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유재현 지음 / 강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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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현씨의 쿠바 여행 사진집이라 할 수 있는 느린 희망을 참 인상적으로 봤었다.
<느린 희망>이 사진이 주인공이었다면
이 책은 쿠바를 여행하면서 작가가 고민하고 바라본것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쓴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실제 여정은 동서로 기다란 쿠바란 나라를 아바나를 중심으로
서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아바나로 돌아와 동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아바나로 돌아오는 3,500km에 달하는 엄청난 여정이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그런 쿠바의 도로여행이나 일반적인 여행자의 자연찬미, 문화찬미에 있지않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정은 다른 길을 따른다.
첫번째 길은 독립혁명에서부터 사회주의 쿠바혁명의 길이다.
그리고 두번째 길은 1990년대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멸망의 문앞에서 되살아난 쿠바의 오늘을 횡단하는 길이다.

첫 번째 길에서 우리는 곳곳에서 쿠바 독립의 영웅들을 만나고
또한 혁명 그 자체가 된 사람 체 게바라를 만난다. 또한 카스트로와 그의 동료들을 만난다.
유럽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이래 이 지역의 원주인인 인디오들은 백인들의 가혹한 노동착취에 의해 아예 멸종을 당해버린다.
한 인종 자체를 멸종시켜버리는 가공할 폭력이란....
그래서 쿠바에 인디오는 없다.
인디오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수입되어온 흑인들과 그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뮬라토, 소수의 백인이 이제 쿠바의 주인들이다.
아니 혁명전까지는 소수의 백인이 주인이었고 나머지는 노예였다.
189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위한 독립전쟁에서 흑인과 뮬라토 역시 투쟁에 나선다.
그 부대를 이끌었던 이가 안토니오 마세오였다.
그 역시 뮬라토였고 지금 그는 뮬라토로서는 유일하게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다.
쿠바의 서쪽 끝 피나르 델 리오에는 안토니오 마세오의 혁명광장과 기가 막힌 그의 동상이 있다.
쿠바의 동쪽 끝 관타나모 영웅 기념탑에는  순수한 흑인이었으며 모든 자식들을 혁명가로 키워냈던 안토니오 마세오의 어머니 마리아나 그라할레스의 두상이 영웅기념탑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쿠바의 양쪽 끝을 장식하고 있는 이 흑인 모자의 기념상은 어쩌면 오늘 날 우리 세계가 지향할 바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피부색에 의한 인간의 차별은 부당한 모든 차별의 대표주자중 하나일게다.
인간에 의한 인간 차별의 종식!
어쩌면 이 어머니와 아들이, 쿠바가 전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란마호라는 25인승 보트를 타고 쿠바로 향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82명.
그마저도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바티스타 정권의 공격을 받아 그들이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깊은 산중에 도달했을때는 겨우 12명으로 줄어있었다.
그 12명에서 본격적인 쿠바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만하면 전설이란 말 이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조그만 나라가 세계제국을 이룬 미국의 코앞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고 또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기적이다.
그것이 기적이기에 쿠바의 혁명 얘기를 듣는 것은 하나의 전설을 듣는 것이 된다.
또한 그 자신이 전설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를 곳곳에서 만나는 것 역시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가슴떨리는 노래가 된다.

두번째 길.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는 미국에 공세에 맞서 소련의 위성국가로 들어선다.
냉전시대 당시 쿠바는 국제시가의 3배 이상의 가격으로 사탕수수를 소련에 판매하고 원가 이하로 석유와 식량 공산품들을 소련으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받아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였다.
이러한 경제 체제는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당연히 같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체제였다.
1990년대 초반의 쿠바는 한마디로 온국민이 굶어죽을 위기라는 말 이외에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처지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걸 딛고 일어섰다.
도대체 어떻게.....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경제로의 진입도 아니고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1990년 당시 식량 자급률 40%를 오늘날 식량 자급률 95%로 바꿔놓은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석유가 없어 폐물이된 트랙터의 노동은 소들이 대신한다.
화학비료가 없어진 자리는 유기농이 대신한다.(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쿠바의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도시의 공터들을 모두 농지로 개편, 도시농업을 활성화시킨다.
거대한 국유 사탕수수농장을 잘개 쪼개 협동농장화 하고 작물을 다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과 지원은 철저하게 국가가 주도하며, 전 국민에게 식량 배급제를 실시한다.
국민들이 굶고 있던 시절에 정부 고위관료들이 호의호식한 흔적은 거의 없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쿠바의 국가 청렴도는 부동의 1위다. (물론 아주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연대의 모델을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베네수엘라와의 교역모델.
부족한 석유의 수입을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연대한다.
즉 차베스 정권 이후의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석유를 수출한다.
당연히 그 대금을 지불할 현금 능력은 없다.
대신 쿠바는 그 대금으로 의사와 교사인력을 파견한다.
차베스는 집권 이후 의료와 교육의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문제는 베네수엘라에서 이미 어느정도 특권층인 교사와 의사 집단이 누구도 시골 변방에 가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려하는 이가 없다는게 문제였다.
바로 그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 사업을 쿠바인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의료수준은 세계적이며 교사의 숫자 역시 우리와는 비교가 안된다.
아무리 어려웠던 시절에도 쿠바는 의료와 교육의 무상혜택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인구 170명당 의사 한 명, (학생이 아닌)인구 36.8명당 1명의 교사가 있는 나라가 쿠바다.
이들의 대우가 특별하냐? 아니다. 기껏해야 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 약간 많은 정도.
그나마도 근무조건도 좋지 않다.
오지중의 오지에 가서 근무하는것도 태반이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원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을 해내고 있다.

또한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금 공동의 의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잇다.
즉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에 사는 맹인 또는 시력장애 환자들을 쿠바로 불러들여 눈을 뜨게 한다는 것.
이 인도주의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가 자금을 대고 쿠바가 병원과 의료진, 환자와 보호자들의 숙식을 제공한다.
2005년 한 해에만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시각장애인 10만명에게 빛을 준 프로젝트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미국은 뭐하고 있냐고...
정치적 목적으로 아픈사람을 이용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젠장.....
쿠바와 베네수엘라와의 연대는 미국이 뭐라하든 이제 새로운 올바른 국제협력의 모델의 첫 출발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범을 따르는 나라가 없는게 문제지만 그것이 라틴 아메리카 전체로 번져가지 않을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꿈이라 할지라도 이제 시작하는 나라가 생기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쿠바에 문제가 없냐고?
모든 것을 환상적으로 잘 돼가고 있다고 열광하기에 작가의 나이도 사유의 깊이도 그리 얕은게 아니다.
애정은 애정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1990년 이후 경제붕괴 이후 외화의 부족은 쿠바에 이중경제체제를 발생시킨다.
국영체제 이후에 달러경제가 한 곳에서 따로 성장하고 있는 것.
미국 친척으로부터 송금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 생기고, 일부 관광업 종사자들 중에서 어느정도의 부유층이 형성되면서 빈부격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
새로이 생긴 달러상점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소비의 욕망을 증폭시키는데는 마찬가지다.
집권층에서의 부정부패보다도 오히려 일반 국민층에서의 부정.
국영공장이나 농장등으로부터 빼돌린 물건들을 암거래하는 암시장이 일반화되어있다.
이러한 이중경제는 물론 국가의 단속대상이지만 그것이 워낙에 광범위하다보니 완전 ?결은 불가능.
아직은 그것이 국가 체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번 풀린 욕망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바의 미래가 밝기만 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쿠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을 들어보자.
  천국도 지옥도 아닌, 몰락을 면하고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일 뿐인 쿠바, 지구 반대편의 이 이상한 나라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쿠바의 시선으로 쿠바를 보면 그 너머에 우리 안의 일상호된 잔혹함과 비인간성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꼴을 볼 수 있다. 그 그림자가 주는 영감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회주의적 영감이 사라진 자본주의만큼 참혹한 체제는 없는 법이다.(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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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7-01-11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 보고 바로 질렀습니다 ^^
전자책이라서 땡스투를 못 드리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흑흑 ㅠㅠ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

바람돌이 2007-01-1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땡스투가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가 같이 좋아해주고 보고싶어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입니다. ^^

글샘 2007-02-1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느린 희망과 요놈을 재빨리 빌려왔습니다. 주말에 보려 했는데, 학교에 두고 왔군요. ㅠㅠ 느린 희망과 비슷하겠네요. 좀 상세하겠고... 아, 쿠바에 가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07-02-1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린 희망은 사진 중심이고 요건 여행기 중심이지만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쿠바 가보고 싶어요. 카스트로가 죽기전에 가긴 틀린것 같아 좀 아쉽네요. 이후 쿠바는 어떤 식으로든 또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내 책만 디립다 사면서 한두권씩 애들 책 끼워주다가 이번 주문에는 아이들 책만 샀다.
어제 주문했는데 그 먼 길을 하루만에 달려온 기특한 책들.
요즘 집에서만 뒹굴고 있으니 모처럼 아이들이 열광하는 책 종류로만 사줬다.

 

 

뭐 이런 책에 열광이냐고?
나도 알 수없다.
왜 열광하는지....
학습지고 뭐고 학습과 관련된건 하나도 해주는게 없는데 서점에 스티커 책 사러갔다가 예린이가 이걸 보고 사고 싶어 하길래 뭐 하다 그만두겠지 싶어 그냥 사줬는데 장난이 아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해치운다.
물론 옆면의 글자쓰기는 거의 안한다.
오른쪽 면의 각종 양식의 문제들을 푸는 재미에 열광한다고 할까?
그런데 한 번 잡으면 그만두지를 않는지라 직장 다니는 평소에는 일부러 외면하고 안사준다.
2년동안 1-5단계까지 5권 사줬다.(게으른 엄마.... ㅠ.ㅠ)
이번 방학때는 좀 해주자 싶어 주문.
늘 언니걸 보고 부러워 하는 해아를 위해 1,2단계도 같이....

 

 

 

숨은 그림찾기!! 역시 열광하는 책이나 이것 역시 한 번 하는데 시간이 무지 걸려 외면하던 것.
이것보다 훨씬 간단한 찾기인 구석구석 재미있는 세상도 정말 한 번 시작하면 한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는데...
오늘 온걸 보니 장난이아니겠다.
아이들은 좋아 죽을거고 나는 죽었다.

 

 

 

퍼즐 역시 아이들이 사족을 못쓰는 분야....
다른 퍼즐과는 좀 색다르게 놀 수 있을 것 같아 산것.
동물 입체퍼즐과 공룡 입체퍼즐....(공룡은 해아가 좋아한다.)
다행스럽게도 요건 내 몫이 아니다.
아무리 간단한거라도 손으로 뭐 만들고 하는건 나는 거의 젬병!!
앞의 두개가 고스란히 내몫이듯, 요건 완전히 옆지기 몫이다. ^^

지금 아니면 언제 해주겟냐만은 내일부터 하루종일 저것들을 붙들고 있을 녀석들.
그리고 그 옆에서 끊임없이 가르쳐줘야 될 나를 생각하면 한숨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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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7-01-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하 만쉐만쉐! 한글을 거의 손도 안대고 어린이집선생님께 맡긴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텐포드한글떼기 참 좋아요. 저는 여타 다른 것보다
제일 나은 듯^^
그리고, 찾기그림들도 퍼즐도 몽땅 파랑이가 거의 알아서 ..아하하하하
(이제 보니 저는 엄마가 아니었군요..으흑흑)

앨런 2007-01-1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조카들에게도 있는 책이라 반갑네요. 우선 '난 네가 보여'-이 책은 서재들을 구경하다 제가 조카들에게 사 준 책인데, 얼마나 고생 중인지 모르겁니다. 이게 쉬운게 아니더라구요. 게다가 큰조카가 너무나 좋아해서 더욱 심한 고생을 하고 있지요.어려워서요.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지금 46개월인 큰 조카와 한글떼기를 하고 있어요.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왜냐면 자꾸 필기구를 잡고 힘을 써야하니까요. 생각해보면 그 옛날에 저도 그랬을거거든요.^^;;;;;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 ㅣ 어린이중앙 그림마을 1
도린 크로닌 글, 베시 루윈 그림, 이상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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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받고 한 번 읽어주자 마자 아이는 데굴 데굴 구른다.
줄곧 이 책을 들고 엄마 탁탁 톡톡 음매~~ 책 읽어줘라며 조른다.
저 탁탁 톡톡 음매~~라는 의성어가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다가가는 것 같다.
의성어 하나가 그림책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완전히 실감하게 된다.

만화체에 가까운 그림체
재미난 의성어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좋아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연히 헛간에 버려진 타자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젖소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농부 브라운씨에게 전달한다.
"헛간이 너무 추워요. 전기담요를 마련해 주세요"
젖소가 타자를 치다니 브라운씨는 절대 안돼 하면서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세상에 젖소가 파업을 벌인다.
우유없음.
더더욱 놀랍게도 닭들까지도 파업에 참여한다.
달걀없음.
이 상황에 놀란 브라운씨는 상황파악을 못하고 강경대응.
하지만 현명한 젖소들의 협상제안으로 협상은 타결된다.
타자기를 돌려주고 전기담요를 교환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협상의 중재자로 오리가 등장한다.
이제 젖소들과 닭들은 더 이상 밤에 춥게 지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면 브라운씨는 타자기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오리들이 각성했다.
이제 농장은 탁탁 톡톡 꽥꽥~~~하는 소리로 요란하다.
오리들의 요구는?
그 기발한 요구는 책을 볼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자.

직접적으로 너의 생각과 요구를 정확하게 제대로 말할 줄 알아라고 하는 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심각하고 너무나 중요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할수 있다는게 너무 놀랍다.

그런데 큰일났다.
이 책을 본 이후 우리집 딸래미가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편지의 내용이 주로 엄마 사랑해요류가 다였다.
근데 오늘 두 개의 편지는 명백한 요구사항을 쓴거다. 
물론 타자기가 없으니 손으로 쓴 편지 하나와 내 핸드폰 문자로 날아온 편지다.

첫째, 핸드폰 문자 - 엄마 일어나 언제까지 잘거야 이 잠꾸러기야
둘째 손으로쓴 편지 - 엄마 컴퓨터 더하고 싶어

배운걸 바로 써먹는 딸래미를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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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7-01-0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이 책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죠? 저도 자주 읽어준 책이어요. ^^ (앞으로 또 어떤 편지들을 내밀지 흥미진진해지는데요? -.-)

sooninara 2007-01-0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운것은 써 먹자...좋은걸요.
우리아이들은 핸드폰 문자 못 보내는데...대단하네요.
아영엄마와 같이 저도 앞으로의 편지가 기대가 되네요. 요구사항이 엄청 많아질듯..

바람돌이 2007-01-0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오늘 받은 편지는요. "못난이 공주아니야 엄마에게, 권예린 공주가"라는 편지였습니다. ^^
수니나라님/아이들이 기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배우겠다고 생각하면 순식간이네요. 핸드폰 가지고 노는걸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요즘은 저도 모르는 핸드폰의 기능들을 찾아낸답니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요.

울보 2007-01-0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요즘 아이들 너무너무 빠르다니꺼요,,

바람돌이 2007-01-0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울보님. 어떤 면들은 정말 따라잡기도 힘들정도라니까요? ^^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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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대인 학살이냐? 아우슈비츠냐?라고 어떤 사람은 빈정거린다.
그것은 기막히게 또 정신대냐? 그 과거에 좋지도 않은 얘길 뭐하러 자꾸 하냐?는 말과 너무나 똑같다.
후자의 말은 내가 재직하던 학교의 모 교장에게서 직접 들었던 말이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 귀막고 눈먼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제대로 들어봐준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고?

쁘리모 레비는 우리에게 전혀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이탈리아 사회에 정착해 섞여 산지가 워낙 오래되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건 쌍커풀이 있냐 없냐의 차이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던 청년이 그다.
그 차이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탈리아 북부에 진격한 독일군은 바로 그 사소한 차이 때문에 이 젊은이를 아우슈비츠로 끌고 간다.
아우슈비츠라는 逆유토피아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에 속했다.
더더욱 운좋게도 돌아갈 곳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많은 유대인과는 달리 그는 정든 고향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그의 삶은 자신이 겪은 것을 증언하기 위한 삶이었다.
그것은 복수도 아니었고 원한도 아니었다.
그의 고민은 늘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데 가있었다.
그는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미워할수도 벌을 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의 내면, 문화 속 어디에서 그런 잔혹함이 터져 나올수 있는지를 알고싶어했다.
그것만이 진정한 아우슈비츠의 끝을 낼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끝내 그는 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는 사실 그 이전 제국주의 국가들이 모든 식민지에서 행하던 폭력의 반복이었다.
다만 유럽밖을 대상으로 하던 폭력이 유럽 내부로 향해졌다는 차이일뿐....
또한 그러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인간말살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우슈비츠는 끝나고 싶어도 끝날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아우슈비츠라는 개념은 이제 오히려 새로운 폭력의 상징이 되기까지 한다.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모든 폭력에 대해 정치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말도 안되는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폭력의 가해자에게 보편적인 인간평등의 개념은 구호일뿐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다르다.
인간이하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 그 개념을 구원할 역사적 책임까지 떠맡아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인간이하로 떨어졌다 살아남은 경험은 평생의 악몽이 되어 그를 따라다닌다.
인간이하를 감내하고 저항을 외면함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수치심. 죄의식.....

이런 피해자들에게는 어쩌면 그 악몽의 기억이 오히려 원히 생생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술을 먹고 하는 일상이 오히려 꿈결같아 두렵지 않을까?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렇게 학살하고 있을때에도 어떻게 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
그런 의문속에서 사는 이들의 삶이 늘 위태로울 것은 뻔한 일이다.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질문의 대답.
단순히 학살에 가담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냈던 국민국가 전체의 문제점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방관과 무지 역시 역사적 책임을 져야하는 죄악임을 인지하는것.
그 어느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시대.
몇몇 전범의 처벌과 재판으로 모든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시대.
그것을 자신의 면죄부로 활용해버리는 사람들의 무신경함.
그럼으로써 태연하게 똑같은 죄악을 되풀이하는 시대
저자인 서경식씨가 쁘리모 레비를 통해 보여주고자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 아닐까?

나는 가끔 내가 대한민국인이라는게 부끄럽다.
피해자에서 어느 순간 가해자로 돌변한 내 나라 사람들을 볼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공연한 무시와 학대는 또 아우슈비츠냐? 또 정신대냐?라고 묻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증언에 눈돌리고 공감하지 않는 사회의 무서움이다.
서경식씨는 글은 그러한 사회에 제발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제대로 정말 제대로 들어보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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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7-01-0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정말....제대로 들어보도록 하겠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쩌면...맨날 하던 얘기가 아니니까 '뉴스'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수많이 킬해버린 많은 사연들도 제대로 들어보고 제대로 전해야했을텐데...우리는 늘 후끈 달아오른 오늘 얘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들어라, 제발 들어라!'라는 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각인해놓아야될텐데...^^;;

바람돌이 2007-01-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세기를 증언의 시대라고 하는데 그만큼 폭력이 심했다는 거겠지요. 우리가 그런 증언들에 좀 더 진지하게 귀기울이고 생각한다면 그런 폭력들이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가 생각해봤습니다.

글샘 2007-02-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랜만에 제값주고 샀습니다.^^ 느긋하게 읽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07-02-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씨의 글은 천천히 음미하며 사색하며 읽기에 딱 좋은 것 같아요. 많은 고민을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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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가 비교 불가능한 '유일무비'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우슈비츠'는 '비교가능'한 사건이다. 비교 후에 도출된 대답은 그것이 과거 인간 또는 인간사회의 제도가 보여줄 수 있었던 냉혹함과 잔인함의 극한적 실례라는 것이다.
비교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누가 어떤 동기로 비교하는가일 것이다. 내가 '아우슈비츠'와 한국의 감옥을 상상하면서 관계지은 것은 '아우슈비츠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는 식의 언사로 나찌의 범죄를 상대화하려는 시도에 가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감옥이 아우슈비츠보다 낫다는 등의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거기에서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유일무비'하기 때문이다.-138쪽

저항의 의지조차도 전면적으로 파괴된 굴욕의 기억. 자신은 '카인'이라는 자기 고발. 증인으로 자신이 적격한지를 둘러싼 의혹(하지만 궁극적으로 '진정한 증인'은 죽은 자이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자신도 인간이라는, 수치심을 느껴야 할 종족의 일원이라는 생각..... 이렇게 몇겹으로 쌓인 수치의 감각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어가자 쁘리모 레비는 자신의 몸은 '심연의 바닥'에 내던진 것일까?-179쪽

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려야 했을까?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가해자와 수치까지도 피해자가 고스란히 받아서 시달려야 하는, 이 부조리한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의를 실천하는 고덕한 성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 번 파괴된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려고 하는 한, '인간'이 저지른 죄는 어김없이 그들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181쪽

나는 '아우슈비츠'가 단순하게 우리에 대한 도덕적 경종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근대에 기인하며, 지금도 현실 그 자체에 내재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는 '일부 인간은 인간이하'라고 하는 사상, '인간은 비인간이다'라는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한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192쪽

아렌트는 그 후에 쓴 <집단의 책임>이라는 논문에서 '죄'와 '책임'의 개념을 명확히 구별한다. 그녀는 "우리 전부에게 죄가 있다"라는 호소가 현실에서는 실제 죄를 지은 자를 무죄방면하는 데 일조할 뿐이었다고 말한다. '죄'는 법적 개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과 관련된다." 그와 다르게 정치 공동체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할 , 정치적 의미에서의 '집단적 책임'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독일인'이라는 집단 중에서 '죄'를 지은 개인은 있지만 '독일인' 전체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인 전체의 죄'라는 생각은 오히려 죄를 지은 개인을 은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행위에 '집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211쪽

증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증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편'의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그로테스크한 것은 '이쪽'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인간'이라는 이념이 보편적으로 공유된 단순 명쾌한 세계가 아니다. 단절되고 금이 간 세계다.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말은 단절을 숨기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단절 속에서 온몸으로 떨쳐 일어난 증인들이 '인간'의 재건을 위해서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편'의 사람들은 보신이나 자기애때문에, 천박함과 나약함 때문에, 상상력의 빈곤함과 공감대의 결여 때문에 증인들의 모습을 바로 보지않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장 아메리도 쁘리모 레비도 자살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7년 12월 16일 이 세상을 떠났다. 폭력의 세기를 증언한 산증인들은 전 세계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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