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로 내가 누누히 주변에 열심히 얘기하는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내 나이가 어릴 때는 나쁜 놈이 잘 되는거 보면서 안달복달, 분개하면서 왜 세상에 인과응보가 없냐고 분개했고,

지금은 옆에 어린 동료가 분개하면 "야 인생 기다려봐. 저거 어떤 형태로든 다 죄값받아 걱정마"라고 하는 여유를 날려주신다.

사실은 저 사자성어들을 꼭 믿는다기 보다는 믿고싶어하는 쪽에 가깝고, 또 어쩌면 기원에 가깝다고 하겠다.

왜 믿느냐고?

딱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기보다는 사실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쪽이 살아가는 데 맘이 조금 더 편해서이긴 하다.

전래동화를 읽는 것도 또는 어린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맘도 딱히 다르지 않으리라.

다만 세상이 달라지니 전래동화 역시 달라진 세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읽고 들었던 동화들이 생각난다.

저주토끼를 읽다보면 여우누이가 생각나고, 진짜 특이한 단편인 머리를 읽다보면 뜬금없이 빨간종이 파란종이 타령하는 화장실 귀신도 생각나고, 흉터를 읽다보면 아기장수 우투리,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는 바리데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들은 위의 동화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지은게 아니라서 어쩌면 사람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야기의 서사가 펼쳐지는 과정도 전재동화의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 

당연히 오래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일테고, 그 달라진 세계는 작가의 말대로라면 더 외롭고 더 쓸쓸하고, 그래서 더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 326쪽 작가의 말


그러고 보면 이 소설집의 모든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은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고 안타깝다.

단편 <저주토끼>에서 할아버지는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라고 하며 매우 예쁜 토끼 전등을 저주물품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피하던 자신을 친구로 받아주었던 친구의 불행을 가져온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할아버지의 저주로 친구를 죽게한 사장은 사업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너무나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다. 이런 복수에 대해서 우리는 후련하다고 해야되겠지만 사실 복수의 뒷맛이 그리 개운하지는 않다. 저주의 여파로 할아버지는 죽어도 죽지 못하고 매일 어느 한 날을 반복하는 할아버지의 영혼은 누가 구제할 수 있을까? 저주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결국 이런 운명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누구나 산다는 건 고군분투 그 자체이고, 그런 와중에 나에게 저주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니고 불행일 가능성이 더 많겠구나 싶기도 하다.


단편 <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변기에서 나의 부산물을 먹고 자란 '머리'는 절규한다.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라고..... 어두운 구멍속에서 한없이 쓸쓸하고 한없이 외로웠던 영혼은 결국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젊은 그녀 '머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삶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뒤에 나오는 단편인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 사랑을 위해 싸우고 저주를 풀었던 공주가 결국 배신당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과 욕망 때문이었던 것처럼, '머리'의 앞으로의 삶도 또 누군가의 배신을 견디고 무관심을 견디고 가야 하는 삶일 것이므로 '머리'는 어쩌면 무한 외로움의 궤도에 올라선 것일지도 모른다. 비단 '머리'뿐이랴? 우리 모두 그런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안녕, 내 사랑>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반려 인조인간 자체인가? 아니면 그와의 기억인가? 그와의 기억을 선택하는 순간 내 사랑의 대상은 내게 안녕, 내 사랑을 속삭이며 내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증오? 복수인가? 삶에서 이런 것들은 사실 뒤엉켜서 뭐가 우선이고 내게 뭐가 더 중요했는지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것일테고 저 복수 후 하나의 마음으로 살아갈 3개의 인조인간 로봇들은 그들이 또한 배운 사랑을 잃은 후의 공허감을 어떤 식으로 채워나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더 외로운 그런 소설.....


오늘의 전쟁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욕망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의 붕괴를 다루는 덫, 

타인의 희생 위에 권력자에 기대 안온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과 그들의 붕괴, 자신의 삶이 왜 무너졌는지도 알지 못한채 끊임없이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소년이 다른 삶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 흉터.

그리고 여름 밤 읽기에 섬뜩한 즐거운 나의 집

무엇이 되었든 한 여름밤에 이야기의 힘을 만끽하면서 읽기에 손색이 없는 단편들이다.

또한 무언가 익숙한 이야기구조가 더 가독성을 높여준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이후의 마음은 쓸쓸하다.

우리는 이토록 외롭고 쓸쓸하구나...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너만 외롭고 쓸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래라는 작은 마음이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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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7-30 10:0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권선징악, 인과응보는 필요한데도 그 뒤끝은 참 씁쓸한 것 같은 느낌이 인간 삶의 딜레마같기도 해요 ㅠㅠ
바람돌이님의 리뷰 읽으며 저주토끼 읽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어요^^

바람돌이 2022-07-30 15:22   좋아요 5 | URL
한편으로는 인과응보의 끝을 봐야할만큼 특별히 엄청나게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 끝을 보고 싶을 정도면 원한을 가진 사람도 얼마나 사는게 고통스러울지 말이죠.... 전 이 소설 앞쪽의 저주토끼보다 뒤로 갈수록 더 좋아졌어요. 다른 책 여자들의 왕도 봐야겠다 싶네요. ^^

mini74 2022-07-30 1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권선징악 좋아합니다. 결자해지도 좋아합니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서로 등을 기대면 조금 덜 외로울꺼 싶기도 하고 ~ㅎㅎㅎ 저주란 악함이 예쁘고 귀여운 것에 담긴다는 것이 참 오래 남았어요. 아이는 머리가 넘 끔찍한데 한 번 더 읽게 된다고 그러더군요. ~

바람돌이 2022-07-30 15:23   좋아요 2 | URL
아하!! 생각 안나던 사자성어 결자해지도 있군요. 저도 참으로 좋아합니다. ^^ 저도 머리 너무 끔찍한데 자꾸 생각나는 잊기 힘든 이야기예요. 뭔가 단순한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기억에 콕 박히는 그래서 자꾸 생각나는 소설들이네요. 앞으로 정보라 작가도 찜해놓고 책 나올 때마다 봐야겠다 싶습니다. ^^

새파랑 2022-07-30 14: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토끼에 저주를 걸다니 ㅋ 전 이책 북플리뷰에서 많이봐어 이제 읽은것처럼 익숙합니다~!!
저도 사필귀정 좋아합니다 ^^

바람돌이 2022-07-30 15:25   좋아요 3 | URL
귀여워야 가까이 하고 그래야 저주가 먹힌다는..... 귀여운거에 환장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바로 저주 걸리고 마는.... ㅎㅎ 보통 사람들은 다 사필귀정 이런거 좋아하지 않을까요? 우리 착하게 살고 있는거 맞죠? ^^

프레이야 2022-07-31 1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으로 구매해놓고 앞부분만 듣다가 잠들기 반복 ㅎㅎ 더 못 나가고 있어요. 장편인 줄 알았어요. 듣는 게 집중이 안 되는 이건 무슨 증상인지 ㅎ ㅎ 세상이 원래도 그렇지만 인과응보 권선징악이 안 되는 게 당연지사가 되었으니 작가가 벌을 내려주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걸까요. 그렇다고해도 마음 편하지 않고 쓸쓸한 게 인간한계… 김훈 문장처럼 인간은 참 던적스럽네요. 뒤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니 오디오북 다 들어야겠어요 어서. ^^

바람돌이 2022-07-31 14:27   좋아요 2 | URL
앞부분에서는 좀 뭐야? 시시해 이러면서 읽다가 뒤로 갈수록 이야기에 점점 빠지는 기분이에요. 단편집이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의식이 또 공감이 가더라구요

희선 2022-08-01 0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착한 사람은 잘 되고 못된 사람은 못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못된 사람이 더 잘살기도 하네요 그 사람은 그래도 그 사람과 상관있는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을지도... 받은대로 갚아도 그렇게 좋지는 않죠 사람은 외롭고 쓸쓸하네요 서로가 그렇다는 걸 알고 마음을 나누고 살면 좋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8-01 09:37   좋아요 2 | URL
맞아요.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왜 그렇게 니쯘 사람들이 많은지.... 그래도 늘 생각해요.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사람이 더 많다고....

단발머리 2022-08-01 15: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권성징악 시리즈 중에서 사필귀정이 제일 마음에 들더라구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그런데도 착한 사람들이 고생하고 나쁜 사람들은 잘 나가는 현실은... 참 그렇습니다.
저는 저번주에 시사인에 정보라 작가 인터뷰 읽었는데 넘 특별한 분이더라구요. 전문 시위꾼이라고 하시던데, 소외된 사람들의 현장에 항상 달려가는 분이라서.... 너무 놀랐습니다. 이런 분(공부 많이 하신 분)이 이런 현장에 나가시고 근데 이렇게 소설까지? 멋진 분이더라구요.
바람돌이님 리뷰을 읽어보니 작품도 엄청 기대가 되는데 제가 무서운 거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능할까요? 너무 읽고 싶은데, 단편 <머리> 그런 작품은 몇 문장만 읽어도 무서워서요. 바람돌이님 리뷰 읽으니 더 읽고 싶은데 말입니다.

바람돌이 2022-08-04 15:33   좋아요 1 | URL
저도 시사인 인터뷰보고 급관심 생겨서 읽었어요. 사실 저도 무서운거 못봐서 공포영화 절대 안보고 옛날에 전설의 고향도 못봤거든요. 근데 이 책은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슬픈 우화랄까 좀 그런 느낌이에요. 별로 무섭지 않습니다. 머리도 막상 읽으면 무섭다기보다 슬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