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1318 교양문고 5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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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구입하고 나서 ‘1318 교양 문고’라는 딱지를 보고 조금은 움찔 했다. 나이 좀 먹었다고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읽는 건 맞지 않다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너무나 평범한 내용이거나 흥미거리 위주로 되어 있는 책이 아닐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교과서 역사, 잘 팔릴 것 같은 달콤한 사탕 역사, 재탕 삼탕 반복적으로 같은 말만 하는 무미건조한 역사책들… 주위에 지뢰 같은 역사 책들이 여기 저기에 널려 있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주경철표 역사책은 알차고, 쉽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구기에 아주 좋다. 1318 교양문고라는 딱지는 없어도 될 만큼 성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구성을 살펴 본다면, 역사의 큰 흐름(고대 문명, 중세, 근대) 속에서 미시사, 풍속사, 무역, 문명, 전쟁사 등의 다양한 주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는 형식을 띠는데 하나 같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키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은 기존의 ‘교과서’들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간과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집트 문명과 문화를 이야기 하면서 피라미드가 최악의 전제정치의 산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강제 노역이 아니며, 농한기에만 나와서 식량을 지원 받으면서 행한 일종의 ‘영세민 취로 사업’이었다고 한다. 다른 예를 든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영웅적인 면을 벗기고, 병적이고 치사한 면을 보여주고, 테세우스 신화에 담긴 아테네의 독자성을 드러낸다던가, 모짜르트와 사드의 작품에서 프랑스 혁명의 냄새를 맡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유럽 중산층의 문명을 반성하고 세계를 정복해 나가는 정신적 사고 실험이었음을 설명하는 등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각 단락에 도움을 준 참고서들이 책 뒤에 정리 되어 있는데, 사실 잘 살펴 보면 각 단락은 이 책들의 요약본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생활의 역사’, ‘고양이 대학살’, ‘길가메시 서사시’, ‘총균쇠’ 등 익히 들어본 책부터 외국 원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역사책들의 맛보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저자는 학자로써의 학문적 열의, 배움에 대한 자세가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교수인 저자도 누군가의 연구가 담긴 책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자기화 하는 노력(당연히 그래야 하는)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을 본 자가 맛을 안다고, 청소년들에게 역사의 맛을 보여주려는 저자는 누구보다도 진짜 맛을 알고 그것을 나누어 주려는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역사의 중요성, 역사에 대한 흥미를 다양한 서적들의 액기스를 뽑아내어 대중에게 선사하는 이 책은,
역사 전체, 또는 세부사항을 읽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문화라는 사실.
문화로 역사를 읽으면 흐름을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기에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사고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역사가 인류의 축적된 경험이기에 그것을 미래로 향한 인류의 지혜로 담아내려는 학자의 배려와 의지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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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다

진보의 도그마에도 도전하는 리영희를 ‘원로 찬양’으로 박제해버린 진보 진영…국보법 폐지 등에 생산적 대응은 포기하고 ‘지당하신 원론’만 고집해야 하는가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젠가 인터넷에서 자신을 좌파로 여기는 한 논객이 우파는 민중을 “피동적, 수동적 존재로 보면서 미리 한계를 정하는” 반면, 좌파는 민중을 “능동적, 적극적 존재로 보고 그들이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보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걸 보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그 주장의 고색창연(古色蒼然)과 더불어 그런 이분법이 여전히 개혁·진보 진영 일각에서 꽤 먹혀들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좌파와 우파의 ‘민중 상업화’

사실을 말하자면 ‘민중 예찬’은 일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조·중·동의 지면에서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민중 상업화’다. 우파가 주로 돈벌이 용도로 ‘민중 상업화’를 써먹는다면, 좌파는 주로 헤게모니 투쟁의 용도로 ‘민중 상업화’를 동원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중 예찬’은 늘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게임이다.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오면 ‘민중은 위대’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반대편의 음모’ 때문에 그렇다는 식의 이중잣대가 만연해 있다.

특히 일부 개혁·진보파의 ‘민중 예찬’은 편의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나 ‘이건희 신드롬’을 정직하게, 아니 총체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무지몽매(無知蒙昧)의 비극으로 보면서 그것마저도 수구 언론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가도 그 무지몽매한 대중이 선거판에서 뭘 좀 보여주면 헷가닥 ‘민중 예찬론’으로 돌아선다. 두개의 전혀 다른 사건에 대한 상호 연관성은 규명되지 않는다.


△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도 진보 진영은 원칙에만 집착했다. 2004년 12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여당 의원들의 국회 농성.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민중 예찬론’에 경도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편의 입장을 보여온 희귀한 진보 지식인 중 한명으로 리영희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나는 리영희에 대한 개혁·진보 진영의 상투적인 평가와 예찬에 질려 있다. 그의 과거 투쟁을 높이 평가하면서 “내 사상의 은사”라는 식의 회고담 일변도다. 나는 그런 찬사에서 오히려 ‘리영희의 종언’을 암시하는 오만을 읽는다.

내가 보는 리영희의 장점은 그게 아니다. 리영희가 ‘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를 인정한 1991년 1·26 사건의 의미를 평가하지 않고선 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라는 주장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때 리영희를 향해 비판을 날렸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나의 논점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지적 성실성’이다. 1·26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리영희는 76살의 고령에도 ‘도그마와의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사상적 제자들은 리영희를 군사독재 정권의 도그마와 싸운 투사로만 기억하면서 그 기억을 박제해버렸으며, 그가 지금 정반대편의 도그마에 도전하고 있다는 건 외면하고 있지만 말이다.

2005년 3월 리영희는 회고록 <대화> 출간을 계기로 오랜만에 많은 발언을 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강경파의 이분법을 비판했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도 전혀 그답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의석이 겨우 절반을 넘을까 말까 한데 무리수를 쓸 수가 있나. 시간과 대세를 살펴가면서, 여유 있게 너그럽게 힘을 운영해야지. …이제는 군부독재 때처럼 무리수를 쓰면서 전면 투쟁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에요.”

리영희는 <대화>에서 ‘민족적 유전자론’까지 제기했다. 그는 한국 현대사를 지배한 분열에 대한 환멸을 이야기하면서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 등과 같은 퇴행적 행태의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민족적 유전자’라는 과격한 용어까지 써가면서 리영희가 말하고자 하는 건 ‘민족적 면책론’에 대한 거부다.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에 대해 외부에서 작용하는 의지나 흉계에다가 일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리영희는 대담자 임헌영에게 “이제 21세기로 넘어왔으니 우리 민족이 자기만족에 도취되거나 우리 역사가 겪은 실패들을 외세에만 돌리지 말고, 뼈아픈 자기비판을 통해서, 노신이나 프란츠 파농이 그들 동포에게 요구했던 그런 민족적 각성을 통해서,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지혜를 갖게 되기를 바래. 이러한 정신 자세야말로 진정한 겨레 사랑이고 민족적 긍지가 아닐까 싶은데. 어때요, 안 그래요?”라고 동의를 구했다.

<한겨레> 사설들은 비겁했다


△ 리영희씨는 '도그마와의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사상적 제자들은 리영희씨를 군사독재 정권의 도그마와 싸운 투사로만 기억하면서 그를 박제해버렸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임헌영은 일부 공감을 표하면서도 “오랜 역사 속에서 결국 나라를 지킨 것은 지도층이 아니라 국민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층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국민대중이야말로 나라를 염려한 것 같습니다. 민족적 허무주의로 흘러버리면 너무 서글퍼지는데요”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리영희는 “나는 그것이 어떻게 ‘민족허무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구만”이라고 답하면서 “나라를 판 것은 지도층이나 지배계층이고 나라를 염려하고 지킨 것은 대중이라는 관점도 조금 문제야. 그렇게 단순명료하게 이분법적으로 단정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리영희의 이런 주장들이 다 옳다는 게 아니다. 내가 놀랍게 생각한 건 리영희의 <고백> 출간과 함께 양산된 많은 기사들이 위와 같은 주장은 전혀 거론하지 않으면서 오직 ‘원로에 대한 찬양’에 몰두하는 걸로만 끝났다는 사실이다. 물론 진보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기에 그건 분명히 마스터베이션이었다. ‘지적 불성실’의 극치였다. 이런 마스터베이션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여러 차례 사설로 촉구한 <한겨레> 지면에서도 나타났다. <한겨레> 사설들은 모두 백번 옳은 말이었지만 좀 비겁했다. 논점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당시 개혁·진보 진영에서 본 사실상의 논점은 ‘물리적 강행론’ 여부였다. 경호권을 발동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국회의사당에서 끌어내고 표결을 강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좌절되자 국회에 ‘사망선고’를 내릴 정도로 급변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열린우리당 의원 유시민은 그 이전에 “우리당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끌어내면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그럴 경우 탄핵 때 같은 후폭풍을 맞아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그 ‘정치적 치명상’을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는 단 한번도 그 점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 당위성만을 계속 노래 부르면서 핏대 올리기에만 바빴다. ‘정치적 치명상’을 입더라도 강행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거나, 아니면 ‘정치적 치명상’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을 내놓을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한겨레>가 진정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열망했다면 리영희를 비롯해 개혁·진보 진영에서 나온 여러 건의 ‘물리적 강행 반대론’에 대한 반론을 제시했어야 옳았다. 그게 바로 개혁·진보 언론이 할 일이었다.

나는 <한겨레>가 그런 적극 대응을 포기하고 ‘지당하신 원론’만 역설했던 건 개혁·진보 진영의 ‘아비투스’(습속)로 자리잡은 마스터베이션 기질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 기질은 원론과 상식에만 투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원론과 상식은 반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승리한다. 그러나 그건 실속 없는 승리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는 원론과 상식만으로 대처하기엔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만드는 ‘상식의 폭력’

상식이 잘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상식을 무기 삼아 싸우는 건 필요한 일이거니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매사에 상식을 전방위적 무기로 사용하면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아무리 상식이 잘 통용되지 않는 사회라도 상식만으론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일들이 있는 법인데, 그것마저 해오던 습관대로 상식의 칼로 단순명쾌하게 재단하려 한다면 그건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러한 ‘상식의 폭력’ 또는 ‘단순명쾌의 폭력’은 우리의 일상적인 현실이 되고 말았다. ‘상식의 폭력’을 행사하는 쪽과 ‘상식의 폭력’이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끔 끊임없이 ‘몰상식’을 생산해내는 쪽 중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고나 할까.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업보치곤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권 문제와 관련해 몰상식이 판을 쳤던 사회에선 ‘민주·개혁·진보’는 ‘용기’ 하나만으로 족했다. ‘머리’는 ‘잔머리’로 빠지기 십상이었기 때문에 ‘가슴’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주요 행동강령이 저항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할 필요도 없었고, 공부도 오직 저항의 방법론이면 족했다.

87년 6월항쟁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시절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개혁·진보’도 공부해야 하고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쪽으로의 진화가 이뤄지는 듯했지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대중주의는 그 흐름을 역류시키고 말았다.

국가적 차원의 상식이 위협받는 비상 상황에서 인터넷의 상식 수호 능력이 위대했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서의 위대성을 면죄부로 삼아 평상시에 인터넷의 그늘을 외면해도 괜찮은 걸까?


△ 인터넷의 대중주의는 비상 상황에서 위력을 발휘하지만 '상식의폭력'을 양산한다. 탄핵반대 시위. (사진/ 류우종 기자)

인터넷은 디지털식 양자택일을 선호한다. 인터넷의 ‘과잉·편중 참여’와 ‘속도의 경제’는 중간적 입장을 배제한다. 인터넷은 상식으로 무장한 수많은 신진 투사들을 양산해냈으며, 이들은 ‘상식의 폭력’을 대량생산했다. 인터넷에 참여하는 가공할 머리 수에 집착하는 신진 기업가들은 온갖 언어의 성찬으로 인터넷 찬가를 불러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자본의 인터넷 장악과 보수파의 인터넷 적응이 가속화되면서 인터넷의 색깔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음에도 신진 기업가들은 인터넷 찬가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노무현 정권이 헤매는 이유도 ‘상식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 노 정권은 원론과 상식에만 투철할 뿐 그 다음이 없거나 약하다. 최소한의 원론과 상식마저 유린당했던 과거 역사를 생각해보면 원론과 상식에 투철한 건 미덕이지만, 문제는 ‘원론·상식파’가 이젠 저항세력이 아니라 국정운영을 책임진 세력이 되었다는 데 있다.

과거 저항의 상대는 군사독재 정권과 수구세력이었다. 비극은 지금도 상대를 오직 그들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이 더 무서운 상대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여론 악화는 무조건 수구 언론 탓으로 돌려진다. 여론을 고려한 대안을 더러운 타협이나 굴복으로 여기는 정서도 팽배해 있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 사태와 4·15 총선 때 쏟아진 ‘민중 예찬론’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개혁·진보’가 집단 정체성을 확인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는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라면, 개혁·진보 진영 내부의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을 금기시하는 지금의 풍토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간 나온 논쟁과 토론은 모두 ‘선명한 저항’ 또는 내부 헤게모니 투쟁과 관련된 것이었다. 원론·상식과 각론·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괴리는 아예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걸 섣불리 건드리려고 했다간 원론·상식파의 매를 맞기 십상이다. 내부의 문제는 스스로 곪아서 터질 때까지 내버려둔다는 게 사실상 철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개혁·진보파는 언제까지 이런 ‘스스로 곪아터지기’ 게임을 방치할 셈인가? 자신의 신념에만 몰두하는 것에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자. ‘대한민국 경영’을 꿈꾸며 여론을 이끌어가기 위해 애쓰는 싱크탱크들이 크게 늘었다. 이들 중 개혁·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인터넷에 열혈 투사 중심으로 차려진 ‘중구난방 싱크탱크’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수백만 인구가 재벌 경제연구소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안달하는 형국이다. 이건 두렵게 생각해야 할 사실이다. 모든 ‘실질’은 넘겨주고 ‘명분’으로 마스터베이션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개혁·진보의 싱크탱크는 있는가

개혁·진보의 싱크탱크가 없으니 <한겨레>에게라도 물어보자. 개혁·진보 진영 내부의 문제가 조·중·동의 과장·왜곡 보도로 고발되기 이전에 <한겨레>가 스스로 문제를 미리 찾아내 대응하는 ‘포지티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건 불가능한가? 개혁·진보의 원론·상식에서 이탈했을 때에 한해서만 노 정권을 비판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언론의 본분이라고 보는 건가? 이젠 자신을 저항자로 낮추는 과도한 겸손에서 벗어나 주도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세상을 요리해보겠다는 건방을 떨어볼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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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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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재미, 아름다움만을 보여 줄 것 같은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맛’에는 생소한 ‘맛’이 담겨 있다. 사기꾼, 도박, 불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충동 살인, 강박증. ‘의도하지 않은’ 자살, ‘찝찔한’ 섹스 등 그 주제를 보면 스릴러, 범죄, 성인 소설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동화작가도 이럴 수 있다!’ 라는 것을 거칠게 주장하듯이 짧디 짧은 각 단편들은 매우 흥미로운 전개 방식을 보인다.
잔잔히 시작하여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마지막에 확 뒤집어 엎어 버리는 식인데, 수많은 매체를 통하여 연마해 온 ‘반전예측 신공’은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분명히 다가올 뒤집힘임을 알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도 뒤집히게 되니 너무나 즐겁다. 그것은 독서가 하나의 놀이로 승화되는 순간의 즐거움이다.
또한 독자에게 머리싸움을 걸듯이 전개되는 스토리는 흡입력 있고, 완결성이 정교하여 이야기의 즐거움, 호기심이 넘치게 한다. 글이 짧을수록 끝맺음이 쉽지가 않은데, 이 10편의 단편들은 놀라운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작가의 뛰어난 글재주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마치 어린이들의 동화를 성인 버전으로 둔갑시킨 것처럼 ‘또 해줘’, ‘다음에 어떻게 되는데?’ 하면서 조르게 된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재미’는 누구라도 자신의 상상 속으로 납치 할 수 있다. 납치범 로알드 달은 그런 자신감을 이 책에서 보여주었다.
‘성인들도 나의 상상 속에서 마음껏 한번 놀아 봐!’.

놀이는 즐겁다. 이야기도 즐겁다. 그러나 약간은 퇴폐적이고, 약간은 잔인하지만, 놓치지 않는 것은 인간이 가진 모습들이란 점이다. 충분한 개연성, 그러나 너무나 극단적인 내기, 살인 뒤의 미소라는 악마성 그러한 극단성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동물들은 목숨을 내놓고 영역싸움을 하지 않는다. 재미로 죽이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심리를 꿰뚫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기는 인간의 기만성의 한 면이다. 저자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본성을 그려냈다. 겉과 속이 다르듯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폭풍같이 몰아친다. 폭풍 후의 고요함은 엄숙하다. 경험의 기억이 잔존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 소설에서는 고요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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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naver.com/yourzinny/140012050096

 

 

 

National Geographic에서 출간된 Photography Field Guide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것 중 Tip 부분만을 모아서 번역한 글입니다. http://onlynikon.com 에서 옮기고, 번역상 어색한 부분을 약간 고쳤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들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nationalgeographic.com/photography/index.html



Bob Krist (
Danish Light, July/August 1998)

Pay attention to the quality of light and not just the subject.
좋은 빛을 찍는 겁니다. 좋은 대상물이 아니예요

Shoot in warm light, around dawn or dusk.
해가 있을 때 찍으세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입니다
.
(...
새벽이나 해질녘때 빛이 난색이 날 때 찍으세요. ...가 더 정확한 뜻으로된

번역이라는 꼬리말도 있었어요
^^) 

Always take a look at the edges of the view field.
언제나 시야의 가장자리()를 주목하세요


Shoot plenty of film.
셔터누르는 걸 아끼지 마세요


Include a dominant element in the image.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마세요


Always carry a polarizing filter and tripod with you.
편광필터와 삼각대를 챙기세요
.

 

 

 

Gail Mooney (Americas Hometown, July/August 1998) 
Be an observer. Be patient and watch life as it happens. then be ready to capture the right moments as they present themselves.
삶을 관찰하세요. 기다리며 지켜보세요.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사진으로 담으세요

Don
t bog yourself down with all the latest gadgets. The real art is being able to communicate and to understand what the message is.
최신의 장비로 당신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지 마세요. 진정한 사진(예술)은 그 것이 말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A lot of amateurs make the same mistakes: not thinking about what they
re shooting;
not considering the light; staying on the outside and not getting in where the action is;
using a flash in a big interior where it won
t do any good.
많은 아마튜어는 공통된 실수를 하곤 합니다. 뭘 찍고 있는지 생각치 않고, 빛을 무시하며, 먼가 사진찍기 좋은 것에서 멀리 있으며, 아주 큰 실내에서 플래쉬를 도움도 안 되는 것을 사용합니다

Never leave home without lots of extra batteries, a small flashlight, a compass, a magnifier, and a weather radio.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충분한 건전지, 작은 손전등, 나침반, 쌍안경과 작은 라디오를 챙기세요
.

 

 

 

Jim Richardson (Sojourn on a Southern Highway, November/December 1998) 
Shoot more pictures and throw away the bad ones. You
ll try more things: angles, exposures, and so on. The one way to get the photo right is to try lots of different approaches.
많이 찍고 그중에서 고르세요. 구도와 노출값등을 바꾸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세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은 같은 걸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The human eye sees differently than a camera, so try to imagine how that image will look in a photograph.
우리가 보는대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사진으로 찍혔을 때를 머릿속으로 그리세요


Don
t just point the camera at the scene. Try to create a sense of depth and put things in the image for scale.
눈에 보이는대로 찍는 것만 하지말고 풍경을 사진에 적절하게 늘어놓는 자기만의 감을 만드세요

Get up early and stay out late.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세요


Force yourself to
think little and to think big by doing close-ups and long shots.
You
ll gain a lot in the process of looking for details and grand-scale images.
작은 피사체는 "작게 생각하고" 너른 풍경은 "크게 생각하세요

Try carrying a right-angle viewfinder and put the camera on the ground or up high on a ledge and experiment.
적절한 앵글파인더를 써서 사진기의 보는 눈높이를 바꿔보세요


Meet the people you are going to photograph and establish a rapport before you begin shooting.
사진 찍을 사람과 먼저 친해지세요


Use wide-angle lenses for close-ups, because it
s easier to create a sense of perspective.
다가가서 찍을 때는 더 광각의 렌즈를 쓰세요. 원근감을 만들기가 더 쉽습니다

Carry a compact folding reflector to illuminate objects in the foreground.
접는 반사판을 가지고 대상물의 앞에 낮은 곳에 두면 빛이 더 삽니다


When you are traveling, go to a souvenir shop and pick up a bunch of postcards for the place you
re visiting. It will let you see how others see each place so you can try to approach it more creatively. Invariably, you will also find something that you didnt know was there!
여행에서는 관광상품 가게에서 그 지방의 엽서들을 보면 다른 이들이 보는 방법을 볼 수 있고 당신은 더 창조적인 사진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지방에 있는지 몰랐던 새로운 장소나 볼거리를 찾을 겁니다.




Mark Thiessen (
Garden of Dreams, January/February 1998)

Try to get close enough to your subject to capture the important details.
한발 더 다가가세요. 아니 뚜벅뚜벅 걸어가세요. 찍고 싶은 구도에서 더 다가가세요

Experiment with different types of film in different lighting conditions. For example, try using tungsten film outdoors, perhaps using a fill-flash with a daylight-to-tungsten gel taped over the head.
여러 상황에서 여러 필름을 여러 빛의 상황으로 실험하세요


Try using a fanny pack rather than a camera bag. It is not only lighter but safer while traveling in foreign countries.
허리쌕을 이용하세요. 가볍기도 하거니와 여행지에서 더 안전해요. 도난을 막아요


Take a tripod, which allows you to use slower speeds and longer lenses during twilight.
삼각대를 쓰세요, 더 낮은 스피드와 망원렌즈를 쓸 수 있도록




Bill Luster (
Brown County, July/August 1997)

Be as basic as you can in your equipment. Try to use just a camera, a couple of lenses, and not much more. It keeps you thinking about what youre shooting.
단촐(!)하게 꾸려서 다니세요. 사진기 한개에 렌즈 두어 알에 몇가지 악세사리만 챙기세요. 촬영에 몰두할수 있게 도와줄거예요

Try to include people in every picture you shoot.
사람이 들어가야 사진이 재밌어 집니다


Make sure you
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 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 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 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 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 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튼튼한 삼각대를 항상 휴대하고,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 떠나지 마세요. 먼지로부터 카메라를 보호해줍니다. 또한 촬영기록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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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2002년 8월호



매춘여성 ‘인권’을 위한 최선의 대안은 ‘합법화’이다,최병천



1.매매춘 합법화는 유럽 ‘좌파’의 진보적 정책


“독일 루르지방의 보쿰에 거주하는 안나(32)의 생계수단은 몸 파는 일이다. 지난 20일 매춘을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하는 법률안이 분데스라트(상원)를 통과하자마자 안나는 재빨리 독일 노총(DGB)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을 신청한 이후 독일 최초의 매춘업 종사 노조원이 됐다.… 매춘부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법이 새해 1일부터 발효되면 매춘 종사 여성은 합법적인 직업여성으로서 실업보험을 포함한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받게 된다. 고객을 받지 않을 권리가 주어지고 노동임금(화대)을 떼이면 소송을 통해 강제로 징수할 수 있게 된다. 실직 때엔 실업수당을 받게 되고 연금보험 의무 가입으로 은퇴 후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새 법안은 매춘부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 매춘 노조가 결성되면 화대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할 수 있게 돼 최초의 매춘여성 파업사태가 독일에서 벌어질 전망이다.”1)




독일 행정법원은 2000년 12월 “매매춘은 더 이상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로 볼 수 없다”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매매춘의 전면적 합법화를 선언하였다. 물론 독일은 합법화 이전에도 호객행위와 광고행위만을 경범죄 수준에서 처벌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매매춘 합법화는 독일 좌파정당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민당과 녹색당2)의 ‘적녹연정’ 선거공약이었다는 점이다. 2000년 12월 매매춘 합법화 판결이 나오자 환영입장과 우려입장이 나란히 발표되었다. 매매춘 합법화를 환영한 곳은 노동단체, 여성변호사협회, 홈볼트 법과대학, 뮌스터 법과대학, 그리고 여성부 장관이었다. 반면 교회를 중심으로 개신교와 카톨릭 쪽은 매춘여성의 인권 보장을 전제로 하면서도 우려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매춘여성들의 자주적 대중조직인 ‘히드라’가 합법화를 환영했음은 물론이다.3)


  그간 범죄자 취급받으며 최소한의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던 매춘여성은 합법화에 따라 이제 어엿한 ‘섹스서비스 노동자’가 되어서 노동3권의 보장과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춘여성들은 이제 우리 나라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독일노총(DGB)의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2. 『매매춘과 페미니즘』-여성학자에 의한 ‘국내 최초의’ 매매춘 합법화 주장


『매매춘과 페미니즘』5)이라는 책이 가지는 의미 중 하나는, 저자인 이성숙이 영국에서 여성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여성민우회 국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여성학 전공자중에서, 그리고 여성단체 활동가 중에서 ‘최초로’ 매매춘 합법화가 주장되었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주목할만하다. 그간 국내의 논의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과 종교단체들이 ‘금지주의’를 주장하고 김강자 총경이 특정지역의 합법화(규제주의)를 주장했을 뿐 매매춘 합법화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의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매매춘 금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오히려 소수이며, 민주주의가 발달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합법화를 채택하거나 최소한 매춘행위를 이유로 행위 당사자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화두는 매춘여성의 ‘인권’이다. 저자는 매춘여성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매매춘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들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매매춘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매춘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규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저자는 매매춘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일일이 반박한다.


  ▲섹스는 부부사이에서만, 그것도 쾌락을 위해서는 안되고 재생산(출산)을 위해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덕적 페미니스트의 견해


  ▲매춘여성은 불쌍한 존재이기에 반드시 ‘보호’가 필요하다는 권위주의적 온정주의 페미니스트의 견해


  ▲매춘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견해


  ▲매매춘은 남녀불평등의 상징이며 매춘여성은 강제된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 이론(급진주의)


  ▲친밀함에 기반한 섹스‘만’ 인정되어야 한다는 감상주의적 페미니스트 매매춘 이론


  ▲섹스는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해야 하며 상업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금욕주의 페미니스트의 매매춘 이론.


  위와 같은 주장들에 대해서 저자의 반박논지를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만 짚고 넘어가자. 매매춘은 “금전적 거래를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성행위”쯤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섹스에 있어서 금전적 거래가 문제라면 결혼제도는 과연 매매춘과 뭐가 다른지 의문이다. 오늘날 ‘중매시장’과 ‘결혼시장’에서 남성들은 섹시하고 예쁜 여성들을 선호하고, 여성들은 서울대 나오고 소득이 짭짤한 ‘士’자 붙는 직업의 남성들을 선호한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돈과 섹스의 이해타산적 교환에 있어서 결혼계약이라는 일생일대의 ‘큰 거래’는 <사랑>과 <친밀함>에 의한 거래(?)로 볼 수 있고, 그때그때 계약을 체결하는 매매춘은 법적으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했던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제도와 매매춘이 서로 차이가 없으며, 심지어 결혼여성이 매춘여성보다 더 열등하다고 주장한다. 18세기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던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제2의 性』이라는 책으로 익히 알려진 시몬느 드 보봐르, 19세기말 혁명적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엠마 골드만, 러시아의 전설적인 여성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 이들의 견해는 한결같다. 심지어 F.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부일처제 결혼여성-인용자) 이 아내가 보통의 매춘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 임금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을 도급제로 팔 듯이 자기의 육체를 도급제로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육체를 영영 노예로 팔아 버린다는 것뿐이다.”7)



결혼제도는 발생의 시점부터 ‘정략결혼’을 그 본질로 하였다. 씨족과 씨족이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를 교환한 것이 결혼제도의 기원이다.8)


인류 역사 내내 결혼제도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수장이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간통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9)


  이러한 결혼제도의 본질은 오늘날도 극히 일부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우리는 그 극명한 사례들을 ‘결혼시장’과 ‘중매시장’에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결혼제도하의 섹스는 고상하고 로맨틱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한다는 환상은 조작된 이미지이며 매매춘보다 딱히 더 나은 점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결혼제도는 (공식적으로는) ‘평생’ 한 사람하고 섹스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결혼여성과 매춘여성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은 결혼여성을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매춘여성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매춘여성은 육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임금노동자와 똑같다는 맑스와 엥겔스의 100년 전 탁견은 이제 유럽에서 다시 부활했다. 여기에는 1960년대 섹스혁명과 성해방을 부르짖었던 신좌파들의 공이 컸다. 반면 남한의 경우 자칭 진보적인 남성과 여성들조차도 성보수주의에 함몰되어 결혼제도의 부조리에는 침묵하면서 매춘여성과 매매춘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이율배반적인 편견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는 7월 21일 ‘성매매 방지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그 자리에 참가한 여성위원회 소속의 H여성당원과 C여성당원은 매춘여성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필자는 순간 이 여성위원이 한나라당 여성위원인지,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인지 혼돈스러웠지만 아무튼 그렇다 치고, 그중 C여성당원은 매매춘의 합법화는 ‘장기매매’의 합법화와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답변 드린다. 매춘여성은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지 신체의 일부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매춘여성이 하루 밤 10명, 20명의 손님을 받을 때마다 신장 하나 내주고, 심장 떼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3. 매매춘 ‘금지주의’는 매춘여성의 ‘인권’과 양립할 수 없다!!



오늘날 매매춘에 관한 사회적 담론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매춘여성의 부류가 두 부류이기 때문이다. 감금과 인신매매 등으로 인한 노예제적 매춘여성이 있고 일반적인 노동자들처럼, 혹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처럼 ‘돈’을 벌어보고자 선택하는 생계형(자발적) 매춘여성10)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금·협박·폭력·강간·살인·인신매매를 합법화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노예제적 매매춘은 근절의 대상이다. 문제는 생계형(자발적) 매춘여성이다. 생계형(자발적) 매춘여성을 감옥에 보내야 하고, 벌금형을 물리고,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심문을 하고, 강제적인 보호처분을 하는 것은 ‘인권’에 과연 합당한 것인지 우리는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11)


<이론과 실천> 7월호에서 앞의 이성숙 책을 비판하며 최영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매매춘이 인권의 문제와 양립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지, 매매춘이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논란이 아니다”라고. 그러나, 이러한 문제설정은 심각한 착각이거나 기만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매매춘 금지주의는 매춘여성의 인권과 양립 불가능하다. 매춘여성의 인권은 오직 매매춘의 합법화가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 왜 그런지 <표-2>를 살펴보면 명확하다.


  매매춘 금지주의를 적용하는 나라일수록 노예제적 매매춘도 성행하며 노동조건도 더욱 열악해질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매춘여성들이 각종 횡포에 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연이 입법 청원한 「성매매방지법」처럼 생계형(자발적)매춘여성에 대한 처벌조항이 버젓이 살아있는 한, 매춘여성은 자신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법적 호소를 할 수 없다. 여연은 생계형(자발적) 매춘여성에 대한 법적 처벌권을 자신들이 버젓이 요구하고 있으면서 ‘웬 자발적 매춘?’이냐는 뻔뻔한 소리를 중단하고, 매춘여성들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비범죄화해야 한다.


  또한 <표-2>를 보면 명확하듯이, 매춘여성의 ‘인권’을 기준으로 했을 때 매매춘 합법화가 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인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문제는 매춘여성의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기보다는 매매춘은 ‘근절’되어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이다.



4. ‘성 노동자’라는 존엄한 이름을 돌려주자


우리 나라에 ‘성매매’라는 말을 처음으로 고안했으며 그간 매매춘은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 주장하는 석사 학위 논문을 내기도 했던 원미혜를 비롯한 일군의 매춘지역 현장활동가들이 매춘여성을 직접 인터뷰한 경험담을 모아서 최근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막달레나의 집 엮음, 삼인)이라는 책을 냈다. 원미혜는 이 책에 수록된 「늑대를 타고 달리는 여자들과 함께」라는 글을 통해서 매매춘은 근절되어야 할 ‘악’이라고 생각했던 초기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원미혜의 정직하고 진솔한 고백을 통해서 매매춘 ‘근절’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매춘여성의 ‘인권’이라는 가치는 양립가능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나(원미혜-인용자)12)는 그 (매춘)여성들의 경험에서 억압적 측면만을 듣고자 했었고, 그들의 기대와 자신에 대한 인식 틀은 대부분 허위라고 해석해 버리는 폭력을 저질렀다.(중략)13) 내 안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성 노동을 인정하는 것은 강간 신화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모든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결국 더 많은 여성이 성적 착취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피상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성매매와 착취는 등가물이 아니며 반드시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성매매 반대를 목적으로 구성한 논문을 쓰고 난 뒤 깊은 죄책감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사실 큰 틀에서 본다면 내가 만난 여성들의 문제는 다른 여성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이런 시각에서 다름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낙인과 취급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인터뷰한 성 산업 종사자 누구에게도 내 논문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논문을 썼을까?” 연구 과정에서의 긴밀한 상호성에도 불구하고 내 논문이야말로 연구 대상을 소외시킨 대표적인 결과물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성매매와 관련된 어떤 글도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14)


다음의 글을 하나 더 읽어보기로 하자. 이 글은 ‘갈보’라는 말만을 듣고 살던 매춘여성(들)이 우연한 기회에 참석하게 된 국제 NGO회의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 노동자’라는 말을 듣고 충격과 환희에 휩싸여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가슴 뭉클하게 보여주고 있다.



“난 그때 얼마나 비참했는지 몰라. …내가 매춘여성인 것 맞어. 맞지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응? 차라리 역 앞에서 왔다든가, 그렇게 말하면 그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먹는데 근데 경찰들이 나보고, 아침부터 갈보년들이 와서 지랄이라고. 나 그때 정말 비참했어. …연주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좀 전에 경찰서에서 당한 성희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담담하게 그저 대수로울 것 없는 일상 중의 한 토막 정도로 얘기하던 그였다. 그런 연주씨가 곧이어 ‘갈보’라는 말을 들었던 경험을 얘기할 때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30년 가까이 성을 팔아온 여성이 그깟 말 한마디에 쌓인 감정을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털어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갈보’, ‘냄비’, ‘씹창’, 오랜 세월 성매매 지역을 울타리 삼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말은 아주 익숙한 말이면서도 또한 낯선 말이다. …몸은 체념했으나 마음은 아직도 그 낱말과 생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미처 다 느끼지 못한 그들(매춘여성) 스스로의 마음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자존감일 수 있다.15)



우리 나라에서 매춘여성은 흔히 200만 명쯤으로 추산한다. 1970년대, 사회적 냉대 속에서 우리 노동계급의 딸들이 ‘공순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듯이, 오늘날 공순이보다 더 모욕적인 언어로 자기를 비하할 것을 강요당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우리가 소외시켰던 노동계급의 딸들, 매춘여성들에게도 그들 본래의 이름을 돌려주자. ‘공순이’에게 ‘노동자’라는 이름을 돌려주었듯이, ‘갈보’라는 불리는 그 여성들에게 “성 노동자”라는 이름을 돌려주자. 우리가 돌려주지 않으면, 진보진영이 그 길에 나서지 않으면 그 부끄러움을 어찌 다 감당하려고 하는가? 이제 당신이 대답할 차례이다.


주:


1)「獨, 매춘노조결성 가시화」2001년 12월 24일, <세계일보>


2) 유럽에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은 60년대 신좌파의 물결을 타고 함께 진행되었다. 그래서 녹색당은 당 간부중 여성의 비율이 60%가 넘는 등 사실상 '환경당'이자 동시에 '여성당'이라고 볼 수 있다.


3) 2001년 2월 7일, <한겨레21>(345호) - [움직이는세계] 매매춘은 서비스업?


4) 섹스노동이라는 단 하나의 차이점을 제외하고, 매춘여성이 겪는 어려움의 문제는 원리적으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와 상당히 유사하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 노동조건이 비인간적이라는 점, 사회·문화적으로 멸시받는다는 점, 그들이 처한 어려움의 대부분이 오히려 "불법화"로 인해서 발생했다는 점, 또한 그 해결방법이 "합법화"를 통한 노동3권의 보장과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의심스럽다면 매춘여성이 겪는 모든 문제점을 상기하면서 주어를 '이주 노동자'로 바꾸어보라.


5) 책의 원제는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이성숙, 책세상, 3,900원


6) 여성부, 2001, 『성매매 방지를 위한 국외 대안 사례 연구』p.26 와 신혜수의 논문 「매매춘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참조했음.


7) F.엥겔스, 1997,『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 96


8) 파울 프리샤우어, 1991, 『세계풍속사 上』, 까치, p. 26


9) F.엥겔스, 앞의 책 p.83-p.111


10) 한국여성개발원의 『윤락여성의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방안 연구』라는 1993년의 보고서를 보면 노예제적 매춘은 약 5% 내외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매춘여성들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생계형(자발적) 매춘여성으로 추정된다.


11) 여연은 입만 열면 매춘여성의 '인권'을 언급하면서 「성매매방지법」을 통해서 자발적 매춘여성에 대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비롯하여 '강제적 보호처분', 정신병자인지 확인하는 심문조항, 그리고 사형조항을 입법청원한 상태이다. 매춘여성을 감옥에 보내는 인권운동도 존재할 수 있는지 그저 황당하기만 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말> 6월호와 8월호에 실린 필자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12) 이후 괄호속 표현은 전부 인용자.


13) 이후부터 (중략)은 '....'으로 표현하고 생략한다. 


14) 원미혜, 2002, 「늑대를 타고 달리는 여자들과 함께」,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에 수록, 삼인, p.13-p.63


15) 엄상미, 2002, 「'갈보' 혹은 '성 노동자'의 인권론」, 위와 동일, p.84-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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