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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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나와 다르다는 것에서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은 신기함과 불편함이다. 신기함이란 감정은 다름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을 때의 느낌이고 그 다름이 나와 관계를 맺을 때는 불편함이라는 감정이 더 다가온다. 나와 다른 신체, 다른 생각, 다른 언어 그 무엇이든지... 사소하지만 길에서 갑자기 영어로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을 만나면 간단한 회화조차도 허둥거리게 되는 상황이라든지, 나보다 덩치가 아주 큰 사람 앞에 섰을 때의 불편함이라든지 그런 것 말이다. 다르다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이고 모르는 사물, 상황에 대해 방어 본능부터 작용하는 것이 인간의 어떤 기본 마인드랄까? 


 책도 마찬가지여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거나 전혀 모르는 소재를 만날 때에는 이 등장인물이나 사물이 착한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긴장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책 속의 세계가 내게 위해를 끼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 때문에 긴장의 강도가 높지는 않지만 외계 생물체를 다루거나 이방인으로서의 순간들을 다룬 무수한 소설들을 볼 때 일단 긴장부터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우리의 주인공에게 위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일단 의심하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타자가 무해함이 서술되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초엽의 세계에서는 그런 방어막이 필요하지 않다. 그간의 작품들을 봐온 결과 어떤 존재도 타자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으며 어떤 다름도 결국 공감과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는걸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긴장도가 떨어질까? 아니다. 김초엽의 소설을 읽는것은 상상할 수 있는 무한대의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고, 그 세계가 우리 사회의 변형임을 눈치채는 것이고, 그리고 그 세계의 화해와 공존의 힘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김초엽의 세계는 이상하고 슬프지만 따뜻한 곳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억압된 긴장없이 그가 만들어낸 세계를 즐기고 그리고 나와 세상의 연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꿔요. 그 욕망 중 쉽게 승인되는 것들은 거대한 시장을 이루죠. 하지만 승인 받지 못한 욕망들도 결국 어디론가 흘러들어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요. 그런 갈망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17쪽


딸이 어느 날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엄마 하트 하나만 그려봐

왜?

아 그냥 그려봐. 아빠도

그리고 며칠 뒤 큰딸 본인까지 4명이 그린 하트로 딸은 팔뚝에 문신을 하고 왔다.

야 너 이럴거면 말을 해야지. 그러면 예쁘게 그렸을거 아냐. 이 찌그러진 대충 그리다 만 것 같은 하트는 뭐냐?

딸은 어차피 못 그리면서 뭘? 이러고 말았다.

그런 딸에게 또 걱정이 되어서

야 너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남친 이름 새기는 문신은 절대 안돼라고 하니 엄마는 내가 바본줄 알아 이러고 간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어느 정도의 문신은 김초엽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쉽게 승인되어 거대한 시장이 되어가는 중인 듯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꾸는 마음은 있다. 내 세대에게 그것은 화장과 옷으로 겨우 표현되었다면 요즘은 성형과 문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듯하다. 문제는 승인받지 못하는 욕망이다. 성전환은 여전히 승인받지 못하고 있는 욕망이고, 온 몸을 덮은 문신도 마찬가지다. 가만 생각해보면 화장이든 문신이든 성전환이든 딱히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기 표현이란 점에서 사실상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눈은 그들이 정한 한계에서 벗어난 신체 표현의 변형에 대해서 여전히 차갑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가 어느 정도의 문신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어진 걸 감안한다면, 좀 더 미래가 되었을 때는 <수브다니의 휴가>에서 얘기하는 온 몸의 피부를 바꿀 수 있는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미래에도 승인받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경계는 여전히 또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결국 경계 바깥의 욕망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해치지 않음에도 수많은 욕망이 강제로 제한당한다. 성전환은 당사자에게는 너무 절대적인 간절함인데,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자신이 보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간단하게 안된다고 치부된다. 인류가 망하느니 어쩌니 하지만 그건 다 헛소리다. 그저 내가 보기 싫을 뿐이다.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는 바로 그 제한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자기 모습을 찾은 이의 이야기다.  금속 피부를 되찾고 바다에 몸을 담그며 햇빛과 바닷물에 자연스럽게 녹이 슬어가는 수브다니의 행복한 모습은 어떤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 자신의 욕망대로 자신의 몸을 찾은 또는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존재 형식을 찾은 이의 행복, 늙어가는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스러져가는 삶의 기쁨 등등.... 안드로이드였던 수브다니가 인간화되는 과정이 그의 의사였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 단편에서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수브다니가 자신의 원래의 모습을 찾고 싶어한다는 것. 자신의 본질이 무엇이냐라고 생각하는가에 다른 사람의 의견은 그리 중요치 않다. 


  김초엽 작가가 만들어 내는 세계는 이번에도 이렇게 다양하다. 표제작인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는 우주 어딘가의 샐븐 행성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의 신체에 2개의 자아를 가지고 산다. 지킬과 하이드를 떠올리면 그리 낯선 주제는 아니다. 하나의 신체 속 자아는 완벽한 타인이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며 다른 신체적 특성을 발현한다. 이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고, 갈등하며 분리되었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은 애틋함과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내 마음 속 깊숙히 숨겨둔 나의 타자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동새와 손편지>에는 다양한 소통의 방식이 등장한다. 아이샤 행성계의 존재들은 오로지 촉각으로 정보를 얻고 이 정보를 진동새의 진동을 통해 기록하고 저장하고 지구인들은 서로 다른 수많은 문자와 언어로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수많은 자아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동기화를 통해 완전체로 온전히 의사소통하는 화자의 세계와 다른 세계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사소통과 정보 전달 방식의 우월함을 믿지만 진동새의 진동과 지구의 어린아이의 손편지를 보면서 미묘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떨림을 느낀다. 지구인들의 문자와 아이샤 행성계의 진동새는 의도적으로 만든 거대한 불일치의 세계라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이 어려워보이는 말은 사실 감정을 전달할 때의 그 미묘한 떨림과 차이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녕이라는 단순한 인사 하나에도 수많은 슬픔이나 기쁨, 안타까움의 감정이 휘몰아칠 수 있는 것이다. 화자가 완전한 소통으로 표현하는 자신의 세계 역시 불완전한 소통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소설은 결국 소통의 본질은 불완전함이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깨닫는 그곳에 또한 마음이 닿을 그 자리가 시작됨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고요와 소란>이 마주한 세계는 사물과 생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물 또는 동식물의 얘기를 듣지만 모든 목소리를 듣는 건 아니다. 단독 주택에 사는 할아버지가 오래되고 낡아 이제는 잠궈 두고 쓰지 않는 문짝의 이야기를 듣듯이  모두가 자신에게 특화된 어떤 것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름다운 건 이렇게 사물이 말하기 시작하자 세상이 고요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하는 사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 고요함을 유지하고자 한다. 또한 무조건적인 개발이 지체된다. 내게 말하는 나무를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베어내기는 힘들테니 말이다. 이 모든 사물의 소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또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지만 작가를 대신해 말하는 주인공 해겸의 해석과 화자의 느낌에는 고요하고 무해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 고요의 세계를 함께 느끼고 싶은 아름다움이 말이다.


<달고 미지근한 슬픔>에서 인간이 멸종한 세상에서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 <비구름을 따라서>의 평행세계는 지금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물질로서의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인간다움에 관여하나?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란 가능한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을 투과해 이동하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가 만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져야 살아갈수 있을 텐데 지금의 세계에서 그것을 느끼기 힘들다면 이동 가능한 다른 세계가 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면 인간이 피부와 뼈와 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다른 존재 형태를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고 창작까지도 해내는 지금의 시대에서 나아가 자체의 의식을 가진다면 AI자체를 다른 형태의 인간으로 사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동안 질문은 많아지고 고민도 깊어진다. 하지만 그 질문과 고민이 딱히 힘들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아직은 타인을 환대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소금물 주파수>였다. <소금물 주파수>는 가장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다. 김초엽 작가가 창조하는 소설 속 세계는 보통 기괴할 정도로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작품 속 공간은 작가의 고향인 울산이라는 평범한 공간에서 평범한 고래와 상대적으로 평범한 생태 탐사용 고래 로봇의 이야기를 한다. 배경과 등장 인물이 처음으로 평범하다. 그럼에도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로봇 고래 해몽이에 이입해 함께 바다를 떠다니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게 된다.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모아가 해몽이가 바다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하는 대사가 아름답다. 사랑의 방식은 언제나 수천 수만 가지이다. 폭력이 아닌 한 그 어느 것도 틀리지 않다. 


밤하늘의 별처럼 멀리 있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할 수 있고, 어쩌면 때로는 그게 더 나은 사랑의 방식일수도 있다고.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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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9-07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금물 주파수>는 짧은 소개글에서 왠지 <로봇 소리>가 문득 떠오르네요. 다 헤진 옷을 걸치고 사막을 기어가던 그 마지막 모습처럼요...

바람돌이 2025-09-07 14:23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로봇소리를 안 봤어요. 잉크냄새님덕분에 보고싶어졌네요. 소금물 주파수에서 해양 로봇인 해몽이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에요. 그 해피엔딩의 과정이 참 아름다웠어요.

꼬마요정 2025-09-07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읽어서 나중에 다시 보러 오려고 찜해둡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2025-09-07 18:46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럼요. 스포가 딱히 중요한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정보없이 읽는게 제일이지요. ^^

책읽는나무 2025-09-07 2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줄거리 부분은 저도 흐린 눈으로 읽었어요.
나중에 읽어볼 책인지라.^^
근데도 수브다니의 휴가는 제목도 눈에 익고 줄거리도 기억나서 어? 곰곰 생각하니 오디오북에서 요 단편 하나가 올라온 게 있어 냉큼 들어본 기억이 떠오르네요. 나중에 글로 더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 책에 실려있군요?
반갑네요.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과 활자를 읽는 건 좀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읽을 기운이 없을 땐 그냥 누워서 틀어놓고 듣다 보면 금새 잠 들어버리거나 뜨개할 때 오디오북 틀어두기도 하는데 듣는데 몰입하면 뜨개를 틀리거나 아님 듣는 걸 놓치거나…에혀..
그래도 계속 틀어둡니다.
빨리 익숙하게 만들어서 노년에 눈 나빠지면 오디오북으로 연명해 볼 연습이랄까요?

바람돌이 2025-09-07 20:28   좋아요 2 | URL
저는 달고 미지근한 슬픔을 <다시 몸으로>에서 읽은거였는데 다시 읽어도 좋더라구요. 수브다니의 후가도 팜 좋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왠지 수브다니의 기쁨이 막 느껴지는 기분이었어요.
오디오북이 참 연습하면 괜찮아질까요? 전 이번에는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나무님 주신 목도리 하고 가서 막 자랑하고싶어서요. 와 너에는 이런거 떠주는 사람 없지 이러면서 말이죠. ^^

유부만두 2025-09-10 09:21   좋아요 2 | URL
목도리 해야하는데! 날이 어서 추워져야 한다고요!

책읽는나무 2025-09-10 11:03   좋아요 1 | URL
ㅋㅋㅋ
넘 추운 날에 하기엔 목도리가 얇고, 덜 추운 날에 하기엔 실이 좀 두꺼운 감이 있고..좀 애매할 듯 한 목도리에요.
드리고 좋아해 주시니 저도 같은 걸로 떠서 가을 겨울에 한 번 해볼까? 싶어 실을 사다 놓기만 했어요. 얼른 떠야 하는데…ㅜ.ㅜ

그래도 드릴 땐 가을이 언제 오겠나? 너무 이른 선물이다. 그리 생각했었는데 시간 참 빨라요. 요며칠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발이 시렵더라구요. 낮은 또 덥지만…
환절기 곧 시작할 것 같은데 다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5-09-08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중이라 리뷰 읽기는 살짝 나중으로 미뤄요^^

바람돌이 2025-09-08 10:49   좋아요 0 | URL
오 즐거운 독서 되세요. 자목련님의 리뷰를 기대합니다

자목련 2025-09-12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의 꼼꼼하고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김초엽의 상상은 대단하고 놀라운데 문장도 정말 좋아요.

바람돌이 2025-09-12 10:42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의 리뷰 읽고 왔습니다. 우리가 비슷한 면을 보고 이 작품을 좋아하는걸 알아서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