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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xx카드 결제일입니다. 보람찬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매달 23일, 내가 거래하는 카드 회사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을 때면 은근히 화가 난다. 월급의 대부분이 빠져나가는 결제일에 어떻게 '보람찬 하루' 를 보낼 수가 있담? 맛있게 먹는 게 불가능한 음식을 주면서 꼬박꼬박 "맛있게 드세요." 라고 하는 직원식당 아주머니 말씀이 입맛을 잃게 하듯, 문자메시지에 찍힌 '보람찬 하루' 는 오히려 힘이 빠지게 만든다.
2000년 초까지 난 카드가 없었다. 조교로 근무하던 90년대 중반, 카드 세개를 가지고 돌려막기를 하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해서다. 한 달에 세 번씩 돌아오는 결제일은 공포 그 자체였지만,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미녀들 앞에서는 돈이 많은 척 행세를 했었다.
그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교수가 된 뒤에도 카드를 만들지 않았었는데,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다 보면 식사비를 내야 할 일은 자주 생겼다. 학생들이 시킨 음식값을 머릿속으로 헤아려보고, 슬그머니 밖에 나가 지갑의 돈이 충분한지 헤아려보는 불안한 삶은 결국 나로 하여금 카드 한 장을 만들도록 했다.
그 후부터는 서른 명이 몰려와도 벌벌 떠는 대신 "마음껏 먹어라." 고 말할 수 있었지만, 카드의 존재는 돈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켜 내 씀씀이를 크게 만들었다. 카드가 없었으면 가진 돈에 맞추어 먹었을 술도 쓸데없이 비까번쩍한 곳에 가서 먹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어찌나 카드를 많이 긁어댔는지 유효기간이 되기 전에 카드가 닳아 교체를 해야 할 정도였고, 카드사에서는 '슈퍼 프리미엄 회원이 되셨다.'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 왔지만, 카드가 없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은 갈수록 커진다.
수 백 만이나 되는 신용불량자가 사회문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성인이 되어서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한 것은 분명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내가 조교 때 신용불량자와 일반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했던 것처럼, 카드의 존재는 능력 이상의 돈을 쓰도록 부추기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카드회사의 신용카드 남발을 방치했던 정부가 신용불량자 문제에 책임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씀씀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인 나는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을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고교 때까지 용돈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계획성 있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한 훈련을 받지 못한 것. 그런 상황에서 신용카드까지 만들었으니 마구 긋고 싶지 않겠는가. 요즘 애들이야 다들 용돈을 받지만, 현금과 신용카드는 차원이 틀린 문제다.
내 큰손의 원인이 어린 시절에 있듯이, 앞으로 나올 신용불량자의 해결책 또한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지금은 미성년자에게 카드가 발급되지 않는다. 물론 타당한 조치라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차피 앞으로의 사회는 카드가 주 거래수단이 될 터인데, 그럴 거면 차라리 어릴 적부터 카드를 쓰는 훈련을 시켜줌으로써 나중에 마구잡이로 긋는 사태를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휴대폰 정액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했듯이, 한도가 소액인 미성년 전용카드가 안될 이유가 없다. 돈을 제대로 잘 쓰는 것, 그건 어릴 적부터의 훈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