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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몇몇사람의 힘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며 누가 그 자리에 오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리이나 이것만큼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특히 특정한 오너가 없는 대부분의 공조직이나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업무를 추진하거나 정책 방향을 밀어붙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추진력은 해당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열정‘에서부터 나온다. 모든 정챛ㄱ 추진에 있어 완성도는 담당자 개개인의 업무 능력에 좌우되고,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책 결정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완성된다. 모두가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야만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골든아워1. 나비효과 中)

- P132

문제는 누가 그 사업의 핵심을 거머쥐는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 지원이 결정되고 나면 사업 추진 기관과 사업 수행기관들 간의 관계가 180도 역전된다. 이때부터는 사업 수행 기관들의 목소리가 커져, 아무리 엉망이 되어 막가더라도 막아설 수 없다. 제재에 대한 기준이 명문화되어 있긴 하나, 실제 집행의 근거인 사업지정 취소와 지원금 환수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골든아워2. 침몰 中)

- P204

나는 보건복지부 전체에 사무관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했다. 어림짐작해보아도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것 같았다. 그 인원으로 국가 전체 보건의료뿐 아니라 복지 체계에 이르는 일들을 물 샐 틈없이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예산도 없을뿐더러,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겨룩 업무의 실행은 꼭대기에 위치한 몇 개의 명령 체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빈틈없이 진행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애초에 조직의 전체 크기와 정책의 광범위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골든아워2. 남겨진 파편 中)

- P226

의사라면 말술을 먹고 정신을 놓아도 다른 의사에게 함부로 욕하지 않는다. 거짓과 비방으로 가득 찬 글을 공개적으로 뿌려대는 짓 또한 하지 않는다. 의료계 바닥은 신문지 한 장 펼쳐놓은 것마냥 좁아서 그 같은 짓을 아무에게나 잘못하면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술기운은 술기운을 발휘할 만할 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기 좋은 상황에서 발휘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욕설을 들으며 내 비루한 위치를 생각했다.

(골든아워2. 의료와 정치 中)

- P239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좠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 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 비용을 상회하며, 송방학옹대 두세 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 가치를 알 수 없었다.

(골든아워2. 무의미한 대안 中)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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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년째 일산 신도시에 살고 있다. 50살 때 이사 와서 지금 70살이 되었다. (...)
20년 전의 어린 나무가 이제는 크게 자라서 잎이 무성하고 그늘을 거느려서 사람과 새를 모은다. 나는 내가 점찍어놓은 나무들이 자라는 과정을 20년 동안 들여다보았다. 나무의 우듬지 쪽 윗가지들은 새롭게 뻗어나와서 바람에 출렁거리지만, 밑동에 가까운 굵은 가지들은 더 굵어지고 껍질이 더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가지가 벌어진 각도나 방향은 어렸을 때의 표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호수공원의 산신령 中)

- P21

여성 노인들은 아들 편을 들었다가 며느리 편을 들었다가, 며느리를 욕했다가 자랑했다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는 날마다 이어진다. 누구의 삶인들 고단하지 않겠는가. 이러니 남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얼마다 두려운 일인가.
한 생애를 늙히는 일은 쉽지 않다.

(호수공원의 산신령 中)


- P35

여러 빈소에서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나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남처럼 느껴진다.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염을 받고 관에 드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범접할 수 없는 타인이라고 느꼈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제가 죽었는지를 모르고. 제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산 자는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모른다. 살아서도 모르고 죽어서도 모르니 사람은 대체 무엇을 아는가.

(늙기와 죽기 中)

- P71

날이 저물고 밤이 오듯이, 구름이 모이고 비가 오듯이, 바람이 불고 잎이 지듯이 죽음은 자연현상이라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그런 보편적 운명의 질서가 개별적 죽음을 위로할 수 없다.
문상 온 친구들이 그렇게 고스톱 치고 흰소리해대는 것도 그 위로할 수 없는 운명을 외면하려는 몸짓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문상의 자리에서 마구 떠들어대더 친구들의 소란을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늙기와 죽기 中)

- P72

당신들은 이 송년회가 후지고 허접하다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덧없는 것으로 덧없는 것을 위로하면서, 나는 견딜 만했다. 후져서 편안했다. 내년의 송년회도 오늘과 같은 것이다. 해마다 해가 간다.

(해마다 해가 간다 中)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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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호적이고, 깊고, 부드럽고, 한결같은. 어떤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삶에서, 죽음에서.

- P17

작은 부처상이 놓여 있는 책장 위, 창문 옆에서 너는 명상을 즐겼다. 네가 하도 현명하고 평온해 보여서 "나의 고양이여, 나는 너를 숭배한다. 너는 적어도 헛된 허영심에 휘둘릴 위험은 없으니까." 라고 말하면서 네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했다. 그러면 너는 동의의 표시로 눈을 깜빡였다.

- P63

파스칼은 "연극이 아무리 아름다웠더라도, 마지막은 참혹하다. 우리는 흙을 얼굴에 뿌리고, 그리고 그것이 영원이다."라고 <팡세>에 썼다. 우리는 언제 이 마지막 행위가 시작되는지 알까?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태어나면서 삶이라는 죽음의 병에 걸린다.

- P73

너를 통해 부드러움, 애정, 순수함을 동경했을 뿐 나는 비난받을 만한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들이 서로 목을 베는 이 야만의 세상에서 신의 영혼은 소박한 영혼, 짐승의 말없는 사랑에 숨어든 것이 아닐까?

- P99

이렇게 너는 부처상 근처, 네가 자주 앉았던 선반 위에 머문다. 집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빛의 묘를 만들어 주었다. 너는 내 안에 머문다. 네 죽음은 내 기억에 은신처를, 내 마음에 기억이 울리는 소라 고동을 팠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은 죽은 이의 진정한 무덤이다. 유일한 무덤. 내가 사는 한 너는 내 안에서 산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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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이고 좌절하게 하는 현실이지만, 미래에 기술이 더 발전하면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희망 없는 현실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조금 더 잘 살아갈 가능성은 없는 걸까? 치료와 회복만이 유일한 길처럼 제시될 때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은 끝없이 미래로 유예된다.
(...) 사람들이 과학기술과 의학에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장애인을 치료하고 교정하는, 누운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는 극적인 효과다.

(1장 사이보그가 되다 中)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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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면 시작 전체가 잇따른 흥분과 낙담으로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는 작은 시소게임이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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