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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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대인 학살이냐? 아우슈비츠냐?라고 어떤 사람은 빈정거린다.
그것은 기막히게 또 정신대냐? 그 과거에 좋지도 않은 얘길 뭐하러 자꾸 하냐?는 말과 너무나 똑같다.
후자의 말은 내가 재직하던 학교의 모 교장에게서 직접 들었던 말이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 귀막고 눈먼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제대로 들어봐준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고?

쁘리모 레비는 우리에게 전혀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이탈리아 사회에 정착해 섞여 산지가 워낙 오래되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건 쌍커풀이 있냐 없냐의 차이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던 청년이 그다.
그 차이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탈리아 북부에 진격한 독일군은 바로 그 사소한 차이 때문에 이 젊은이를 아우슈비츠로 끌고 간다.
아우슈비츠라는 逆유토피아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에 속했다.
더더욱 운좋게도 돌아갈 곳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많은 유대인과는 달리 그는 정든 고향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그의 삶은 자신이 겪은 것을 증언하기 위한 삶이었다.
그것은 복수도 아니었고 원한도 아니었다.
그의 고민은 늘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데 가있었다.
그는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미워할수도 벌을 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의 내면, 문화 속 어디에서 그런 잔혹함이 터져 나올수 있는지를 알고싶어했다.
그것만이 진정한 아우슈비츠의 끝을 낼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끝내 그는 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는 사실 그 이전 제국주의 국가들이 모든 식민지에서 행하던 폭력의 반복이었다.
다만 유럽밖을 대상으로 하던 폭력이 유럽 내부로 향해졌다는 차이일뿐....
또한 그러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인간말살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우슈비츠는 끝나고 싶어도 끝날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아우슈비츠라는 개념은 이제 오히려 새로운 폭력의 상징이 되기까지 한다.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모든 폭력에 대해 정치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말도 안되는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폭력의 가해자에게 보편적인 인간평등의 개념은 구호일뿐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다르다.
인간이하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 그 개념을 구원할 역사적 책임까지 떠맡아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인간이하로 떨어졌다 살아남은 경험은 평생의 악몽이 되어 그를 따라다닌다.
인간이하를 감내하고 저항을 외면함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수치심. 죄의식.....

이런 피해자들에게는 어쩌면 그 악몽의 기억이 오히려 원히 생생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술을 먹고 하는 일상이 오히려 꿈결같아 두렵지 않을까?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렇게 학살하고 있을때에도 어떻게 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
그런 의문속에서 사는 이들의 삶이 늘 위태로울 것은 뻔한 일이다.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질문의 대답.
단순히 학살에 가담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냈던 국민국가 전체의 문제점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방관과 무지 역시 역사적 책임을 져야하는 죄악임을 인지하는것.
그 어느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시대.
몇몇 전범의 처벌과 재판으로 모든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시대.
그것을 자신의 면죄부로 활용해버리는 사람들의 무신경함.
그럼으로써 태연하게 똑같은 죄악을 되풀이하는 시대
저자인 서경식씨가 쁘리모 레비를 통해 보여주고자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 아닐까?

나는 가끔 내가 대한민국인이라는게 부끄럽다.
피해자에서 어느 순간 가해자로 돌변한 내 나라 사람들을 볼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공연한 무시와 학대는 또 아우슈비츠냐? 또 정신대냐?라고 묻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증언에 눈돌리고 공감하지 않는 사회의 무서움이다.
서경식씨는 글은 그러한 사회에 제발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제대로 정말 제대로 들어보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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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7-01-0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정말....제대로 들어보도록 하겠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쩌면...맨날 하던 얘기가 아니니까 '뉴스'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수많이 킬해버린 많은 사연들도 제대로 들어보고 제대로 전해야했을텐데...우리는 늘 후끈 달아오른 오늘 얘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들어라, 제발 들어라!'라는 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각인해놓아야될텐데...^^;;

바람돌이 2007-01-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세기를 증언의 시대라고 하는데 그만큼 폭력이 심했다는 거겠지요. 우리가 그런 증언들에 좀 더 진지하게 귀기울이고 생각한다면 그런 폭력들이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가 생각해봤습니다.

글샘 2007-02-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랜만에 제값주고 샀습니다.^^ 느긋하게 읽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07-02-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씨의 글은 천천히 음미하며 사색하며 읽기에 딱 좋은 것 같아요. 많은 고민을 던져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