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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국어연구원과 북에디터(출판사 편집자들의 모임)에 ‘띄어쓰기를 없앱시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야기인즉슨, 자신은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인데 띄어쓰기에 많은 시간 비용을 투자하느라 다른 데 쏟아야 할 정력을 낭비하고 있으니 “적당히 오해하지 않도록”만 띄어쓰자는, “띄어쓰기 없애기 혹은 안 따지기 운동”을 벌이자는 내용이다.
이 분의 말씀처럼, 띄어쓰기는 꽤나 애매하고 유동적인 규정들이 많다. 복합 명사와 보조용언+본용언의 띄어쓰기, 어미, 조사, 수와 단위 등 거창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사실 벌써부터 많은 책들에서 띄어쓰기가 파괴되고 있다. 교정/교열의 많은 시간을 띄어쓰기에 할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띄어쓰기를 없애자고? 아마얘기의주장은(일본어를예로들기는했지만)지금이문장처럼아예띄어쓰기를하지말자는얘기는아닐게다.
위에 인용한 말처럼 “적당히 오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 말이 우습다. 그 “적당히 오해하지 않”기 위해 마련한 것이 ‘규정’이라는 놈이니까 말이다. 적당히 오해하지 않는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의미를 분명히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공통으로 약속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규정’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오해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도 오해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주변 사람들이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대충 그렇다고 생각해도 될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 근거를 두어야 할까.
그것보다 교정의 목적에 대해서 말하는 편이 좋겠다. 교정이란, 글을 자연스럽게 읽어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다. 오자와 탈자가 문제되는 것은 맞춤법에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독자들의 글 읽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교정/교열이 훌륭한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만큼 글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띄어쓰기를 적당히 한다면? 아마 출판사마다 전부 다른 식으로 띄어쓰기를 할 터이고, 그 무규칙성은 글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떨어뜨릴 게 틀림없다. 적당히 오해하지 않을 정도라면 왜 굳이 띄어쓰기만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일까. ‘생각건대’를 ‘생각컨데’로 써도 다들 알아먹을 텐데, ‘행복하길 바라요’를 ‘행복하길 바래요’라고 하는 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르는데.
띄어쓰기가 매우 유동적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교정/교열에 관해서는 근본주의자인 나도 책을 볼 때 띄어쓰기에는 제법 관대한 편이다. 사실 복합 명사나 보조용언의 띄어쓰기에는 답이 없고, 출판사 나름의 규칙만 지킨다면 상관없다고도 생각한다. (심지어, 낱말의 글자 수를 기준으로 띄어쓰기를 한다는 곳조차 나는 이해했다.)
그래도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사전 한번 들추면 확인할 수 있는 뻔한 실수들, 성의의 문제라고밖에 할 수 없는 교정 상태를 보면서,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야말로 올바른 맞춤법의 본보기라 믿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불쌍하게 여기곤 한다. 그렇다, 이런 문제는 오로지 성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고서야 책을 그냥 많이 읽었다는 것만으로, 전문적으로 교정/교열 일을 배우지도 않은 내가, 한두 해만에 편집질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책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어떤 책을 기획할 것인가부터 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홍보할 것인가, 책에 어떤 장치를 할까, 가장 효과적인 디자인은 무엇일까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확실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게 없다. 그 가운데 띄어쓰기는, 교정은, 책의 완성도를 높여줄 정말 쉽고 확실한 일이 아닌가. 필요한 것은 성의뿐. -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