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명을 짓밟은 인간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국가적 살인 행위에 대한 권한은 누가 부여했는가,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을 수 있는 가능성 같은 물음들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그냥 '감정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것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무식해도 나같은 일반사람들은 오직 죄 지은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믿음을 진리처럼 받들고 있다.
'범죄 예방효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고통을 공감해야 할 의무를 지닐 뿐이다.
옳거나 합리적이거나 위대한 휴머니즘은 살포시 덮어둔다. ㅡ..ㅡ;
어린이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그 놈과 그 아들...
쉽게 저지른 그들의 행위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쉽게' 집행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그들의 감각을 초감각으로 재생시켜야 할
정신적, 육체적 자극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페일레스님 댓글 보고 생각난...
'타인의 고통' (147p) 에 나오는 글과 사진.
(비위가 약한 사람은 보지 마세요. ㅡ..ㅡ; 경고 했음다... )
성애적인 것을 다룬 위대한 이론가들 중 하나인 조르쥬 바타이유는 1905년 중국의 한 죄수가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던 광경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매일 아무 때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책상 속에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거의 전설이 되어버린 이 사진은 1961년 바타이유가 살아 생전에 출판한 맨 마지막 책 '에로스의 눈물'에 실렸다.). 바타이유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 이 사진은 내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홀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이미지, 고통의 광경을 담은 이 이미지는 평생 나를 사로잡았다." 바타이유의 말에 따르면, 이 이미지를 관조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는 일이자 금기시된 성애적 지식을 해방시키는 일이다(보통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이런 복잡한 반응을 보일 수 없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참고 볼 수 없다. 분주히 휘둘러진 칼날에 의해서 이미 양쪽 팔이 떨어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온 몸의 가죽이 벗겨질 최종 단계에 놓인 산 제물의 이미지.
이 이미지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며, 신화 속의 마르시아스가 아니라 현실의 마르시아스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속의 이 희생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성 세바스티안이 그랬듯이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이 고개를 위로 젖혀 눈을 치뜬 채 아직도 살아 있다. 관조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이렇듯 잔악한 이미지들은 몇 가지 상이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된다. 나약함에 맞서 자신을 단련하기, 자신을 좀더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기, 도저히 구제 받지 못할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같은 요구 말이다.
바타이유가 격렬한 고통을 보여주는 이 이미지를 보면서 즐거워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 이미지를 통해서 극심한 고통, 단순한 고통 그 이상의 것, 그러니까 신체가 변형되는 그런 고통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종교적 사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유가 바로 이와 같은 고통의 관점,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관점이다. 이 관점은 고통을 희생에, 희생을 정신적 고양에 결부시킨다. 따라서 고통을 뭔가 잘못된 것이라거나 불의의 사건, 혹은 일종의 범죄로 여기는 감수성, 즉 고통을 고쳐야할 무엇, 거부해야 할 무엇,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엇으로 여기는 현대의 감수성에는 낯설기 그지없는 관점이다.
1905년 4월 10일 북경에서 찍힌 이 사진의 주인공 푸추리는 몽고 왕족의 왕자 아오한우안을 암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타이유는 1925년 프랑스 최초의 정신분석가 중의 하나였던 보렐에게서 이 사진을 받았는데, 그가 '벡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이라고 소개한 이 형벌은 '능지'를 말한다. 능지는 죄인의 살갗이나 살점을 칼로 도려내는 형벌로서, 가능한 한 죄인을 살려둔 채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써 고통을 극대화하는 형벌이다.(능숙한 집행자는 한 사람에게서 2만 점까지 도려낸다고 한다).


능지를 보여 주고 싶은게 아니라...
고통을 보여 주고 싶다.
2만점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