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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ㅣ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평점 :
I prefer not to.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
싫습니다, 안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 바틀비의 선택이다.
이 말을 듣는 누군가는 안한다는 행위에 집중하지만 바틀비에게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혁명은 인간의 자유를 선언한다.
사람들은 중세의 신분적 억압에서 벗어나 시민이 되었고, 노동자가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이데올로기 인간의 자유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시민혁명의 시기 등장한 새로운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자유의 본질을 다르게 알려준다.
노동자는 자유로와 졌다.
영주가 맘에 안들어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던 농노의 시대와 달리, 이제 노동자는 자본가가 마음에 안들면 공장을 옮길 수 있다.
거주 이전 만이 아니라 고용주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바틀비처럼 저 고용주의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이것은 그야말로 이론일뿐, 이 시대의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는 공장은 없다.
일자리의 부족, 맘에 안드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들의 사보타지 등등....
실제 노동자들에게는 딱 하나 일을 안해서 굶어죽을 수 있는 자유만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바틀비는 대답의 형식을 띠지만 실제로 그는 질문하고 있다.
(검증을)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사를)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대답을)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지금은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떠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식사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는 세상에 대고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까?
나의 선택은 존중받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