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격리한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간 사람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화폐적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 아니었다.
"헬로우"
"후 아 유"
관계란 우연도 필연도 아닌 다가섬의 의지...
이곳에서 너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
언제든지 죽을 자유는 있지만, 살아 있을 자유가 의심스러워
공간 속의 공간, 물질 속의 물질 속에서 간신히 발견되어지는
소립자의 의미는 과연 보잘 것 없는가에 대한 탐구...
"이 옷은 정상인도 허수아비로 만듭니다"
껍데기를 벗으면 근저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름을 되찾고, 세상으로 나설 수 있다.
도심은 유위이지만, 그 안에도 무위가 존재한다.
어딘가에 정착하고자 하는 욕망이 무참히 무너졌지만,
계속 표류해야만 했던 인간은 다시 태어난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눈을 뜬 것처럼 세계는 더 이상 그들의 중심이 아니다.
'완벽한 심심함'은 발견의 시간이 흐른다.
벌거벗은 몸에서 짜낸 욕망은 똑똑함의 질을 바꿔버리고,
"진화라는 건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렇다! 나는! 졸라 맛있다."
어디든지 배달이 가능한 희망 한그릇에 생의 의지에 포만감이 차오른다.
하지만 불어터진 그릇 모양의 자장면,
졸라 맛있을까?
그것이 졸라 맛있는 순간.. 인간은 진화된 것일까.
소재와 위트의 상큼함에 비해,
희망의 무게는 깃털과 같았다.
아마도 자장면 가격에 반영되어서 그런 듯.
무책임한 희망의 과잉에 피로함을 느낀다.
재미로 사는건 아니니까..
아.. 재미를 위해 영화 봤지..
졸라 재밌다.
점수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