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클래식 - 조우석의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조우석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힘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약탈능력으로 과시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재산, 지식 같은 무형의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위게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체질’ 탓인지 남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그들은 안타깝게도 활동도 왕성하다. 좋게 말해서 노력파이기도 하지만, 그 노력은 ‘병적자기애’에서 출발하기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들의 정체성은 오로지 ‘구별짓기’, ‘거리두기’에 기반하며 타인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자신의 몸 값을 올리기 위해 충혈된 눈을 지닐 뿐이다. (광종(狂宗) 이명박처럼 잠이 없으면 더욱 좋지 않다.)

흔히 전문가, 마니아라고 불리는 부류들 중에 그런 인간들이 많은 것 같다. 대중이 갖고 있지 못한 영역을 ‘식민화’하고 그 식민지의 왕 노릇하면서 큰 소리를 친다. 대체로 ‘보통명사’를 나열하기를 좋아하고, 숫자와 인명에 강하며, 역사와 인문학적 지식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아름답게 꾸민다. 그런 점에 있어서 태생적으로 계층 음악이었던 클래식은 참으로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특별해지니깐. 적절한 미사여구로 음악을 글로 옮겨놓기까지 한다면 금상첨화렷다. 알아먹지 못할 말로 하면 더욱 효과가 좋다.

이 책의 저자는 클래식 마니아였다. 서문만 읽어도 클래식에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지식을 늘어놓는다.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이 클래식의 신화, 클래식이 안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인식, 화이트 콤플렉스, 클래식 울렁증을 깨려는 목적을 갖고 있어서인지 더욱 그렇게 보이려고 한다. ‘나 이만큼 알거든. 내 말의 권위를 인정해’

저자의 ‘전향’이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왜 그가 전향을 했는가는 읽어보아야만 했다. 15000원씩이나 주고 샀으니까. 객관적일 수 없는 부분까지도 무지막지하게 아우르는 ‘주관적 근거와 논리’들을 열거하고 있다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지만, 클래식이란 음악이 이성 중심주의고 제국주의 음악인데다 위-아래, 안-밖, 중심-주변부, 엘리트-대중을 구분하기 때문에 진정한 음악이 아니며, 음악가들은 과대 포장되어 진입장벽이 높은 시화적 상징이 되었고, 악보 중심주의에 의한 죽은 음악의 리플레이에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들은 그럭저럭 동감한다.

문제는 저자다. 그것에 매몰되었던 자기자신의 ‘구원’에 관한 ‘간증’을 無재수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것을 넘어서 대중을 계도하려고 까지 한다. ‘아직도 클래식에서 허우적거리십니까?’ 이런 뉘앙스…
“나는 여러분이 좀 더 자유로워지기길 기대한다” 307p

저자는 클래식의 신화를 창조하고 계급의식을 먹고 향유하던 축에 속했던 인물 아니었던가. 창조된 신화 뒤에 숨어서 지식권력, 문화권력을 유감없이 실컷 발휘하고 남은 저자의 콤플렉스 찌꺼기를 왜 우리 대중에게 떠밀지? 완전 웃겨.
음악은 듣는 사람의 코드와 해석의 영역에 존재한다. 개개인의 취향과 감각에 의존하는 분야인데 ‘배경’이 침투하여 해석의 오류를 만들어 내고, 그 틈으로 허세적, 계급적 침탈을 일어나게 한 당사자가 이제는 그것의 오류를 깨달았으니 너희도 깨달으라는 식의 ‘선민적 계몽’을 하나? 클래식 마니아의 비극적 사랑을 일반화하는 것은 명백한 오버다. 실컷 좋아하다가 그것이 성형 된 얼굴이라고 마음껏 내팽개치는 짓은 개인선에서 끝낼 일이다.
당신이 만든 상상 속에서 사랑한 그녀가 못났다는 것을 이제 알았는가?
'우린 속았어~' 가 아니라 '당신의 거짓말에 당신이 속은 거야.’
'
‘해석’의 달인들...
펜으로 '해석'과 '공감'을 대중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자신만의 '식민지'로 만들어간다. 자신의 역할을 대중 속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신화를 끊임없이 창조할 것이다. 그 신화가 깨질 무렵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그 속에 숨으려 할 것이다. 저들이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식민지를 잃어버리고 대중과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다.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이 사람의 '의식 속의 클래식'부터 구조조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클래식에서 재즈로 재료만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 마니아들은 말한다. 클래식을 수십 년 동안 오래 들어온 사람은 나이 들어 재즈로 바꾸는 게 일반적인 사이클이라고….” 10p
이젠 재즈라고? 마니아의 수순이라고?
재즈도 위험하게 됐군. 어쩐지 재즈쪽에서 잡음이 많이 들린다 했다.
'문제는 당신이야! 음악이 아니라'

글에 녹아있는 오만함이 "지루하고 짜증나는 클래식" 보다 더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구분 없는 음악”이 멀어져 가고 있음을 본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은 이제서야 '뭔가'를 깨달았지만, 여전히 어슬렁거리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공자 "교묘하게 꾸며진 말과 보기 좋게 꾸며진 표정에는 인이 드물다” 73p

책값, 시간값, 리뷰값 때문에 별 하나 더 깍아야겠다.
몇 년 만에 불쾌함을 한껏 받은 책이었다.
그런데 리뷰를 쓰다보니 배설의 쾌감을 느끼게 해줬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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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7-2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정말 속시원한 리뷰라 추천해요. 특히 7~8째줄, 명언이십니다. ㅋㅋ

바람돌이 2008-07-2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평들이 영 아니군요. ㅎㅎ
마니아문화가 그저 자신이 즐기고 행복해하는 것에서 끝난다면 그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타인에 대한 우월감으로 연장되는건 웃기죠? 근데 마니아들 중엔 꼭 그런 사람이 있어요. ^^

이팝나무 2008-07-2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속이 시원합니다.욕하면서 읽다가 오디오 가격 나오는 부분에서는 침을 뱉었습니다. 그런 우월감은 어디서 나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