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 아시아인 (woosukeun)   
중국경제 성장의 허와 실-1
1. TV를 모르는 1억인의 중국인

“우리가 가진 논밭으로도 우리 부부와 아들내외, 그리고 손녀의 생활은 충분하다우. 이 정도면 됐지 뭐, 뭐가 또 필요하겠나”
약간 구부러진 듯한 허리, 수십년 간은 땡볕과 함께해온 듯한 거무잡잡한 피부, 듬성듬성 빠진 이에 새어져 나오는 발음이 알아듣기 쉽지 않은 중국 농심(農心)의 고즈넉함이다. 허리를 펴며 이방인에 화답하는 할아버지에 이어, 밭일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가 머리를 칭칭 감싸던 수건매시를 풀어제치고 끼어든다.
“지난 과거를 생각해봐요, 지금은 얼마나 풍족한지…. 우리는 이대로 됐어요”

그렇다.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다. 수십년간 오로지 논밭속에 파묻힌 채 변죽거리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개떡만한’ 내 집이 그렇게 크게 보인단다. 앙아울러 근대식 여러 농기구를 활용하고 있는 덕에 어른 4명이 경작하여 벌어 들이는 수익이 연간 약 4만위안(한화 약 600만원정도)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니 이 또한 너무 호사스러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단다. 음, 행복이 반드시 재산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성인 4명이 매월 ‘고작 5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감추질 않는 이들…. 4명이 50만원인데….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고개가 퍽! 갸우뚱되어질 만하다. 4명의 수익이 그 정도라는 것도 그러려니와 한창 잘 나가는 중국경제에 비춰볼 때 그 중국인의 삶이 아직까지 이 정도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은 중국의 가장 낙후한 내륙이나 서부지역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중국가운데서도 최고의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상하이 시민이다.

상하이 시민이라는 것은 중국사회에서 하나의 공공연한 특권이 되다시피 하였다. 상하이 시민들은 잘나가는 상하이에 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의료혜택과 실업수당 등의 각종 복리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도시민에 한해서만 겨우 복리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 도시민이란 것이 13억 전체 인구중 약 3억명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쯤되면 대도시중의 대도시인 상하이나 베이징에 후코우(戶口) 즉, 우리의 주민등록을 두고 산다는 것은 뭇 외지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감숙성에서 왔어요…. 고향에는 부모와 처자식이 있는데…. 아직 일자리를 못 찾았어요” 상하이 역은 항상 중국전역에서 ‘상하이 드림’을 찾아 몰려 온 민꽁(民工,노동자)들로 붐빈다.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러매고 온 그들속에는 젖먹이를 감싸고 안은 아낙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띤다. 흐어(許)씨는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인데 2주 전에 기차를 타고 3일 밤낮을 걸려 이곳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상하이역을 떠나지 못한 채 노숙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없나요? 아무것이나 좋으니까요….” 온갖 애처러운 표정속에 필자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도 이내 내 곁으로 다가와 저마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현재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부의 대도시는 현재 흐어씨와 같은 타지역 출신 민공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의 거주이전은 아직까지 법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정해진 지역을 특별허가 없이 이탈하면 안되고 다른 지역에서의 거주도 단속의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 ‘불법 이주자’ 들이 공안에 걸리면 온갖 수모속에 고향으로 추방당하게 되는데 민공들은 그래도 시골에서 하릴없이 세월만 축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이 호경기라고는 하나 아직은 동부 연안지역에 국한될 뿐, 내륙지방 거주민인 이들에게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의료혜택이나 실업수당 등의 복지혜택조차 전무한 실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에는 아직도 거의 1억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라디오나 TV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 서부 외딴 지역의 약 60여만 마을과 중부의 최빈곤지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은 원할치 못한 전기공급 탓에 이와 같은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우기 이들 중에는 신문과 같은 활자매체도 접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어 그들은 도회지에 나갔다 돌아오는 사람들, 혹은 집배원의 입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의 대학은 안녕하십니까?


△ 김 종 철/ 녹색평론 발행인

비판적인 상상력을 위하여

중국의 무단(武斷)점령 통치에 반대하는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여러해 동안의 감옥살이 끝에 풀려난 한 티베트 승려가 인도 다람살라의 망명정부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했을 때의 장면이다. 달라이 라마는 모진 시련을 겪은 그 승려를 위로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물었다. 승려는 “하마터면 저들을 미워할 뻔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저들이라는 것은 자신을 고문하고, 가두고, 학대해온 중국인들을 말한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티베트의 불교문화에 친숙한 사람들에게서 우리들이 종종 들어온 여러 유사한 에피소드의 하나에 불과하다. 아마도 가장 높은 의미의 이러한 ‘비폭력’의 정신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친 중국의 식민통치 하에서 온갖 역경에 처하면서도 티베트인들의 얼굴에서 언제나 천진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남루한 생활이지만, 티베트인들이 누리는 삶은 끊임없는 갈등과 불안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뒤틀린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성적 깊이와 내면적 행복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티베트의 삶과 문화도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나는 연전에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에게서 최근 티베트의 변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그 이야기는 현재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삼동 린포체한테서 나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59년 티베트가 중국의 무력공격을 받고, 주권을 박탈당한 이후 수십년이 지나갔지만 티베트문화는 거의 아무런 변화 없이 보존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소비주의문화가 티베트 고원에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한 지 약 10년이 경과하면서 그동안 정치적, 군사적 억압 밑에서도 온전했던 티베트의 전통문화가 뿌리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티베트 고원도 기도와 연민과 마음의 평안보다는 코카콜라와 핸드폰과 자동차를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세상이 될지 모른다.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전파력과 파괴력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돈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서 미쳐 도는 세상과는 달리
대학은 좀더 근원적인 인간 가치를 섬기고 살아가는
장소임을 시늉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최근에 국내 제일의 대기업의 총수가 모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학생들이 소란을 일으킨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대기업 최고 경영자에게 명예학위를 줄 만하다고 판단한 대학의 결정 자체를 시비하고 싶지 않다. 만약 세간의 추측대로 그 명예학위가 개교 100주년 기념관이라는 값비싼 건축물을 기증한 데 대한 보답이었다고 한다면, 그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방해로 학위수여식의 원만한 진행이 불가능했던 데 대한 ‘사죄의 표시로’ 대학본부의 보직교수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것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지난 30년간 대학에서 녹을 받아 먹어온 처지에, 내가 한국의 대학의 실정을 모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허약하게 대학이 최소한의 권위도, 체면도 헌신짝처럼 집어 던질 줄은 짐작도 못한 일이다. 만약 학생들의 방해로 손님에게 결례를 했다고 생각하였다면 총장의 정중한 사과 한마디로 충분한 게 아닌가. 아무리 대학이 이름뿐인 껍데기가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돈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서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는 달리 대학은 좀더 근원적인 인간가치를 섬기고 살아가는 장소임을 시늉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대학이 왜 있는가.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소란을 피운’ 그 학생들이 그날 이후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동료 학생들에 의해서 심한 비난과 매도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갈수록 취직이 어려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횡에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고 해서 그 소수 학생들이 딴 사람도 아닌 다수 동료들에게서 이처럼 적대시되고 따돌림을 당한다는, 이런 현상은 예컨대 1970-80년대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무렵의 대학은 비록 정치적 억압으로 인한 긴장과 좌절로 짓눌려 있었지만, 반독재 민주화라는 대의(大義)를 둘러싸고 학생들 사이의 공감과 우정은 살아 있었다.

슬픈 일이지만, 혹심한 정치적 억압상황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인간정신이 상인적(商人的) 멘털리티가 활개치는 상황에서는 뿌리로부터 마멸된다는 것은 티베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인간다운 도리와 정의와 존엄성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하기는, 지금은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대학은 산업”이라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게 허용되고 있는 경제지상주의의 시대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의 정식명칭도 어느새 ‘교육인적자원부’로 되어 있다. 국가는 이 나라에 존재하는 인간은 다만 ‘인적 자원’이며, 인간 아닌 것들은 ‘자연적 자원’일 뿐이라고 결정했다. 이제 이 땅에서는 ‘인간’도 ‘자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유대와 교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일찍이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 자유주의 경제의 추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경제가 제 기능을 하려면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불가결하다고 그가 역설한 것은 지금 거의 완전히 잊혀져 있다. 그는 개인의 이익추구만이 장려되면 그 결과는 야만적인 사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한 ‘도덕적 감정’이 오히려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만 되어 가는 이 기괴한 상황이 자유주의 경제라는 이름으로 찬미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담 스미스는 뭐라고 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작가
행사내용
일시
장소
주최
공동주최
오에 겐자부로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교보문고 강남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한국외대/
일본근대문학회
강연회 26일(목)오후3시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6층 국제회의실
한양대 일문과  
오르한 파묵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한국외대 한국외대 터키어과  
볼프 비어만
강연/노래공연 27일(금)오후7시
대학로 독어독문학회  
강연/노래공연 24일(화)오후3시
중앙대 중앙대 독문과  
로버트 하스
시낭송회 25일(수)오후2시
미대사관저 미국대사관 영어영문학회
  24일(화)오후2시
서울대 영어영문학회  
강연회 26일(목)오전12시
숙명여대 숙명여대 영문과  
마사오 미요시
강연회 25일(수)오후5시
연세대 영어영문학회  
에를링 키텔센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한국외대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모옌
학술대회 27일(금)오후4시
한국외대 대만홍콩문화연구회의 한국외대
  28-29일
전남대 민족문학작가회의 5.18재단
르 클레지오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교보문고 본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불문학회
강연회 25일(수)오후5시
이화여대 이화여대 불문과  
루이스 세풀베다
강연회 26일(목)오후3시
교보문고 강남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한국외대
티보 머레이
  28일(토)오후
단국대 문예창작학회  
하스미 시게히코
  25일(수)오후2시
서강대 서강대 영상대학원  
  25일(수)오후7시
필름포럼 필름포럼  
  26일(목)오후1시
고려대 고려대 일문과  
베이 다오
강연회 24일(화)오후4시
교보문고 본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중국현대문학회
학술대회 27일(금)오후4시
한국외대 대만홍콩문화연구원  
  28일(토)오후
단국대 문예창작학회  
응구기 와 시옹오
강연회 28일(토)
동국대 아프리카문화연구소 동국대
강연회 26일(목)오후2시
한국외대 영어영문학회  
마거릿 드래블
강연회 26일(목)오후2시
한국외대 영어영문학회  
문학수업 24일(화)오후3시
성균관대 성균관대 영문과  
강연회 25일(수)오후7시
영국문화원 영국문화원  
장 보드리야르
학술대회 27일(금)오후6시
프레스센터 프랑스학회  
전시회 24일(화)오후5시
대림미술관 대림미술관  
로버트 쿠버
강연회 25일(수)오후6시
서강대 아메리카학회  
강연회 24일(화)오후2시
서울대 영어영문학회  
개리 스나이더
강연회 24일(화)오후3시
교보문고 강남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동국대
불교대학원
시낭송회 25일(수)오후2시
미대사관저 미국대사관 영어영문학회
베라 갈락치오노바
강연회 25일(수)오후4시
한국외대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28-29일 전남대 민족문학작가회의 5.18재단
토마스 브루시히
강연회 23일(월)오후3시
서울대 서울대 독문과  
강연/노래공연 24일(화)오후3시
중앙대 중앙대 독문과  
미정된 사항은 결정되는대로 업데이트됩니다.
작가별 행사는 예약을 받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참가하시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식하다’고 합니다. 유식하다 무식하다는 제도교육 학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그런 무식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하여튼 광주는 25년이 되었고 다른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건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부하고 싶은 건 광주항쟁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광주항쟁을 제대로 모르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학술적인 책을 사볼 것까진 없고 여러분들 아마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갈 테니 시간을 조금만 헐어서 광주항쟁 관련한 사이트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은 5.18기념재단도 있고 여럿 있습니다.

광주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통해 이른바 ‘민주주의’의 뜻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광주 전의 민주화 운동은 반독재 운동, 즉 선거나 개인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었지요. 그러나 광주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좀 더 근본적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운동으로 바뀝니다.
그 동기는 미국입니다. 광주가 계엄군이 일시 퇴각하고 해방된 상태이던 80년 5월 24일 미국 항공모함 코럴씨 호가 부산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 우리를 구하러 오는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신군부의 쿠데타나 계엄군의 작전은 미국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진행되고 있었죠.
광주를 거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미국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데 이건 미국이라는 일개 나라에 대한 자각을 넘어 미국식 민주주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발전합니다. 80년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의 해방 광주의 모습은 바로 그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광주를 진압한 군사 파시즘은 더 강력한 공포정치에 들어갔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되살아났습니다. 80년대 중반이 채 되기 전에 한국의 사회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좇는 부분이 남아있었지만 그 성원의 대부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좇는 변혁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87년 6월 29일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는 계속 정착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80년대에 변혁운동을 했던 운동세력의 상당수가 변신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민주주의니 변혁이니 하는 건 다 지나간 일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80년대 말 무너지자 그들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절망감에 빠진 많은 청년들이 사회운동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운동 안 했던 사람에 비하면 백배 훌륭한 사람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활동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니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력을 사용해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불거지는 경우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입니다. 학생 시절의 신념은 슬그머니 뒤로 버리고 그 운동을 통해 얻은 제 명망을 사용해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느니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다 개소리고 그들은 결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10년 쯤 지나면 이 자리에서도 역시 그런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운동의 종목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바로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시민운동입니다. 활동가라면 한눈에도 체제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등포나 구로동에 구질구질한 사무실에서 구질구질한 옷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시내 한 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에 넥타이를 맨 활동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운동의 주제는 근본적인 것에서 시민의 일상과 관련한 것들, 다시 말해서 체제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체제 안의 문제들을 위주로 했고 시위나 싸움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의 각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안티조선운동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 정치개혁운동들과 결합하고 확산되면서 결국 정권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런 개혁운동들이 갖는 의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안티조선 운동의 초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제가 만들었던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는 일종의 좌우 합작이었지만 공동의 적은 조선일보라고 밝히고 있지요. 저는 개혁운동의 진보운동의 일부라는 사실과 기존의 진보운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잡아냈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그 운동이 갖는 반동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이 여전히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진보운동을 철지난 운동,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행태로 몰아붙이는 부분에 대해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하든 안 하든 개혁운동이 ‘오늘의 진보운동’을 자처하는 한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운동이 진보를 자처하면 한국사회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극우보수 대 개혁보수의 구도가 되고 진보는 아예 무대에서 밀려나버리는 것입니다.
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여'합리화'하는 운동입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나쁜 신문이 곤경에 처하고 비리 정치인이 잡혀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도 언론이나 정치란 바로 세상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이나 비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바로 그 언론이나 정치의 뿌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문제이고 계급적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건 이젠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절반은 비정규노동자고 그 비율은 늘어가는 중입니다. 농업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포기한 지 오래지요. 그런 문제들은 개혁운동에서 배제되고 촛불시위에서도 배제됩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언론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면 초인적으로 순진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 학교 안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래 맑스주의가 어떻고 좌파가 어떻고 말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도 모르게 개혁운동의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파시즘 상태에 있습니다. 새로운 파시즘, 군사파시즘이 아니라 자본의 파시즘이지요. 군사파시즘은 억압과 폭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의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본의 욕망을 심어서 스스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본의 매우 충성스런 백성들입니다. 얼마 전 고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와 관련한 반응들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은 고대나 고대학생들의 태도가 “밥그릇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신문에 보니까 그 발언을 두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적혀 있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밥그릇 때문”이라는 말은 속으론 인정하지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정한다는 뜻인데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라 그들은 진짜로 진심으로 이건희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이건희와 다른 건 이건희보다 돈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노동자 착취와 정경유착과 온갖 비리로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부자가 되어선 다시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재산을 제 자식에게 상속하는 사람이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인입니까?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의 위치추적을 하고 협박을 하는 회사가 세계적인 첨단 기업입니까? 지금 한국 사람들이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프랑스의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키를 타는 인간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 그런 인간에게 이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주려고 작전을 벌이고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학생들이 현실을 깨우쳐주었는데도 총장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보직교수들은 사퇴서를 내고 수천명의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탄핵하는 서명을 하고, 이게 대체 정신병원입니까 대학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건희라는 파렴치한 인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진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성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원수라 저런 놈 밑에서 일한다”고 부끄러워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그런 파렴치한 인간을 왕처럼 떠받들며 노조조차 없는 회사에서 ‘삼성맨’의 자부심에 젖어 삽니다. 참으로 무지한 그러나 돈은 많은 주인 아래서 배불리 먹여준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 머슴들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런 삼성맨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삼성맨이 못되어서 안달이 나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이건희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 모든 사람이 자본의 권력에 자발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탄압받고 억압받아도 정신만은 해방되어 있던 시절보다 스스로 정신을 내어준 시절은 더욱 끔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절보다 나은 음식을 먹고 자가용과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욕망이 인간을 억압하는 걸 넘어 우리 스스로 자본의 욕망에 젖어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오늘 부모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동무를 누르고 이길 것만을 가르치고 사랑이나 존경조차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엘리트가 된다 한들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박사학위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박사학위는 내가 아니라 돈에게 수여된 것입니다.
이건희가 돈이 없다면 누가 그를 존경할까요? 모든 사람이 그의 돈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건희 씨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프랑스에 가서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울타리 밖에선 다 보고 있는데 혼자 스키를 타는 사람이 과연 자의식을 가진 인간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신이 완전히 파탄 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건희라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대체 얼마나 추켜올렸으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5.18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부른 이유도 오늘이 5.18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묵념도 했지만 5월에 죽어간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광주는 처음엔 엘리트 지식인들, 대학생들이 주도했지만 마지막에 가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떠납니다. 계엄군과 협상을 해서 더 이상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 헛되게 죽지 말고 힘을 기르자,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주장하던 수습파들은 떠나고 무릎 꿇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항쟁파만 남습니다. 그 순간부터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광주 인민의 군대라고 해야 맞습니다. 항쟁파의 대부분은 평소에 인간 취급 못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인간으로서 품위가 목숨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 취급 못 받고 사는 세상,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처럼 살자. 결국 그들만이 인간의 품위를 간직했습니다.
지나간 일,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을 갖지 않는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 한 분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까지 끌어대면서 유시민 씨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현실 속에서 체 게바라나 김산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한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현실 속의 체 게바라나 김산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우리는 현실 속의 체 게베라나 김산엔 관심이 없거나 그들을 비웃곤 하지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다시는 만난 수 없는 늙은 어머니,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남은 애인, 제 목숨보다 귀한 새끼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처럼 죽고 나서 존경과 명예가 남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폭도요 빨갱이로 남는 것입니다. 남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언제까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총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매일 밤 인터넷에서 활동하지요? 지금 이 나라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먹고 나서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다들 사회평론가로 활동합니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사회평론가인 시절이지요. 그러나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이지만 그 대부분은 개혁이라는 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입니다. 체제는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이라고 부추기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들”로서 활동합니다. 오로지 체제가 제공하는 이슈에 매일 밤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들을 은폐하는 데 동원되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장 실현가능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임을 진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니 설사 내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신념을 버려선 안 됩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근대라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 결국 중세는 무너집니다. 우리의 암흑도 그렇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연세대 강연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어의 탄생 -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의 역사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고대 그리스인들의 평균 수명은 19세였다. 16세기의 유럽인들의 평균 수명은 21세였고, 19세기에는 34세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인간의 수명은 80세에 육박한다. 팔만대장경 제작에 16년이 걸렸고, 민중의 피를 쪽쪽 빨아먹던 박통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35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옥스포드 영어 사전 편찬 사업이 완료되기 위해서는 무려 70년이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70년. 이 기겁할 만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사전 편찬에 몸을 담았던 이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을까. 끝을 기약하지 않은 시작은 아니었을 것인데, 예상을 훨씬 넘어선 과정과 결과가 남긴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시작을 이끌던 이들은 완성된 사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영어의 모든 의미를 담겠다는 목적은 어찌 보면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허황된 의지일 수도 있었다. 역류는 거칠고, 미답의 숲을 뚫고 지나려는 이들의 삶은 지루했다. 그렇게 탄생한 사전은 4만개의 표제어와 2백만개의 예문을 수록한 1만5천 페이지의 거대하고도 위대한 업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량과 시간이라는 수치를 말하고는 있지만, 누군가의 시간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땀이었을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그 안의 것은 수천명의 자원 봉사자의 노력과 열정으로 대치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평범함과 비범함으로 장대하고도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의 시작은 필연성을 띠었다. 이 책의 서두는 영어 사전이 탄생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 영어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확장과 수용, 변이와 융합이 요동치는 영어는 사실 침략자들의 언어이기에 가능한 특징을 지닌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은 생명력이고 번영을 의미한다. 실제의 의식화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언어이기에 언어에 대한 완벽한 정리, 이해는 세계에 대한 도전이고 정복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확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의 지성은 축적되었기에 충분히 도전할 만한 것이었다.

미답의 길을 가는 것은 수많은 난관을 예고한다. 사전의 정의부터 모호했던 시대에 Meaning of everything(이 책의 원제)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에 맞지 않는 비효율성, 막무가내식의 접근방법은 20년을 허송세월한 원인이 되었다. 체계가 필요했고, 열정이 필요했다. 3대 편집장 제임스 머리는 영어의 특징에 맞게 기술적 방식(예문의 용법으로 설명)을 중심으로 한 사전 편찬에 힘쓴다. 14세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언어능력을 지닌 그는 사전의 정의를 제대로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관성, 정치성을 배제하고, 쉬운 설명, 정확하고 구체적인 예문을 잘 골라냄으로써 사전다운 사전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역사적 원칙에 의하여 단어의 변천사도 함께 서술함으로써 보다 명료해졌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국어사전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보다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단어를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 쫓아가면 빙빙 돌다가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 온다. 그리고 쉬운 단어를 어려운 한자어로 기술하여 무슨 뜻인지 더 알 수 없는 경우 등 사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영어의 탄생’은 현재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게 가능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했단 말인가?

큰 뜻을 품지 않는다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미가 되어 준다는 것은 누군가의 헌신을 전제로 한다. 사전에 기록된 수 많은 이들의 이름은 그래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상징이자 신화가 되었다. 사전이 사물과 정신의 다리가 되어 주듯이, 이 책은 인간의 숭고한 역사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이첼 2005-10-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말의 탄생>을 보면 국어사전이 왜 영어사전처럼 용례가 위주가 아닌 지 알 수 있더라고요. 식민지라는 특수 상황이 우리말사전을 지금의 모습처럼 만들었다는 가슴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