 않는 것이고 양태는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걸 말한다. 시시콜콜 인간사에 간여해서 분도하고 상 주고 벌주는 신이 아니라, 자연이나 거대 우주처럼 영속하는 하나의 원리로서 신은 실체다. 그리고 인간은 영속하지 않으니 양태다. 인간은 물질과 정신의 조화 가운데서 신, 혹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의 이성을 써야 한다. 그것이 자유다. 신에 대한 사랑은 가능하지만 신에 복종할 수는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신에 대한 사랑은 곧 자연에 대한 탐구였다.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中>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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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 키케로는 기원전 44년에 쓴 <노년에 대하여>에서 인간이 노화로 신체 기능을 잃더라도 세워롸 함께 쌓인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지적 능력이 그 상실을 보상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당시 키케로가 치매와 같은 인지 기능 저하는 실재하지 않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다.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너그러워지고 성격도 조금 더 둥글둥글해져서 전반적으로 더 행복해진다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아주 매력적인 노화의 이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거울 속에 사는 낯선 노인 中)

- P98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을 잃는 것은 큰 아픔이다. (...) 나는 덜 아픈 상실을 위해 세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첫째는 기억하는 한 잃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과 나누었던 생각들을 기억하는 한 그는 영원히 나의 일부가 된다. 현실 속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이별한다고 해도 그 관계를 통해서 얻은 것들, 알게 된 것들, 깨달은 것들을 잘 솎아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덜 아픈 이별을 할 수 있따. 다 잃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 세계가 더 넓어지고 농익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덜 아픈 이별, 가능할까요 中)

- P108

어디까지가 살 만한 갊인지에 대한 대답은 각자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답도 오답도 없고 나다운 대답만 있다. 치료의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면 부작용을 치료하게 돕고, 통증 때문에 살아갈 힘을 잃었다면 더 잘 반응하는 진통제를 처방하기 위해 고심하고, 몸의 통제력을 잃어 고통스럽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따뜻한 노을빛을 즐기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고,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하는 삶이라면 그저 당신이 살아만 있기를 바라는 가족을 위해 삶을 유지할 순 없는지 묻는다.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만한 삶인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금, 살 만한 삶인가요 中)

- P123

아래의 여섯 가지 질문은 그의 남은 삶을 위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이다. 병의 치료를 위해 의사와 병원이 쥐고 있던 삶의 결정권을 당사자에게 다시 돌려주고 남은 삶을 그답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이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나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신체 기능은 무엇인가요?
지금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다 해결할 수 없다면 무엇을 먼저 해결하고 싶나요?
죽기 전에 꼭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나요?
어떤 치료를 마저 받고 싶으며 그 치료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디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나요? 집이어야 하나요, 병원이어도 괜찮은가요?

(지금, 살 만한 삶인가요 中)

- P126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겠지만 적어도 6개월은 주어져야 한다.

(지금, 살 만한 삶인가요 中)

- P128

미국에서는 호스피스 의료진을 ‘죽음의 조산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좁은 산도를 지나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삶을 부여받듯 죽어가는 고통을 지나야 죽음을 맞는다. 태어난 이상 삶을 시작하는 고통, 살아가는 고통, 죽어가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완화시킬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이란 그저 덜 고통스러운 삶, 덜 고통스러운 죽음일지도 모른다.

(지금, 살 만한 삶인가요 中)
- P129

코디는 의사로부터 존엄사를 위한 약을 무사히 처방받아 침대 옆 서랍장에 넣어뒀다. 그 약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죽음을 잠시 잊고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며 마음이 평화롭다고 했다. (...) 이 약을 다시 언제 꺼댈 것인지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에 달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내가 결정하겠습니다 中)

- P164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았던 이들은, 많은 경우에 죽음 역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본모습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를 얻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내가 결정하겠습니다 中)

- P170

얄롬은 서기 341년에 태어난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지혜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로,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실체가 없고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끝이 아닌 ‘시작되기 전‘이라는 관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 것이다. 둘째로 육체의 죽음은 영혼의 죽음을 동반하므로 의식이 떠난 신체는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 죽어서 의실을 잃은 우리는 죽음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두려워할 필요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中)

- P182

매일 밤 담에 들 때 우리의 삶은 잠시 멈춘다. 수술대에 누워 마취를 받고 의식을 잃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흐리지만 우리의 삶은 멈춘다. 그래서 수면과 마취는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죽음의 경험이다. 죽음을 미리 연습하며 우리는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초보자를 위한 죽음 안내서 中)

- P205

무엇보다도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답에는 개인차가 크다. 정점에 이르는 찰나의 쾌락을 행복으로 정의하는 이도 있고 안전에 대한 욕구, 자아 성취에 대한 욕구, 더 나은 삶의 질에 대한 욕구를 충족했을 때 느끼는 은근하게 지속되는 안정감과 충만감을 진정한 행복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일론 머스크는 행복할까 中)

- P290

흥미로운 몇 가지 연구들을 살펴보자. 혼자인 사람보다는 결혼한 사람이 행복하고, 결혼한 사람보다는 이혼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연구가 있다.(특히 여성의 경우) 자녀 양육이 생각만큼 그렇게 큰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일론 머스크는 행복할까 中)
- P290

‘자기주도권‘을 갖고 사는 삶도 행복에 중요한 요건이다.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은 관리자급 리더가 말단 직원보다 행복한 까닭도 단순히 수입이 더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주도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행복할까 中)
- P292

살면서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과 혼자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던 과거의 시간이었다.

(너와 나를 돕는 위로의 기술 中)
- P318

죽어가는 사람은 모두 우울할까? 그렇지 ㅇ낳다.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회고하는 이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받아들이고 마지막을 준비할 힘을 낸다.

(곧 죽을 거지만 지금 죽고 싶어요 中)
- P320

끝이 보이는 삶이라 해도 살아갈 가치가 없다거나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삶은 여전히 가치가 있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해줄 수 있으며 남은 시간이 얼마든 관계없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며, 이것이 좋은 죽음을 맞는 과정이다.

(곧 죽을 거지만 지금 죽고 싶어요 中)
- P322

쇠약하고 기능하지 못하는 육체를 겨우 가누면서 건강한 자아존중감을 가진다는 건 때로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곧 죽을 거지만 지금 죽고 싶어요 中)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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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라. 이게 네 인생이야. 달리면서 절대 공을 놓쳐선 안 돼."(...)
"이걸 빼앗으려고 태클이 들어올 거다. 지독하게 쫓아와서 집요하게 괴롭히겠지. 너보다 몇 배는 잘 뛰는 녀석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로채 가기도 할 거야." (...)
"빼앗겼다고 그렇게 바보같이 서 있을 거야?"
"네?"
"말했잖아. 이 공이 네 인생이라고. 빼앗겼으니 다시 되찾아 와야지."(...)
"경기장 안에선 너 혼자 아무리 잘 달려 봐야 소용없어. 네가 공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 빼앗으러 올 테니까."
"그럼 어떡해요?"
"어쩌긴. 네 인생을 친구에게 부탁해야지. 그걸 패스라고 한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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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아빠와 실라이 끝에 색칠공부로 추정되는 어떤 책을 들고 계산대에 섰다. 그런데 아빠가 "이제 계산하게 아빠 줘"하는데도 어린이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 앞치마를 두르고 계산대에 계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어린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씀 하셨다.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
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어린이에게 책을 받아 아빠와 계산을 마친 다음 어린이에게 ‘따로 담아 드릴까요?"하고 물으셨다. 어린이 손님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아유, 귀여워 몇 살이야? 아빠 드려야지."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돈을 내는 것은 아빠니까 아빠 편을 드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 게다가 그렇게 하는 사장니의 모습에도 품위가 있었다.

<어린이의 품위 中>

- P44

(...)우리 모둠에서 제일 냄새가 많이 나던 아이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도시락을 드시던 선생님의 모습, 전학생인 나를 숨이 막히도록 꽉 끌어안으며 "나는 새로운 아이가 너무 좋아"라고 환영해 주신 선생님의 목소리만은 어제의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음속의 선생님 中>

- P120

어른들 사이에도 한쪽은 반말을 쓰고 한쪽은 존댓말을 쓰는 상황이 펼쳐질 때가 있따. 상사와 부하직원, 시어머니와 며느리, 선배와 후배처럼. 이들의 대화에서 감정을 편하게,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쪽일까? (...)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다.

<저 오늘 생일이다요? 中>

- P191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 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어린이가 ‘있다‘ 中>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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