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아빠와 실라이 끝에 색칠공부로 추정되는 어떤 책을 들고 계산대에 섰다. 그런데 아빠가 "이제 계산하게 아빠 줘"하는데도 어린이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 앞치마를 두르고 계산대에 계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어린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씀 하셨다.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 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어린이에게 책을 받아 아빠와 계산을 마친 다음 어린이에게 ‘따로 담아 드릴까요?"하고 물으셨다. 어린이 손님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아유, 귀여워 몇 살이야? 아빠 드려야지."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돈을 내는 것은 아빠니까 아빠 편을 드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 게다가 그렇게 하는 사장니의 모습에도 품위가 있었다.
<어린이의 품위 中>
- P44
(...)우리 모둠에서 제일 냄새가 많이 나던 아이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도시락을 드시던 선생님의 모습, 전학생인 나를 숨이 막히도록 꽉 끌어안으며 "나는 새로운 아이가 너무 좋아"라고 환영해 주신 선생님의 목소리만은 어제의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음속의 선생님 中>
- P120
어른들 사이에도 한쪽은 반말을 쓰고 한쪽은 존댓말을 쓰는 상황이 펼쳐질 때가 있따. 상사와 부하직원, 시어머니와 며느리, 선배와 후배처럼. 이들의 대화에서 감정을 편하게,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쪽일까? (...)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다.
<저 오늘 생일이다요? 中>
- P191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 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어린이가 ‘있다‘ 中>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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