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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계사 ㅣ 사계절 1318 교양문고 5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구입하고 나서 ‘1318 교양 문고’라는 딱지를 보고 조금은 움찔 했다. 나이 좀 먹었다고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읽는 건 맞지 않다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너무나 평범한 내용이거나 흥미거리 위주로 되어 있는 책이 아닐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교과서 역사, 잘 팔릴 것 같은 달콤한 사탕 역사, 재탕 삼탕 반복적으로 같은 말만 하는 무미건조한 역사책들… 주위에 지뢰 같은 역사 책들이 여기 저기에 널려 있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주경철표 역사책은 알차고, 쉽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구기에 아주 좋다. 1318 교양문고라는 딱지는 없어도 될 만큼 성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구성을 살펴 본다면, 역사의 큰 흐름(고대 문명, 중세, 근대) 속에서 미시사, 풍속사, 무역, 문명, 전쟁사 등의 다양한 주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는 형식을 띠는데 하나 같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키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은 기존의 ‘교과서’들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간과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집트 문명과 문화를 이야기 하면서 피라미드가 최악의 전제정치의 산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강제 노역이 아니며, 농한기에만 나와서 식량을 지원 받으면서 행한 일종의 ‘영세민 취로 사업’이었다고 한다. 다른 예를 든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영웅적인 면을 벗기고, 병적이고 치사한 면을 보여주고, 테세우스 신화에 담긴 아테네의 독자성을 드러낸다던가, 모짜르트와 사드의 작품에서 프랑스 혁명의 냄새를 맡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작품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유럽 중산층의 문명을 반성하고 세계를 정복해 나가는 정신적 사고 실험이었음을 설명하는 등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각 단락에 도움을 준 참고서들이 책 뒤에 정리 되어 있는데, 사실 잘 살펴 보면 각 단락은 이 책들의 요약본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생활의 역사’, ‘고양이 대학살’, ‘길가메시 서사시’, ‘총균쇠’ 등 익히 들어본 책부터 외국 원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역사책들의 맛보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저자는 학자로써의 학문적 열의, 배움에 대한 자세가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교수인 저자도 누군가의 연구가 담긴 책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자기화 하는 노력(당연히 그래야 하는)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을 본 자가 맛을 안다고, 청소년들에게 역사의 맛을 보여주려는 저자는 누구보다도 진짜 맛을 알고 그것을 나누어 주려는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역사의 중요성, 역사에 대한 흥미를 다양한 서적들의 액기스를 뽑아내어 대중에게 선사하는 이 책은,
역사 전체, 또는 세부사항을 읽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문화라는 사실.
문화로 역사를 읽으면 흐름을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기에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사고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역사가 인류의 축적된 경험이기에 그것을 미래로 향한 인류의 지혜로 담아내려는 학자의 배려와 의지가 돋보이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