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탄생 -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의 역사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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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대 그리스인들의 평균 수명은 19세였다. 16세기의 유럽인들의 평균 수명은 21세였고, 19세기에는 34세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인간의 수명은 80세에 육박한다. 팔만대장경 제작에 16년이 걸렸고, 민중의 피를 쪽쪽 빨아먹던 박통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35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옥스포드 영어 사전 편찬 사업이 완료되기 위해서는 무려 70년이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70년. 이 기겁할 만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사전 편찬에 몸을 담았던 이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을까. 끝을 기약하지 않은 시작은 아니었을 것인데, 예상을 훨씬 넘어선 과정과 결과가 남긴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시작을 이끌던 이들은 완성된 사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영어의 모든 의미를 담겠다는 목적은 어찌 보면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허황된 의지일 수도 있었다. 역류는 거칠고, 미답의 숲을 뚫고 지나려는 이들의 삶은 지루했다. 그렇게 탄생한 사전은 4만개의 표제어와 2백만개의 예문을 수록한 1만5천 페이지의 거대하고도 위대한 업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량과 시간이라는 수치를 말하고는 있지만, 누군가의 시간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땀이었을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그 안의 것은 수천명의 자원 봉사자의 노력과 열정으로 대치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평범함과 비범함으로 장대하고도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의 시작은 필연성을 띠었다. 이 책의 서두는 영어 사전이 탄생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 영어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확장과 수용, 변이와 융합이 요동치는 영어는 사실 침략자들의 언어이기에 가능한 특징을 지닌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은 생명력이고 번영을 의미한다. 실제의 의식화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언어이기에 언어에 대한 완벽한 정리, 이해는 세계에 대한 도전이고 정복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확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의 지성은 축적되었기에 충분히 도전할 만한 것이었다.

미답의 길을 가는 것은 수많은 난관을 예고한다. 사전의 정의부터 모호했던 시대에 Meaning of everything(이 책의 원제)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에 맞지 않는 비효율성, 막무가내식의 접근방법은 20년을 허송세월한 원인이 되었다. 체계가 필요했고, 열정이 필요했다. 3대 편집장 제임스 머리는 영어의 특징에 맞게 기술적 방식(예문의 용법으로 설명)을 중심으로 한 사전 편찬에 힘쓴다. 14세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언어능력을 지닌 그는 사전의 정의를 제대로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관성, 정치성을 배제하고, 쉬운 설명, 정확하고 구체적인 예문을 잘 골라냄으로써 사전다운 사전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역사적 원칙에 의하여 단어의 변천사도 함께 서술함으로써 보다 명료해졌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국어사전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보다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단어를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 쫓아가면 빙빙 돌다가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 온다. 그리고 쉬운 단어를 어려운 한자어로 기술하여 무슨 뜻인지 더 알 수 없는 경우 등 사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영어의 탄생’은 현재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게 가능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했단 말인가?

큰 뜻을 품지 않는다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미가 되어 준다는 것은 누군가의 헌신을 전제로 한다. 사전에 기록된 수 많은 이들의 이름은 그래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상징이자 신화가 되었다. 사전이 사물과 정신의 다리가 되어 주듯이, 이 책은 인간의 숭고한 역사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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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2005-10-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말의 탄생>을 보면 국어사전이 왜 영어사전처럼 용례가 위주가 아닌 지 알 수 있더라고요. 식민지라는 특수 상황이 우리말사전을 지금의 모습처럼 만들었다는 가슴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