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현수막의 관건은 호소력 있는 압축적 문구일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 걸렸던 것들을 보자. 지면이 제한된 현수막에 후보자 이름과 얼굴이, 아래와 같은 글귀와 함께 달랑 걸려있다고 생각해보라. “따뜻한 정치”, “○○동(洞)의 며느리”(무슨 뜻인지 파악 안 됨), “○○대학교 정책대학원 정치학 석사!”(희한한 후보 소개), “세금 도둑 잡는 홍길동이 되겠습니다”(단체장이 비리로 공석인 우리 동네에서 호소력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대한민국을 바꿀 서울시장”이었다.
서두에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그 현수막을 내걸었던 ‘진보’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3.6%를 득표했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가 0.6%였다는 상황은 적어도 이글에서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진보’의 득표율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당선에 기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 책임(?)을 ‘진보’ 후보가 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진보와 보수, 여야의 구분보다는 누구의 관점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그것을 나눌 것인가가, 더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고 본다. 한나라-민주-‘진보’정당, 이들 간의 차이가 오십 보 백보인가, 오십 보 만보인가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이는 다소 부연을 요구하며 글의 논지에서 벗어나므로 생략한다).

함께 길 가던 친구에게 저 구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 후보 지지자이다. 나도 (사안에 따라)그렇다. “좋잖니? 어차피 안 될 텐데, 인물은 대통령 감이라고 선전이라도 해야지”. 그녀의 말은 대통령(집권)이 목표인 정치 세력의 지도자에게 서울시장 ‘후보’는 중요한 지위와 경력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는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의 생각일지 모른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진보’비판이 아니다. 문제는, 이 문구가 전제하는 사고방식, 즉, 서울은 작은 대한민국 혹은 사실상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출신인 수도권에서 나와야 한다는(나올 거라는) 인식이다. “대한민국을 바꿀 서울시장”은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거다. 서울 외 지방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바꿀 충청북도 도지사”, “대한민국을 바꿀 영월군수”라는 말은 발화되기 어렵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가 우중(愚衆)정치라고 비판받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더 문제다. 서울시민, 그 중에서도 어떤 구민들은 자신의 한 표가 그냥 한 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일단 투표율에서 다른 계층보다 산술적으로 한 표 이상을 행사하며, 언론, 동산, 부동산, 인맥, 학벌, 연대감 등의 자본을 통해 이미 선거 이전에 표를 선점, 누적한 사람들이다. 선거가 권력 분배 방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며, 누군가 나서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상을 설파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선거는 ‘사탕’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선거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차선’, ‘차악’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을 바꿀 서울시장”은 특별시민에게 보내는 ‘진보’의 격려다. 아쉽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 일부 진보진영의 수준이다. 이 말은 서울시민들에게 “당신들이 이 나라의 실질적 주인이며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임을 상기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사람들은 과잉 재현, 과잉 대표, 과잉 주체화되어, 무의식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부풀려진 자아’를 갖고 있는데, 이 구호로만 보자면 ‘진보’ 후보는 서울시민들의 특권의식을 고무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지방 사람의 표는 도지사나 군수를 선출하는데 ‘그치지만’, 서울 사람의 한 표는 차기 대통령을 뽑는 것과 같다는 역사적 사명감(?)마저 일깨우고 있다.

서울은 하나의 지방이 아니라 ‘중앙’, ‘본부’, ‘대표’로 간주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서울’이라는 기호는 깊고 둔중하게 썩은 넝쿨, 가장 해체하기 어려운 권력의 경계(border)이다. 서울과 ‘비서울’의 위계는 너무나 체화, 정상화 되어있어 학력, 계층 등 다른 사회적 격차의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의 탈식민주의 학자 디페쉬 차크라바티는 <유럽을 지방화하기(Provincializing Europe)>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유럽은 다른 대륙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특수한 하나의 지역일 뿐이다. 유럽인을 인류로, 유럽의 역사를 세계사로 만든 것은 유럽인들의 총과 우월감 그리고 그들에게 맞서 싸웠던 이들이 흘린 피의 산물이지, 필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 규범, 시작, 매개라는 생각 역시 유럽이 세계화되는 과정과 비슷한 경로를 거친 것이다. ‘진보’까지 나서서 서울의 대한민국화에 앞장 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그보다 먼저 진보의 의미가 재정의되어야겠지만
 

http://hook.hani.co.kr/blog/archives/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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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0-06-1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멋진 지적..

머큐리 2010-06-15 17:34   좋아요 0 | URL
흠...나 이분 좋아해요...^^

라주미힌 2010-06-15 18:45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은 많은 여성분들을 좋아하시는군요~!!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0-06-15 19:04   좋아요 0 | URL
나도 이분 좋아해요 ^^

무해한모리군 2010-06-15 19:04   좋아요 0 | URL
그리고 저도 많은 여성분들을 좋아해요.

머큐리 2010-06-17 15:51   좋아요 0 | URL
나는 '라'님도 좋아해요~~ 메롱

비연 2010-06-1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