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마
(안상학)


단골집 이발사는 머리를 깎다 말고
가르마 쪽 머리가 잘 빠지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성긴 가르마를 비춰 보며 문득
가장 가까운 머리카락끼리 헤어진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필 빛바랜 금강산 사진이 걸려 있는 이발소에서
또 나는, 지금 이 나라도
그런 가르마를 곱게 빗어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누군가 빗겨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깎으며 자꾸만
허전한 가르마가 거슬려
차라리 빡빡 밀어버릴까
아니면 올백을 해버릴까 궁리 중인데
내 생각을 눈치 챈 듯, 잡생각 말라는 듯 어느새
나를 누이고 목에 칼을 들이대는 이발사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있었다. 거울
에 거꾸로 박힌 낡은 텔레비전에서는 평택 대추리에 미군 기지를 마련해 주겠
다고 이 나라  군인들이 철조망으로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순하디 순한 논바
닥에서는 가장 가까운 흙들끼리 헤어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퍼의 구조 (김지녀)


뜨거운 계단들이 열리고 있다
나의 목까지 밀고 들어오는 진흙처럼
계단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잡아당겨 놓았다
나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생각하는 자세로 오해받기 적당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어떠한 생각도 자세도 없다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
이것은 극단에 가깝지만
위에서 아래로
나를 힘껏 잡아당긴 것은 Y의 말대로, 나이다
그러고 보니 계단을 만들어놓은 것 또한 나이다
이쪽과 저쪽이 잘 맞물려 서 있는 자세에 대하여
틀어진 이를 가지런히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나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힘껏 당겨도 닫히지 않는 계단 앞에서
나는 기울어져 조용히 멈춰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백악관 웹사이트의 헤드라인은 "미국에 변화가 왔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전 세계의 관심이 오바마의 취임식에 쏠렸다.  

자정인데도 초등학교 동창생의 취임식을 보겠다고 학교 교실에 모여 앉은 말레이지아 학동들의 모습이 뉴스 중에 비쳤다. 위싱턴 디시에 몰려든 인파의 축제 분위기와는 달리 취임연설은 시종일관 아주 심각하고 진지했는데, 미디어는 어려움 앞에서 정직한 모습을 보였다고 호의적인 평을 주었다.   

나로 말하자면, 백악관의 웹사이트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고 상당히 흥분했다.  청와대에도 웹사이트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정말 있다. 블루 하우스.  음... 

그나저나, 나 같은 이방인 직장인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멋진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음...  쓰고 보니 역사적인 날에 걸맞는 소시민의 정말 상투적인 감상이로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슈마리 2009-01-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쌀나라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한 듯. 좌간, 부시에서 오바마로 바뀌어 시원하긴 한데, 이 나라의 돌+아이는 언제 바뀔런지 암담하구나. ㅜ.ㅜ

검둥개 2009-01-22 02:14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바마가 멋지다고 하나, 역시 남의 나라 대통령이 아니겠어요. 북미관계에 진전이 나기만 우선 기원해봅니다.

유 세 연설에서 자꾸 "한국 차 수입에 빼앗긴 우리 노동자의 자리"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남한 노동자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음? 비슷하게 만들 능력도 없음서...)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우. 이상적인 바램인지는 모르지만, 오바마가 단지 미국 안의 다양성 뿐 아니라 세계 안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 좀더 키웠으면 싶어요.

라로 2009-01-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지켜볼 일이에요~~~.

검둥개 2009-01-22 02:13   좋아요 0 | URL
옙! 맞습니다 :-)
 


새로 입양한 해리 여동생 부머.
어느 멍청이가 이렇게 귀여운 멍멍이를 길가에 버렸을까나?
덕분에 부머는 우리 가족이 됐다

삼돌이는 부머라면 벌써부터 사족을 못 쓰고 감싸고 돈다.
공주님 저리 가라 할 우아한 자태!!!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9-01-1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소파는 부머를 위해 미리 준비해두신 게 틀림없어요. 어쩜 저리 잘 어울릴까요?

검둥개 2009-01-16 22:41   좋아요 0 | URL
제가 찍었지만 정말 사진이 탁월하다고 생각해서 혼자 엄청나게 뿌듯해하고 있어요. ^^
거의 나의 마스터피이스, 모나리자!
이러면서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1-1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정말 꽃미녀군요 ^^

검둥개 2009-01-16 22:42   좋아요 0 | URL
으히히 감사합니다. ^______^
저렇게 이쁘게 생겼으니 도저히 야단을 칠 수가 없지 뭐예요.
사실 장난꾸러기인데.

치니 2009-01-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점잖고 품위가 있는, 그러면서도 착해보이는 녀석이네요. 새해부터 복댕이 들어온 거 같아 보기 좋아요.

검둥개 2009-01-16 22:43   좋아요 0 | URL
저렇게 폼은 잡고 있지만 사실은 또 뭔가 사고를 칠 궁리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니까요.
덕분에 개밥 사는 식비 지출이 세 배로 뛰었답니다.
얼마나 먹어대는지 ^^ 더 클지도 모른다고 혼자 상상하며 좋아하고 있어요.

슈마리 2009-01-1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 참 고급스럽게 생겻네 그려. 좋을 일 했으. ^^;

검둥개 2009-01-19 12:03   좋아요 0 | URL
고급스러운 생김새로 치면 보리와 꽈리도 수준급! :-)

melory 2009-01-1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알 생겼다! 잘 지내냐, 친구?

검둥개 2009-01-19 12:02   좋아요 0 | URL
우와, 정말 오랜만! 잘 지냈음? 왜 연락이 뜸했으, 그랴?

2009-01-20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0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4 0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8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9-01-2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한번 쓰다듬고 손.. 하고 말해보고 싶으나;; ㅎㅎ
새 식구 맞이 축하드려요.

검둥개 2009-01-28 11:53   좋아요 0 | URL
이히 감사합니다. ^^
언제 닉넴은 바꾸셨어요?
이리스도 멋집니다!
 


오늘 나는 (심보선)


오늘 나는 흔들리는 깃털처럼 목적이 없다

오늘 나는 이미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 있다

태양이 오전의 다감함을 잃고

노을의 적자색 위엄 속에서 눈을 부릅뜬다

달이 저녁의 지위를 머리에 눌러쓰면 어느

행인의 애절한 표정으로부터 밤이 곧 시작될 것이다

내가 무관심했던 새들의 검은 주검

이마에 하나둘 그어지는 잿빛 선분들

이웃의 늦은 망치질 소리

그밖의 이런저런 것들

규칙과 감정 모두에 절박한 나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들에 젖었는지 잊었다

오늘 나는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

다음 주의 욕망

다음 달의 무(無)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구토의 연도(年度)

내 몫의 비극이 남아 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증오할 자격이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괜찮은 시인데, 마지막 여섯 줄은 신파.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니 2009-01-1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이럴 때 재미있어요. 저도 얼마 전 이 시를 알라딘에 옮겨놓을까 싶다가, 마지막이 별로라서 그만두었거든요.

검둥개 2009-01-16 22:39   좋아요 0 | URL
히히 치니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찌찌뽕입니다.
잘 나간다고 생각하고 읽어가는데
역시 마지막 부분에서 딸린단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