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속에서 끓어야 글이 써지니 이상한 성격이다.

어제 너무 열을 받아서 잠까지 설쳤다. 나이는 중년인데 민감하긴 아주 사춘기가 울고 가겠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뭐든지 완전 틀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에는 완전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질문을 초면에 얼굴색하나  안 변하고 속사포처럼 쏟아대는.


대학은 나왔어요?

결혼은 했어요?

애는 있어요? 

거기선 몇 년이나 일했어요?

어떻게 댁을 한 번도 못 봤지?


오분만 더 이야기했으면 연소득은 얼마냐고 물을 판이다.


'어머 질문 많은 아줌마, 누구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답할 수 있어야 했는데... 못했다... 


나는 갑자기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분명히 과민반응이다. 대학도 나왔고 결혼도 했으며 애는 없지만 (근데 있든 없든 그게 댁이랑 뭔 상관이냐) 나름대로는 이 직종에서는 알아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엉뚱하게 구멍 난 남비처럼 갑자기 형사법정에서 무죄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은 듯 당황했던 건 왜일까? 트위터에서 무식한 소리하는 당사자는 뻔뻔하기만 한데 읽는 내가 속이 상해서 혼자 쩔쩔매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내가 아무리 궁리해도 말로 정리가 안 되는 그 이유란 도대체 뭘까? 


이런 사람들하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섞여 살아야 하는 거겠지. 그런가?

난 섞이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냥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물과 기름처럼 떠가며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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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4-2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반가워요

속사포 질문을 받은건 아니지만 저도 자기소개를 하는데 갑자기
-그런데 미스?
이래서 맥이 탁 풀어진적이 있어요. 그게 왜 중요해? 왜왜? 막 혼자 이랬는데.
어리니까 조장말고 총무하라고 지가 뭔데 막 정하는 것도 그렇고. 여자가 무슨 총무 유전자를 타고난 것도 아닌데 총무 시키는 것도 그랬고. ㅡ,.ㅜ;;
그렇지만 저는 오만간데 적을 두는 사람이니 좋은 낯으로 대해보려구요.
물에 술 탄 듯 알코올 도수 낮추면서...

속사포 질문에는 맥락 벗어나는 얘기하거나 그냥 웃는게 방법 같아요.
어떤 유형이 있다면 그런 유형의 분들은 어떤 의욕 같은거요,
그런걸 오래 기억하지 않는 편이어서 금세 까먹거든요.

검둥개 2012-04-20 11:49   좋아요 0 | URL
Arch님 전 그 아줌마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아 다행이지만, 너무 자기중심적인 그런 사람들 넘 싫어요. 근데 화는 늘 자신한테 내는 바람에 울화가 나는 거 같네요. 대범하게 이런 건 남 탓 해도 되는데 ^^
 

요새는 좋아하는 작가가 쿤데라라고 하면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표를 내는 거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왠지 가슴이 아팠다. 대학 때 눈이 유난히 빛나는 한 학번 선배 언니가 생일선물로 사줬던 책이 세 번도 더 읽은 쿤데라의 불멸인데...


삼십이 넘어갈 때는 황당해서 기절할 것 같았다. 어영부영 보내니까 정말 삽십이 되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표는 안 냈지만 그 때 충격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 삼십은 한 세기 전이고(!), 조금 있으면 사십이 될 테세. 


왜 이렇게 나이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박을 부리는 것일까? 누가 나이값 하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유령을 불러대 놓고 스트레스를 받는 격이다.


얼굴 뒤에 - 최승자


얼굴 뒤에

나는 감춘다.

너의 고통과

너의 고통의 피맺힘에 관한

나의 지식을.


얼굴 뒤에

나는 감춘다.

내 자포자기의

내 패배주의의

그러나 무모한 힘을

그러나 무한한 근원을


정작 나이든 어르신네들은 아주 여유만만하건만은.

오십년 후에도 이를 갈고, 육십이 가까워져도 팔랑팔랑하며, 배부른 마음으로 이를 쑤시는 어르신네들 흉내 좀 내봐야겠다.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 천상병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에게 편지를 쓴다네.

참 우습다 -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늘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 권정생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2학년인 도모꼬가
1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가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 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서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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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4-1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아직도, 영원히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하자구요.^^

검둥개 2012-04-18 10:19   좋아요 0 | URL
소녀 때는 분명 애늙은이였는데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포르르포르르 - 세상사가 희한하지요 ^^

치니 2012-04-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 님이다! 저번에도 한 줄 쓰셨을 때 반가웠는데. 헤 -
정생이가 이가 갈릴 만하네요. 풉.
사십은 애당초 지난 지 오래, 나이에 대해 무감각해진 지도 오래, 이런 저에 대해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아무 생각 없어요. 나잇값은 별개의 문제지만요. ㅎ

검둥개 2012-04-18 12:44   좋아요 0 | URL
주책이 다 여유와 자신이거든요. 멋지신 치니님!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나이값을 반성하는 것은 사실 평소 백퍼센트 무반성 생활을 한다는 반증이죠. 갑자기 업적 좀 쌓아둘 걸 하는 엉뚱한 회한이 들지를 않나 ^^

잉크냄새 2012-04-1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서 유령을 불러대 놓고 스트레스를 받는 격이다> - 뜨끔한 구절이군요.

검둥개 2012-04-19 12:17   좋아요 0 | URL
제 발이 찔려서 그러는 거겠지요?
 

욕은 외국어로는 언제나 너무 추상적이고 모국어로는 너무 원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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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2-04-1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검둥개님 진짜 천년만 ㅜㅜㅜ 어떻게 지내세요??
저도 요즘 자주 못들어오는데 너무 반가워서 댓글 남기고 가요!!!
보스턴에서 마이애미로 이사가셨었죠? 아직도 마이애미에 계세요?

검둥개 2012-04-17 09:45   좋아요 0 | URL
키티님 저도 무지 반가워요! 진짜 천년만이죠? ^^ 아직도 마이애미에 있답니다.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최승자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려져 잠들리라,/ 쥐도새도모르게 잠들어버리리가./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 계신가,/ 정처없이 살아 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리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뜽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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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07-1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오랫만이네요.
저도 요즘은 잘 접속하지 못하는데, 간만에 접속했더니 님의 글이 올라와있네요.
 


Algis Burdys의 짧은 1960년작 공상과학 소설 <악한 달 Rogue Moon> 을 드디어 다 읽었다. 재미가 별로 없는 책을 영어로 읽으면 영 주인공 이름도 헷갈리고 (과학자가 혹스던가 스포츠맨이 혹스던가?) 줄거리도 잘 요약이 안 될 뿐더러 과연 재미 없는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좋겠는가 그만 용기 있게 포기하고 보다 읽는 보람이 있는 다른 책으로 건너뛰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의심과 회의에 책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위키피디아에서 책 제목을 검색해보니 히야, 내용이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위키피디아 한 페이지를 읽고 마는 것인데!

1960년의 공상과학 소설답게 이 소설의 배경은 달이며, 전제는 달에 설명이 불가해한 일종의 돔 같은 (책 표지를 참조하시라) 물체가 있으며 누구든 그 안에 들어가서는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천재 과학자 혹스는 이 물체를 연구하는 정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데 그의 연구에 따라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 미국 정부는 이미 일정 수의 해군 과학자들을 달에 보내놓은 상태다. 그 해군 과학자들이 달에 도착한 경로는 입자 전송기를 통해서인데 이 전송기가 지상의 인간을 그대로 카피해서 복제판을 달에서 새로 제조해낸다. 이런 이유로 일단 복제되면 지상의 엑스씨와 신체상태와 정신상태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제 2의 엑스씨가 탄생하는 것이다.

혹스가 부닥치는 곤란은 이 불가사의의 물체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든 곧 몇 분 안에 즉사하고 (복제판) 지상에 남은 오리지널들은 그 죽음의 경험 때문에 (이 두 신체는 정신상태를 한 동안 공유한다) 실성하여 그나마 경험한 그 몇 분 동안 얻은 지식조차 혹스의 팀에게 알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스가 일하는 회사의 인사부장, 코닝턴의 아이디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그런 일종의 사이코를 찾아서 달에 보내보자는 것. 그런 사이코로 선정된 이가 바커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이코 바커는 무수한 죽음을 거쳐가면서 반복되는 전송을 통해 조금씩 달에 존재하는 이 불가사의한 물체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 간다.

문제는 바커가 드디어 이 도전에 성공하여 이 물체 안으로 진입했다가 살아서 온전히 빠져나오는 순간!
복제된 달 위의 바커가 살아 있으니 지상의 바커와 함께 이제 세계엔 두 바커가 존재한다.
(내가 그 전송기 어쩌고 하는 부분을 읽을 때부터 이 순간을 걱정했건만은, 아니나 다를까!)

버지스의 소설 막판 처리는 좀 실망스럽다.
마지막 전송에서 바커와 함께 달에 도착한 과학자 혹스는 설상가상으로 백퍼센트  personal identity를 보존한 채 달에 전송되어 오는 건 가능하지만 그 역 (지상에 돌아가는 것)은 달에 충분한 장비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불가능하다고 털어놓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던 혹스는 이 고백을 남기고 달에서 자살한다.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철학적 소재를 탐구하려는 시도는 가상하지만...

아, 썰렁하여라!

앞으로 삼돌이의 책 추천은 (특히나 사놓고 본인은 채 안 읽은 책들)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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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2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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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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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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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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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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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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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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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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