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V를 모르는 1억인의 중국인
“우리가 가진 논밭으로도 우리 부부와 아들내외, 그리고 손녀의 생활은 충분하다우. 이 정도면 됐지 뭐, 뭐가 또 필요하겠나” 약간 구부러진 듯한 허리, 수십년 간은 땡볕과 함께해온 듯한 거무잡잡한 피부, 듬성듬성 빠진 이에 새어져 나오는 발음이 알아듣기 쉽지 않은 중국 농심(農心)의 고즈넉함이다. 허리를 펴며 이방인에 화답하는 할아버지에 이어, 밭일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가 머리를 칭칭 감싸던 수건매시를 풀어제치고 끼어든다. “지난 과거를 생각해봐요, 지금은 얼마나 풍족한지…. 우리는 이대로 됐어요”
그렇다.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다. 수십년간 오로지 논밭속에 파묻힌 채 변죽거리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개떡만한’ 내 집이 그렇게 크게 보인단다. 앙아울러 근대식 여러 농기구를 활용하고 있는 덕에 어른 4명이 경작하여 벌어 들이는 수익이 연간 약 4만위안(한화 약 600만원정도)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니 이 또한 너무 호사스러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단다. 음, 행복이 반드시 재산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성인 4명이 매월 ‘고작 5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감추질 않는 이들…. 4명이 50만원인데….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고개가 퍽! 갸우뚱되어질 만하다. 4명의 수익이 그 정도라는 것도 그러려니와 한창 잘 나가는 중국경제에 비춰볼 때 그 중국인의 삶이 아직까지 이 정도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은 중국의 가장 낙후한 내륙이나 서부지역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중국가운데서도 최고의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상하이 시민이다.
상하이 시민이라는 것은 중국사회에서 하나의 공공연한 특권이 되다시피 하였다. 상하이 시민들은 잘나가는 상하이에 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의료혜택과 실업수당 등의 각종 복리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도시민에 한해서만 겨우 복리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 도시민이란 것이 13억 전체 인구중 약 3억명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쯤되면 대도시중의 대도시인 상하이나 베이징에 후코우(戶口) 즉, 우리의 주민등록을 두고 산다는 것은 뭇 외지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감숙성에서 왔어요…. 고향에는 부모와 처자식이 있는데…. 아직 일자리를 못 찾았어요” 상하이 역은 항상 중국전역에서 ‘상하이 드림’을 찾아 몰려 온 민꽁(民工,노동자)들로 붐빈다.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러매고 온 그들속에는 젖먹이를 감싸고 안은 아낙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띤다. 흐어(許)씨는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인데 2주 전에 기차를 타고 3일 밤낮을 걸려 이곳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상하이역을 떠나지 못한 채 노숙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없나요? 아무것이나 좋으니까요….” 온갖 애처러운 표정속에 필자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도 이내 내 곁으로 다가와 저마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현재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부의 대도시는 현재 흐어씨와 같은 타지역 출신 민공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의 거주이전은 아직까지 법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정해진 지역을 특별허가 없이 이탈하면 안되고 다른 지역에서의 거주도 단속의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 ‘불법 이주자’ 들이 공안에 걸리면 온갖 수모속에 고향으로 추방당하게 되는데 민공들은 그래도 시골에서 하릴없이 세월만 축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이 호경기라고는 하나 아직은 동부 연안지역에 국한될 뿐, 내륙지방 거주민인 이들에게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의료혜택이나 실업수당 등의 복지혜택조차 전무한 실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에는 아직도 거의 1억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라디오나 TV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국 서부 외딴 지역의 약 60여만 마을과 중부의 최빈곤지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은 원할치 못한 전기공급 탓에 이와 같은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우기 이들 중에는 신문과 같은 활자매체도 접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어 그들은 도회지에 나갔다 돌아오는 사람들, 혹은 집배원의 입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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