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종가... 종부 이야기...참 싫은 소재다. 페미니스트는 못 되지만, 다가오는 명절... 충분히 머리 아픈 큰며느리 입장에서, 종가, 종부 이야기는 알고 싶지도 않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뻔하지 않은가.  그 결론이란 게 별 게 있겠는가. 결국 종부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여서 산다거나, 심지어는 사명감까지 갖는다거나... 아니면 도망간다거나.

내가 이 책에 지금까지 손을 선뜻 대지 못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전혀 페미니즘의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할 말 다 했고, 게다가 깔끔한 문체며 마무리까지.

더욱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 이 소설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작가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라 취재를 통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소설 속의 편지들, 그 보석같은 편지들도 작가의 창작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혹시 글을 쓴다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역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이문열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문열의 선택에 나오는 그 장씨부인은 이 책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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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서 아버지는 이제 일흔 여섯이 되셨다. 여전히 여기저기 오라는 데 많고, 인터넷도 열심이시고, 돋보기 두 개 놓고 책도 열심히 읽으신다. 환갑 넘어 배우셨던 운전으로 여기저기 안 가시는 곳 없고,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무등산을 오르신다. 한 번은 친구분들과 함께, 또 한 번은 혼자.

엊그제, 아주 친한 친구 두 분과 함께 점심을 드시러 식당을 찾으시던 중이었다. 한 분은 서너 걸음 앞서서 걸으시고, 다른 분은 무릎이 안 좋으셔서 한두 걸음 뒤에서 걸으시고, 그리고 아버지는 양쪽 보조를 맞추느라 어정쩡 중간쯤에서 걸으셨단다.

그런데 한참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금방까지 얘기하시던 아버지 친구분이 안 보이시더란다. 앞으로 쓰러져 계셨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119를 불러주어 금방 병원에 갔지만, 그냥 운명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참을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셨고, 며칠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신다고 한다. 잠을 잘 못 주무시고.

도대체 아무런 징조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는 것이 어디 있냐고 하신다.

병원에 계시는데, 연락 받은 유족들이 달려와서 아버지와 다른 친구분은 그냥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단다. 내가 괜히 점심 먹는 데 불러냈다고, 내가 아는 식당 있다고 괜히 앞서서 갔다고...

유족들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분들과 얘기하다 그분들이 임종을 지켜주셨으니, 우리 아버지는 복이시라고, 정말 행복하셨을 것이라고 얘기해줘서 미안한 마음은 좀 가셨다는데, 그래도 사람 목숨이라는 게 이렇게 허망한 것인 줄 몰랐다고 자꾸만 얘기하신다.

이기적인 나는, 고인과는 그래도 한발 떨어진 처지라, 그저 내 아버지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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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1-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이 많이 놀라셨겠어요.
겨울에는 아침 기온을 잘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가능하면 오후에 외출하시는 게 좋다고 합니다만.

호랑녀 2005-01-1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는 또 산에 가서 넘어지셨대요. 엉덩방아를 찧으셨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으셨다죠. 여기가 어딘가 모르셨대요. 머리를 다치신 것도 아닌데 말이죠.
늘 조마조마해요...^^

sooninara 2005-01-1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가 있으신데..정말 놀라셨겠어요..저의 친정 아버님도 어느때는 판단력이 흐려지셔서 걱정입니다. 친하게 지내던 이모라 부르던 친척이 있으신데..그이모부가 혼자 가셨던 찜질방에서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 정말 놀란적이 있습니다. 인명은 제천이라는데.. 그 친구분은 좋은 친구분들을 마지막으로 보셨으니 좋으셨을거라고 생가해봅니다..

2005-01-18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01-1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나이 드니, 그만큼 부모님 연세도 높아져서... 하지만 그렇게 맑은 정신으로 움직이다 갑자기 떠나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복을.

진주 2005-01-1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낮에 나갔더니, 친구가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장례치르고 오는 길이라고 했어요. "사람목숨 참 허망해~"하루 종일 입에 달고 다니더라구요.
그러고 보면 죽음은 우리곁에 가까이 있어요....건강관리도 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삽니다 우리^^

starrysky 2005-01-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께서 정말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오래 앓다가 떠나셨어도 마음이 많이 허전하고 슬프실 텐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당신 눈앞에서 돌아가셨으니 말이어요..
빨리 기력 찾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세실 2005-01-2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시아버님도 올해 일흔 셋 되시는데..눈이 안좋으시네요. 충북대에서 충남대로 다음주엔 강남성모병원으로 가셔야 될듯 합니다.... 심한경우 한쪽 눈을 실명하실수도 있다니.... 제가 어떻게 해드릴수도 없고...연세드신다는 것이 참 심난하네요.

2005-01-29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랑녀 2005-01-29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늦게 댓글다는 사람... 서재 주인장 맞을까...ㅠㅠ
세실님... 아버님 눈 수술로 시력을 되찾으실 수는 없으신가요? 갑자기 시력을 잃는다는 거, 굉장히 힘들 것 같습니다.
스타리님... 많이 회복되셨다고 해요. 이젠 날짜가 좀 지났으니까요. 그래도 잠자리에 누우시면 아직도 좀 힘드시다고 하네요.
찬미님... 고마워요. 그러게 사람 목숨 참 허망해요. 건강할 때 하고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다 해야겠다 늘 마음먹는데 것두 잘 안 되죠?
숨은아이님... 맑은 정신. 이 부분은 나이와 상관 없는 것 같아요. 아직 팔팔한 30대인 이 사람의 정신도 별로 맑지 않다 느낄 때가 있구요, 그리고 요즘은 정말 미친... 이상한 사람들 많잖아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구요.
수니나라님... 고맙습니다. 님의 감자탕을 못먹어서 넘 서운했어요. 제 복이여요...ㅠㅠ 가신 분... 글쎄 뭔가 가기 전에 할 말이 많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에휴...

2005-02-01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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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이름을 보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소설을 읽고 별로 개운해진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참 피하고 싶은 작가인데, 그녀를 떠올리며 난 또 이 책을 잡고 말았다.

역시 소설은 그녀 특유의... 건조함, 절제된 감정, 안타까움, 어두움... 등등이 묻어 있었다.

8년을 동거했는데, 한 여자를 처음 본 지 3일만에 남자는 집을 나간다. 그것도 새 여자와 함께 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어떤 언질도 없었다. 그냥 남자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생겼고, 그래서 오래 된 사랑을 버린다. 오 마이 갓!

그러나 8년짜리 사랑은 남자를 보내지 못한다. 남자는 떠나갔으되 여자의 마음은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랑이라는 여자와 함께 산다. (남자는 떠났으니 불순한 상상들은 마시길.)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기묘한 삶을 작가는 참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런데 살아보아서들 알겠지만, 어디 세상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만 존재하는가. 내가 5년쯤만 젊었더라면 너무나 답답해했을 그 오래된 사랑의 모습을 지금은 어쩌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두 권만에 난 세뇌된 것일까.

소설을 덮을 즈음, 마침내 사랑은 끝나간다. 늘 위태롭던 새로운 사랑은 영영 멀리 떠나고, 그리고 그녀도 사랑이었는지 미련이었는지 집착이었는지 알 수 없는 짐을 내려놓는다. 다 이해하는 듯한 마음이던 내 마음도 함께 홀가분해 진다.

그래도 그러기에 첨부터 내려놓지 그랬느냐는 그런 말은 하지 못하겠다. 내내 들고 있었기에 내려놓으니 더 홀가분하다.

참 이상한 일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혼자 사는 나를 꿈꾸고 있다. 헉, 빨리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나보다 나이 많은 아들까지 더하면, 난 아들 둘 딸 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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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럴 때나 혼자 사는 꿈을 꾸어보지, 안 그렇습니까? 그런 순간도 없으면 깝깝해서 어쩌라고요^^

호랑녀 2005-01-1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고맙습니다 깍두기님...
지금까지 해송이 그림솜씨에 넋을 빼다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늘 책 속에 푹 빠졌다가 돌아오면... 온 집이 폭격맞은 집입니다요...

kleinsusun 2005-01-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하하는 저녁>읽으면서 참 슬펐어요.
자기를 떠나버린 남자를 못 잊어서,
그 남자를 아예 못 보느니 차라리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랑 같이 살면서
그 남자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하는,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집착,그 미련.
그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애처롭기도 하고 오히려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랑이란건....참 마음대로 안되는 건가봐요.

호랑녀 2005-01-2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맘대로 되면, 이성을 갖고 되면... 그게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제가 좀더 어렸을 때는, 15개월의 시간이 참 아깝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지금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더 나이 들면 또 어떻게 변할라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그렇게 있었다.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 3층집의 그 정원만이 아니라 동구 마음 속의 선생님과 동생과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까지 참 따뜻하게 그려졌다.

책은 별로 읽지도 않으면서 이 시대 국어교육에 잘 길들어 있는 나는 늘 책을 덮으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느껴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내가 느껴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찾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그 느낌을 꼭 간직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동구는 내 또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동구가 3학년 때, 내가 5학년 때 서거하셨다. 동구가 탱크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설 때, 나는 내가 탱크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광주에 살았던지라,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탱크를 봤었다.

지금 동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쩌면 아직도 동구 할머니는 고향마을에 살고 계실지 모르겠다. 아마 지금쯤은 동구 어머니와의 갈등도 다소 풀리고, 동구와 동구 처와, 어쩌면 동구의 자식들은 명절 즈음해서 찾아뵙곤 하겠지.  동구에게는 동생을 꼭 닮은 예쁜 딸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서른 다섯을 넘긴 동구의 마음 속에서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은 첫번째로 할머니가 꼽힐지도 모르겠다.

사족 1.  솔직히 말하자면, 꽤 긴 리뷰를 며칠 전에 썼다. 다소 감상적인 리뷰였는데, ... 상품 검색 후 올라가지 않는 걸 올리려다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책은 이미 친구에게 빌려줬고... 그래서 리뷰가 부실모드가 되었다.

사족 2. 이 책,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읽고, 단 한 사람도 실망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꽂이에서 반년쯤 살았는데, 다 읽고 나니 내가 왜 이 책을 그리 멀리했을까 싶어졌다. 저자 사인본을 위해 마태우스님 이벤트에 열심히 참여할 걸... 하는 후회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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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8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 깁니다만, 제가 평소에 고민하던 부분이라 퍼왔습니다. 조 아래 투표하는 곳이 있으니, 투표해주셔요.

 

독일, 유괴범 고문위협 '뜨거운 논란'

[해외리포트] "아이 살리기 위한 것" - "고문은 정당화 안돼"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강구섭(kanggusup) 기자   
어린 아이가 납치됐다. 범인은 잡혔으나 아이를 숨겨둔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숨겨둔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경찰이 범인에게 고문 위협을 가한다. 이때의 고문위협은 정당한 것인가?

지난해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들의 비인간적 가혹행위가 세계적 논란거리였다면 독일에서는 은행가 아들 납치살해범에게 폭력과 고문위협을 가한 현직경찰관의 행위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납치범과 담당 경찰, 나란히 법정에 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 개프갠에게 희생당한 야콥 폰 메즐러의 모습.
28세의 법학생 마그누스 개프갠은 2002년 9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11세였던, 한 은행가의 아들 아콥폰 메츨러를 납치했다. 개프갠은 아이를 질식사 시킨 후 아이의 사망사실을 숨긴 채 이틀 후 아이의 부모로부터 몸값 1백만 유로를 받았다.

몸값을 지불하는 순간부터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다음날 그를 체포했다. 경찰은 아이가 사망한 상태라는 것을 모른 채, 개프갠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숨겨둔 장소에 대해 개프갠이 허위고백으로 일관하자 경찰은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폭력과 고문을 가할 것”이라고 그를 위협했다. 위협을 느낀 개프갠은 그제서야 정확한 위치를 자백했고, 경찰이 현장에 급파됐으나 아이는 물론 사망한 상태였다.

이듬해인 2003년 7월, 납치범 개프갠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03년 1월, 검찰은 개프갠에게 고문위협을 지시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서 부서장 볼프강 다쉬너와 직접 심문을 담당했던 경찰관 오트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2004년 11월, 두 경찰관은 협박 혐의로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정에 서게 됐다.

▲ 이번 사건을 지속적으로 다룬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인 짜이퉁 인터넷 사이트. 왼쪽의 사진이 프랑크푸르트 경찰서 부서장 볼프강 다쉬너다.
경찰의 고문위협 사실은 당시 독일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의 대표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던 유르겐 슈라이버(현재 시사주간지 <슈테른>근무) 기자와 <프랑크 푸르트 빌트>의 크로나우어 기자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슈라이버는 이 사건을 집중 보도하면서 가해자였던 개프갠, 개프갠의 변호사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사과정에서 고문 위협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여론화했다.

이 사건을 여론화 시킨 공로로 두 기자는 독일 일간지 기자에게 수여되는 ‘바흐터상(파수꾼상)’의 2004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특히 슈라이버는 현 독일 외무부장관인 요시카 피셔의 1968년 젊은 시절의 활동을 발굴 보도해 2002년 같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담당 경찰들 “아이를 구하기 위한 행위였을 뿐”
납치범 개프갠 “그건 명백한 인권침해였다”


법정에 선 프랑크푸르트 경찰서 부서장 볼프강 다쉬너(61)는 법정진술에서 “아이가 사흘째 어디엔가 감금된 상태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죽어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아이를 빨리 찾기 위한 행동이었으며 고문위협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행동을 적극 변호했다.

개프갠의 첫 번째 허위정보로 시간을 허비한 상태에서 ‘직접적 강압’을 통해 아이의 소재를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납치범이 붙잡힌 상태에서 아이가 사망한 사건으로 기록할 것인가의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그는 또한 이를 실행에 옮기기 전 프랑크푸르트가 소재한 헤센지방의 내무부에 이를 보고했을 때 ‘긍정적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를 ‘승인’의 신호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헤센 내무부는 <쥐트도이체짜이퉁>을 통해 “다쉬너에게 그런 지침을 내린 적이 없었다”며 다쉬너의 주장을 부인했다).

개프갠을 직접 심문했던 강력계 형사 오트빈은 개프갠에게 ‘물리적 고통을 가할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했을 뿐이며 그것이 개프갠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직접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문과정 내내 시급한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생각했으며 개프갠이 그러한 모습을 연상하게끔 유도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개프갠의 주장은 다르다. <타게스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종신형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재판에 참석한 개프갠은 “2002년 10월 1일, 경찰은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을 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고 위협했으며 밖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를 가리키며 그가 오고 있다고 위협했다”면서 두 경찰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개프갠은 심지어 “경찰이 ‘유괴범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너에게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의견1 “위급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행위였다”

▲ 변호사 전문뉴스 홈페이지에 실린 사건 관련 기사. 사진속 인물이 납치범 개프갠이다.
납치범에 대한 고문위협으로 현직 경찰관이 법정에 서게 된 이번 사건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사건의 수사과정에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언론, 법조계를 비롯한 독일 각계의 관심과 논쟁을 가져왔다.

독일일간지 <디벨트> 11월 18일자에서 다수의 형법전문가들은 “두 경찰관이 행했던 ‘강압적 압력’이 대단히 복잡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두 경찰관의 행위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타게스슈피겔> 또한 11월 19일자에 “독일의 사회체제이론 권위자로 알려진 사회학자 루만 또한 법치체제에서 어떤 경우에도 인권의 불가침성과 그에 따른 고문금지 원칙을 포기할 수 없지만 일부의 경우 이러한 금기원칙이 포기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글을 실었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가 공공장소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을 경우, 그것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밝혀내기 위해 테러리스트에 대해 고문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폴커 엡 마인쯔대학 형법교수도 독일 시사주간지 <디 짜이트> 12월 9일자에 실은 기고문에서 “두 경찰의 행위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엡 교수는 “형법 32조에 따르면 납치사건이 발생한 위급상황에서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아이를 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다쉬너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며 “두 경찰관에 대해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금하고 있는 기본법 1조에 동의하지만 두 경찰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발생할 유사한 상황에서 희생자를 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반경의 제한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희생자의 도움요청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국민 다수가 두 경찰관에 대한 처벌에 반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법과 도덕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법은 도덕, 인도적 측면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타게스슈피겔> 11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관한 여론조사 응답자의 60% 이상이 ‘두 경찰이 처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의견2 “어떤 경우에도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현지 언론을 비롯한 독일 각계는 대체로 '어떠한 경우에도 고문위협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극단적 상황에서 인질을 구하기 위해 경찰이 납치범에게 총격을 가할 수도 있지만 고문이나 고문 위협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 고문을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현지 언론은 “그러한 극단적 상황을 상정해 고문을 정당화하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시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 기센대학 범죄학연구소 소장 법의학자 아서 크로이처 교수는 <타게스 슈피겔>을 통해 “어떠한 예외적인 경우에 따라 ‘한번쯤’ 고문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나갈 경우, 고문을 허용하는 틈이 형성되고 그 틈새가 점점 커져 자칫하면 ‘댐’이 붕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고문을 예외적으로라도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문을 가능한 방법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크로이처 교수는 “이번 사건이 법과 생명을 구하는 것 사이의 양심적 갈등에 해당되는 사건이지만 국제법상으로 전쟁이나 테러 상황에서도 고문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며 “다쉬너의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법 위반 행위”라고 주장했다. 비록 개인적인 결정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민주국가에서 그것을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로이처 교수는 “두 경찰의 행위가 희생자가 살아 있다는 생각 하에 양심에 준해 행해진 선택적 행동이었다는 것을 고려해 상징적 처벌만 내려져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법원의 선택 ... 벌금형과 ‘인권침해’ 규정

▲ 독일경찰 노조 홈페이지. 경찰 노조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과 현직 경찰의 실제상황을 고려한 정확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화면 하단의 인물은 독일 경찰노조 대표 콘라드 프라이베르그.
지난 12월 20일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은 기소된 두 경찰에 대해 각각 10800유로, 3600유로 벌금형 및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을 내린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 판사 베벨 스톡은 기본법의 정신을 언급하며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수단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두 경찰의 행위는 납치범 개프겐의 인권을 명백히 침해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은 그러나 두 형사의 행위가 어린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감안해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고문위협은 통상 6개월에서 최고 5년의 징역형에 해당한다.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 판결에 대해 독일 경찰노조 베를린 대표 볼프강 스펙은 “법이 허용하는 범죄자 심문방법의 범위를 명확히 보여준 동시에 심문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수상황을 적절히 고려한 적합한 판결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독일지부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짜이퉁> 12월 20일자를 통해 법원이 ‘고문금지’를 분명히 한 것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밝혔으나 두 경찰의 행위를 명백한 ‘고문’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나타났다.

독일인권연구소는 “두 경찰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은 법치주의 질서의 근간으로서 고문금지를 무조건 금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부적절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지 언론은 대체로 이번 판결이 적합하게 내려졌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디 짜이트> 12월 22일자는 “이번 결정은 법치주의 질서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두 현직 경찰의 정상을 참작한 적합한 판결이다”라고 평가했다.

두 현직 경찰이 사건 발생 이후 광범위하게 이뤄진 열띤 논쟁의 당사자였다는 점과 납치 살해범과 함께 나란히 법정에 선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처벌이라는 것이다.
투표기간 : 2005-01-13~2005-02-03 (현재 투표인원 : 16명)

1.
68% (11명)

2.
31%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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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1-1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 무엇보다 저 경찰관들이 그 전에 정말 비폭력적인 설득 방법을 다 동원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최선을 다한 뒤의 마지막 방법이었다 해도 유죄는 유죄라고 봐요. 다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내린 판결에 동의합니다(하지만 벌금형에 대한 집행유예라는 건... --a).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처럼 실제 고문한 것도 아니고 단지 "고문하겠다고 위협"한 것만 가지고 이 정도 논란이 벌어지는군요.

물만두 2005-01-13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라크와는 좀 다르게 봐야겠지요. 유괴라는 범죄는 어떤 범죄보다 특별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괴범은 대부분 아이를 먼저 죽이죠. 아이의 생명과 범인의 생명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연 아이의 생명이 먼저죠. 고문하지 않아 아이가 죽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범죄자의 인권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자의 인권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인권보다 우선할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녀 2005-01-1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투표 부분이 왜 날아갔죠? 잉잉...

1번이, 경관은 무죄이다

2번은, 고문 위협은 어떤 경우라도 유죄이다

입니다. 고치려고 해도, 이미 투표자가 있어서 수정이 안 된다는...ㅠㅠ

깍두기 2005-01-1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번입니다. 실제로 고문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위협만 가한 것 뿐인데 아이가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것도 용서가 안되다니요. 그리고 이런 사안은 절대 일반화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상황에서 고문위협을 가한 경관이 무죄가 되더라도 그것을 다른 경우에 무조건 적용시킬 수는 없겠죠. 제발 법이 개별사안의 특별함을 감안할 수 있기를....

진주 2005-01-1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어려버러....좀 더 생각해서 내일 투표할게요^^

로렌초의시종 2005-01-1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에 투표합니다.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고문의 실행 자체는 매우 심각한 고민의 여지가 있지만, 그 상황에서 고문의 가능성에 대한개진은 허용할 수 있으며, 처벌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개별사안에 있어서의 문제가 아니라(왜냐하면 제 생각에는 이건 절대적으로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런 전례가 다른 사안들에 절대 함부로 남용되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기준을 세우는 것인 듯 합니다.(써놓고 보니 깍두기님 말씀과 대동소이하네요)

반딧불,, 2005-01-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생명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 이전에 어떠한 것도 먼저할 수는 없지요.

호랑녀 2005-01-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피의자의 인권만 생각하느라 피해자의 인권은 잊고 있는 건 아닌가 저는 가끔 생각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뭐 이런 것때문에 성폭행했던 사람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걸 봐야 하는 그 피해자는 얼마나 끔찍할까...
또 그렇다고 죄가 있는지 100% 확실하지도 않는데(딱 잡아떼는데) 막 잡아넣는 건 안 되는데...
그럼 결국 파렴치하게 딱 잡아떼는 놈이 반성하면서 술술 부는 놈보다 빠져나갈 확률이 높은 건 아닌가...
오지랍도 넓다구요? ^^

딴소리
ㅠㅠ 이럴 때 참... 평소 서재질에 게을렀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도 저를 즐겨찾아주시는 분이 50분은 넘는데, 딱 네 분이 투표하셨습니다...
흑흑...

부리 2005-01-1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얘긴데요, 박노자라는 분은 안중근이 이또오 히로부미를 죽인 것도 테러라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요.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어째 좀 한가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호랑녀 2005-01-17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부리님... 예, 한가하게도 들리고 배 부르게도 들리네요.
박노자의 글... 늘 읽어야겠다 생각만 하고 미루다 미루다 여기까지 왔는데, 진짜 함 읽어봐야겠네요.

조선인 2005-01-1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에 투표하긴 했지만, 정말 뻔뻔하고 잔인한 피의자네요. 돌팔매질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호랑녀 2005-01-1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대한 중형으로 응징해주어야 하는건지, 아님 이 사회가 널 이렇게 만들었으니 너도 또한 피해자이다 하면서 잘 교화해서 보내주어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독일은 법대를 졸업하면 바로 법률전문가가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저놈이 잡혔기에 망정이지 아님 큰일날 뻔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