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학당 얘기를 안쓴지 오래됐네요. 사실 쓸 얘기가 없다기 보다는 쓰다보면 아이들 신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많고, 그런 얘기들은 사실 좀 꺼려집니다. 슬픈 일들도 있었고....
어제는 아이들이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잔뜩 들떠 있기에 심각하게 얘기하기에는 그렇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얘들아 내일은 빼빼로 데이가 아니고 '농업인의 날'이란다. 요즘 농민들이 얼마나 힘든데 우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빼빼로 대신 뻥튀기나 선물하면 어떻겠냐"라고 했더니 애들이 뒤집어 집디다.
뭐 그냥 그러고는 말았습니다. 나오면서 "아참 그놈의 뻥뛰기도 전부 수입산 쓸건데... "싶었지만 뒤늦은 생각이었고요. 그리고 애들이 그렇게 들떠있는데 그것도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이지 싶어서 심하게 말리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오늘 아침. 저는 다 잊어먹고 들어갔는데 이 녀석들이 진짜로 뻥튀기를 사온겁니다. 제것만요. 저희들끼리는 빼빼로는 빼빼로대로 선물하고 뻥튀기는 나눠먹고, 일부는 제꺼라고 뻥튀기 주고....
덕분에 하루종일 뻥튀기 잔뜩 먹었습니다. 사실 빼빼로보다는 뻥튀기가 훨씬 맛있잖아요. ^^
우리반에 늘 애교만점에 하하호호인 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아무리 혼나도 그 때뿐이고, 화가나도 잠시 짜증내고 나면 그 뿐인 녀석이지요. 그런데 그 녀석이 오늘 하루종일 너무 심각하게 우울합니다. 전에 없던 일이라 걱정이 돼서 살짝 불러 물어봤더니 다른 학교 다니는 남자친구가 빼빼로를 안줬다는 겁니다. 참 내~~~
그냥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녀석은 심각한데 거기다 대고 이런 철없는 하는 것도 속상해할 것 같아서....
우리 옆반에 좀 반항적으로 생긴 녀석이 있는데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좋습니다. 저는 별로 안좋아합니다. 늘 저에게 안좋은 말만 합니다. "오늘 선생님 입술 색깔이 왜그래요? 좀 지우지요. " 내지는 "오늘 옷 뚱뚱해보여요" "오늘 화장 안하고 학교 왔어요" 등등 나의 외모에 대해 어찌나 까탈스럽게 구는지.... ^^
근데 이녀석이 오늘 받은 빼빼로 끝내주더군요. 저도 모른답니다. 다른 반의 어떤 여학생이 주고 갔다는 겁니다. 생긴 모양은 원조 빼빼로 30여 통을 평면으로 놓고 빨간 리본을 한 개씩 전부 묶어서 빨간 테이프를 둘러 하트모양을 만들었더군요. 그 정성, 그 돈 으악~~~ 오늘 핸폰도 깜박하고 안 챙겨가는 바람에 사진을 못찍은 게 천추의 한이랍니다.
이놈의 빼빼로 데이란게 못마땅한 걸 보면 나도 늙었구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이날 하루동안이라도 아이들이 설레어 하는 모습이 보기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비싼 바구니들의 빼빼로는 등골이 휘어질 그녀석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영 마음이 좋지 않구요.
참 우리반에 커플이 하나 생겼는데요. 이 녀석들이 생각보다 오래 갑니다. 오늘 지들끼리 빼빼로에 인형 선물에 난리도 아니더군요. 그러면서 저보고는 찌꺼기 하나도 안주더군요. 그래서 청소시간에 그 녀석 쇼핑백에서 하나 뺐어왔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누드 빼빼로로....
님들은 오늘 빼빼로 드셨나요? 아님 뻥튀기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