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교회당 (황인숙) 서울역 철로 위 염천교 건너면 구둣방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발목 시큰한 하이힐들이 맵시 뽐내는 가게도 있고요 구둣방들 저마다 뚜벅뚜벅 또각또각 소리 삼키고 구두들이 우직히 임자를 기다립니다 그 거리 끝 횡단보도 앞에서 보았습니다 나무들 울창한 언덕 위 뾰족지붕 교회당 오후의 햇빛 아래 나뭇잎들 일렁이고 내 마음 울렁였습니다 살랑 살랑 살랑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순간이 살랑입니다 신호등이 몇 번 바뀌도록 멈춰 서 언덕 위 교회당을 바라봤습니다 먼지처럼 자욱한 소음 속 우뚝 솟은 언덕 위 교회당 첨탑 끝 하늘 그 너머로 내 마음 내닫습니다 또각또각 뚜벅뚜벅 수 켤례 구두 닳도록 지난 길 되돌아가는 그립고 먼 언덕 위 교회당. 황인숙, <리스본 행 야간열차>, 문학과 지성사 pp. 82-83.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렇게 할 일이 많았던 주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퇴근해서 저녁 먹고 내내 숙제를 하고 나니 새벽 두 시 반. 수면 부족으로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 내일이 피곤하다. 몇 년 만에 보는지라 반가워야 할 친구도 하필 이런 최악의 타이밍을 잡아 술을 마시자고 채근이질 않나. 썩은 어금니는 어금니대로 아우성.
최근 근 일 년여간 영화관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주 큰 맘 먹고 영화관에 갔다. 정작 보려던 코엔 형제의 영화는 시간이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이 블록버스터 1위라는 <클로버필드>를 봤는데. 음, 극장에서 토하는 줄 알았다. 정체불명의 괴물에 포위된 맨하탄을 핸드헬드 카메라만으로 커버하는 영화라, 영화의 사실성이 관람의 불편함으로 직결된다. 이런 종류의 괴수영화야말로 사실 진짜 호러영화. 영화 보는 내내 나 사는 아파트 건물이 혹시 정체모를 괴수에 의해 붕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될 정도였다. 반면 남의 고통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으므로 호러영화로서는 감점. 호러영화의 득세는 최근 십년간 할리우드에서 지속되어 온 경향. 세상사에 대한 통제력을 예저녁에 상실한 일반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꾸준히 영화를 통해 표현되는 데다가 9/11의 충격까지 가세해 발 아래의 현실이 (그들은 도통 알 수 없는 이유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영화 속에서 손에 잡힐듯이 생생하다. 영화 전체는 미 국방성의 극비자료로 포장되어 제공되고 영화 속에선 돌연히 나타나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중의 하나인 맨하탄을 식은죽 먹듯 파괴하는 괴물이 어디서 왔는지 뭔 종류인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에 대한 아무런 실마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왕좌왕 도시를 탈출하며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저게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바다 밑에서 솟은 게 틀림없어. 바닷 속엔 온갖 것들이 다 살고 있다잖아." 발빠른 사람들은 도시가 봉쇄되기 전에 탈출해나가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운이 좋지는 못하고 운이 없는 자는 죽는다. 오버. 이것이 신 21세기 예술의 특징일까? 혼란--죽음--오버. 참, 영화 속 괴물 이름은 뭐더라? 그게 바로 클로버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