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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림책 작가는 귀빈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일상 생활 속에 숨어 있는 매력을 찾아내어 쓴 샬로트 졸로토우의 <한 걸음 두 걸음>. 사물에 대한 어린이들만의 정의(定義)를 모은 루드 크라우스의 <구멍은 파는 것>, 그리고 옛날이야기나 전설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마샤 브라운의 작품이 그림책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 기준은 1960년대에 씌어진 에즈라 잭 키츠의 <애완동물 쇼>,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버나드 웨버의 <악어 라일, 동물원에서 도망치다>, 빌 피트의 <하늘을 날아가는 다람쥐>, 토미 웅게러의 <달 사람>으로 이어져 더욱 깊이 있게 향상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그림책의 매출이 떨어지자,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편집자의 눈도 엄격해졌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마셜, 로리 시갈, 토미 드 파올라, 데이비드 맥컬리 같은 신인 작가의 작품에는 어린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신념이나, 일상생활 속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야한다는 루시 스페레이그 미첼의 주장은 아직까지 살아있다.

   1960~70년대가 되자 그림책의 세계에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사람이 평생 동안 지니게 되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의 형성에 그림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꼬마 검둥이 삼보>는 100년 전부터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림책의 고전이지만, 주인공인 동인도 소년이 지나치게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고 어른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다. <중국인 다섯 형제>는 클레어 허쳇 비숍이 이야기를 다시 꾸미고, 커트 비즈가 노랑과 검정 두 가지 색깔로 그림을 그린 걸작인데, 이것 또한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중국계 시민들 사이에서 비난의 소리가 일었다. 부모나 교사, 도서관 사서, 그리고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교외에 사는 백인 중류가정이 무대가 되고 앞치마를 두른 엄마와 신문을 읽는 아빠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회의식이 높아진 현대의 그림책은 지금까지 발견된 갖가지 결점을 피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은 엔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권 운동의 그림책으로 새로운 명성을 얻고 있다. <꼬마 검둥이 삼보>는 도서관 책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교사들은 <중국인 다섯 형제>가 가진 이야기로서의 장점과 중국계 사람들에게 주는 불쾌감의 틈바구니에 끼여 갈피를 못잡고 있다. 한펴 출판사에서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흑인이나 라틴아메리카계·인디언계의 아이들, 어른이 되면 앞치마와 청소기에 얽매인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녀들을 다룬 이야기를 찾고 있다. 60년대에는 문제의식이 싹텄고, 70년대에는 그에 호응하는 갖가지 시도가 나왔다. 그 중에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어떤 것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사라지고 마는가는 80년대에 결정될 것이다.

  60년대외 70년대에는 시각적인 자극을 찾는 어린이들의 요구에 호응이라도 하듯 삽화가가 중심무대에 나섰고 유명한 삽화가들이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직접 쓴 그림책을 잇달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제임스 마셜의 <조지와 마서>, 토미 드 파올라의 <위층의 나나, 아래층의나나> 같은 재미있는 창작 그림책이 출판되는 한편, <거위 아줌마의 동요집(Mother Goose Rhymes)>와 같은 민담·전설 등 글보다는 그림이 중심이 된 그림책도 속속 나왔다. 모리스 샌닥이나 윌리엄 큐리렉처럼 작가로서도 풀륭히 성장한 삽화가도 있다. 두 사람 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샌닥은 <창 밖 저 멀리>에서 자기가 어렸을 때 느꼈던 심상 풍경을 재현하였고, 큐리렉은 <벌목하는 사람>에서 캐나다에서의 소년 시절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36~39p.)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아이디어는 인간을 자세히 관찰하는 일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세밀한 관찰자 타입의 작가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언제 말을 하고 언제 입을 다무는지에 늘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보고 들은 것들을 기억해둔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뒤에 컴퓨터 앞에 앉아 마치 변호사가 판례를 인용할 때처럼 정확하게, 오랫동안 해온 관찰을 글자로 표현하는 것이다.(중략)

  소설가라면 어른이 소설을 읽는 약 50년 사이에 독자의 관심을 끌면 된다. 어른 독자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을 때도 있는가 하면, <하와이>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시기도 있다. 그러나 그림책 작가는 두 살에서 여덟 살까지의 불과 6년 사이에 독자를 매혹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한 권의 그림책 속에서도 갖가지 재주를 부릴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주인공을 삼는 것은 틀림없이 좋은 방법인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어린이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의 이야기는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도 읽지만, 남자아이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꺼린다고 한다.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면 여러 가지 주장을 내세우는 단체에서 제약을 가할 수 도 있다. 흑인 아이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것은 흑인 뿐이라든가, 소녀 시절의 경험을 묘사 할 수 있는 것은 여성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적대시 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까? 사람을 무엇인가로 변장시켜서 쓰면 된다. 이 해결색의 효과는 그림책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솝은 이미 이천 년도 더 전에 이 사실을 발견했기 대문에 여우나 두루미나 쥐의 우화를 모았던 것이다. (79~80p.)

 

 그림책의 경우, 무대나 플롯, 성격의 설정을 위해서는 장(章)이나 문단이 아니라 문장이나 단어들이 사용된다. 이 길이의 제약을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자기의 솜씨를 보여줄 대목이라고 용기를 내는 작가도 있다. 글의 길이에만 제약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기본적인 제약임에는 틀림없다. 간결한 문장은 작가에게 각별한 자기 수련의 결과이며, 독자에게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가령 단어 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 광고 문안이나 세심하게 다듬은 시, 명쾌한 신문기사를 읽는 것은 즐겁다. 어른은 여유 있게 소설이나 길고 복잡한 역사책, 약간 산만한 회상록 등을 읽을 때도 있지만, 어린이에게는 간결한 문장이 전부이다.(110p.)

 

 

  초보 그림책 작가가 맨 처음 범하는 중대한 잘못은 빈약한 소재를 다루는 것이다. 소재는 곧 아이디어이다. 종이 위에 연필로 열심히 써나가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아이디어는 그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위대한 건축가가 마음에 드는 재목이나 유리를 찾아다니듯 그림책 작가도 소재가 되는 아이디어를 찾아 많이 모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수집한 아이디어를 전부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의 범위가 넓을수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중략) 이 두 작가는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다르지만, 정성껏 질서를 세워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것은 같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융통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스스로의 훈련도 철저하다. 그것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훌륭한 편집자들과 함께 그림책을 만들면서, "원고 단계에서는 작가 자신이 편집자가 되어야 하며, 또 어느 편집자라도 편집할 소재가 나쁘면 좋은 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랜신 제이콥스 앨버츠는 그림책 작가의 심경을 이렇게 말한다.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일이다. 눈이나 머리카락의 색깔처럼 오직 자기만의 것이다."(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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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생각의 주파수란 말에 설렜다. 그게 맞지 않으면 같은 말을 하고도 서로 다른, 봉창을 두들기는 예가 많다는 건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야‘ 하면 ‘호‘ 할 줄 아는 사람끼리 속을 터놓는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여새 난 어디서든 재잘대며 수다 떠는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치 배고픈 자가 남이 먹는 모습만 보고도 침을 꼴깍 삼키듯이 말이다. (65~66p.)

일어나 앉아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다. 울면서 내 가슴에 분명하게 고이는 욕구 하나를 읽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시영이를 잃고 싶지 않다는 절절함이었다. 이제 다시는 친구 없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쯤이야 이미 오래전에 터득한 바다.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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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그래야 문제의 내용은 물론 해결책도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착하거나 혹은 비겁한 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미래는 원래 불안한 거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무한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1년 365일을 만든 것이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 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인류가 시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기 위해 지난 수만 년간 고안해낸 마법이다. 그래서 새해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즐거운 결심을 해야한다. 새해 첫날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하거나 차가운 바닷물에 다이빙하지 말자는 거다.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히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절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

 '새해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중략)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남이 시켜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

 

- '제발 나 자신과 싸우지 마라!' 中 (p.64~6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구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갑수의 물건 철학은 다르다. 도구에 헌신하고 도구를 위해 희생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일상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해지느냐고 내가 물었다. (중략)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것처럼 거짓말은 없는 것 같아. 자신이 행복한가, 불행한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시간, 공간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불행해질 수 밖에 없어. 시간, 공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 물건에 헌신하다 보면 내가 사라지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거야. 빠지고 몰입하는 거라고. '자아'라는 주체로 서는게 아니라 대상에 함몰되는 거지. 돈이나 밥이 아닌 다른 것에 함몰되는 것은 참 근사한 거야."

 

- '남자의 물건을 꺼내면 인생이 살 만해진다-김갑수의 커피 그라인더, 윤광준의 모자, 김정운의 만년필' 中 (p.138~139)

 

 

 

 그래서 보다 구체적으로, 부인이 불평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그 신중하기 그지없는 신영복은 "가까운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참 좋은 사람이라 하겠지만, 자신의 부인은 절대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감옥에 있을 때도 꼭 미운 사람이 하나는 있어요. 꼭, 하여튼. 그래서 그 친구 만기 날짜만 기다리는 거죠. 그러다가 자기 징역이 다 간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출소하잖아요? 나가면 그 날 저녁은 참 행복해요. 앓던 이 빠진 듯이 시원하다, 그런 마음이에요. 그런데 며칠 있으면 또 그런 사람이 생겨나요. 꼴보기 싫은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 나가기를 또 기다리고....  그러면서 깨달았지요. 그 사람에게 물론 결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 환경이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하는구나, 라고요."

 신영복 자신에게 아내가 미운 사람인 건지, 아내에게 자신이 미운 사람인 건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일처제라는 환경이 아내는 남편의 약점을, 남편은 아내의 약점을 찾아내게 하는구나, 뭐 그런 식으로 나 편하게 이해했다. 아내에게 끊임없이 약점을 지적당하는 나로서는 참 많이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 '신영복의 벼루' 中 (p.190~191)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중심언어egocentric speech'라고 한다. 자신의 내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수단이 박탈된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도덕적 팩임이 큰 사람에게 많ㅎ이 나타난다ㅏ. 이들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필요하다. 그림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어릴 때부터 익명성을 포기하고 산 안성기에게 그림은 아주 중요한 내면의 표현 수단이다.

 - '안성기의 스케치북' 中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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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론자들에게는 악을 설명하기가 쉽다.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 신에 의해서만 통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독립된 악의 힘이 돌아다니고, 악의 힘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

  이신론자의 견해에는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만일 세상을 유일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질서가 잘 잡히고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현실이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움을 관장하는 법칙을 정한 존재는 누구인가? (중략)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 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chapter 12. 종교의 법칙 中. (p.314)

 

 

 

  사실 일신론은 역사에서 나타났듯이 일신론과 이신론, 다신론, 애니미즘 유산이 하나의 신성한 우산 밑에 뒤섞여 있는 만화경이다.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 chapter 12. 종교의 법칙 中. (p.317)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chapter 13. 성공의 비결 中. (p.342)

 

 

  만일 우리 후손들의 의식이 작동하는 차원이 정말로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면(혹은 우리의 의식을 넘어서서 우리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그들이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사회조직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라거나, 성별이 남성과 여성으로 갈린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역사상의 위대한 논쟁들은 중요하다. 적어도 이 신들의 첫 세대만큼은 인간 설계자들의 문화적 아이디어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이미지에 따라 창조될까? 자본주의? 이슬람? 페미니즘?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그들이 가는 길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중략)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과학의 주력상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 하는 구실을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chapter 20.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中. (p.585~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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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강아지.'

  나는 그 말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기가 곤란하다. 그 말이 내게 무슨 의미인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강아지.'

  나는 플뢰르와 함께 있었을 때 내가 아주 특별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내가 다시 플뢰르에게 들려주고 싶은 느낌이었다. 사실 멀라를 도와주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놀랍게도 누군가 나를 돕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멀라의 말에는 어떤 마법이 있었던 걸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다. 강아지가 아니더라도 그런 말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확신할 때까지 속으로 말하거나 눈을 감고 큰 소리로 말해도 좋은 것이다.

 '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강아지다."

 한번 시도해보라.

  - chapter 45. 내가 그리워 할 것들 中 (p. 169~170)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할 강심장이 되지 못했다.

   물론 버나드는 내게 함께 있어달라고 하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나도 그러겠다고 했을 것 같았다. 버나드는 머리를 껍데기 밖으로 막 내밀기 시작한 거북이 같았다. 내가 머물렀다면 버나드는 나와 함께 가장 작은 유령으로 안전하게 물러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버나드를 다시 숨어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나는 진정 누군가의 삶이 변화하도록 도와준 데서 느끼는 자부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아주 조금은 보이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 chapter 57. 그리고 버나드의 멋진 조수 中 (p.229 ~ 230)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혼자가 되었다.

  자신에 관해 알고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주변에 자신의 역할을 생각나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또 후회할 기억이 없거나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기억이없다면 그 존재는 누구일까?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면 그 존재는 무엇일까? 또 어떤 형태를 취할까?

  그리고 기억이 전혀 없다면 밤에 어떤 꿈을 꿀까? 또 기억나는 노래가 전혀 없다면 어떤 노래가 머릿속에 떠오를까?

  모든 것이 사라진 후,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려고 애썼다. 물론 나는 특별한 형체가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형체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었을까? 내 기억이 사라졌을테지만 내가 알던 사람들은 내 일부였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존재했다.

 

             - chapter 58. 8천억 개의 새로운 별 中 (p.234 ~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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