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와 열쇠구멍이라....  그리고 문을 열다...
'유혹의 코드'가 아주 노골적이다.  야하다 야해.










제목이 무슨 뜻인가 했네.
그냥 '무삭제' 치정극 쯤으로 여겼는데 그런 것은 아니구만.


단순하게 탕웨이가 '색(Lust)', 왕조위가 '계(Caution)'일 거라는 추측은 빗나갔다.
색-계는 그 둘의 언어이고 욕망이었다.
그녀와 그는 색으로 상대의 계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자신의 계 마저도 무너진다.

여기서 탕웨이의 심리 변화에 집중을 안할 수가 없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순수하게 시작한 연극이었지만,
시대의 요구는 그러한 '욕망'을 소모품처럼 이용해 먹는다.
항일운동이 강요된 시대, 전체주의적 목적에서 벗어나 있는 '경계인'의 존재는 어쩌면 처음부터 허용되어 있지 않았다.
'유치한 애국놀이' 때문에 '꼭두각시 인생'이 되어 버린 한 여인의 비극을 그 누가 알아줄까.

언뜻 보기엔 납득할 수 없는 결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과연 사랑이었을까?
글쎄... 왕조위는 극심한 불안과 불신을 벗어나게 해준 유일한 여인이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럼 탕웨이는 사랑이었을까?
개인의 좌절과 비극을 '연극적인 삶'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예술혼'을 살리려고 했나.
막 부인이라는 배역이 아닌 그 자체가 된 것을 보더라도 그녀의 감정은 그 순간 만큼은 충실했던 것 같다.

   
  당신을 증오해요  
   


결국엔 그 증오의 몫은 '배역'의 주변에 있던 연극 동료이자 '항일운동단원'들에게 돌아간다.

왕조위가 존재 했기에 막 부인이 있었다는 점.
막 부인을 통해서 만이 그녀가 살 수 있었다는 점 때문에
왕조위의 죽음는 막 부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돌아갈 곳도 없는 '현실'에 이미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녀는 '연극적 삶'을 선택한 것이다.
막 부인을 진실로 받아들인 왕조위에게 어찌 증오를 남길 수 있으랴...

껍데기들... 허약한 애국심에 칼침을 놓는 탕웨이의 마지막 계(計)는 허무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을 얻은 탕웨이의 초연함과
사형장에서 다른 이들의 두려움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ps. 배드신 ...  모(毛)가 인상적이군 ㅡ..ㅡ;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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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9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남겨주는 뒷맛이 아주 무거운 영화였다 싶어요. 전, 별 넷!

프레이야 2008-01-09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 님 굿모닝~
제가 리뷰하지 못했던 부분을 잘 짚어주셨네요.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에요. 허약한 애국심,이란 단어가 박혀요.
열쇠와 열쇠구멍까지 포착하시다니요..^^

라주미힌 2008-01-0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증된 배우와 감독의 작품이란게 이런 경우를 말하나 봐요... :-)

다락방 2008-01-0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는 별 셋이었어요. 훗.

루니앤 2008-06-0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앞에 계략도 소용없는 영화였죠

아하하.. 毛
덕분에 다시보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