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이름을 보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소설을 읽고 별로 개운해진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참 피하고 싶은 작가인데, 그녀를 떠올리며 난 또 이 책을 잡고 말았다.

역시 소설은 그녀 특유의... 건조함, 절제된 감정, 안타까움, 어두움... 등등이 묻어 있었다.

8년을 동거했는데, 한 여자를 처음 본 지 3일만에 남자는 집을 나간다. 그것도 새 여자와 함께 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어떤 언질도 없었다. 그냥 남자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생겼고, 그래서 오래 된 사랑을 버린다. 오 마이 갓!

그러나 8년짜리 사랑은 남자를 보내지 못한다. 남자는 떠나갔으되 여자의 마음은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랑이라는 여자와 함께 산다. (남자는 떠났으니 불순한 상상들은 마시길.)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기묘한 삶을 작가는 참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런데 살아보아서들 알겠지만, 어디 세상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만 존재하는가. 내가 5년쯤만 젊었더라면 너무나 답답해했을 그 오래된 사랑의 모습을 지금은 어쩌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두 권만에 난 세뇌된 것일까.

소설을 덮을 즈음, 마침내 사랑은 끝나간다. 늘 위태롭던 새로운 사랑은 영영 멀리 떠나고, 그리고 그녀도 사랑이었는지 미련이었는지 집착이었는지 알 수 없는 짐을 내려놓는다. 다 이해하는 듯한 마음이던 내 마음도 함께 홀가분해 진다.

그래도 그러기에 첨부터 내려놓지 그랬느냐는 그런 말은 하지 못하겠다. 내내 들고 있었기에 내려놓으니 더 홀가분하다.

참 이상한 일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혼자 사는 나를 꿈꾸고 있다. 헉, 빨리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나보다 나이 많은 아들까지 더하면, 난 아들 둘 딸 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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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럴 때나 혼자 사는 꿈을 꾸어보지, 안 그렇습니까? 그런 순간도 없으면 깝깝해서 어쩌라고요^^

호랑녀 2005-01-1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고맙습니다 깍두기님...
지금까지 해송이 그림솜씨에 넋을 빼다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늘 책 속에 푹 빠졌다가 돌아오면... 온 집이 폭격맞은 집입니다요...

kleinsusun 2005-01-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하하는 저녁>읽으면서 참 슬펐어요.
자기를 떠나버린 남자를 못 잊어서,
그 남자를 아예 못 보느니 차라리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랑 같이 살면서
그 남자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하는,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집착,그 미련.
그걸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애처롭기도 하고 오히려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랑이란건....참 마음대로 안되는 건가봐요.

호랑녀 2005-01-2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맘대로 되면, 이성을 갖고 되면... 그게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제가 좀더 어렸을 때는, 15개월의 시간이 참 아깝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지금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더 나이 들면 또 어떻게 변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