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요사태, 우리에게도 '강건너 불' 아니다 
  [기고] 시대변화 못 따라간 '사회통합 정책'의 한계


  프랑스의 소요사태가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십여 일 이상 계속된 소요사태로 차량 5천 대가 불타고 천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7일 밤에는 소요사태 후 첫 사망자가 발생했고, 일부지역에서는 야간통금까지 내려진 상황이다. 평등과 사회통합을 국가적 이념으로 내걸고 추구해온 프랑스에서 이런 통합의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은 분명 충격적이다.
 
  프랑스의 소요사태는 정부당국의 발표처럼 '도시민감지역'에서 벌어진 극단적 폭력사태일 뿐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의 표출인가.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외면당한 채 회색빛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무슨 희망을 갖겠는가"
 
  "영혼이 없는 거리에서 태어나 지저분한 주위환경에 둘러싸인 더러운 건물에서 회색빛 벽과 풍경을 보고 회색빛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평소에는 외면하다가 화를 내거나 금지시킬 일이 있을 때만 자기를 쳐다보는 주류사회를 보면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프랑스 최고의 지성지 <르몽드>는 도시교외 빈민가에서 폭동이 계속되던 지난 7일 사설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1990년에 했던 '사회통합 연설' 속에서 위 구절을 다시금 인용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미테랑의 분석이 여전히 옳다는 것이다.
 
  미테랑이 묘사한 '영혼이 없는 거리와 더러운 건물로 둘러싸인 환경'은 다름 아니라 프랑스 대도시 주변의 외곽지역, 즉 방리유(Banlieue)를 말한다. 프랑스의 내무장관과 도시장관의 최대 숙제는 언제나 '방리유 문제의 해결'이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에게 방리유는 도시의 소외계층 그 자체로, 또는 범죄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기까지 하다. 프랑스 정부당국은 방리유를 '도시민감지역(ZUS)'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방리유의 폭력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이야기처럼 '범법행위' 차원의 일시적인 사회폭력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ft.com
 

  사회통합 정책의 '실패'라기보다는 그 '한계'를 노정한 것
 
  이번 프랑스 폭동사태는 빈민문제와 이민문제, 계급갈등과 민족문제, 무슬림문제와 도시정책 등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분출된 사건이다. 10대 젊은이들이 숨어서 경찰에게 총기를 발사하고 떼 지어 몰려다니며 자동차에 방화하는 폭력행위는 누적된 불만의 표출이지, 한두 가지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요인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번 소요에는 사회통합 정책의 한계와 치안정책의 실패, 그리고 이민정책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도시빈민들의 폭동이란 관점에서 보면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문제이고, 폭동 참가자들이 주로 아프리카나 아랍계 2세라는 점에서는 민족문제일 수도 있다.
 
  이번 소요는 물론 모순의 폭발이고 불만의 표출이겠지만, 좀더 냉정하게 본다면 정책실패의 결과라기보다는 정책한계의 결과에 가깝다. 도시정책과 이민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지 자유, 평등, 연대의 이념을 추구하는 프랑스적 이념정치의 파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시대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아프리카계와 아랍계 이민자가 끊임없이 프랑스로 밀려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꾸준히 추진되어온 이민정책이 이제는 '이민세대가 프랑스사회에 통합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다. 또한 보편적인 인간평등 사상을 배태한 속지주의의 조국이기도 하다. 적어도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만큼 앞서가는 나라도 드물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이념과 보편적인 가치들을 선도적으로 만들어온 나라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모든 사회적 모순들은 표면으로 드러내고 사회문제화시키는 역동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모순의 표출이 때로는 폭력적인 소요로, 때로는 혁명으로 표출되어 왔던 것이다.
 
  '방리유'에 대한 지원이 오히려 격리효과를 발생시켜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와 솔리다리떼라는 양대 사회이념을 축으로 건설되어왔고 역대 정부는 부단히 많은 사회통합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도시정책도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그러한 정책들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도시정책이 이번 소요의 원인 중 큰 부분이란 점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되어왔다. 가령 좌파 사회당 정부의 도시정책을 살펴보자. 사회당이 집권했던 시절에 프랑스 정부는 도시빈민 문제를 가장 중요한 국정의제 중 하나로 올려놓았었다. 방리유 지역에 HLM(아쉬엘엠)이라는 국영 서민임대주택을 대대적으로 건설했고, 서민층을 지원하고자 이 지역에 공공복지시설, 스포츠센터, 상업단지도 많이 지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지원은 정책입안자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방리유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방리유의 자급자족 체제를 만듦으로써 그들을 방리유에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대도시 메트로폴리스에 속하면서도 그들은 도심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회색의 시멘트 환경에 갇힌 채 살아온 것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 결과적으로 소외지역의 게토화를 가져왔고, 그 지역을 도시민감지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소외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아랍 출신이며 무슬림이 많다는 것이다.
 
  소요나 폭동이 프랑스 사회에서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혁명 때 국왕의 목을 단두대로 베어버렸고, 20세기에 들어서도 1968년에 기성 질서와 권위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은 다혈질의 민족이다. 언론은 이번 소요사태가 68년 시위 이후 최악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방리유라 불리는 도시외곽 지역은 언제나 불씨를 안고 있었던 지역이다.
 
  또한 극단적인 총파업, 대규모 소요나 폭력사태도 프랑스 사회에서는 빈번한 일이다. 1990년대에는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노조가 두 달 동안 총파업해 우편물이 배달되지 않고 교통이 완전히 두절되는 등 도시기능이 전면 마비된 경우도 있었고, 경찰노조가 자신들의 안전문제를 내걸고 파업을 벌인 적도 있다. 끊임없는 파업과 소요사태는 오히려 프랑스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의 정당성을 실험하며 강화시켜온 요소였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국내거주 외국인까지 포함한 폭넓은 사회통합의 필요성
 
  또 한 가지, 우리는 프랑스의 소요사태를 우려하는 다른 외국의 경우 프랑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경우 스킨헤드들이 외국인 이민자의 집을 방화를 하고 외국인 이민자를 기차에서 밀어내 떨어뜨려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났지만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사회적인 소요로까지 확산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부당국이 불법노동자 단속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 명이 자살했다. 단속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지는 사건들이 속속 일어났으며, 조선족 동포가 불법단속을 피해 다니다 차가운 거리에서 얼어 죽은 사건도 있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아마도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몇 번씩은 일어났을 것이다. 프랑스의 소요사태는 진정한 사회통합의 어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계기이다. 사회통합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계층, 계급, 외국인 이민자까지도 포함해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사회의 이번 소요사태는 우리의 미래사회를 비쳐주는 거울일 수도 있다. 
   
  
  최연구/본지 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 정치학 박사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주미힌 2005-11-0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달린 리플...

한국은 걱정없다.
시골 / 2005-11-08 오후 4:42:41

수십년간 도시재개발을 통해 서울과 대도시내의 달동네를 다 정리했기 때문에 극한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력을 형성할 공간이 없다.

숨은아이 2005-11-0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골"이라는 분은 모르시는군요. 용산에는 아직도 쪽방촌이 있다는 걸, 삼선동에는 아직도 달동네가 있다는 걸, 서울 외곽의 공단에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슬럼가가 형성되고 있다는 걸.

라주미힌 2005-11-0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

panda78 2005-11-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리플이 참으로... ;;

라주미힌 2005-11-0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뉘앙스가 비꼬는 거긴 한데,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에 대하여...

balmas 2005-11-0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감사.^^

로드무비 2005-11-0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리유,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