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삼아 사람 잡는다”
인터넷 ‘마녀 사냥꾼’들, 무차별 공격…‘넷카시즘’ 피해자 늘어


   
  애완견이 배설한 변을 외면한 ‘개똥녀’(왼쪽)는 누리꾼들의 공격으로 곤욕을 치렀다. 오른쪽은 개똥을 치우는 승객들.  
유서는 섬뜩했다. ‘죽어서 복수한다... 죽어도 복수한다.... 나 죽어도 그렇게 말하나 보자! 살고 싶은데. 커서 애두 낳고 싶은데. 그년들.. 가만 안둬’ 지난 5월31일 자살한 인천 ㅅ고등학교 2학년 유 아무개양의 유서에는 남은 친구들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넘쳤다. 유양은 이날 저녁 인천시의 한 빌라 4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이 없다가 6월6일 끝내 숨졌다. 

유양이 자살한 사연은 안타까웠다. 친구 가방을 훔친 도둑이라는 오해와 누명을 벗기 위해서 그녀는 목숨을 버렸다. 유서에 따르면 유양은 5월28일 친구 ㄱ양의 집에 놀러갔다가 무심코 친구 옷장을 뒤적이게 되었는데, 마침 거기 있던 가방이 없어지는 바람에 가방 도둑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친구 ㄱ양뿐만 아니라 ㄱ양의 친구들도 유양을 도둑으로 모는 바람에 유양은 큰 상처를 받았다. 유양은 자살하기 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3학년)에게 ‘부모님 잘 모시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놀란 언니가 부랴부랴 동생을 찾는 사이 참변이 일어났다. 훔쳤다고 의심받은 그 가방은 30cm 정도 크기의 값싼 천가방이었다. ㄱ양은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유양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ㄱ양을 비롯한 유양의  친구들이 받은 충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죽은 유양의 저주는 인터넷을 타고 부활했다. 유양의 사연을 억울하게 여기던 사촌 친척이 6월10일 인터넷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유서를 스캔해 올린 것이다. 홈페이지를 본 누리꾼들은 격분했다. 유양의 이름으로 등록된 이 홈페이지는 하루 최소 3백명 이상이 글을 남기는  유명 사이트가 되었다.

친구 ㄱ양을 포함해 그날 유양을 범인으로 몬 ㅅ고등학교 친구 7명에게 ‘7공주’라는 별명이 붙었고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다. ‘7공주’ 전원의 이름이 공개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구했는지 얼굴 사진도 모두 인터넷에 떠돌게 되었다. “평생 저주 속에서 살아라”(서덕남)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붙입시다”(조우정)는 등 격한 말이 올라왔다.

사건이 난 인천의 ㅅ고등학교 학생부장은 “관련된 7명은 모두 6월11일부터 등교정지 처분을 당했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누군가가 상처를 입으면 또 어떤 비극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7명 가운데에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그 아이들이 다시 ㅅ고등학교에 나오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넷카시즘의 바람이 거세다. 넷카시즘은 인터넷과 메카시즘의 합성어로 인터넷에 부는 마녀 사냥 열풍을 뜻한다. 다수의 누리꾼들이 특정 개인을 사회의 공적으로 삼고 매장해 버리는 현상이, 마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분 매카시 선풍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누리꾼의 응징=직접 민주주의 실현?

   
  인천ㅅ고등학교 여학생 자살 사건이 있은 후, 누리꾼들은 여학생을 자살로 몰고간 주변 친구들의 신상 정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6월 둘째 주 인터넷 세상을 달군 개똥녀 파문도 넷카시즘의 대표적 사례였다. 한 여성이 지하철 2호선에 애완견을 동반하고 승차했다. 그런데 애완견이 객실 바닥에 변을 배설했고, 주인 여성은 변을 치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도망쳤다. 한 시민이 그녀가 앉아 있던 모습을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개똥녀’ 추적이 시작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똥녀’는 인터넷 인기 검색어 1위에 꼽혔다. 모자이크되지 않은 개똥녀의 사진이 범람했고,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개똥녀 소속 대학, 학과, 실명 등이 공개되었다. 그보다 두 달 전인 지난 3월30일 발생한 서울대 도서관 폭행 사건(상자 기사 참조)도 넷카시즘의 전형을 따른 촌극이었다. 

서울대 재학생인 김전익씨(가명, 인문대학)는 이 넷카시즘 열풍을 주도하는 공격적 네티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울대 고학번으로서 인터넷 서핑에 능숙한 그는 솜씨 있는 ‘마녀 사냥꾼’이다. 서울대 도서관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추적에 나선지 채 2시간도 되지 않아 가해자 홈페이지를 찾아냈다. 가해자 학생의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김씨는 “3월20일 밤 폭력 피해자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라고 충고했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맞았다는 사실은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 그 때 우리가, 혹은 내가 사진을 공개해 압박하지 않았다면 그 범인은 지금도 유유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마녀 사냥꾼들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논리는 ‘정의 실현’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때 누리꾼들은 집단 강간범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사법 절차를 비난하며 강간 가해자들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문화 평론가 진중권씨(중앙대 겸임 교수)는 “근대 시민은 복수를 실현할 권리를 국가에 이양했다.

그러나 이 이양된 처벌의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누리꾼들의 집단 행동은 근대 사법제도의 구멍을 보완하는 요소이며 직접적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씨는 “문제는 지금 누리꾼들의 응징 대상이 대부분 힘 없는 시민이라는 점이다. 정의감과 원시적인 복수심은 구별되어야 한다.

또 인터넷 문화는 복제의 문화이다 보니 사실을 확인하기가 너무 힘든 문제도 있다”라고 넷카시즘을 비판했다.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국가가 독점적으로 행사했던 처벌권이 개인에게 넘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사적 처벌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부정하기 이전에 사적 처벌 자체를 연구 분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유언비어는 인터넷 마녀 사냥의 가장 큰 맹점이다. 개똥녀 파문의 경우, 실제 그날 지하철 객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가 없다. 익명의 목격자들만이 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ㅅ고 ‘7공주 죽이기’ 역시 죽은 이의 유서 외에는 당시 정황을 설명할 근거가 부족하다.

서울대 도서관 폭력 사건의 경우 이미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를 마친 뒤에도 가해자 신상 공개가 이어져 ‘정의 실현’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대의 ‘마녀 사냥꾼’ 김전익씨는 “솔직히 사냥을 하다 보면 그 자체에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개똥녀’나 ‘7공주’ 파문이 생기면 별 고민 없이 당사자 신원 추적에 나선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마녀 사냥이 횡행하게 된 이유중 하나는 누리꾼의 ‘수사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검색 엔진 기능이 향상되고 싸이월드가 널리 보급되면서 불특정 개인의 신상 정보를 얻기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상대의 인터넷 아이디 하나만 알면 구글(google)이나 네이버(naver)를 통해 그 사람의 활동 반경을 알 수 있다고 한다.
P2P 프로그램도 넷카시즘을 돕는 ‘고마운’ 수단이다. 김전익씨는 “그냥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면 명예훼손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P2P 프로그램에 올려놓으면 최초 유포자를 찾기가 거의 힘들다. 도서관 폭행 사건 때 ’서울대김OO.zip' 이라는 가해자 사진 파일 묶음을 P2P 프로그램 ‘당나귀’를 이용해 퍼뜨렸다.

그리고는 게시판에 가서 ‘당나귀에 가면 파일 있던데요’라는 식으로 홍보했다”라고 유포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의 원 소유주에게는 원수 같은 행위였다. 정작 남의 사생활을 캐는 김전익씨 자신은 싸이월드에 자기 사진을 한 장도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싸이월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  권창현 부장은 “요즘 싸이월드를 무대로 한 사회 문제가 많아 곤혹스럽다. 그만큼 싸이월드가 대중화했다. 최근 싸이월드는 사생활 보호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사진첩에 수록된 사진을 아무나 볼 수 없게 하는 기능, 이름과 나이 정보로 내 홈피를 찾을 수 없게 하는 기능 등을 잘 활용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6월6일 숨진 고 유진희양이 남긴 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사람 병신 만들고 잘사나 보자. 억울하게 한 사람 죽이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지 두고보자.’  넷카시즘의 희생양이 된 ‘사회적 마녀’들이 자신을 죽인 ‘사냥꾼’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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