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휴가 여행 가면서 어차피 밤에 할일도 없는데 뭐 하면서 이 책을 넣어 갔다.
하지만 밤마다 우리는 술도 없이 음료수와 커피와 과자를 앞에두고 수다를 떨어댄다고 역시나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져왔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야 다 읽은 책.
나는 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고싶은데 사실은 여행가서 노는걸 더 좋아하는 거구나......
여행가서 책읽는분들 보면서 나도 저거 해봐야지 했지만 아직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네.
대학교 1학년 때 당시 불법써클 몇명이서 산에가서 책본다고 배낭에 책을 5권인가를 (그것도 벽돌책) 넣고, 그외의 짐도 넣고 계룡산을 넘어가다가 낙오할 뻔 했던거. 그 때 내 얼굴 하얘지면서 눈 돌아가는 거 보고 불쌍하다고 제 배낭 대신 들어주셨던 지나가던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한권도 못보고 밤마다 술만 먹다 왔어요. ㅠ.ㅠ
하여튼 중요한건 잭 리처!
다락방님덕분에 이 시리즈를 보는데 시리즈 딱 중간 8권째에 와서야 주인공 잭 리처가 진짜 좋아졌다.
물론 앞 시리즈에서도 잭 리처를 좋아했지만, 이번 권에 와서 왜 내가 이 잭 리처를 좋아하는지를 알게되었다는 얘기다.
이번 편 <어페어>는 과거로 돌아가서 잭 리처가 군대를 그만 두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을 다루며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더 그의 생각이랄까 이런게 더 와닿는다.
그동안 시리즈를 읽으면서는 잭 리처는 아무런 소속이 없는 그냥 떠돌이 자유인이니까 당연히 법과 절차보다는 응징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특히 법을 통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많은 진짜 나쁜 놈들에 대해 바로 응징을 하는 데서는 속시원한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어페어>를 보면서 알게 된건 잭 리처의 그런 면은 그가 조직에 있을 때나 아닐 때나 똑같다는 것이다. 특히 부와 권력을 통해 빠져나갈 여지가 너무 많은 범죄자에 대해 잭 리처는 법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그냥 응징해버린다. 일종의 정의의 칼, 아니고 주먹을 받아랏이랄까? 타고난 범생이로서 주어진 제도의 한계를 못벗어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잭 리처의 활약은 카타르시스 그 자체이다. 좋다. ^^
또한 마초로서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이 사내가 그렇지 않은 것도 너무 좋다.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 사랑을 하는 방법도 좋다. 책 중간에 여자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나오는 대사가 있다.
"당연히 아픔이 있었죠. 슬픔과 상실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체념이었어요. 늘 있어왔던 일이라는 거죠. 만일 미시시피에서 살해 당한 여성들이 오늘 밤 무덤에서 모두 일어나 시가 행진을 한다면 당신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아주 긴 행렬이라는 것과 참가자들 대부분이 흑인 여성들이라는 것, 이 지역에서는 가난한 흑인 여성들이 끝없이 살해 당하고 있어요.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살해 당하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193쪽
3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는데 그 앞의 2명의 여성은 흑인 여성이어서 조명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백인여성이 살해되어서야 뭔가 조사를 하고 대책을 세우는 1997년의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런 사회에 대한 진단이 이 한마디에 나오고, 주인공 잭 리처가 이런 것에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좋다.
그리고 <어페어>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잭 리처의 사고방식이다.
오랫동안 몸담았고, 어쩌면 그의 평생의 유일한 공간이었던 군대를 떠나면서도 그는 자유롭다.
나는 서른 여섯살이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극히 일부밖에 보지 못한 한 국가의 시민이었다. 갈 곳도 있었고 할 일도 있었다. 도시도 있었고 시골도 있었다. .......내가 원한다면 친구도 있었고 원하지 않는다면 고독도 있었다. 그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도로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중 아무 도로나 고른 뒤, 한쪽 발만 차도 위로 내디뎠다. 그러고는 한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490쪽
인생의 어떤 선택에서 이렇게 쿨할 수 있을까? 사실은 이런 태도로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작은 일에도 안달복달하고,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과잉걱정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잭 리처의 삶의 태도를 보면서 대리만족과 그와 똑같지는 못하더라고 삶의 온갖 장면들에 일희일비할게 뭐냐 뭐 그런 마음을 또 가져보는데 어쨌든 잭 리처는 이번 편 <어페어>에서 굉장히 멋있었다.
단양과 제천으로 갔던 겨울 가족여행에서 건진 사진 몇장 투척 하는 것으로 그동안 책 못읽은거 퉁치기. ^^
나는 잭 리처처럼 한쪽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는거 못하고, 남편이가 열심히 운전해주는 차에 실려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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