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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8-0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또 술먹고 죽자는 줄 알았어요.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어도 안죽어요^^

라주미힌 2005-08-0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술 많이 드시고도 절대 안돌아가시는 분 있잖아요.. 말태웠소님... ^^;

라주미힌 2005-08-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영님/ 웃자고 한 얘기인데, 제대로 됐네요 ^_^

마늘빵 2005-08-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맛있겠따 쓰읍...
 

http://ranking.empas.com/event/book_review_event.html  

 

사는게 거짓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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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퍼옴] 불멸의 유혹, 뱀파이어

 

출처 : violet breath


드라큐라가 뱀파이어의 전부가 아니다 _


The Mourning of Laszlo Hunyadi, , Viktor Madarasz

우리는 흔히 '뱀파이어'라고 하면 '드라큐라'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뱀파이어는 피를 빨아먹고 사는 생명체, 즉 흡혈귀를 뜻하는 단어이며, 드라큐라는 뱀파이어의 한 종류다.

뱀파이어는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에서 '드라큐라'라는 인물을 전형으로 하며 대중에게 친숙해졌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를 요구하고, 초능력을 지녔으며, 불사의 생명을 지녔던 뱀파이어와 유사한 본성을 가졌던 존재들에 대한 신화와 전설은 늘 존재해 왔다.

사실, 우리가 가진 '뱀파이어'라는 이미지는 근대에 와서야 완전히 정립된 것이지만, 피를 생명력의 근원이자 생명력 자체로 여기는 관념이나, 피를 바치는 희생을 통한 불사와 재생이라는 테마는 인류 최초의 신화와 전설로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전통이 유구하다.

신성한 흡혈귀 _ 신화와 전설 속의 뱀파이어 _

# 내세를 지배한다 _ 이시스와 오시리스

이집트 B.C 3세기~ A.D 4세기. 이집트 신화에서 저승과 곡물을 지배하며, 그의 살해와 재생에 관한 신화 때문에 불사와 영생의 상징이기도 한 오시리스신. 그리고 그가 살해당한 후 열네 조각으로 갈갈이 찢겨 흩어진 그의 시체를 수습하여 그를 죽음에서 살려낸 그의 아내 이시스 여신은 둘 다 저승과 식물을 담당하고 있다.

이 둘도 흡혈 테마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오시리스신이 죽었다 살아났으며, 이시스 여신은 오시리스신을 죽음에서 살려냈고, 이들을 모셨던 비의에 피를 마시는 전통이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흔히 재생의 신화에서 피와 동일시되는 포도주는 원래 오시리스신이 처음 만들어내어 인간들에게 그 제조법을 전수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어 더욱 흥미롭다.

# 신들의 어머니 _ 퀴벨레


소아시아에서 B.C 4세기~ A.D 5세기에 퀴벨레 신앙이 성행했다. 퀴벨레는 신들의 어머니(The Mother of The Gods)나, 대모신(大母神= Magna Mater)로 불리는 여신이다. 이 여신에 대한 신앙은 로마 제국 시대에 널리 퍼진 바 있다. 고대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의 토착신으로 출발했으며, 이 때는 동굴과 대지의 여신이었으며, 짐승들을 지배하고 꿀벌들을 담당하는 여신이었다. 무엇보다 퀴벨레는 자연과 다산의 여신이었다. 퀴벨레는 산과 요새를 담당했으며, 그녀의 관은 성벽 모양을 하고 있었다.

퀴벨레 여신을 섬기는 의례는 매우 격렬한 엑스타시를 동반하는 축제였다. 코리반티스(Corybantes)라 불리는 퀴벨레를 믿는 여사제들은 피리와 북, 심벌즈 등을 두드려 광적인 소리를 만들어내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신도들을 황홀경 상태에 몰아넣었다.

퀴벨레는 불사와 재생이라는 테마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여신으로, 그녀를 기리는 이런 축제는 봄에 열렸고, 그녀의 연인 아티스의 죽음과 부활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졌다. 이러한 광란의 축제 가운데서 피를 마시는 의식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볼 때, 대지와 자연, 피와 희생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 슬픈 흡혈귀 _ 라미아

Lamia, J.W. Waterhouse
그리스 로마 전승에서 흡혈귀로 가장 유명한 것이 라미아일 것이다. 라미아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그들의 피를 빨아먹었다. 라미아는 여자의 머리와 가슴에 뱀의 몸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곤 했다. 남자나 양성구유자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라미아는 원래 리비아의 공주로 제우스와 사랑에 빠졌다. 이를 질투한 헤라 여신이 그녀를 괴물로 바꾸어 버렸고 그녀가 낳은 자식들은 죽여버렸다. 더불어, 헤라는 라미아가 눈을 감지 못하게 만들어 그녀가 절대 잠들지 못하게 했고, 이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눈앞에서 자식들이 죽어가는 장면의 환영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제우스는 이런 라미아를 불쌍히 여겨 눈을 잠시 뺐다가 다시 끼울 수 있도록 하는, 선처 아닌 선처를 베풀었고, 덕분에 라미아는 잠들 수는 없어도 잠시나마 휴식은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다른 판본에서는 헤라가 자식들을 죽이자 라미아가 슬픔 때문에 스스로 미쳐버려 괴물이 되었다고 전한다.)

라미아는 자신이 자식들을 잃은 불행 때문에 자식이 있는 어머니들을 질투하게 되었고, 자신이 겪은 일의 복수로 다른 아이들을 훔쳐다 잡아먹어 버리거나 피를 빨아먹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 핏빛 태양 _ 미트라

미트라는 페르시아의 빛의 신이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신이다. 이란에서 발원한 신이지만, 로마시대에 미트라교가 크게 확산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유명한 신이 되었다.
바위에서 태어난 미트라는 태양과 싸웠는데, 그는 태양이 뜨기 전에 나오는 빛을 의미했다. 그는 우주의 실질적인 창조자로, 그의 대표적 업적은 성스러운 수소와 겨루어 수소를 사로잡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그 수소를 죽여 소의 피에서 인간에게 이로운 모든 동식물들이 태어나게 한 것이다.

조로아스터교가 성행하면서, 미트라는 천개의 눈과 귀를 가지고, 백마들이 끄는 전차를 탄 전쟁의 신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정의와 연결되었으며, 그의 철퇴는 악과 싸우는 상징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부터 미트라는 정의를 지키고 악을 물리치는 데는 조금의 자비도 없는 매우 잔인한 신으로 그려졌으며, 사람들은 그를 '사악하다'고 표현하면서 공포와 경외심으로 그를 섬겼다.

기원전 4세기에 미트라 신앙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미트라교는 비의적 종교로 로마 제국전역을 휩쓸었다. 로마의 미트라 예배는 동굴에서 거행되었다. 이 의례 역시 엑스타시적 경험을 동반하는 것으로, 미트라가 수소를 죽였던 최초의 신화를 재현하여 수소를 죽이는 의식이 핵심이었다. 이 때 수소를 도살하여 그 피를 뒤집어 쓰거나 피를 나누어 마셨다고 전한다.

# 피의 엑스타시 _ 디오니소스

그리스 신화의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그를 기리는 의례는 광란 상태를 동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여신도들을 '메이나드'라 불렀는데, 이들은 의례에서 엑스타시 상태에 빠지면 산 짐승을 발기발기 찢어 그 고기를 물어뜯고 피를 나눠 마셨다. 디오니소스신 자체가 포도주와 동일시되며, 죽어서 다시 살아난 재생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신은 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신이다. 


# 깃털달린 뱀 _ 케찰코아틀

"깃털 달린 뱀"으로 불리는 케찰코아틀은 아즈텍 문명의 위대한 신이었다. 그는 천상의 신으로, 세계의 창조주였고, 인간을 만들었으며, 현명한 입법자였다. 또, 그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세계와 인간의 생멸주기를 결정하는 신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케찰코아틀은 저승인 믹틀란(Mictlan)으로 내려가서 이전 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뼈를 모두 모아서 올라왔다. 그는 자신의 피를 이 뼈에 뿌려 새로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또다른 신화에서 그는 악한 신 테스카틀리포카의 꾐에 넘어가 타락하고 나중에 가책을 받아 스스로 화장용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타죽었다.

그가 죽고 그의 심장은 아침의 별이 되었다고 한다. 후에 그는 아즈텍에서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으며, 사제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아즈텍부족의 신앙은 인간을 산 제물로 바쳐 피의 희생제의를 거행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이들은 태양중심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태양이 움직여 세계가 지속되도록 하려면 태양신에게 인간의 피를 희생제물로 바쳐야만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 희생제물이 될 인간을 구했으며, 피의 희생제의 제단에서 이 포로의 가슴을 돌칼로 쪼개어 심장을 꺼내 신들에게 바쳤다.

#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 _ 릴리스

Lilith, Dante Gabriel Rossetti
릴리스는 밤의 악마이며 악마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존재로, 그녀는 신생아를 납치하거나 목졸라 죽이고, 피를 빨아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녀의 힘은 특히 달이 차오를 때 강해진다.

일설에 따르면 신은 아담과 릴리스를 등이 붙은 쌍둥이로 창조했다. 릴리스는 아담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으나 이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를 떠났다고 하며, 무슬림 전설에 따르면, 아담을 떠난 릴리스는 사탄과 동침하여 악마 지니들을 낳았다고 한다.

또다른 설에 의하면, 릴리스는 이브 이전에 아담의 첫번째 아내였다.

아담은 릴리스와의 잠자리에서 상위를 차지하고자 했으나 릴리스는 남성상위의 이런 요구를 거부하고 아담을 저주하며 홍해 근처의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아담의 불평을 들은 신이 세 천사를 보내어 릴리스를 데려오려 하였으나 그녀는 이 세 천사 역시 저주해버렸다. 릴리스는 고향으로 돌아간 후 악마와의 사이에서 하루에 100명의 아이들을 낳았다고 하는데, 천사들은 그녀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 아이들을 모두 앗아가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녀가 그래도 아담에게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자 자신들의 경고를 실천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릴리스가 출산중의 여성이나 갓난아기들을 죽이려 든다는 설이 있다.

Lilith, Giger
릴리스가 이런 존재가 된 데는 그녀가 퀴벨레처럼 대지모신적 존재였던 이유도 있다는 해석이 있다. 유대교에서는 농경민인 형 카인이 죽인 목동 아벨의 피를 흡수했던(=마셨던) 대지를 증오했고, 릴리스를 악마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릴리스라는 존재는 정착 농경민의 대지모신으로, 릴리스와 아담의 대립은 유목민들의 침입에 저항하는 농경민의 이야기로 해석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릴리스의 이야기는 정전에서는 사라져버렸지만, 그녀의 딸들인 릴임(lilim)들이 남자들을 사냥해 그 정기나 피를 빨아먹는다는 믿음은 그 후로도 지속되었다. 중세까지도 유대인들은 릴임의 접근을 막기 위한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스에서는 이들 릴임을 라미에(Lamiae) 혹은 밤의 여신 헤카테의 딸들로 여기기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이들을 지옥의 매춘부 혹은 여성 몽마인 서큐버스와 동일시 했다. 릴리스 역시 어둠의 산 주변에 모여든 이들 서큐버스와 함께 피의 사냥을 나선다고 알려졌다.

특히 릴리스는 갓 태어난 아기나 산모를 노렸으므로, 18세기에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침대 옆에 마법의 원을 그리고 침대 네 귀퉁이에 부적을 놓아두곤 했다. 이 부적에는 여호와의 명을 받고 릴리스를 찾아갔던 세 천사의 이름과, 아담과 이브, 그리고 릴리스를 내쫓고 아기가 해를 입지 않기 바란다는 문구를 새겼다. 자면서 아기가 웃으면 릴리스가 나타났다는 신호로 여겨졌으며 이 때 아기의 코를 꼬집으면 릴리스가 달아난다는 믿음도 있었다.

릴리스의 이야기가 유대 전설에서 유래되기는 했으나, 릴리스와 같은 존재들은 이란과 바빌론, 멕시코, 그리스, 아랍, 영국, 독일, 미국 토착민들의 전설에도 등장한다. 때로 그녀는 시바의 여왕이나 트로이의 헬렌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중세에는 릴리스가 사탄의 부인이나 정부, 혹은 사탄의 조상으로 여겨졌다.

# 회개한 흡혈귀 _ 귀자모신


불교의 야차 중 하나. (야크샤. 여성형은 야크시)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의 인도의 토착 자연신들이었다가, 후에 불교에서 마족이나 수호신으로 편입되었다. 야차는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살며, 여성 야차는 나찰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보면 홀릴 정도의 아름답고 관능적인 외모를 지닌 것으로 그려지며, 이들은 남자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피를 먹었다고 전한다.



이들 여성 야차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귀자모신, 즉 '하리티'다. 귀자모신은 야차왕의 아내로, 천상과 지상에 각각 500명의 자식이 있었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성질이 난폭하고 잔인하여 항상 다른 사람의 자식을 빼앗아 잡아먹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이 귀자모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이 사실을 부처에게 고하자 부처는 그녀의 아이 하나를 몰래 감추게 했다. 그녀가 자식을 잃고 슬픔으로 울부짖자 부처는 그녀에게 많은 자식들 중 하나만 없어져도 이렇게 슬픈데 그녀에게 아이를 빼앗긴 다른 부모들은 어떤 심정이겠느냐고 하며 그녀를 교화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행위를 깊이 뉘우친 귀자모신은 불법에 귀의했으며, 이후 안전한 출산과 육아의 수호신이 되었다.

 

출처 - 심볼리안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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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뉴 에이지 열풍을 몰고온 감성짙은 피아니스트 이루마

    2001년에 혜성 같이 등장한 피아니스트 이루마(Yiruma)는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뉴 에이지 아티스트이다.

    2집 수록곡인 "When The Love Falls"가 KBS 인기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최지우의 테마로 사용되면서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한 이동통신회사의 CF에 출연하면서 눈에 띄는 곱상한 외모 덕에 인지도가 한층 높아졌다.

    이루마의 음악은 기존의 뉴 에이지 피아니스트들처럼 편안한 감상용이다. 하지만 느낌은 다르다. 배경 음악에 가까운 조지 윈스턴에 비하면 멜로디가 강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사사키 이사오의 연주에 비하면 흐르듯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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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06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나오나요? 올릴때는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면 안들리게 되더라구요 -_-;;

라주미힌 2005-08-07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트래픽에 걸렸을지도 몰라요.. 하루에 너무 많은 플레이를 하면.. 서버에서 중단.
 
 전출처 : 로쟈 > 지젝과 함께 한국문학을 읽다

*모잡지의 청탁을 받고 며칠 끙끙거리며 쓴 글이지만,  늑장을 부린 데다가 좀 '도취적'이어서 게재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각주를 모두 생략하고, 부분적으로 재편집해서 여기에 올려둔다.



 

 

 

1. 지젝, 혹은 우리시대의 엘비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지절대는 철학자이자 지식계의 스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비단 그가 지난 2003년에 내한한바 있다는 전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5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국내에는 ‘지젝’이란 이름과 관련된 20권 가량 번역/소개돼 있다) 지젝은 특히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의 접속을 주된 이론적 지반으로 하여 글을 쓰면서도 세계적인 명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인기/명성의 원인은 단순한데, 그건 그가 칸트와 헤겔을, 그리고 라캉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대중’이 말이다.

 

특히나 그의 이름은 일련의 ‘영화책’들 덕분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삐딱하게 보기>,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같은 책들에서 지젝은 라캉의 난해한 이론과 고급스런 정신분석 담론을 이해하는 데 히치콕이나 할리우드 안팎의 대중영화들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하며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21세기형 철학자’를 ‘MTV 철학자’라고도 부른다지만, 그런 포스트모던한 별명보다는 (다소 구닥다리 같더라도) 모던한 별명이 그에겐 더 어울려 보인다. ‘철학계의 록 스타’, ‘문화이론의 엘비스’ 같은.

 

모호한/난해한 아카데미 담론과 대중문화를 접속시켜줌으로써 지젝은 무슨 일을 하는가? 바로 아카데미 바깥의 대중들이 자신의 생활주변과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 속에서 철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사실 이러한 역할은 백인의 컨트리뮤직과 흑인의 리듬앤블루스를 결합시킨 록음악의 정신에 얼추 부합하지 않는가? 지젝과 ‘지젝 현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한 영화감독의 말대로, 지젝은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시대에 지성주의(intellectualism)란 게 얼마나 재미있고 활기차며 뻑적지근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우리시대 엘비스’에 값한다(사실 그가 강연 등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제스처는 역시나 폭발적인 엘비스의 무대매너를 연상시키는 바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얼마나 열정적인 것인지!). 해서 말하건대, 지젝을 읽는 일은 엘비스의 <버닝 러브(Burning Love)>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흥겨운 일이며 흥분되는 일이다(우리는 그들의 ‘불타는 사랑’에 후끈 달아오르는 ‘품행 불량한’ 헝크(hunk)이고 매스(mass)이다). 그 지젝, 혹은 우리시대의 엘비스와 함께 한국문학을 읽는다? 

  

2. 이데올로기의 하찮은 대상

지젝이 ‘철학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서구 지식사회에 등록하게 되는 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발표함으로써이다. 지젝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왜곡된 의식’ 혹은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론만으로는 소위 ‘탈이데올로기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해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본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며 발견되고 폭로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한껏 비웃어주는 ‘냉소적 주체’이기에. 그리고 바로 그러한 현실이 우리가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그것은 물론 ‘환상’이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행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은 ‘앎’이 아니라 ‘행함’이다(“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아주 잘 알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행하나이다”). 우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그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적 실천 속에서 가령, 변기에서 물을 내리는 것과 같은 ‘하찮은’ 일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지젝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서의 세 가지 변기 사용법을 예로 든다.

 

전통적인 독일식 변기에는 물을 내릴 때 대변이 사라지는 구멍이 앞쪽에 있어서 우리가 대변 냄새를 맡고 무슨 병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 변기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구멍이 뒤쪽에 있다. 즉, 물을 내리자마자 대변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돼 있는 것이다. 끝으로 영국의 변기는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의 통합형, 혹은 중재형이다. 즉, 물통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대변이 물속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점검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영·불·독이란 지리적 3항에서 세 가지 다른 실존적 태도를 최초로 읽어내고자 했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반성적 철저함’(=보수주의)과, 프랑스는 ‘혁명적 조급성’(=혁명적 급진주의), 그리고 영국은 ‘온건한 공리적 실용주의’(=온건한 자유주의)와 짝지어질 수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 변기 사용방식과도 상응한다. 해서, 우리가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탁상에서 떠들어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잠시 화장실에 들르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곧장 이데올로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예기치 않은’ 사례들과의 조우는 지젝을 읽으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사실 우리의 ‘엘비스’는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바, 여성 음모(陰毛)의 세 가지 스타일에서 우리는 동일한 기호학적 3각형을 만나지 않을까? 무성하게 자란 헝클어진 음모는 자연적 자발성을 존중하는 히피(hippie)족 여성의 태도를 가리킨다. 반면에 여피(yuppie)족 여성은 잘 가꾸어진 ‘프렌치 가든’형을 선호한다(비키니 라인을 따라 양 다리쪽의 음모를 제거함으로써 중앙에 면도선을 따라 좁은 밴드 형태만 남겨놓는다). 그리고 펑크(punk)족 여성의 경우에는 질 전체를 면도해 버리고 (대개는 음핵에) 고리를 달아서 장식한다. 더불어, 이러한 3각형의 구도는 레비-스트로스의 기호학적 3각형 버전으로 말하자면, ‘날것’으로서의 무성한 음모, 잘 손질된 ‘구운’ 음모, 완전히 면도한 ‘끓인’ 음모에 대응하지 않을까? 이러한 사례들까지 동원하여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갖는 가장 은밀한 태도조차도 이데올로기를 ‘발언’하고 ‘실천’한다는 것. 그러니, 누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하는가? 

 

3. 그토록 하찮은 문학

지젝이 제안한 바는 아니지만, 문학에 대한 ‘공공연한’ 태도에 있어서도 우리는 세 가지 태도를 대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민족문학’이라는 엄숙주의적 태도를 별개로 한다면, 우리는 히피적 태도, 여피적 태도, 펑크적 태도를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을 각각 자유주의, 유미주의, 반항주의에 대응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레비-스트로스의 분류를 가져오자면, 이들의 문학은 각각 ‘날 문학’ ‘구운 문학’ ‘끓인 문학’이 될 것이다.

 

‘민족문학’이 민족적/사회적 대의(大義)와 문학을 분리시켜서 사고하지 않는다면, ‘날 문학’으로서의 히피문학은 문학과 삶을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에 ‘구운 문학’으로서의 여피문학은 ‘잘 구은 항아리’, 한갓 ‘예술작품’으로서의 문학을 지향한다. 그것의 다른 이름이 ‘문학주의’이다. ‘끓인 문학’으로서의 펑크문학은 문학행위를 하위문화적/비주류적 (저항)정신의 등가물로서 사고한다. 이 세(네) 가지 태도/주의가 어쩌면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한국문학을 규정지으며 분할해온 구도는 아닐까?(물론 발생론적인 순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오게 되는 것은 히피문학일 것이다. 여피문학과 펑크문학은 그 뒤를 따른다.) 

 

지난 세기 후반에 한국문학은 흔히 명시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준거로 하여 1980년대 문학과 1990년대 문학으로 대별됐었다. 90년대 문학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 과잉시대’로 규정된 전(前)시대, 즉 80년대와의 대척점에서 자신의 세대론적 의의와 문학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념이란 지주를, 혹은 ‘공룡’을 상실하거나 배제한 문학은 스스로를 ‘하찮은’ 것으로 간주하며 문학의 자리를 ‘그늘’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이 ‘풍금이 있던 자리’, 이념의 공백에서 시작된 새로운 세대, 젊은 작가들의 ‘사소한’ 문학은 80년대 집단적 주체를 대신하는 ‘개인 주체의 귀환’이면서 동시에 ‘비루한 것의 카니발’(황종연)이었다.

 

 

 

 

 

 

 

 

이 세대의 작가들은 환멸과 냉소를 삶과 세계에 대한 주된 태도로 갖는 탈이념적 주인공들을 문학사에 등록시켰고, 이 나르시시스트 주인공들은 자신의 사회적 소외를 감내하면서 거창한 이념으로부터,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도덕적 명령으로부터 도주하거나 달팽이처럼 자신의 내면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면서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의 ‘가난한’ 자유를 음미하고 향유했다. 이 히피주의 문학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정서’였으며, 그들의 물질적 가난조차도 그 정서의 빌미였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IMF시대를 통과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60년대 이래의 다소 유구한 전통을 지닌 자유주의 문학, 히피문학 대신에 보다 대극화된 문학과 대면하게 되는데, 그것이 여피문학과 펑크문학이다(김영하와 백민석은 두 전형이다). 물론 이들의 간극을 낳는 것은 경제적 심급이며,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건 ‘가난’이 아니라 ‘빈곤’이다. 즉, 여피문학과 펑크문학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혹은 각기 다른 급으로 문학이란 ‘화장실’을 쓰는 것이다. 이 두 갈래의 문학이 결코 지양되지 않는 사회적 적대와 결코 봉합되지 않는 그 적대의 간극을 문학적으로 반영/반복하고 있다면, 우리는 ‘문학은 없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젝도 자주 반복하고 있는, (사회적 적대관계에 의해서 빗금쳐져 있기 때문에) ‘사회는 없다’는 명제를 비틀어서 말이다. “우리는 문학으로 하나다”라는 식의 대문자 문학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어쩌면 문학의 가장 순진한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4. 초월적 상상력과 문학의 존재론

지난 계절에 나온 젊은 비평가들의 몇몇 비평문들은 지젝의 철학/정신분석학을 적극적/암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90년대와 21세기 동시대 작가들의 문학행위에 대한 ‘인지적 지도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김영찬의 <90년대 문학의 종언, 그리고 그 후>는 ‘90년대 문학’ 이후 한국문학의 지형과 향방에 대한 조감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이 ‘종언’에 관한 이야기는 은희경의 신작소설 <비밀과 거짓말>(2005)로부터 시작되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그 문학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90년대 문학에 대한 ‘형식적 종결’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분히 우연한 것으로 보였던 ‘90년대 작가’들의 변화에 사후적으로 개입하여 그것을 일정한 집합적 맥락으로 계열화하고 ‘1990년대 문학의 죽음’이라는 분명히 의식화된 지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밀과 거짓말>에 의해서 ‘90년대 문학의 죽음’은 상상적인 것에서 상징적인 것으로 이행한다. 그러한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허무의식’이다. 작가 은희경의 데뷔작인 <새의 선물>(1996)을 지배하는 주제의식은 ‘환멸’이며, 이 환멸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애착을 환멸의 예외적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만 작동한다. 부정적인 세계 바깥으로부터 침해당하지 않는 ‘나’를 온전하게 정립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그것은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과 거짓말>의 허무의식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이때 허무의 근원에는 세계와의 냉소적인 지적 거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주체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이러한 무력함/무능력이 소환하게 되는 것이 ‘죽은 아버지’이다. 그리고 ‘나’는 이 거대한 타자의 질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비극적 자각을 갖게 된다.

 

비록 그러한 자각이 ‘주체의 성숙’의 표지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위축’을 드러내는 증상일 수도 있지만, 주목할 것은 그러한 소환행위에 의해서 부정되는 것이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상상적 절대화”라는 점이다. 즉, 90년대 문학의 근거가 부정되는 것이다. 90년대 문학의 개인 주체는 크게 보아 ‘상상적 주체’이며, 김영찬은 백민석, 김영하, 조경란, 배수아 등 ‘90년대 작가’들이 최근 보여주는 변화로 이 “상상적 주체의 미묘한 형질변화”를 꼽는다.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은 “그동안 다른 작가들의 소설에서 단편적․분산적 징조로만 드러났을 뿐 완결되지 못한 변화의 가닥들을 하나둘 수렴해 그들을 대표하는 의미심장한 선언으로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90년대 작가들’의 행적과 미래에 대한 ‘반성적 알레고리’가 된다고 평한다.

 

이러한 구도는 아직 불확정적으로 구획돼 있는 9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우면서 유익하다. 하지만, 문학사적 흐름, 혹은 문맥을 <비밀과 거짓말>이란 작품을 기준으로 하여 소급해가고 있기 때문에, 즉 통시적으로 접근해가고 있기 때문에 공시적인 차원에서 젊은 작가들의 ‘상상적 주체’가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고 또 변모해 가는지에 대한 조명은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더불어, 문학 존재론의 근간이 되는 상상력을 나르시시즘적인 상상계와 거의 동일시하게 되면 문학이 초월적 상상력과 갖는 원초적인 관계양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지젝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사실 칸트 철학에서 현상계와 예지계, 우리의 감성(=가슴)과 지성(=머리)을 매개해주는 것으로 도입되는 ‘초월적 상상력’의 곤궁 혹은 양면성에 대한 이해는 지젝의 철학적 주저들에서 자주 반복되며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현상계와 예지계 어디에도 환원되지 않는 상상력은 수용적인 동시에 정립적이며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다. 그것은 흔히 감각에 주어지는 다양을 한데 모으는 종합의 능력을 지칭하는데, 이러한 ‘종합활동’의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이 상상력의 ‘부정적’ 특징으로서의 ‘분해활동’이다. 즉, 상상력은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는 다양을 그대로 수용하여 종합하기 이전에 먼저 분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분해활동이 산출해내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세계의 밤’(헤겔)이다.


"인간은 이런 밤, 즉 모든 것을 단순한 상태로 포함하고 있는 이 텅 빈 무이다. 무수히 많은 표상들,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곧장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다.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 순수 자기(self)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 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흰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헤겔이 묘사하는 바대로 부정적·파열적·분해적 상상력이 하는 일이란 연속적 현실을 ‘부분대상들’로 해체하는 것이다. 즉 “상상한다는 것은 몸체 없는 부분 대상을, 모양 없는 색깔을, 몸체 없는 모양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산출하는 ‘세계의 밤’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지점에서의 초월적 상상력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부정적 매개자로서의 상상력의 존재론적 지위가 ‘데카르트적 주체’의 그것과 상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지젝에 따르면, 자연과 문화 상태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 곧 ‘사라지는 매개자’가 바로 근대의 ‘데카르트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말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정립할 때 이미 자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문화도 아닌 상태를 창조해야 하는바 데카르트적 회의에서 이것은 전면적인 ‘자기로의 철회(withdrawal-into-self)’라는 제스처로서 나타난다. 지젝에 의하면, 이러한 제스처는 광기의 일종이다. 이 광기는 앞에서 헤겔이 ‘세계의 밤’이라고 부른 것에 대응하는데, 상징적 우주 혹은 문화적 세계가 형성되는 것은 오직 이러한 ‘세계의 밤’, 곧 ‘분해적 상상력’에 의해서 현실이 소거될 때, 그리하여 세계가 절대적 부정성으로서 경험될 때뿐이다. 데카르트의 ‘자기로의 철회’는 이러한 극단적 상실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 상실의 자리, 텅 빈 공간이 바로 주체의 자리이다.

 

주체와 상상력의 이러한 차원에 우리가 주목할 때, 우리의 90년대 작가들이 이념의 상실, 이념의 공백 상태에서 직면하게 된 것은 오히려 상상력으로서의 문학 본연의 ‘부정성’이 아니었을까? 종합적 상상력이 아닌 분해적 상상력 말이다. 그리고, 문학이란 이러한 분해적·종합적 상상력에 근거하며 특별히 문학적 주체란 그러한 상상력이 활성화된 주체인바, 시인/작가의 문학적 태도란 이 상상력, 특히 ‘세계의 밤’에 대한 태도로서 규정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두려운 밤(=상상력), 혹은 견디기 어려운 텅 빈 ‘주체’를 어떻게 채워넣는가, 어떻게 ‘주체화’하는가 하는 차이로써 말이다(‘주체화’란 우리들 자신을 언어 등과 같은 상징적 질서에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5. 동물원과 미술관 사이

그렇다면, 문학적 상상력이란 동물원(=자연)과 미술관(=문화)을 매개해주는 것인바,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유난히 동물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사실은 자연스럽다. 대타자로서의 이념이라는 가로막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상상력의 밑바닥을 헤집으며 상상력의 부정성을 길어 올린다는 의미를 함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경숙의 초기 대표작 <풍경이 있던 자리>(1993)의 서두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동물의 행동>이란 책에서 인용된 동물원 풍경이었다. 코끼리 거북을 사랑했던 어느 동물원의 수컷 공작새 얘기 말이다. 이후에 ‘동물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대표적인 90년대 버전으로 우리가 꼽을 수 있는 것은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2000)과 배수아의 <동물원 킨트>(2003)일 것이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두 ‘펑크작가’에게서 “상상적 주체의 미묘한 형질변화”는 어떻게 비교될 수 있을까?

 

 

 

 

 

 

 

 

먼저, 백민석에 대한 젊은 비평가의 지적은 음미해볼 만하다. 즉 그의 소설들은 포스트모던 시대 상징계의 약화로 인한 오이디푸스의 위기와 이에 대해 ‘이상한 가역반응’으로 대처하는 ‘괴물’(‘포스트모던 리바이어던’)들을 주로 테마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엽기전>의 세계는 편집증이 무대화된 악몽의 체계이며, 그곳에서 사는 인간은 자연상태로 환원된 인간-동물이다.” 물론 체계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문학적 공격은 현실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체계는 그에 대한 위반을 허용하는 방식을 통해 가장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백민석의 전복적 서사가 비록 한국문학/문화의 지형도를 바꾸어놓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이제 기성 질서와 체계를 위협하는 반란과 탈주가 아니라 오히려 기성 질서 자체가 허락하고 용인한 한도 내에서의 반란과 탈주라는 느낌이 더 짙다.” 즉, 펑크는 분명 기성의 질서나 체계에 시위하고 반항하지만, 그러한 시위/반항 자체가 오히려 체계의 정상성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할 수는 없는 것일까? 혹은 그 한계는 ‘엽기전’ 전략이라는 내용층위의 전복 전략이 갖는 함정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의혹을 갖게 되는 것은 ‘에세이스트’ 배수아의 또다른 펑크 전략이 대체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물원 킨트>에서 전면화되고 있는 배수아의 전략은 ‘야수의 탈’을 뒤집어쓰고 아이 유괴, 학대, 살인 등등을 피범벅으로 감행해야 하는 백민석의 전략보다 상대적으로 아주 단순한데,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 차원에서 문학을 일종의 ‘이방인 놀이’로 만드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모국어를 외국어로 말하는 것(“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보고 그런 식으로 말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법이긴 하지만, ‘자기로의 철회’에 있어서 백민석의 경우보다 훨씬 더 철저하면서도 급진적인 효과를 낳는다. ‘동물원’이라는 이러한 철회의 과정을 경유하여 배수아가 도달하고 있는 지점이 ‘에세이스트’이고 <에세이스트의 책상>(2004)이다(‘에세이스트’야말로 배수아 식의 ‘데카르트적 주체’가 아닐까?). 이 작품의 진정한 의의는 ‘작가의 말’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하다면 다른 것을 쓰되, 사람들이 그것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는 그런 형태를 원했다.” 문제는 순수하게 ‘형태’적인 것이며,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무정형의 생성적 형식을 통해서 배수아는 문학주의라는 여피적 태도를 불편하게 만든다. 

 

‘엽기 소설’과 ‘에세이 소설’을 쓰는 두 펑크작가의 이러한 차이가 예시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90년대 우리문학이 비로소 바닥까지 발을 딛게 된 초월적 상상력에 대한 ‘다시 보기’의 필요성이다. ‘90년대 문학’ 혹은 ‘2000년대 문학’으로 ‘종합’될 수 있는 동질적인 문학장 속에는, 다른 한편으로 하찮은, 하지만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이질성들이 유령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하찮은 차이들’에까지 주목하기 위해선 아마도 우리문학에 대한 재미있고 활기차며 뻑적지근한 사랑, ‘불타는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매개해줄 수는 있는 사랑 말이다. 지젝과 엘비스의 이런 노래처럼. “당신이 나에게 불을 놓았고, 내 머리는 불타고 있어요!”(You gonna set me on fire. My brain is fl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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