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 덕분에 한참을 추억에 빠져 허부적대며 혼자 빙그레 웃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물만두님처럼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 못하고 오줌싼 기억,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하고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인 양 쇼했던 기억,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개겼다가 1년 내내 고생한 기억,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화단 대신 채소밭을 가꾸고 비빔밥을 해먹던 기억,
중학교 1학년 때 남자반장 대 여자부반장으로 패가 갈려 아웅다웅했던 기억,
중학교 2학년 때 1주일간 왕따 당했던 기억,
중학교 3학년 때 호랑이 학생부 선생님이 담임이 되어 겪었던 파란만장 기억,
고등학교 2학년 때 야간자율 학습하고 집에 가던 길 만나던 삼행성과 카시오페아의 기억,
고등학교 3학년 때 땡땡이치던 기억,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다 그리운 추억이네요.
그중에서 오늘 끄적일 건 고등학교에 입학한 봄날의 해프닝들~
오빠가 둘인 탓도 있고, 성격이 괄괄했던 탓도 있고, 아스케키를 끔찍하게 싫어하기도 했던 터라
초등학교 입학 후 입어본 치마는 명절 때 한복 정도?
그런데 여고로 배정받으니 교복을 입어햐 하더라구요. 그것도 360도 플레어 스커트를!
매일같이 치마를 입는 게 한편으론 당황스러웠지만,
우리 학교 춘추복은 일대에서 제일 예쁘다는 평을 듣는지라 은밀한 기대감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뿔사. 치마를 워낙 입어본 적이 없으니 치마의 속성을 몰랐던 겁니다.
등교 첫날. 우리 반엔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가 없어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중학교 때 단짝 하나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절 부르더라구요.
신이 나서 쫓아나가는데 습관대로 별 생각없이 책상을 뛰어넘다가!!!
우당탕 콰당탕 치마폭이 의자 등받이에 걸리는 바람에 의자랑 책상과 함께 넘어져 나뒹굴렀습니다.
아픈 것보다 쪽팔린 게 더 컸죠. 여고 첫날 개망신을 당했다 싶어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여자아이들의 비명 때문에 뭉갰다간 더 창피하겠다 싶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른 일어나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가 반갑게 인사했죠.
하지만 이미 배꼽잡고 웃고 있던 친구는 한참을 낄낄대다 간신히 말하더군요.
"너, 거울 좀 봐."
화장실에 가보니 양쪽 스타킹이 줄이 나갔을 뿐 아니라
속치마 단이 뜯어져 교복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더군요.
수업종이 울려도 다시 교실로 들어가기 싫더이다.
추억 두번째.
학교 주변에 3개의 남자 고등학교가 포진해 있었는데,
어느날인가는 아무 생각 없이 교복을 입은 채 지하철 통풍구 위를 걸어간 것입니다.
360도 플레어 치마가 펄럭여 얼굴을 덮더군요.
사방에서 휘파람이 울려퍼지고 그 와중에 날라든 야유도 한 마디.
"무다리로 마릴린 몬로 흉내내지 마라. 오빠들 눈 버린다~"
추억 세번째.
춘추복은 그래도 예뻤는데, 하복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특히 윗도리의 경우 남자들 여름 와이셔츠에 쓰는 반투명한 얇은 천이라
우리들은 무척 싫어했지만, 주변 남학생들에겐 인기 최고였죠.
특히 비라도 오는 날이면 썬데이 서울 저리 가라였습니다.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어 결국 다음해부터 천 종류가 좀 더 두꺼운 거로 바뀌었는데,
의외로(?) 숙맥같은 구석이 있던 전 새 블라우스를 사달라는 말을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에게 못했다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속옷이 비칠까봐 3년 내내 안에 티셔츠를 더 입거나 조끼를 덧입었더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꽉 막힌 아이였습니다.
그때는 그 교복이 참 지긋지긋했는데, 지금도 머리로는 교복 입히는 것을 반대하는데,
가끔 길에서 우리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면 더럭 반가운 마음이 들고 단발머리가 이뻐 보이니,
저도 꽤나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