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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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아 쓰는 리뷰입니다.

1. 벽돌책이라는 말이 있다. 대략 700p가 넘어가면 흔히들 벽돌책이라고 한다. 이번에 읽은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권성욱 지음)는 무려 970쪽으로, 개인적으로 시리즈가 아니라 한 권으로 읽은 가장 두꺼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놀랍다고 표현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쪽수다. 맨 처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sns에서 접했을 때, 국내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통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국내 저작물이 적기 때문이었다(출판사 다니면서 나도 2차 세계 대전 관련 책을 여러 권 만들었는데 모두 번역서였다). 그런데 '팬더 아빠의 전쟁사 서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국내 전쟁사 연구가 권성욱님이 쓴 장대한 연구 결과물이어서 놀란 것이다.

이 책을 읽느라 아직 블로그를 깊이 파고 들어 보진 못했는데, 저자분이 아마도 전쟁사 덕후시리라. 이렇게 분량이 크고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저자 소개 페이지에 따르면) 내 편견이겠지만, 대학 소속이 아니라 개인 연구가라는 점에서 놀랐던 것(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970쪽이나 되는 책을 읽는데도 어느 한 페이지가 지루하거나 재미없거나 하지 않고 더더더 읽고 싶고 계속 읽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자 분께서 엄청난 연구 성과를 이렇게 대중적으로 잘 풀어내는 능력 또한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앞에서 말했듯 2차 세계 대전 관련 책을 만들 때마다 한번도 재미나 공감이나 와닿는 부분이 없었는데.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두꺼운 벽돌책이어도 도전해보시라고 추천하게 된 이유다.


2. 흔히, 2차 세계 대전에 관해 우리의 관심사는 히틀러, 스탈린, 또는 미국의 참전과 일제 패망, 대한민국 수립과 관련된 단편들의 모음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승자의 전쟁 뒤에 가려진 또 하나의 세계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될 때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과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필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에 미국의 이란 공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어 더욱 더 이 책이 단순 역사책이 아니라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2차 세계 대전은 1차 세계 대전과 연결이 되고, 1차 세계 대전 역시 그 이전의 유럽 패권을 둘러싼 여러 나라의 갈등 국면에서 이어지는 것처럼(과거에서 이어짐), 러-우 전쟁도, 미국과 중동의 갈등도, 대만과 중국의 갈등도 2차 세계 대전과 냉전시기의 불똥이 지금까지 연결되는 것이다(현재까지 연관). 그렇다면 역시 미래도 연결이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강대국이 아닌 '우리'라고 별다를까. 이런 의문을 서문에서 제시하는 저자의 말에 엄청 공감했다. 우리는 강대국의 전쟁에서 실제로 직접적 피해를 입은 나라(심지어 지금도 미국과 이란의 싸움 중에 우리나라 유가가 미친 듯이 상승 중-물가 어쩔;)인데도 왜 그동안은 이런 약소국들이 전쟁을 어떻게 치렀는지 전혀 배우지 않았는지. 관심도 안 가졌을까. 두 번째로 이 책이 놀랍다 생각한 점이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3. 이 책에 등장하는 약소국들은 에티오피아, 핀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그리스,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첫 장이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아프리카 이야기기도 해서 인상적이었던 장은 <1장-아프리카의 자존심-에티오피아>였다. 여기 등장하는 에티오피아의 이야기는 정말 생전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었고, 이렇게 까지 적에 맞서 자국을 지키기 위해 황제부터 국민들까지 모두 노력한 나라라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에티오피아가 왜 머나먼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에까지 군대를 보냈는지도 알게 되었다(흔히, 에티오피아 하면 아프리카 최빈국 이런 정도로 알았는데 한국전쟁에 파견을 왜 했을까 늘 궁금했었음). 2차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싸워 승리한 에티오피아의 황제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국제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한편 서방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아프리카를 지배하려는 유럽 식민주의를 강력히 비판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를 이끄는 당당한 주도국이었던 것. 이 황제가 1968년에 한국을 직접 방문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황제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군인들의 쿠데타로 사망했고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정권을 잡은 마리암 소령은 철권 독재자가 되어 에티오피아를 세계 최빈국으로 만들고 말았다. 최근에 와서야 민주 정부가 들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현대사다.

에티오피아를 첫 장에 배치한 이유를 내 나름대로 짐작하자면, 온갖 시련을 견뎌 내고 승리를 얻은 에티오피아의 이야기가 뒤이어 나오는 유럽 지역의 다른 약소국들의 대응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독자들 중에 에티오피아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터인데 에티오피아 이야기를 과감히 첫 장에 배치한 것도 이 책의 놀랄 만한 포인트다.


4. 이 책에는 우리가 강대국, 혹은 열강이라고 부르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소련 등 2차 세계 대전의 주도국가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어리석고 무능하고 음흉하고 감정적이고 자만심이 가득한가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전쟁 초반에 우왕좌왕하는 연합국, 특히 프랑스 군의 황당한 지휘 체계와 사령관 가믈랭 장군, '나만 아니면 된다'면서 사실상 모든 승기를 놓치고 이리저리 재고 있던 영국의 체임벌린 같은 무능한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초장에 끝장낼 수 있었는데 덕분에 승승장구한 히틀러 때문에 죽어나간 유대인들과 독일과 소련, 영국과 프랑스가 지나가는 지역의 주민들과 군인들의 죽음이 정말이지 억울하게 느껴진다. 약소국의 만 제물로 삼아 밀실에서 흥정(그나마도 제대로 못함)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 사실상 그들이 '히틀러의 최대 공신'(504p)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세계 열강이다. 이 부분이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분통 터지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러-우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하는 태도가 과연 2차 대전 때와 뭐가 다른지.

영국과 프랑스뿐 아니다. 패전으로 고통 받은 나라들의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때 잘나갔던 체코슬로바키아나 유고슬라비아 같은 강대국들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승리에 취해, 독일의 변화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고, 또 다른 전쟁에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고, 평화에 안주해 중립을 선언하고 다른 나라와의 밀접한 교류도 하지 않았고, 극심한 내부 분열에 시달리고 있기도 했다. 설마설마하다 그냥 자포자기하거나 소련을 끌어들이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도자의 이런 모습에 국민들이 누가 적극적으로 싸우려고 하겠는가. 어려운 때 어떤 지도자가 나라라를 이끄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이런 지도자들의 온갖 황당무계한 무능함이 실려 있다(장군이 포기하고 울지를 않나, 충격받아 쇼크로 쓰러지지 않나, 비행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전투를 못하지 않나 등등등 너무 많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놀랐던 건 독일-핀란드(핀란드는 할 수 없이 참전, 나중에 빠짐)와 소련과 맞붙었을 때, 루스벨트가 소련에 호의적이어서 이에 따라 어마어마한 물자를 제공했다는 사실(252p)이다. 심지어 소련의 요청에 의한 것도 아니고 미국이 먼저 소련에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소련이 독일에 공격을 받아 세가 꺾였다면, 이후 소련이 동유럽 지역에 행한 여러 폭력적인 상황들이 가능했을까. 물론 덕분에 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했지만, 이후 냉전의 역사와 지금까지 이어지는 국지적 갈등의 시초에 미국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들이 지금의 지위를 유지할 자격이 있는지, 그 유지에 누구의 희생이 바탕이 되었는지에 대한 지적을 안 할 수가 없는 지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느낀 것은, 각 나라마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고 진 이유는 하나라는 점도 놀라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는 병법 원칙이었던 것. 위험을 줄이는 준비와 판단이 있는가, 없는가 여부가 바로 승패를 갈랐다. 약소국이든 강대국이든 할 것 없이 말이다. 진리라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한 것인 셈.


5. 2차 세계 대전의 이야기는 남의 일 같고 먼 이야기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일본의 전쟁 이야기들이 나오질 않지만, 책 곳곳에 우리와 관계된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리의 해방과 분단도 결국 2차 대전과 연관이 있고, 2차 대전 이후 각국에서 질서를 회복하면서 생기는 좌파와 우파의 갈등으로 인한 내전과 같은 상황에 해결사로 등장한 미국이나 소련이 개입해 더 큰 갈등이 지속되기도 했다. 몰랐던 사실인데, 전후 좌우파의 갈등으로 4년간의 내전이 일어난 그리스 상황을 보고 미군정 당시 반미시위가 일어난 남한을 제2의 그리스로 생각한 미국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그 본보기를 보였다고 한다. 무솔리니의 헛된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 돌고 돌아 머나먼 우리에게까지 여파가 미쳤으니 '역사의 나비 효과'(711p)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분단 이후 소련의 영향으로 이제는 통일이란 말이 무색해진 고립화한 북한의 현실과 핵 위험 역시 스탈린의 헛된 야심에 휘말려 혹독한 대가를 치른 동유럽 국가들의 과거와 뭐가 다른가 싶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전세계의 역사가 하나로 이어져서 현재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새삼 발견한 놀라운 점이다. 국내 저자의 책이라 이런 부분들도 알게 되어 참 좋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아시아의 약소국 관점에서 2차 세계 대전사 책을 후속으로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많이 들었다.


기한에 맞춰 책을 읽느라 여러 부분에서 아직 생각이 정리가 덜 된 부분도 있고, 인상적이었던 부분 인데스 붙인 페이지도 엄청 많은데 다 소개하지 못하고 해서, 다시 한번 찬찬히 공들여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또한,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최근에 만난 국내서 저자들 중에, 문체, 연구 성과 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 아닐까 싶어,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발견(!)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곳곳에 포진한 새로운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독서란 참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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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맨 - 뉴욕의 컨설턴트에서 시골 우체부로, 길 위에서 찾은 인생의 진짜 목적지
스티븐 스타링 그랜트 지음, 정혜윤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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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 당첨되어 가제본본 받고 쓰는 서평입니다.


스티브 스타링 그랜트가 쓴 <메일맨 Mail Man>은 제목 그대로 '우편 배달부'의 삶을 살게 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담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전체 내용을 보내준 게 아니라 1장, 9~15장, 21장, 25~27장만 발췌해 보내준 가제본 본이라 정확한 목차나 책을 읽고 느끼는 세부적인 감정들이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우선 주어진 만큼의 분량을 읽고 느낀 점이 요즘 내가 느끼는 부분과 많은 부분이 겹쳐져서 저자의 이야기에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잘나가던 마케팅 전문가였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급작스레 해고를 당한다. 문제는 저자 스티브 그랜트는 암 환자였다는 것. 새 마케팅 일자리를 구하기에는 전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힘은 들고, 건강보험이 꼭 필요했던 그는 결국 시골의 우편 배달부가 된다. 9장부터 15장까지의 이야기는 우편 배달부 초짜 시절의 이야기다. 그것도 정식이 아닌 보조 배달부. 안락한 사무실 책상 앞에서 바깥의 상황과 상관없이 머리만 쓰던 작가가 점차 우편 배달부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전세계를 휩쓸었던 팬데믹 시대(생각보다 다들 까마득하게 빨리 잊어버린 그 단어!)가 지나고 나니 AI가 이제 대세가 된 현실에서, 이제 인간은 전염병이 아니라 기계에 밀려 안락한 책상에서 퇴출되고 있다. 우리가 팬데믹 시절에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돌아갈 거라 생각한 시대가 지금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그때 우리가 생각한 게 인간은 어떤 것에도 다 취약한 존재였던 것을 깨닫는 결론이었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AI에 대한 공포에 그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다(나만 그런 거길).

어쨌거나 노력했는데도 모자란 상황에 미쳐버릴 것 같은 상태에서 결국 우편 배달부에 적응하며 저자는 깨닫는다. "내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를 본질로 데려간 것은 내가 잘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못하는 무언가였다. (중략) 내일 다시 일어나 또 그렇게 하는 거다. (중략) 결국 내가 버텨내리라는 것을." (11장) 결국 저자는 "이 일만은 천천히 점진적으로 늘었다. (중략) 단순히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생생한 감각 속에 살았다"고 깨달으며 '우편 배달부'가 되어 있었다.


AI 관련한 책들을 읽다 보면, 과연 인간이 끝까지 '인간답게' 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저자가 좌충우돌 우편 배달부로서 몸을 쓰며 살아가는 모습이 잊혀져 가는 팬데믹보다 다가올 AI 시대의 공포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너무 나간 걸까.

우편 배달은 사기업이 아니고, 공기업이다. 정부가 시민에게 제공해야 할 지속성, 안전, 안정감, 동지애, 문명(9장) 같은 것을 전하는. 서로가 얼마나 똑똑하고 잘났는지 보여주느라 혈안이 된 사기업이 아니라, 같은 동료가 내일도 나올 것인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지만 고려하는 우체국. 여기서 저자는 공간, 숫자, 언어에 대한 기억력은 물론이고 몸조차도 여러 가지면에서 이상할 정도로 약해졌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렇게 힘들어 지치고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 체력이 바닥나고 정신력이 약해졌을 때, 저자의 동료 캣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하루만 더 버티세요. 일단 남은 것들만 먼저 해요." 이 이야기는 뒤에도 계속 반복된다. 언제나 우체국에는 신입이 들어오고 신입들이 멘붕에 빠질 때, 이제는 저자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깨닫는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버티는 거였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참 위로가 되었다. 이 문장이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이 문장을 말한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 간 걸 생각하면 엄청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김연아). 무력한 인간에게 인간이 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 위로. 이렇게 저자는 매일을 버텨낸다. 때로는 동료가, 때로는 와이프가, 때로는 배달부를 인간으로 대접하는 동네 주민들이 그를 위로한다.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이렇게 서로의 부족한 면을 알고 서로 돕는 사람들이 있어 인간이 사는 세상은 유지되는 것이다. 숫자와 글자 때문이 아니라. 그리고 저자는 일을 할수록 혁신이니 법칙이니 하고 떠들어 대던 '유리병 속의 뇌'가 아니라 내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를 깨닫고 그 상태를 즐기고 좋아하게 된다.


저자가 마케팅 전문가에서 우편 배달부라는 극단적 스위치를 통해 깨달은 점은 생각할 바가 많다. 머릿 속이나 컴퓨터 화면, 종이 위의 글자나 숫자가 아니라 몸으로 버티는 일들의 가치가 AI 시대에 좀 더 각광을 받을 것 같은데, 과연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정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지 자꾸 의문이 들었다. 이 책 27장에도 나오는데, 우편 배달부들을 위해 시원한 음료,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선의에 대해 "거래는 당신을 소비자로 만들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당신을 인간으로 만든다"라는 문장이 어쩌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우편 배달을 하는 길에서 깨달은 바들이 친절과 희망이 주는 존엄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잊으면 안되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런 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나오면, 다시 발췌독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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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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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헌학자로 유명한 김시덕 박사의 신간을 트위터 서평단 모집에서 뽑혀 받게 되었다.

이분의 다른 방송이나 활동은 모르고, 예전에 우연히 지나가다 지방 도시의 철도관련 사택을 보여주는 그럼 프로그램에서 풀어주시는 썰이 너무 흥미로워서 알고 있던 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전국 방방곡곡 아니 이런 데까지 하고 의문이 들 만큼 수없이 세워진 그 많은 아파트들을 볼 때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도시 계획'에 대한 생각이 있나, '도시의 미래'나 '국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있나 짜증이 났는데, 이러한 내 갈증을 풀어주는 책이랄까.


이 책의 제목에 '2026'이 붙는 이유는, 이 시리즈가 매년 발행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2026의 경우 부제는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내는 해'다. 아마도 지선으로 인해 각 지자체마다 산적한 개발 이슈가 또다시 공약으로 난무할 것이기 때문일 듯. 이 책이 매년 나오는 책이라서 그런지 차근차근 도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밝히는 책이라기보다 앞으로 도시 계획을 세우고 개발을 진행할 때 염두해야 할 점을 밝히고, 독자 개인으로서 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법을 알게끔 하는 서술 방식을 선보인다. 그런 총론은 1부에 나오고, 2부는 전국을 3대 권역과 6개 소권역으로 분석하고 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2부보다는 1부가 훨씬 흥미로웠다.


1부는 다시 4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1) 정치(진짜 제목은 2025대선과 2026 지선 사이) 2) 국제 정세와 기부 변화 3) 인구와 산업 4) 교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공약(空約)'이 난무하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보다 보면 한숨만 푹푹 나온다. 저자가 "한국의 정치권과 행정 영역은 이런 국가적 차원의 갈등을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상실한 것으로 보여서 우려됩니다."(37~38쪽)라고 밝힌 부분에 밑줄을 안 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정치인들이 젊을 때 경험한 한국과 유권자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노년층이 경험한 한국과 현재의 젊은이들이 경헌하는 한국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거대한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한국은 인구가 늘지 않고, 산업의 주요 인력이 한국인도 아니고, 중요한 기반시설은 환경적인 문제라든가 집값의 문제로 쉽게 들어서기 힘들고 등등 발전이 정체된 형태인데...정책을 만들고 공약을 내걸고 그거를 받아들이는 주요 유권자층은 저기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 우리도 개발해 이런 식의 사고로 무장된 연령대라는 것...아마 노령화가 가속화될 수록 이게 더 심해질 거고 지금 초등학생들이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다 죽고 없을(?) 그들에 대한 역사적 비판이 어마무시할 거라고 생각한다(못보고 죽으니 다행인건가?).

너무 비관적으로 말했나. 누구나 느끼지 않나, 전국 방방곡곡 저 깊은 산속까지 아파트가 들어선 게 정상은 아니란 생각. 그리고, 다들 자기 도시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이 다 똑같은 모습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이상하지 않나. 

어쨌거나 1부 1장이 가장 속터지는 부분이었고,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다면 1부 2장 '국제 정세'와 '기후 변화' 때문이라 하겠다. 러-우 전쟁이 우리나라 도시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지금까지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자기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행정, 정치권의 구상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위험한 것인지(p69)에 대한 비판 등은 곱씹어 계속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이다. "국제 정세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도시의 미래를 올바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p71)라는 문장을 보고, 세도정치 이후 자기들의 이권만 탐하다 결국 식민지화한 조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고 하면 너무 멀리간 걸까.

그리고, 각종 인재같이 여겨지는 공사 중 사건들이 사실은 급격히 변화하는 한국의 기후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발생한 것들이라는 지적도 놀라웠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게 지금 공사하고 있는 대규모 철도 공사나 신도시 개발, 고속도로 공사, 공항 공사 등은 사업 계획이 멀리는 식민지 시대부터(!-p125~128) 수립되어 이제야 착공되고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들인데 그 사이 우리나라 기후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어디에 살든(서울도 포함된다) 새로운 공약으로 내건 대규모 건설사업이 지반 상태까지 고려한 것인지, 식수나 용수 부족을 초래할 사업인지 등등 살펴볼 내용이 많았다. 이는 여기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2부 각 권역별 도시들을 다루는 파트에서도 계속 나온다.


3장의 인구와 산업에 대한 접근 부분은 앞에서 말했듯, 무엇이든 증가와 발전만을 고려하고 우리 지역 우선주의(특히 대도시들 위주의)로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는 개발이 아닌 "도시 규모가 줄어든다는 전제하에 도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한국 도시의 미래입니다."(p81)라는 저자의 말이 정말 모든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길 바랄 뿐이다. 그런 사례로 예를 든 도시들로는 청송, 증평, 거창인데, 이들은 도시의 특화된 인구 유입 요소들만 적극 활용해서 도시 전체를 발전시키는 압축적 방식을 택했다. 청송군은 교정 시설 유치로 교정 경제를, 증평군은 증평역과 37사단 사이에 모든 시설 집중시키는 콤팩트 시티 모델, 거창군도 거창읍을 압축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지자체 유지를 하고 있다.(p108쪽의 증평 읍내 사진 속 스타벅스와 멋진 도서관이 있는 커다란 사거리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음) "한 지자체의 모든 읍면리에 골고루 인프라가 갖추어져서 인구가 골고루 분산되는 미래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증평군과 거창군 모두 도시 외곽에 택지를 개발하려는 욕망을 억제했다는 점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구도심을 떠나 외곽 택지 개발에 여념이 없는 다른 지역들에 귀감이 됩니다. 압축도시의 모델을 찾아 외국으로 눈 돌리기 전에, 증평군과 거창군의 읍내에서 1박 2일 머물러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p109)라는 단락이 어쩌면 이 책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문단이 아닐까.


4장 이후는 주로 '교통 시스템'과 도시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다. 이 부분을 알리기 위해서 저자가 아마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선거들 틈새에서 분명 계속 이 부분들이 전면 부각될 거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저자가 말하는 함축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 "시민들이 이렇게 투자 실패를 하는 건 애초에 정부가 정책에 실패하고....특히 언론은 서울 사대문 안에 세계관이 갇혀 있다 보니, 떠오르고 있는 미래의 도시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p180) 그렇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 중 인구가 늘고 발전하는 도시들은 그저 다른 지역 사람들(서울 포함)에게는 '시골'일 뿐이라는 점. 이게 우리나라가 이렇게 이상하게 국토를 개발하고 있는 지점 같다. 이 책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도시는 "화성, 평택, 천안, 아산, 당진, 청주, 음성, 진천" 등이고 "이들 도시가 미래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최전선"(p180)이라고 평가한다. 다른 도시는 모르겠고 열거된 도시들 중 청주에 반나절 갔을 때 너무 크고 구도심에 인구도 많고 신도시도 서울이랑 다를 바 없어 엄청 놀랐던 적이 있어 자세히 찾아본 적이 있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오송, 오창 등의 주변 바이오 산단과 군사시설 및 방위산업체 등으로 인한 발전의 지속성이 있는 도시였던 것.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바가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 결국 세종과 대비되는 관 주도 VS 기업 주도의 도시에서 승자는 기업 주도의 도시겠지.

이상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부분들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가 부동산 추천 책을 쓴 게 아니고, 한국의 도시들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 비전 제시하는 책을 쓴 이유는 "한국이라는 국가 그리고 나라는 개인의 미래 설계"(p7)를 위해서라고 한다. 겨우 그달그달 빵꾸 안나고 사는 우리가 어디가 앞으로 잘 나갈 거라고 해서 덥썩 땅을 살 수 없지만, 국제정세와 맞물려 어느 도시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것들에 대한 분석에서 대한민국 전체의 현재와 미래를 인문학적이면서 경제학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나만의 인사이트가 정립되는 좋은 책이라고 여겨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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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 상·청춘편 -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한 가부키의 세계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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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하권도 기다려지고 영화로도 꼭 볼것이다. 주인공의 삶이 참 비극적인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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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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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만큼 만족도 높은 책. 역사 속 숨겨진/잊힌 여성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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