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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일에 알라딘 측의 글이 있다.
불매운동을 하는 분들도 이에 대한 반박이던 문제제기던 해야 하지 않나?
당사자의 입장도 들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양측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질문을 얻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불편하다'만 되새김질 하는 정도를 언제까지 지속 할 셈인가. 그 불편함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감은 어떤 식으로 해소할 것인가.
속인자는 없는데, 마치 속은 것처럼 분노하는 이유도 납득 할 수 없다.
(알라딘의 이미지는 알라딘에서 만든 것이 아니며, 일부 사용자들의 페이퍼에서 드러난 이미지를 그대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것 아닌가?)
일부 사용자들은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서 찾고, 그것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에서는 일견 합당함이 있으나, 그것이 없는 사람들과의 간극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개인적인 일이라 한계를 정한 것 치고는 영향력은 공공의 것이 되었다. 알라딘 불매 선언은 지나치게 쉬운 방법이며 그 어떠한 대안도 방안, 합의도 없이 불편함만 드러내놓는 현재의 상황은 알라딘의 각성 또는 개인적인 궁금증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냄새는 나는데 물증이 없다고, 그 증거를 알라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가 빠진 상황에서 그 이상의 얘기들이 오고가고 있는데, 비정규직 혹은 알바의 문제를 어디까지 보고 있는가도 짚어줬으면 싶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문제인가?
비정규직이 문제인가?
비정규직의 확산이 문제인가?
범위도 없이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라딘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용구조를 파고듬에 있어서 생활 속의 모든 것에서 발견과 행동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신용카드와 현금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소비행위와 서비스 및 농수산, 공산품에 이르는 모든 착취적 노동에서 오는 '소비자'의 이득을 거부해야 한다. 무료배송이 저절로 이뤄졌을까? 영화할인은? 온갖 쿠폰과 경품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에 머물러 있지 않은 요구는 기업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주어져야 하며, 실력행사도 그것의 지위에 맞게 높여야 한다. 알라딘의 입장은 지난 번 글로 파악된 바, 불매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행동이 뒤따랐으면 좋겠다. 원칙과 원론에 기반하여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그 위에 올려놓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슈는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방향이 알라딘에 달려 있는 것일까?
양심의 불편함을 달래기에는 이 곳이 너무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