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김태수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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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의 미인 몸에 일사(一絲)도 부(附)치 아니한, 순진 나체사인지외다. 그 풍만한 육체미는 고상하고 쾌절재득(快絶再得)키 난(難)한 근세의 진사진이올시다.’ (367p)

무슨 뜻인지는 모호해도 말초신경 자극을 돕기 위한 매체와 관련된 광고임을 알 수가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신문에 난 누드사진 광고 문구는 직설적인 것을 넘어선 투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꼭 보시게’라고…
현대의 광고가 상품의 이미지와 필요하지 않아도 문화의 유행성을 강조하여 소비욕을 은근히 부추기는 것과 사뭇 다르다. 다른 것, 차이에서 느껴지는 호기심은 확실한 광고성을 지닌다.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그래서 이 책은 무지막지한 매혹의 향을 낸다.

광고를 더 훑어보면 빠져든다.

‘천지는 유구무한하여 만길불변이었마는 이내 몸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지라 청춘의 환희를 그 누가 싫다 하겠으며 조로의 비애를 그 누가 좋다 하겠으리요, ‘마력적 회춘법’, ‘허양 남자의 일대쾌보’, ‘경탄적 장춘술’, ‘발광하겠다던 조루 그만 전쾌’. ‘혼자서 속태우든 한을 풀었다’. ‘역방한 여성들이 깜짝 놀래’. ‘늙었다고 단념할 것은 아니다’… (374p)

역시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라도 과대 광고임을 바로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유쾌하다. 광고를 어찌 저리도 험하게 낼까. 광고 윤리의 법도는 없나?. 그래도 유가적 가치가 살아있을 법한 조선인데… 음란물 관리규정은?.
이 책에 답은 없다. 하지만 그 시대의 관심과 대중의 욕망을 반추 할 수 있는 자료임을 보여준다. 광고의 속성상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 꺼리임을 이 책의 저자는 파악하고 있고, 억압의 시대에 섹스산업이 흥한다는 통찰을 일제 시대의 누드 사진 광고에서 찾아 내자는 의도를 드러낸다.
삼천리(잡지)의 ‘접문(키스) 연구’란 글에서는 ‘죽을 때까지도 한 번도 딥 키스를 해보지 못한 조선의 민중들을 위해 각 나라의 키스법을 소개한 것’으로 급격한 도시화와 문자 해독층의 증가, 자유연애 풍조를 엿 볼 수 있다고 한다.

섹스 광고만 있느냐? 아니다 성병약 광고도 있다. 정말 빠져들지 않는가?

‘신성당의 약효력은 유선형 초스피드 비행기 동양’, ‘이 뜻을 모르면 무식자다. 현대는 경쟁시대다. 스피~드 시대다. 유선형 시대다’. (55p)

지금 봐도 난해한 이 모더니즘 카피 문구는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른 유선형 개념을 광고에 접목시킴으로써 병도 빨리 낫는다는 것을 모토로 삼은 것 같다. 어찌나 성병이 심각했는지, 결혼 전에 건강 진단서로 성병의 유무를 확인했으며, 신문 잡지에는 매독, 임질에 대한 발병 원인과 증상, 치료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났다.
1922년 8월 20일자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있으니 ‘인천 부사동 전석현의 처 문이성은 몇해 전부터 매독을 올니어 고통하든 중 인육을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듯고… 공동묘지에 파묻은 김귀원이란 녀자의 시체를 파내어…’ 그리고 이규태의 ‘버선발에 양구두’에는 이런 글도 있다. ‘경중에는 사람을 죽여 담을 빼는 자 심히 많았다… 한 의관이 말을 퍼뜨리길 사람의 담이 음창에 좋다 하였다… 거지들이 많았는데 사오 년래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음은 바로 사람의 담이 소용되는 자들이 죽였기 때문이다. 거지들이 없어지자 이제 어린이를 꾀어 담을 떼었다. 그러기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꽤 많아졌다.’

‘성병에 걸리지 않은 30대 내외의 남성은 5할도 되지 않는다’, 또한 ‘어느 병원의 100명중 12명이 성병 환자’라고 하니 성병은 국민병이 되었다.
섹스산업의 발달, 성병의 창궐의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 일본군 주둔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였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경찰국 위생 과장은 ‘조선의 50%가 성병에 걸렸으니 조선도 이제 문명국이 됐다’(51p)라며 헛소리를 늘어 놓았으니 이보다 좋은 역사책은 없을 듯 하다.

이외에도 근대의 조선으로 탈바꿈 하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은 극장, 껌, 고무신, 백화점, 과자, 커피, 라디오 방송 등의 광고와 신문기사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커피에 열광했던 궁궐, 강철보다 내구성이 강하다는 고무신, 최초의 극장 시설, 시설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과 칭찬, 극장에 들어갈 때에는 우물에 발을 씻고 들어가는 풍경 등은 현대의 풍경과 비교하는 재미를 만끽 할 수 있다. 특히 껌은 대중에게 사용법도 일러주어야 했다. ‘삼키지 말아야 할 별난 식품’ 아닌가. 최초의 껌은 피로 회복, 소화 촉진 등의 ‘기능성 제품’으로 광고 되었다. 라디오 방송에 관한 에피소드 중 ‘꾀꼬리 방송’은 가장 웃기는 대목이었다. 204페이지 참조 하시게…

재미만 있는 책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는 억압과 착취, 동원의 시대 아니었던가. 창씨개명을 독려, 협박하는 기사, 출산 장려(전쟁 동원을 위한), 단발령, 심지어 남자에게 국민복을 여자에게 앗빠빠라는 간단복과 몸빼를 강요하였다. 몸빼는 조선 민중의 억압의 역사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창씨 개명에 관한 단락은 몰랐던 사실도 알려준다. 창씨개명에 대한 당시의 인식은 무지에 바탕을 둔 오해한 찬성과 오해한 반대였다. 창씨란 호주와 가족에 부여되는 가(家)의 명칭으로 기존의 성(姓)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호적에는 기존의 본관을 적게 하였다. 왜냐하면 잘난 일본이 조선인과 일본인의 내재합일을 원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창씨개명의 본래 의도는 호구 조사를 통한 징병제의 근거자료로 쓰기 위함에 있었다. 어쨋든 조선의 이름은 촌티가 나서 낼름 바꾼 친일파나, 목숨으로 반대한 사람들의 당시 분위기는 극단적이었으나, 해학적인 면도 있었다.

‘태분창위(太糞創衛), 일본말로 읽으면 이누쿠소쿠라에, 개 같은 놈 똥이나 먹어라.(개명의 한 예)’

전쟁이 만든 상흔, 근대화가 내뱉은 파열음은 조선을 강타했다. 그것은 때로는 민중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도 했으나 때로는 강요했다. 그것은 역사에 기록은 되지 않았어도 신문, 잡지, 소설, 논문, 잡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책은 물론 저자가 모두 연구한 자료는 아니다. 수많은 학술 논문과 책들을 스크립하고 정리한 저자의 땀을 응축하여 탄생한 것이다. 미시사, 풍속사를 이렇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순간’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꼭 누리시길….

‘횡폭 적군의 응징은 폭탄으로, 설사 복통의 폭격은 헤루푸로…’(128p)


재미있는 퀴즈 하나
애(愛), 비(碑), 시(媤), 지(地), 의(依), 압부(鴨符), 지(芝)…
이게 뭘까요. 답은 61p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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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18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 중 1인으로 손 들겠습니다.
땡스투 누르고 보관함에 넣어요.^^

라주미힌 2005-07-1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내용이 많답니다 ^^; 즐거운 독서 되시길..

비로그인 2005-07-1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안녕하세요~ 저 책은 우리 남편이 거의 뒤집어지면서 읽은 건데요. 글케 재밌나봐요. 방금 저도 퀴즈 답을 찾아보느라 한번 봤지요. 으헤헤~ 답이 그거군요^^

라주미힌 2005-07-1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도 뒤집어지시는게 어떨런지요. 반갑습니당... ^^

panda78 2005-08-10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을밤 긴데 한번 보시요'에서 뒤집어졌어요. ^ㅂ^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근대에 관심이 생겨서 근대 관련 책 몇 권 찾아 읽을까 하는데 추천할만한 책은 없으신지요? ^^

진주 2005-08-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저요, 저 퀴즈의 답 저도 알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