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영화제, 시사회.. 이런 것들은 이제 더이상 영화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니아들만의 은밀한 놀이터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시장통 같이 변해버렸다. 확실히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영화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인데 숨겨놓고 아껴 먹으려던 맛난 것을 그만 들켜버린 기분이랄까? 심술도 나고, 뒷방 신세가 된것 같기도 하고 묘한 심사다.
부산 영화제는 물론이고 부천, 전주, 광주 영화제와 여성 영화제, 그 밖의 크고 작은 무수한 영화제의 대부분의 티켓은 인터넷에서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난다. 현장에 가면 표를 구하느라 발을 구르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90년대 중반, 코아 아트홀 모니터 요원이라는 직분으로 수입되었으나 개봉을 기다리는 각종 영화들을 보았던 나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들끼리 실컷 들떠서 밤새도록 영화 이야기를 하며 희열을 느꼈던 그런 시절. 그 후 영화담당 기자였을 때 영화제 취재를 가면 프레스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보다 더 많을 때마저도 있었다. -.-
이런 현상은 똑딱이 카메라를 버리고 너도나도 프로패셔널하게 보이는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손에 들고 다니는 현상과도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인들 눈에는 아직 그게 생소한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사진 기자들인줄로 알기도 하더라. 인사동 같은 곳에서 저마다 호화로운 카메라를 손에 든채 묵직한 카메라 가방도 둘러메고 폼을 잡으며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다 취재단인줄 알았다는 관광객. -_-;;
동네 한 구석의 조용하고 아늑한 아지트가 사라지고 거대한 놀이터가 생겨나버린 것 같다. 북적거리고 시끌시끌하며 뭔가 대단한 놀이기구도 많아졌으나 그 옛날 땅에 막대기로 그림 그리거나 별것도 아닌 시시한 것에 몰두하며 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기분. 아, 어쩐지 폭삭 늙은듯 하다. ㅠ.ㅜ
그런데 이런 현상에서, 긍적적으로.. 이제 슬슬 세계적으로 이름을 내밀 만한 퀄리티의 사진가와 영화인들이 나와줘야 하는거 아니야? 하고 은근히 기대. 영화는 가시적으로 뭔가 보이기 시작했고 사진은? 글쎄 사진은 아직까지는 너무 잠잠한 것 같다.
영화감상과 독서가 촌스럽고 오래된 냄새 폴폴 풍기는, 취미라고 말하고 나면 어쩐지 뒷통수가 간질간질한 그 무엇이 되어버리고 나니 이제는 취미로 주말엔 출사 나가서 사진 찍는다는 말도 슬슬 그런 냄새가 난다.
유럽영화제도 당연하다는 듯 티켓 오픈 하자마자 일찌감치 매진이다. 그렇다고 내가 현장에서 죽치고 앉아 표를 구할 처지도 못되고. 이렇게 표를 못구해 포기했던 유럽 영화제(게다가 멀긴 또 좀 멀어! 삼성 메가박스). 운좋게 티켓을 어리버리 구하게 되어 금요일에 영화보러 간다.
영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티켓이 있다기에 간다고! 고!를 외치고 나서 무슨 영화표인가 알아보니 터키 영화 <기후>다. 아직 <우작>을 못봤는데. -_-;; 이 감독, 주연까지 맡았다잖아, 이번 영화에. 게다가 아내랑 같이 공동 주연이라니. 아아, 샘난다. 너무! (부인도 완전 미인이잖아. 어흑) 다만 나는 그의 롱테이크에 나의 눈꺼풀이 무너질까 두려울 뿐이다. 흐흐..
지난 번 여성영화제 심야상영에서 세편 모두 잠 안들고 다 본 이후, 정말 무지 오랜만에 가는 영화제다.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복잡하고 공기 안좋은 코엑스라는게 불만이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때가 아니지.
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