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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기 - 잃어버린 현대사를 찾아 떠난 여행, 타이·버마·라오스·캄보디아 편
정문태 지음 / 원더박스 / 2021년 4월
평점 :
중심은 항상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주변은 기타 등등, 그 밖에로 불리운다.
수도인 서울은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워지며, 나머지는 그 밖의 지방이다.
때때로 지방의 이름이 고유명사로 불리워질 때도 있지만, 서울이 기타 등등 또는 그 밖에로 불리우는 일은 없다.
이는 한 나라 안에서도 그러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남아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그 밖이다. 이는 중심부가 아니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런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중심과 그 밖은 또 구분되어진다.
다수의 권력을 가지지 못한 민족이나, 그런 민족들이 주로 살고 있는 국경지역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밖의 지역이다.
전선기자 정문태는 말한다.
국경선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다라고!
이 말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말일 수 있다.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어지고, 발해가 멸망하고 난 이후 한반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중앙집권화를 꾸준히 강화해 온 역사다.
조선시대쯤이 되면 중앙집권화의 정도는 경이로울 정도여서, 세계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강력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단적으로 조선시대에 지방관에 의한 반란이 한 번도 없었다는데서 그 통제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은 거란이나 여진같은 이민족의 귀화를 받아들이고 핏줄이 섞인다하더라도 그것이 민족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조선의 테두리내로 귀화, 흡수, 혼합의 과정을 통해 체제 내화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중앙집권에 의한 질서, 단일민족- 순수한 단일민족이 허구라 해도 - 신화에 익숙하고, 그 중앙권력이 그어놓은 국경선은 우리에게는 분쟁의 선이 아니라 안전과 보호의 선으로서의 역할을 우선적으로 했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38도선이라는 새로운 국경선이 생기고, 그것이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가져왔지만, 그 전쟁 이후 휴전선이라는 국경선을 경계로 한 두 체제는 빠르게 다시 체제의 안정과 중앙집권질서를 뿌리내리며 각자의 공간질서를 구축해낸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여전히 체제 내에서는 국경선은 보호와 안전의 선이다.
그러니 국경선이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얘기하는 정문태기자의 말이 선뜻 피부로 와닿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상황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한국인 독자는 이런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보편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먼저 벗을 필요가 있다.
한국의 중앙집권과 국경선은 예외 중에서도 극히 드문 예외다.
발로 쓰는 글이 있다.
오래전에 <전선기자 정문태>를 읽을 때도 그러했고, 이 책 <국경일기> 또한 발로 쓰여진 글이다.
누구도 근접하기 어려운 곳들을 직접 다니며 보고 듣고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정문태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알려지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을 무수한 사람들의 삶과 눈물이 이 책 속을 관통한다.
이 이야기들은 정문태라는 기자가 아니면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이런 책에는 모든 가치 판단을 버리고 무조건 별 5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
타이,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의 국경지대, 표지판도 없고 제대로 길도 나있지 않으며 안내자도 제대로 없는 마을들을 죽을동 살동 찾아다닌 기록들이 이 글이다.
심지어 이 곳은 여전히 분쟁 지역이어서 기자 자신은 담담하게 써내려갔지만 읽는 사람은 내내 마음을 졸이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고맙고 고마운 책이 되는 것이다.
이 곳의 역사는 얽히고 설킨 것들이 너무 많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1950년 동남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장에 화들짝 놀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중국 국민당 잔당들은 이 곳에 와서 지역의 소수민족들을 압박하며 아편 생산을 시작하고 이곳을 마약공장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을 타이공산당 박멸작전에 이용한 미국과 타이 정부에 의해 이들의 마약사업은 묵인되고 지금은 그들의 후손이 여전히 이곳에 대를 이어 살며 분쟁의 씨앗을 여전히 품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마약생산은 이제 지역 내의 온갖 정치세력의 주머니를 채워주며 지금도 국경지역 골든 트라이앵글을 마약생산기지로 악명을 떨치게 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들은 소수민족들을 두 국가의 경계선 아래 나눠놓기까지 하여, 국경선과 경비초소에 갇힌 사람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생필품이나 먹거리를 구할 수도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 먹을 것을 들여오기 위해 국경선을 지키는 양국 군인들에게 언제나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국경선은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일까?
국경선에 산재한 산악을 근거지로 하여 분리 독립 또는 자치를 주장하며 소수민족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들이 근 60여년을 싸우고 있는 이유는 싸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도 없이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착취당하고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선택권은 없었고, 사실상 지금도 없다.
50년을 전쟁터에서 지낸 독립혁명 전사는 이제 도인의 풍모를 풍기고, 소수민족의 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은 여전히 "우리는 샨족을 지키는 전사가 될거예요."라는 꿈을 이야기한다.
대를 이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이어질 수 있는 삶이 이곳의 소수민족들의 현재다.
버마(미얀마)정부와 휴전협정을 이야기하지만 약속이 지켜진적은 없으며, 실질적인 평화안을 내온 적도 없다.
힘을 가진 쪽-타이든 미얀마든 다수의 정권쪽은 휴전협정으로 잠시의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그들의 정치적 이슈가 필요하거나 하면 또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에게 소수민족의 목숨을 건 항쟁은 그저 자신들의 정치놀음을 위한 장기말일 뿐이다.
휴전 협정을 소수민족 누구도 믿지 않는 이유다.
현재 미얀마 민주화 투쟁에 대해 정문태 기자가 게재한 소수민족들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비감해진다.
“버마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소수민족을 찾는다. 1948년 독립 때도, 1988년 민주항쟁 때도, 2015년 총선 때도 늘 그랬다. 지나고 나면 그뿐이었다. 아웅산수찌도 민아웅흘라잉도 우리한테는 다 버마 사람일 뿐이다.”
“흥분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 우린 늘 겪어온 일이다. 소수민족 학살 군인정권 60년째다.”
“버마 시민이 보여주고, 국제사회가 나설 때 우리도 힘 보탤 수 있다. 버마 연방 바라보며 싸웠지만 버마 사람들이 돌려준 건 박해와 차별뿐이었다”(한겨레 신문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94475.html#csidx012cdf4f279bf458293c60e8d3db110
바다건너 남의 일인 우리야 쉽게 미얀마 민중과 소수민족 저항군들의 연합을 통해 지금은 군부정권에 대항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소수민족들이 걸어온 역사때문이다.
책의 앞면에 저자는 "그 땅엔 비틀고 감춘 역사가 겹겹이 쌓였고, 모질게 해코지당해온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그러나 지레 절망 따위를 말하고 싶진 않다. 끝끝내 내릴 수 없는 깃발들을 본 까닭이다. 나와 당신, 우리를 닮은 '그 밖들'의 세상을 찾아 길 떠나는 여행자한테 이 책을 올린다라고 썼다.
그 밖들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삶이 계속되고 있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들 하나 하나 이름의 고유성이 살아나고, 자신의 몫만큼의 정당한 댓가를 바랄 수 있는 삶의 길은 여전히 멀다.
그럼에도 그들은 삶을 꿈꾼다.
그들의 꿈에 관심과 지원, 연대를 꿈꾸는 것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