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아버지는 이제 일흔 여섯이 되셨다. 여전히 여기저기 오라는 데 많고, 인터넷도 열심이시고, 돋보기 두 개 놓고 책도 열심히 읽으신다. 환갑 넘어 배우셨던 운전으로 여기저기 안 가시는 곳 없고,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무등산을 오르신다. 한 번은 친구분들과 함께, 또 한 번은 혼자.

엊그제, 아주 친한 친구 두 분과 함께 점심을 드시러 식당을 찾으시던 중이었다. 한 분은 서너 걸음 앞서서 걸으시고, 다른 분은 무릎이 안 좋으셔서 한두 걸음 뒤에서 걸으시고, 그리고 아버지는 양쪽 보조를 맞추느라 어정쩡 중간쯤에서 걸으셨단다.

그런데 한참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금방까지 얘기하시던 아버지 친구분이 안 보이시더란다. 앞으로 쓰러져 계셨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119를 불러주어 금방 병원에 갔지만, 그냥 운명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참을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셨고, 며칠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신다고 한다. 잠을 잘 못 주무시고.

도대체 아무런 징조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는 것이 어디 있냐고 하신다.

병원에 계시는데, 연락 받은 유족들이 달려와서 아버지와 다른 친구분은 그냥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단다. 내가 괜히 점심 먹는 데 불러냈다고, 내가 아는 식당 있다고 괜히 앞서서 갔다고...

유족들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분들과 얘기하다 그분들이 임종을 지켜주셨으니, 우리 아버지는 복이시라고, 정말 행복하셨을 것이라고 얘기해줘서 미안한 마음은 좀 가셨다는데, 그래도 사람 목숨이라는 게 이렇게 허망한 것인 줄 몰랐다고 자꾸만 얘기하신다.

이기적인 나는, 고인과는 그래도 한발 떨어진 처지라, 그저 내 아버지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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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1-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이 많이 놀라셨겠어요.
겨울에는 아침 기온을 잘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가능하면 오후에 외출하시는 게 좋다고 합니다만.

호랑녀 2005-01-1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는 또 산에 가서 넘어지셨대요. 엉덩방아를 찧으셨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으셨다죠. 여기가 어딘가 모르셨대요. 머리를 다치신 것도 아닌데 말이죠.
늘 조마조마해요...^^

sooninara 2005-01-1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가 있으신데..정말 놀라셨겠어요..저의 친정 아버님도 어느때는 판단력이 흐려지셔서 걱정입니다. 친하게 지내던 이모라 부르던 친척이 있으신데..그이모부가 혼자 가셨던 찜질방에서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 정말 놀란적이 있습니다. 인명은 제천이라는데.. 그 친구분은 좋은 친구분들을 마지막으로 보셨으니 좋으셨을거라고 생가해봅니다..

2005-01-18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01-1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나이 드니, 그만큼 부모님 연세도 높아져서... 하지만 그렇게 맑은 정신으로 움직이다 갑자기 떠나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복을.

진주 2005-01-1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낮에 나갔더니, 친구가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장례치르고 오는 길이라고 했어요. "사람목숨 참 허망해~"하루 종일 입에 달고 다니더라구요.
그러고 보면 죽음은 우리곁에 가까이 있어요....건강관리도 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삽니다 우리^^

starrysky 2005-01-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께서 정말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오래 앓다가 떠나셨어도 마음이 많이 허전하고 슬프실 텐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당신 눈앞에서 돌아가셨으니 말이어요..
빨리 기력 찾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세실 2005-01-2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시아버님도 올해 일흔 셋 되시는데..눈이 안좋으시네요. 충북대에서 충남대로 다음주엔 강남성모병원으로 가셔야 될듯 합니다.... 심한경우 한쪽 눈을 실명하실수도 있다니.... 제가 어떻게 해드릴수도 없고...연세드신다는 것이 참 심난하네요.

2005-01-29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랑녀 2005-01-29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늦게 댓글다는 사람... 서재 주인장 맞을까...ㅠㅠ
세실님... 아버님 눈 수술로 시력을 되찾으실 수는 없으신가요? 갑자기 시력을 잃는다는 거, 굉장히 힘들 것 같습니다.
스타리님... 많이 회복되셨다고 해요. 이젠 날짜가 좀 지났으니까요. 그래도 잠자리에 누우시면 아직도 좀 힘드시다고 하네요.
찬미님... 고마워요. 그러게 사람 목숨 참 허망해요. 건강할 때 하고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다 해야겠다 늘 마음먹는데 것두 잘 안 되죠?
숨은아이님... 맑은 정신. 이 부분은 나이와 상관 없는 것 같아요. 아직 팔팔한 30대인 이 사람의 정신도 별로 맑지 않다 느낄 때가 있구요, 그리고 요즘은 정말 미친... 이상한 사람들 많잖아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구요.
수니나라님... 고맙습니다. 님의 감자탕을 못먹어서 넘 서운했어요. 제 복이여요...ㅠㅠ 가신 분... 글쎄 뭔가 가기 전에 할 말이 많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에휴...

2005-02-01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