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많이 작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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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레벨9 입니까? +.+ 저는 8레벨까지밖에는.....

라주미힌 2005-07-0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중독성이 심하죠. 단순한게 가장 매력적인거 같아요. 흐흐
날개님/ 11까지도 가봤어요. 초당 타임바가 1cm가 없어져요 ㅡ.ㅡ;;;;; 2~3줄을 지워야 제자리를 유지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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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무의식의 발견 : 프로이트와 그 이후 - 정장진

무의식의 발견 : 프로이트와 그 이후 - 정장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범박한 의미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념으로서 혹은 하나의 체계로서의 무의식은 발음하는 순간부터 인식론 상의 심각한 모순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무의식에 대해 말하는 의식의 무의식에 대한 인식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며 의식의 모든 층위에 있어서의 활동과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는 의식의 일부이자 동시에 반대물이기도 한 것이다. 의식 없이는 무의식도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혹은 뇌사 상태인데 무의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의식이 없을 때 무의식도 없다. 하지만 개체가 아니라 개체들의 관련과 그 관련의 집단적·역사적 추이, 즉 계통이 문제일 경우 무의식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정신분석은 이 지점에서 형이상학을 향해 겨누었던 칼날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정신분석이 의학이라는 정밀하고 임상적인 세계의 유혹을 받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따라서 무의식의 발견자로 인정되는 프로이트의 업적은, 흔히 말해지는 것과는 달리, 위에서 거칠게 구분해 본 형이상학과 의학 혹은 개체와 계통의 갈등을 견디어 낸 방식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굳이 말한다면 그의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의식의 단계로 혹은 의식을 무의식의 단계로 확대한 것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트 이전에 무의식이 의식과 맺고 있던 관계와 프로이트 이후에 달라진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로이트 이전의 무의식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존재의 뿌리 부분에서 움직이는 비이성적인 힘이었다. 자연 만물을 지배하는 이 힘의 정점에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지성을 압도하는 의지의 프리마를 믿었던 쇼펜하우어의 인간관이었다. 한편 칼 구스타프 카루스는 감정을 무의식이 의식에게 하는 고백이라고 정의했고, 후일 E. 폰 하르트만은 그의 저서 『무의식의 철학』에서 무의식이 보편적 영혼을 표상한다는 헤겔식의 일종의 범신론을 편다. 이러한 심리주의는 물질에까지 심리를 적용하는 우스꽝스러움을 보였지만 신경 계통과 유전적 요인들의 영향이 명백해진 오늘날, 물질의 심리론을 편 이들의 주장은 웃을 일만은 아니다. 당시의 실증주의와 자연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무의식은 보편성을 획득해야만 했던 것이다.

형이상학자들의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곧 이어 의학자들의 경험을 통해 구체성을 띠고 입증된다. 특히 먼저 주목을 받았던 것이 히스테리 증상이다. 왜냐하면 외부로 가장 다양하고도 가시적인 방식으로 표현됨으로써 무의식의 불가해한 속성을 잘 드러내 주는 질병이 히스테리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행한 것이 최면 요법이었다. 특히 이름이 거론될 만한 의사들로서는 피에르 자네, 비네, 리보와 샤르코를 꼽아야 할 것이다. 샤르코는 히스테리가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정신병이라는 것을 최초로 입증해 보인 인물이었고 후일 프로이트도 유학을 와 공부를 하게 되는 유명한 <살페트리에르 학파>의 창시자였다. 또한 낭시 학파도 함께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무의식의 정신적 존재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자동성을 입증했을 뿐 이 현상의 규모와 내용을 밝혀 낼 수 없었고, 특히 그 기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비록 샤르코는 암시 및 히스테리의 정신적 기원과의 관련성 및 자동 기술을 입증했지만 언어와 언어 치료의 가능성에 대한 발견은 프로이트의 몫으로 남는다. 피에르 자네의 경우에도 디소시아시옹dissociation, 즉 의식과 무의식의 분리라든가 잠재적인 고정 관념 등 매우 중요한 개념을 발견해 내기는 했지만 샤르코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기원과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1885년 파리의 살페트리에르로 유학을 온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와 최면 요법의 실체를 직접 확인한다. 특히 4년 후 프랑스를 다시 찾은 프로이트는 낭시에서 매우 소중한 발견을 하게 된다. 즉 그는 『나의 삶과 정신분석학』이란 책 속에서 스스로 회상한 바 있듯이, 최면이 풀렸을 때 환자가 최면 상태에서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해 완전한 무지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프로이트는 의식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 결정적인 사건은 빈의 의사 브로이어와의 만남이다. 신경증 환자들의 증세들이 과거의 사건과 관련되어 있고 언어를 통한 과거 회상이 종종 치료 효과를 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덧붙여 프로이트 자신의 자기 분석의 중요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자기 분석의 경험은 프로이트로 하여금 평생 동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견지할 수 있게 한 동력이었다. 이는 그 유명한 플리스와의 서신 교환에서 단초를 보이기 시작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견이나 꿈의 해석, 나아가서는 문학 작품을 비롯한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문화적 정신분석학과도 관련된다. 자기 분석과 아울러 지적되어야 할 것이 오이디푸스와 햄릿 혹은 독일 낭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프로이트의 인문적 교양이다.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유아기의 성의 존재와 성의 억압이란 두 가지 개념이다. 많은 비난이 쏟아진 이 두 개념은 우리가 흔히 리비도라는 말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환자들의 정신 질환의 대부분이 성경험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입증이 되었으며 나아가 이 두 개념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있어 무의식, 전의식, 의식의 표면적 구분으로 이루어진 일차 구조에서 자아, 초자아, 이드로 구성된 새로운 의식의 구조를 가정하게 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이 문화적 현상에 대한 분석 도구로 사용되는 길을 터놓기도 한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다윈의 진화론에 비견되는 일대 혁명이었다.

프로이트 이후의 무의식
신체에 대한 열등 의식 개념을 무의식의 중심 테마로 간주한 아들러Alfred Adler는 프로이트로부터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 사람이다. 그러나 니체를 연상시키는 권력에의 의지와 보상 심리 등이 육체의 이미지에 대한 열등 의식과 맺고 있는 상관 관계는 무의식적인 현상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또한 이는 이미 프로이트의 글에서, 특히 꿈이나 상징에 대한 해석에서 언급되었던 무의식적 표상 행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프로이트로부터 멀어진 사람은 스위스 인인 융Carl Gustav Jung이었다. 종교적 상징과 영혼의 존재를 믿었던 융은 형이상학과 종교적 열정을 무의식과 연결시키면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발원지로 여겼던 성의 역할을 완화시킨다. 융은 무의식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고정 불변하는 원형 개념을 필요로 하게 했고 그의 집단 심리학은 이러한 구도에서 발생하게 된다. 융의 무의식이 문학이나 신화 분석, 나아가서는 인류학 등에서 흔히 차용되는 이유의 일단도 여기에 있다.

위의 두 사람에 비해 오토 랑크Otto Rank는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분석을 보여준 학자다. 그의 탄생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영국으로 귀화한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자신의 아이을 포함해 어린아이들, 특히 오이디푸스 기 이전의 시기, 즉 구강기와 항문기의 유아들을 분석의 중심 대상으로 삼는다.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리비도와 파괴 충동을 결합시켜 이로부터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의 개념을 창안해 낸다. 따라서 클라인은 무의식의 상징 체계에 대한 분석보다는 환상과 상상적인 것에 보다 많은 연구를 할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꼽아야 할 인물이 있다면 자크 라캉Jacques Lacan일 것이다. 프랑스 인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소문이 난 이 철학자 겸 정신과 의사인 라캉은 이른바 구조주의로 통칭되는 50~ 60년대의 지적 풍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라캉의 첫번째 문제 제기는 거울 단계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개념은 거울에 비친 상과 육체의 완결된 이미지 사이에 관련된 환상을 총칭하는 시기로 대략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기간이 이 시기이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라캉식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개념은 후일 상상계, 상징계, 현실계 등의 구분으로 세분화되기에 이른다. 이 작업은 이른바 프로이트로의 복귀, 혹은 프로이트 다시 읽기로 불리는 과정으로서 구조주의, 특히 언어학의 영향 아래에서 프로이트를 다시 읽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니피앙, 시니피에의 개념 차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라캉의 언어학에 대한 의존은 상당한 것이었다. 라캉의 모든 개념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정신 분석적 응용에서 유래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말했을 때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자의적 만남은, 다시 말해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가 일러주듯 사물 그 자체와 언어 사이에는, 하등의 필연적 관계가 없다. 한국어로는 사과이지만 프랑스 어로는 폼이고 영어로는 애플인 것이다. 최초의 결핍 상태로부터 시작되는 욕망과 대상 사이의 끝없는 불일치는 정신분석에 와서는 은유와 환유의 메커니즘으로 해석된다. 라캉의 <상징계>는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집단적이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확고 부동한 규범과 규약의 총체로서의 언어를 지칭하며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라고 했을 때에도 대문자로 표기되는 <타자>란 요컨대 욕망과 충족 사이의 운명적인 괴리를 만든 원 존재로서의 언어를 지칭한다. 이러한 언어의 초월성은 프로이트의 삼각형, 즉 아버지, 어머니, 아이의 관계 속에 각자의 위치와 기능을 부여하는 별도의 존재로 언어를 가정하게 했다. 이로 인해 어머니나 아이와 쌍을 이루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를 아버지이게 하는 지고의 존재로서의 이마고, 즉 아버지의 이름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라캉은 <상징적 거세>라고 불렀다. 실제로 아이의 언어 습득과 욕망의 관계에서 볼 때 이미 그 자체로 괴리인 언어는 이렇게 진정한 대상을 찾지 못하는 욕망과 대상 사이의 괴리와 동형 동질의 것이다.

맺는말
무의식은 프로이트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것의 있음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진원지와 구조가 알려지게 된 것은 더 더욱 최근의 일이다. 프로이트 이전의 시대의 무의식이 관념론에 침윤된 비분석적인 개념이었다면 프로이트는 이를 정신 질환의 임상적 경험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분석하고 개념화의 초석을 놓았다. 형이상학을 거부했지만 프로이트는 두 차례에 걸쳐 메타 심리학의 정치한 구조를 가정했고 이는 후일 라캉에 와서 언어학의 도움을 받아 비종교적 신학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프로이트와 그 이후의 정신분석가들은 융과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기독교의 강력하고도 완벽한 체계 속에서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부정인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글쓴이 정장진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와 덕성여대 대학원에 출강중이다. 역서로 『뉴욕 스케치』, 『붉은 수레바퀴』, 『성탄절 이야기』, 『연인』,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예술과 정신분석』 등이 있고 저서로 비평 에세이 『두 개의 소설 혹은 두 개의 거짓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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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인어뱃살 > 오역의 문화와 함께 비평의 문화도 한번 돌아봤으면
문화의 오역
이재호 지음 / 동인(이성모)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알라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아 읽는 순간 10분도 안되어서 나는 이 책에 대해 실망했다. 미리 서점에서 한번 만 봤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번역서를 접하면서 오역에 대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출판계에는 오역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의 오역'으로 '오역의 문화'가 일상화되었다면, 그에 대한 비평도 뼈아프지만 애정 어린, 미래 지향적인 비평이 되었어야 했다.

내가 기대했던 책의 내용은 그간 '문화의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발전적 대안이 포함된 책의 내용이었다. 즉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 번역 작업의 학술 성과로서의 인정 문제, 번역가 양성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 오역 나올 수밖에 없는 번역가에 대한 대우 같은 제반 사항이 포함된 내용 말이다. 아마 책 제목만 보고 말한다면 누구나 이런 식의 기대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없다. 저자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잘못 번역된 내용들만 나열되어 있다.  이 내용도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Queen이 여왕과 왕비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여왕이라고 번역해야 할 곳에 왕비로 왕비라고 번역해야 할 곳에 여왕이라고 쓰인 경우가 무수히 많다는 것은 이미 안정효씨의 <영어 길들이기>에서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내용에 대한 예를 무러 18페이지나 들고 있다. 이건 지면 낭비가 아닐까?

저자는 오역만 찾다보니 오역이 제대로 고쳐져 사용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 올더스 헉슬리의 Brave New World가 <용감한 신세계>로 오역되어 있는데 <멋진 신세계>가 맞다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알라딘에 검색창을 한번 사용해 보시길 바란다. 요즘도 <용감한 신세계>로 제목을 다는 경우가 있는지..

* A Man For All Season이 <팔방미인>이 아니고 <4계절의 사나이>란다. 미안하지만 이 영화 제목은 오래 전에 <명화극장>에서 방송할 때도 그렇고 각종 영화 잡지에도 그대로 <4계절의 사나이>로 번역되고 있다.

* 코페르니쿠스의 On the Revolution of Celestial Orbit가 <천체의 혁명에 관하여>가 아니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다. 그러면서 오역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책이 1963년 판 <세계문화사>이다. 골동품 수준의 책에 실린 오역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번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1998년에 서해문집에서 이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같은 예로 토마스 핀천의 The Cry of Lot 49는 저자가 지적을 안해도 이미 <49번지의 비명>이 아니라 <49호 품목의 경매>로 번역되어 있다.

저자의 오류도 눈에 뜨인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 제목은 Lost In Translation. 저자는 Translation은 '번역/통역'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Translation의 동사형 translate는 '황홀하다'라는 뜻이 되고 명사형인 translation은 '황홀경' 정도(Translation이 '황홀경'이라고 영어 사전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translate에서 유추해서 다시 명사화 시킴 ). 'be lost in~'은 '~에 홀리다'. 즉 Lost In Translation은 '황홀경에 빠지다'라는 뜻이라는게 저자의 주장. 영화 제목 하나 설명하기 위해서 고차 연립 방정식을 푸는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Translation이 '황홀경'이라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감독 소피아 코폴라의 인터뷰에 의하면 translation은 '번역'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 외국 영화 리뷰에도 '황홀경'이 아니라 모두 '번역'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영화에서 일본인들이 '통역' 때문에 애를 먹지 남녀 배우 두 사람은 모두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통역'에 문제가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통역'과 무관하다는 단순 논리. 하지만 우리 식으로 의역을 하지 않고 영어 원제로 하자면 <번역 속에 사라지다>(Lost In Translation) 정도가 적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 소통 속에 사라진 의미를 향수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저자도 '오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하고 싶다.  '요런 의미가 있는 건 몰랐지?'하는 반박을 위해 두꺼운 영어 사전을 몇권 씩 뒤지기 보다는  <씨네 21> 실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해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라는 김소영 교수의 글을 읽기를 권한다. 왜 tanslation이 '번역'의 의미로 쓰였는지를 저자에게 차근 차근하게 알려 줄 것이며 제목 트집 잡다가 놓친 영화의 주제를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그러면서 단어에 국한된 번역이 아니라 '문화'의 번역'이 뭔지를 그 글을 통해서 한번 깨달아 보시길 바란다. 

 이 책의 2/3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장미의 이름> 등으로 알려진 이윤기씨에 대한 비평이다(솔직히 비평이라기 보다는 비난이나 험담이 더 어울린다)
저자는 마치 영어 선생님처럼 "니가 한 이 번역은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렸어.."하며 이윤기씨를 몰아세운다. 보기에 참 민망하다.
저자의 지적 중에 일면 타당한 것도 없지 않지만 이윤기씨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건.. 이런 식의 의미로 보인다"라고 해석한 부분을 '마치 자기가 세계적인 신화학자가 되는 것처럼 함부로 해석한다'라는 글로서 험담을 해댄다. 신화의 해석은 세계적인 신화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신화가 그들의 손에서만 해석되어야 한다면 신화는 얼마나 밍숭맹숭했을까.(난 개인적으로 이윤기씨나 이 책의 저자 이재호씨에게 한번 물어 보고 싶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금전 채무 문제로 다툼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왜냐하면 이재호씨는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저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이윤기씨만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니 말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는 책 제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이는 그의 관점에서 현대식으로 해석해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도 않은채 자기 관점에서만 벗어나면 무조건 오역이라는 건 문제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이 책은 2천년전에 쓰여진 신화이다. 신화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전승과 관점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윤기씨의 오역과 저자인 이재호씨의 주장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화의 오역'을 단지 저자 몇 사람을 골라서 인민재판식으로 몰아 붙인다고 해결될까? '문화의 오역'에는 그만큼 우리 번역 문화가 미성숙했음을 보여준다.이 문제는 한 개인의 능력에 국한시킬 문제가 아니라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비평을 위한 비평, 비판만 난무하는 비평을 넘어선 성숙한 번역 문화를 만들 수 있을것이다. 

오역이 있으면 오역을 지적하고 오역을 한 사람은 타당한 지적이면 수용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핏대 올리면서 남을 폄하할 필요도 없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으며 오역을 찾아냈다고 우쭐해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한 작품에 대한 번역의 수준은 한 번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오류와 수정 속에 번역은 새롭게 바뀌어지고 시대적 관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번역은 단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구' 번역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은 번역 과정에서 쌓여지는 것이 우리 문화의 수준이며, 그 번역 문화에는 번역가의 문제와 번역을 지적하는 비평가의 수준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진정한 번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계가 지금껏 '오역의 문화'를 양산해 왔다면, 저자는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제일까? 과연 이재호 교수 책을 잡고 이 잡듯이 잡으면 오역이 보이지 않을까? 비평을 하는 사람 자신 역시 번역문화라는 큰 테두리에서는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차라리 자신의 그간 번역 과정에서 쌓여온 고충이나 노하우를 점잖게 소개하는 것이 옐로우 저널리즘식 글쓰기 보다는 우리 번역 문화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에게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책은 '명예교수'라는 '명예'와 전혀 걸맞지 않는 비평이다. 이건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비평에 불과하다. (만약 저자식의 비아냥거림이 허용된다면 저자에게 이런 식으로 돌려주고 싶다)  "이런 식의 비평은 네이버 댓글에서 한 페이지마다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는 공해 수준의 글이다."

번역이 오역이라고 해서 똑같은 수준의 비평이 용납될 수 없다. 어쩌면 수준 높은 번역 문화는 수준 있는 비평이 자리잡을 때 가능할지도 모른다.

군소리)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린다. 이재호 교수를 비판했다고 '이윤기씨의 측근' 이런 식의 황당한 편가르기 식의 소리를 하지 말기 바란다.  우연찮게 두 사람의 책을 다 읽은.. 책 읽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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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삼아 사람 잡는다”
인터넷 ‘마녀 사냥꾼’들, 무차별 공격…‘넷카시즘’ 피해자 늘어


   
  애완견이 배설한 변을 외면한 ‘개똥녀’(왼쪽)는 누리꾼들의 공격으로 곤욕을 치렀다. 오른쪽은 개똥을 치우는 승객들.  
유서는 섬뜩했다. ‘죽어서 복수한다... 죽어도 복수한다.... 나 죽어도 그렇게 말하나 보자! 살고 싶은데. 커서 애두 낳고 싶은데. 그년들.. 가만 안둬’ 지난 5월31일 자살한 인천 ㅅ고등학교 2학년 유 아무개양의 유서에는 남은 친구들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넘쳤다. 유양은 이날 저녁 인천시의 한 빌라 4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이 없다가 6월6일 끝내 숨졌다. 

유양이 자살한 사연은 안타까웠다. 친구 가방을 훔친 도둑이라는 오해와 누명을 벗기 위해서 그녀는 목숨을 버렸다. 유서에 따르면 유양은 5월28일 친구 ㄱ양의 집에 놀러갔다가 무심코 친구 옷장을 뒤적이게 되었는데, 마침 거기 있던 가방이 없어지는 바람에 가방 도둑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친구 ㄱ양뿐만 아니라 ㄱ양의 친구들도 유양을 도둑으로 모는 바람에 유양은 큰 상처를 받았다. 유양은 자살하기 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3학년)에게 ‘부모님 잘 모시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놀란 언니가 부랴부랴 동생을 찾는 사이 참변이 일어났다. 훔쳤다고 의심받은 그 가방은 30cm 정도 크기의 값싼 천가방이었다. ㄱ양은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유양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ㄱ양을 비롯한 유양의  친구들이 받은 충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죽은 유양의 저주는 인터넷을 타고 부활했다. 유양의 사연을 억울하게 여기던 사촌 친척이 6월10일 인터넷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유서를 스캔해 올린 것이다. 홈페이지를 본 누리꾼들은 격분했다. 유양의 이름으로 등록된 이 홈페이지는 하루 최소 3백명 이상이 글을 남기는  유명 사이트가 되었다.

친구 ㄱ양을 포함해 그날 유양을 범인으로 몬 ㅅ고등학교 친구 7명에게 ‘7공주’라는 별명이 붙었고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다. ‘7공주’ 전원의 이름이 공개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구했는지 얼굴 사진도 모두 인터넷에 떠돌게 되었다. “평생 저주 속에서 살아라”(서덕남)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붙입시다”(조우정)는 등 격한 말이 올라왔다.

사건이 난 인천의 ㅅ고등학교 학생부장은 “관련된 7명은 모두 6월11일부터 등교정지 처분을 당했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누군가가 상처를 입으면 또 어떤 비극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7명 가운데에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그 아이들이 다시 ㅅ고등학교에 나오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넷카시즘의 바람이 거세다. 넷카시즘은 인터넷과 메카시즘의 합성어로 인터넷에 부는 마녀 사냥 열풍을 뜻한다. 다수의 누리꾼들이 특정 개인을 사회의 공적으로 삼고 매장해 버리는 현상이, 마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분 매카시 선풍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누리꾼의 응징=직접 민주주의 실현?

   
  인천ㅅ고등학교 여학생 자살 사건이 있은 후, 누리꾼들은 여학생을 자살로 몰고간 주변 친구들의 신상 정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6월 둘째 주 인터넷 세상을 달군 개똥녀 파문도 넷카시즘의 대표적 사례였다. 한 여성이 지하철 2호선에 애완견을 동반하고 승차했다. 그런데 애완견이 객실 바닥에 변을 배설했고, 주인 여성은 변을 치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도망쳤다. 한 시민이 그녀가 앉아 있던 모습을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개똥녀’ 추적이 시작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똥녀’는 인터넷 인기 검색어 1위에 꼽혔다. 모자이크되지 않은 개똥녀의 사진이 범람했고,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개똥녀 소속 대학, 학과, 실명 등이 공개되었다. 그보다 두 달 전인 지난 3월30일 발생한 서울대 도서관 폭행 사건(상자 기사 참조)도 넷카시즘의 전형을 따른 촌극이었다. 

서울대 재학생인 김전익씨(가명, 인문대학)는 이 넷카시즘 열풍을 주도하는 공격적 네티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울대 고학번으로서 인터넷 서핑에 능숙한 그는 솜씨 있는 ‘마녀 사냥꾼’이다. 서울대 도서관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추적에 나선지 채 2시간도 되지 않아 가해자 홈페이지를 찾아냈다. 가해자 학생의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김씨는 “3월20일 밤 폭력 피해자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라고 충고했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맞았다는 사실은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 그 때 우리가, 혹은 내가 사진을 공개해 압박하지 않았다면 그 범인은 지금도 유유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마녀 사냥꾼들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논리는 ‘정의 실현’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때 누리꾼들은 집단 강간범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사법 절차를 비난하며 강간 가해자들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문화 평론가 진중권씨(중앙대 겸임 교수)는 “근대 시민은 복수를 실현할 권리를 국가에 이양했다.

그러나 이 이양된 처벌의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누리꾼들의 집단 행동은 근대 사법제도의 구멍을 보완하는 요소이며 직접적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씨는 “문제는 지금 누리꾼들의 응징 대상이 대부분 힘 없는 시민이라는 점이다. 정의감과 원시적인 복수심은 구별되어야 한다.

또 인터넷 문화는 복제의 문화이다 보니 사실을 확인하기가 너무 힘든 문제도 있다”라고 넷카시즘을 비판했다.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국가가 독점적으로 행사했던 처벌권이 개인에게 넘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사적 처벌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부정하기 이전에 사적 처벌 자체를 연구 분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유언비어는 인터넷 마녀 사냥의 가장 큰 맹점이다. 개똥녀 파문의 경우, 실제 그날 지하철 객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가 없다. 익명의 목격자들만이 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ㅅ고 ‘7공주 죽이기’ 역시 죽은 이의 유서 외에는 당시 정황을 설명할 근거가 부족하다.

서울대 도서관 폭력 사건의 경우 이미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를 마친 뒤에도 가해자 신상 공개가 이어져 ‘정의 실현’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대의 ‘마녀 사냥꾼’ 김전익씨는 “솔직히 사냥을 하다 보면 그 자체에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개똥녀’나 ‘7공주’ 파문이 생기면 별 고민 없이 당사자 신원 추적에 나선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마녀 사냥이 횡행하게 된 이유중 하나는 누리꾼의 ‘수사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검색 엔진 기능이 향상되고 싸이월드가 널리 보급되면서 불특정 개인의 신상 정보를 얻기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상대의 인터넷 아이디 하나만 알면 구글(google)이나 네이버(naver)를 통해 그 사람의 활동 반경을 알 수 있다고 한다.
P2P 프로그램도 넷카시즘을 돕는 ‘고마운’ 수단이다. 김전익씨는 “그냥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면 명예훼손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P2P 프로그램에 올려놓으면 최초 유포자를 찾기가 거의 힘들다. 도서관 폭행 사건 때 ’서울대김OO.zip' 이라는 가해자 사진 파일 묶음을 P2P 프로그램 ‘당나귀’를 이용해 퍼뜨렸다.

그리고는 게시판에 가서 ‘당나귀에 가면 파일 있던데요’라는 식으로 홍보했다”라고 유포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의 원 소유주에게는 원수 같은 행위였다. 정작 남의 사생활을 캐는 김전익씨 자신은 싸이월드에 자기 사진을 한 장도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싸이월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  권창현 부장은 “요즘 싸이월드를 무대로 한 사회 문제가 많아 곤혹스럽다. 그만큼 싸이월드가 대중화했다. 최근 싸이월드는 사생활 보호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사진첩에 수록된 사진을 아무나 볼 수 없게 하는 기능, 이름과 나이 정보로 내 홈피를 찾을 수 없게 하는 기능 등을 잘 활용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6월6일 숨진 고 유진희양이 남긴 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사람 병신 만들고 잘사나 보자. 억울하게 한 사람 죽이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지 두고보자.’  넷카시즘의 희생양이 된 ‘사회적 마녀’들이 자신을 죽인 ‘사냥꾼’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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