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산다는 것은 피터지게 사는 것도, 아등바등 사는 것도 아니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력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새싹들이 그 연하디 연한 정수리로 겨우내 얼어붙은 흙을 깨부수고 기적처럼 돋아나는 것이다. 낮잠 자고 일어난 고양이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을 다해 척추를 늘려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천성대로 열심히 살자. 위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술을 퍼마시고 폐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담배를 피우고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르고 머리털이 한 줌도 남지 않고 다 빠져버릴 때까지 사유하고 전 세계의 골목길을 산책하자.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아파하고 더 곰곰이 생각하자. 우리가 어린 씨앗이라면 최선을 다해 피어나 만발하자. 그리하여 더없이 찬란해지자. 그렇게 우리는 우리 식대로 이 황홀한 세계를 만끽하자. 그리 되었을 때 우리는, 특히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5년 전에 친구한테 이런 편지를 보냈었는데, 한참 잊어버리고 살다가 우연히 인터넷 어느 구석에서 찾아 다시 읽어보니 아니 이건 미래의 나에게 쓴 글이었잖아 역시 나의 선견지명이란. 친구여 그러나 번복할 것이 하나 있는데 술 담배 만큼은 이제 (살짝) 줄이기로 하자.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해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이 아름다운 세계를 최대한 오래도록 누려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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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8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십 년 전 신림동에서 스윙댄스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이 플로어 위에서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울기도 많이 했다. 남자 때문에 울고, 따가운 입방아에 올라서 울고, 어떤 날은 아무도 나랑 안 춰줘서 울고, 남이 추는 춤 구경하다가 황홀해서 울고. 돌이켜보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을 이 플로어 위에서 두루 겪어본 것 같다. 설렘, 도취, 환희, 흠모, 질투, 고독, 원망, 분노, 고마움, 그리움, 두려움, 연민, 허무, 권태, 모욕감, 배신감, 좌절감 등등. 이 위에서 만나서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었다. 그러니 여기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책의 세계가 차갑고 도저한 심해와 같다면, 춤판은 해수의 표면처럼 눈부시고 그 변전은 무쌍하다. 한 번 미워진 사람은 절대로 좋아지지 않고 가벼운 충격에도 오래도록 깊이 슬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춤판은 정말이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곳이었다. 그래도 여기가 참 좋았던 것은, 심해와는 다르게, 살아 움직이는 생의 현란한 순간들을 온몸의 감각으로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었단 거.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활자로 옮길 수도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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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5 0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6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급할 때는 조개가 제 껍데기 안으로 얼른 몸을 감추듯이 내 속에 숨어있으면 좋다. 내 속은 언제나 안전하지. 왜냐하면 내 속에 대해서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속에 대해서라면 나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나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이 검은 비닐봉지 같이 좁고 어둔 속에서 당분간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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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랬다. 잘 추는 로하고 추고 싶다. 영혼을 정화하고 심신의 평안을 얻으려면 주종을 막론하고 두주불사할 것이 아니라 귀하고 독한 술을 자기 전에 소량 마시는 편이 낫듯이 여러 명과 질 낮은 춤을 추기보다는 좋은 로와 깊고 강렬한 한 딴다를 추고 싶다. 좋은 로를 만나서 정신을 극도로 집중해서 오늘 하루 남은 기력을 다 바쳐 정성을 다해 출 수 있다면 단 한 딴다만 추고 가더라도 밀롱가에 온 의미가 생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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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히니아 판돌피에게서 농염한 관능미가, 노엘리아에게서 천진함과 순수함이, 제랄딘에게서 활기와 생명력이, 나탈리아 힐스에게서 절도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면, 마리아나가 보여주는 것은 자유다- 완벽한 정복에서 오는 자유. 아르쎄와 마리아나는 자유롭다. 이들한테는 탱고를 춘다는 표현보다 부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마부가 말을 부리고 신선이 도술을 부리듯이 얘네들은 탱고를 부린다. 이들의 춤 앞에서는 에세나리오와 살론의 구분조차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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