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아홉번째 지나감 (장석남)



마음 흐린 날
학림다방 창문가에 앉아
구름 지나가는 것을 센다
아홉번째 구름의 지나감
엄엄한 가장 행렬
우리가 그 동안 그렇게 했던,
불 끈 유랑 악단
발목이 시겠다
거기거기쯤에선 발목도 벗고 싶겠다
손톱이 꾹꾹 탁자의 나뭇결 따라 새기는
구름의 아홉번째 지나감
잠시 햇빛 나다 다시 흐리면
소리 막 그친 듯
눈시울 스치는
불 끈 유랑 악단



장석남,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 지성사, 1995, p. 37.



사진출처: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1964&category=0000000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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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다 했더니,
드디어는 찬장에서 유리병이 통채로 떨어져서 부엌 카운터에서 산사조각이 나는 사태가 일어났다.
부엌 바닥에 널린 유리조각, 시큰한 피클 국물 냄새, 순식간에 젖어버린 티셔츠.
으.

생각해보니,
이번 주 내내 피곤했으며
요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보스의 꿀꿀한 심기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고 있고
다니는 학교에선 새 학기가 시작되어 벌써부터 숙제가 생겼으며
일하는 학교에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일이 쌓이고 있는 데다가
어제는 테레비를 보며 열심히 건포도를 우물거리고 있는데 어금니 씌운 것이 그만 쓱 하고 빠져 버렸다는!
금쪽같은 그 이빨 씌운 것이 말이다.
(충치가 재발하지 않아서 제발 그 비싼 것을 도로 붙일 수 있어야 할텐데, 신경치료라도 받아야 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그래서 내일은 치과에 가야 하며
치과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몇 시간 휴가시간을 써먹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받아야 하며
허락을 받기 위해 보스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거기다가
(동네 병원 환자들과 간호원들 모두 사이에서 인기 짱이며)
(게다가 수 년 전 슬림하다는 형용사를 한 번 써준 이래 줄곧 검둥개의 우상 자리를 확고히 지켜왔으며)
(영화 류망의생의 양조위 만큼 멋지고 친절한)
나와 기타 많은 동네 병원 환자들이 친애하는 의사 양반이
딴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이제 생판 모르는 의사로 담당 주치의를 바꿔야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으로 파까지 넣어서 라면을 끓였는데,
맛이 영 아니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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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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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0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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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2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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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0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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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의 최근 수필집 호미에는 광복 이후 학교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국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겨우 몇십년 전에 그런 일을 겪어놓고 이제 와서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전부 영어로 진행하겠다니 이제 무슨 신 일제시대인가? 정말 진중권 말마따나 이건 "실용도 아니고 멍청한 것..."이다. 한글날이나 도로 공휴일로 돌리고 정신 좀 차렸으면.




 
진중권 "인수위 '영어 몰입' 한마디로 미쳤다"
"실용도 아니고 멍청한 것…시장주의 탈레반 같아"
등록일자 : 2008년 01 월 28 일 (월) 11 : 28   
 

  이명박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몰입 교육 방침과 관련해 중앙대 진중권 교수는 28일 "한마디로 미쳤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이건 실용도 아니고 한마디로 멍청한 것이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인수위에 계신 분들의 생각이 너무 과격하다. 시장주의 탈레반, 원리주의다. 일종의 빈라덴 같은 사람들"이라며 이 같이 쏘아붙였다.
  
  "한국말로 해도 수업 잘 못 따라 오는데…"
  
  진 교수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시험문제 푸는 재주는 학교가 학원을 따라갈 수 없다"며 "시장 논리를 학교 교육에 무차별적으로 적용시키는 인수위의 방향은 결과적으로 사교육을 조장하고 공교육의 황폐화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벌써 강남의 전세값이 오르고 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는 "(영어가 아닌) 다른 수업을 전부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것만 봐도 이 분들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지금 학교 선생님들 전체에게 2년 동안 미국에서 어학만 배우라고 연수를 보내고 데리고 와도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국어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외국어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며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한국말로 해도 수업을 잘 못 따라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교 현장에서 영어를 잘 가르치면 사교육을 안 할 것이라는 건 뭔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무리 영어를 (학교에서) 잘 가르쳐도 남과 똑같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경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교육"이라며 "이걸 이해하는데 그렇게 많은 머리가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로 다른 수업까지 하게 되면 수업을 못 따라가는 아이들은 사교육을 받아서라도 영어를 배워야 할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는 "영어가 국가경쟁력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다"며 "영어가 필요한 사람들은 충실하게 가르치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자기 전공을 더 열심히 하는 게 경쟁력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경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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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0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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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0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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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0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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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0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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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0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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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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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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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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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1-2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의 KBS에서는 사극 드라마 "대왕 세종"을 해주는데, 인수위에서는 모두 그 드라마라도 봤음 좋겠어요. -_ㅠ

검둥개 2008-01-30 14:3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세종대왕 반만큼만 정치를 해도 좋을텐데. 꺼이꺼이.
 



십 년 전에 사모은 시집들을 들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분이 심란할 때마다 구내 서점에서 사모은 것들이다.  친구들은 무슨 시집 따위를 그렇게 줄기차게 읽어대느냐고 물었지만, 사실 정말로 열심히 읽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 번에 여러권씩 무슨 과일 떨이 사듯 사댄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때도 사놓고 대충 보는양 마는양 하고 재미없다며 한쪽으로 치워놓았던 이승하의 1993년 시집.  '환자들'이란 시를 발견하고  모처럼 펼쳤더니 그 새 누렇게 바랜 책이 아예 쩍하고 갈라졌다. 제본에 쓰는 풀이 딱딱하게 굳어서 정가운데로 쪼개졌다. 첫연의 총무는 도서관 총무일까? 독서실에 다니던 시절 고시공부나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며 독서실을 관리하던 총무를 별다른 이유 없이 똥쭐 빠지게 패주고 싶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다같이 한심한 처지인데 단지 총무는 나보다 많은 버젓한 어른이라는 사실이 불러일으킨 그 심란함이 아주 처치곤란이었다.




환자들 / 이승하

탈출한 적이 있었지
영 형편없는 총무 녀석을 패준 뒤
병원의 쇠창살을 끊고 달려나간 거리
낚시꾼의 손에서 운좋게 놓여난 물고기처럼
집단에서 풀려나 개인이 되었을 때
난 자유를 만끽했었다

집단은 무섭지
내가 집단의 일원이 되면
아무 죄의식 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아무 비판의식 없이 누군가를 숭배할 수 있지
환자들과 더불어
환자가 되는 슬픔 혹은 기쁨

저 정치인은 왜 저렇게 몰상식한가
저 공무원은 왜 저렇게 불친절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신문을 읽을 때마다 몇 번씩
당신 미쳤냐고 당신들 미치지 않았냐고
외치고 싶지만 ...... 참는다

참는 동안 난 미쳐가지

내가 미쳤음을 왜들 모르지?
당신들도 제정신이 아님을 왜들 모르지?
격리 수용되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당신일 수 있어
형사가 한 순간에 범인이 되고
법정이 한 순간에 병동이 되니

혼자일 때 난 의사야
스스로 진찰하고 스스로 처방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팔에 히로뽕을 놓기도 하지
출근길에 승객의 일원이 되면
출근하여 조직의 일원이 되면
난 타인의 눈알을 갖지

타인의 눈알로 세상을 본다
퉅치를 보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눈시울을 붉히는 나의 눈속임
피를 플리며
나 자신을 수술할 줄 모르는
철면피의 눈알, 환자의 눈알을



--<폭력과 광기의 나날>  (세계사)  p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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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2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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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2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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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뭘 어쨌다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모호하기 짝이 없는 단어, '이렇게'.
그에 바로 뒤이어 이런 질문이 마치 누가 대놓고 묻는 듯이 들려왔다.

그렇게 좀 살지 마라.

술자리에 가면 꼭 이렇게 남의 인생에 모호한 코멘트를 날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구사한 "그렇게"라는 지시어의 대상을 알고나 있었을까?
뭐가 그렇게냐고 대답을 다그쳤으면, 있잖아 에이 씨, 같은 막연한 대꾸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애매한 논평을 받은 당사자들이 얼굴이 붉어져서 화를 내거나 그냥 잠자코 술잔을 비우거나 그러는 너는 뭐 대단하냐, 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어쨌건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런 소리가 들려나오는 술자리에 있었던 적은 있어도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뭔 일인지. 오늘 아침 누가 갑자기 내 귀에다 대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뭐가 이렇게냐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아무 데서도 대답 따윈 들려오지 않는다.
어느 넘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남의 삶을 싸잡아 문책하는지 부아가 끓어오른다.
어딘가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되면 싸대기를 한 대 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는 너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말 한 번 해보라고.

그런데 누가 질문을 하고 있는 건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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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1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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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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