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의 나라 - 황우석 사건은 한국인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성주 지음 / 바다출판사 / 2006년 3월
품절


정치도 과학의 시스템과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큰 구도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이 입안되면 시행을 통해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책 추진 과정의 기본 틀이다. 그러나 과학 정책에서 오류 수정 절차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황 교수 사태에 투영된 한국 정치에는 합리성과 오류 수정 절차가 아니라 패거리, 부패의 냄새만 고약하게 진동했다. -11쪽

진실을 위해 국익을 덮어야 한다는 논리 속에서 온 나라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소동에서 1974년 유신정권에 의해 광고취소 사태를 겪은 <동아일보>는 이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보도를 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거나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MBC의 고통을 즐기는 측면이 있었다.
-28쪽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11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PD수첩 광고 중단 요구, 도가 지나쳤지만 강압 취재도 잘못됐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강압 취재 혐의는 군중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29쪽

나는 과학과 정치, 사회가 모두 동일한 민주주의의 틀에서 가장 잘 기능한다는,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의 혜안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언론 역시 동일한 틀, 즉 민주주의의 시스템에서 움직여야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그렇지 않고, 이러한 민주적 의사소통의 부재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생각이다.-57쪽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수직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고치는 오류 수정 장치는 관성 때문에 작동을 하지 못하며 기사의 흐름이 잘못됐다 싶어도 이를 바로잡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기 일쑤다.
이는 언론의 속보 경쟁 때문에 신속성,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62-63쪽

국내에서는 성체줄기세포 치료가 효과나 안전성을 따지지 않고 환자의 마지막 소원 들어주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결국 환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치료법이 횡행하게 된 것은 현재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이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이 치료법을 맹신한 환자와 가족 때문이다. ...
병원이나 바이오 업체의 원성도 하늘을 찔렀다. 돈도 인력도 없는 국내 업체들이 까다로운 식약청의 요건을 모두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104-105쪽

한국 언론은 과학적 의미보다는 '세계 최초'에 열광했다. 한국 언론은 기사나 사설에서는 독자들에게 "제발 1등이 아니라 2등에도 신경을 쓰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기들은 늘 1등, 최초만 찾아다닌다. 그리고 한탕 하고 나면 그 뒤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그리고 한탕주의가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언론이다. ...
일부 과학자들의 이벤트성 발표가 통하는 것은 특종 경쟁에 빠져 이들의 주장을 여과없이 보도하는 신문과 방송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언론 환경 때문에 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기자와 언론사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130-131쪽

이런 점에서 황 교수는 벤처사업가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만난 한 교포 과학자는 한국의 황 신드롬에 대해 "대학 교수가 스스로 벤처기업 CEO가 돼 30년 뒤에 이익이 생길지 모르는 투자 설명회를 열었는데 온 국민이 내일 당장 이익이 실현될 것처럼 열광하는 형국"이라고 혀를 찼다. -168-169쪽

<뉴욕타임스>의 과학기자였던 윌리엄 브로드와 니콜라스 네이드는 ... 과학의 검증 시스템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피어 리뷰. ...
둘째, 논문 발표. ...
셋째, 재현성의 테스트. ...

이러한 세 단계의 시스템 역시 과학은 늘 틀릴 수 있고, 거짓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과학계는 이 시스템이 허술해 반칙이 개입할 소지가 많다. 한국의 과학기술 예산은 선진국 못지않은 규모다. 2006년 예산은 전체 예산의 5%대인 9조원으로 세계에서 7, 8위권이다. 이것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황교수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줬다. -170-171쪽

첫째, 피어 리뷰 제대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그의 표현으로는 연구비 신청에서부터 '과학'보다는 '정치'가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
이 때문에 세계적 권위지에 논문을 썼던 과학자도 국내 연구비 신청 때 번번이 떨어지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 암 억제 원리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백성희 교수는 네 차례 지원서를 내고 떨어지고 다섯 번째 지원할 때에는 심사장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

둘째, 정부 관료의 입김이 너무 세 '과학자 간의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지 않는 측면이 크다. ... 황교수 사태는 한국 과학 예산 집행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도 드러났지만 정부 공무원과 과학자의 친분이나 은밀한 거래에 따라 새로운 연구 과제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171-172쪽

셋쨰, 연구자의 연구를 관리할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다. ...

IRB도 유명무실하다. 서울대 수의대와 한양대의 예에서 드러났듯, IRB가 "Institutional Review Board"가 아니라 "Institutional Relatonship Board",
즉 기관윤리위원회보다는 "기관친목위원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73-174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06-04-17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마르크스가 실패한 이유를 사람이라는 동물이 이기적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누가) 그러시더라구요.
또한 저는 사람을 감정의 동물 (예전에는 이성의 동물로 생각해지만)로 생각하기 때문에 알라디너 물**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 치료법을 맹신한 환자와 가족 때문이다.'에 동감하지만 적절한 해결책은 어렵고 그 반대의 예가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를 보면 반대의 뉴앙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정말 추천되는 영화입니다. 저는 물론 이 영화에 반대하죠.) 또한 정치적 측면과 언론적 측면의 견해도 동감을 합니다. (제가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옥상옥이죠.^^) 정치는 처음부터 포기했고 언론은 처음에는 기대했다가 황색 저널리즘이 또는 인간의 본성에서 기원했기 지금은 포기.
위 책의 내용 구절 구절 옳은 이야기이지만 이 책 또한 황색 저널리즘의 단편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비판 이후에 대안은 어디있나요.

balmas 2006-04-1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야 황우석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언론과 정치, 과학계의 불합리한 관행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이라면, 칼 포퍼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 시스템의 확립 정도겠죠. :-)
 

[교수신문]

 

官學유착 정부정책 정당화
사회쟁점: 관학커넥션, 감시와 정당화의 이중적 페르소나

2006년 04월 16일   최장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지난해 많은 언론에서 한탄강댐 건설사업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소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 결과 한탄강댐 건설의 필요성이 과대포장됐다는 말과 함께, 오래됐지만 아직도 뉘앙스가 낯선 ‘토건국가’라는 용어까지 들먹이며, 官-政-建의 커넥션을 꼬집었다.


당시 건교부는 초당 2천7백톤의 홍수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며 한탄강댐 건설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그 주장의 진실성을 타진하기 위해 설계홍수량 및 홍수조절량을 정확히 산정해야 했다. 이 부분에 대해 감사원 보고서는 “임진강 전체 유역을 小유역으로 구분하고 각 소유역별 기본홍수량을 정확히 결정”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임진강유역 홍수피해 원인조사 및 항구대책수립’ 용역을 수주한 ○○학회는 임진강 전체를 하나의 유역으로 해석한 성과물을 제출했고, 이 성과물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건교부는 댐건설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던 것. 학계의 연구결과가 정부 정책을 완성하기 위한 불도저가 된 상황이다. 또한, 환경부는 한탄강댐의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에 참여한 자를 환경영향평가서 검토위원으로 선정해 물의를 일으켰다.


많은 전문가들의 비판과 질책이 오가는 가운데 감사원은 정작 정권의 국책사업을 정당화시키고 독단적 개발주의에 환경영향평가 등의 ‘면죄부’를 발행하는 학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오직 해당 官署와 公社의 長에게만 시정명령을 하달해, 학계는 감사원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

밑그림 그리러 갔더니 색을 칠해?


行·複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ㅇ교수는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참여했는데, 이미 사업일정표가 확정돼 있었다”며 “정책 추진 과정이 독재정권보다도 더 독재적”이었다고 술회했다. ㅇ교수는 결국, 참여하자마자 탈퇴를 결심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ㄷ학회 역시 의견차로 내분이 일어난 상황.


또 ㅇ교수는 “올해 건교부 연구개발 용역이 상당수 수의 계약으로 진행됐다. ㄱ학회 같은 경우엔 억 단위로 수주했다”며 “해당 학회 소속 교수들의 대부분 정부 정책에 대해서 호의적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처럼, 관료들은 자기가 그린 밑그림을 인정하는 학회만 선별, 계약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


심한별 민주노동당 연구원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일자리가 편성되기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특정 학회로 굵직한 연구사업이 배분된다”며 “주로 국토연구원, 한국개발원이 대부분의 연구사업을 수주하는데, 그 중 지역 및 국토계획에 관한 것들은 정부의 요구에 맞춰 연구되는 게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조덕현 경실련 시민감시국 간사 역시 “건교부가 발주하는 연구사업 가운데 대부분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국토연구원에서 독식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연구원의 설립목적 자체가 우리 목적과 부합하는데다가 경쟁용역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주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토연구원과 용역연구를 계약하는 형편”이라고 해명했다.


김왕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특정 집단이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고 하면, 그 집단과 계약을 맺는 것이 일정 부분에 있어 경제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연구 기관을 통해 다양한 차원에서 분석해야 하는데 특정 연구기관에만 발주해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자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목소리 필요


이른바 官의 밥상에 차려질 ‘맞춤형’ 보고서는 각 분야에 만연해 있다는 비판이 예전부터 나오고 있으나, 심증만 있을 뿐 구체적 물증이 잡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담론의 표층에서 부유하는 두루뭉술한 비판만 쏟아지다 보니, 학계 내부의 엄밀한 자기비판이 부재한 실정이다.


“전문가들 거의 대부분이 정부와 연루되어 있고 학계 내부적으로는 선후배 관계이기 때문에 비판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어느 교수의 말이 학계의 ‘엄한’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그런 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용기있게 비판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김병완 광주대(법정학부) 교수는 “교수들이 정부 기관에 각종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정부와의 밀착관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모든 용역 과제는 정부가 밑그림을 그려놓고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용역을 따내기 위해 정부의 의도에 맞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한다는 것. 연구계획서가 학문적 필연성에 의해 구상되지 않고, 오직 연구업적을 위해 작성되는 바로 이 순간, 정부와 학계의 친근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김 교수는 “많은 관료들이 국립대 석·박사 과정에 적을 두고 있어 지도 교수 및 관련 학회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가 주도의 연구개발 사업은 첫 단추부터 친정부 성향의 인사에게 수주될 수밖에 없고, 공무원들이 위탁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대학에 파견되어 官·學연대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김왕배 교수는 더 근본적인 곳에서 고민했다. 그는 “정부와 학계의 유착관계에 대한 피상적 비판은 쉽다. 그런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보다 학자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던져봐야 한다”며 학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병두 대구대 교수(사회지리)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과 무관하게 정책을 정당화시켜주는 교수들이 있다. 학자로서 지켜야할 윤리의식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으며, 2011년이 되면 새만금간척을 통해 총면적 4만1백ha의 토지를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밖에도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굵직한 사업들이 많이 남아있다. 2002년, 경실련에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다수가 “정부 발주 건설공사 입찰과정의 부패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며(70.9%), 공사 관리·감독이 부실하고 형식적(64.2%)”이라고 응답해,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는 건설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학자들도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대부분 국가사업의 면죄부는 학계에서 제공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사업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따져보아야 할 학자들이 언제까지 감시와 비판의 가면을 쓴 허수아비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2006 Kyosu.net
Updated: 2006-04-16 20:37
▲맨위로

:: 관련기사
토건국가와 용역학회: 개발마피아의 먹이사슬?
그 많은 중립성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04월 16일
모두 보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4-1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건 비단 특정한 학회, 이공계 중심의 학회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커넥션들을 잘 분석하면, 한국 사회의 권력-지식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길잡이가 돼줄 텐데 ...
누가 사회학 박사논문으로 이런 거 쓰는 사람 없나?

瑚璉 2006-04-1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료 얻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balmas 2006-04-18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리건곤님/ 하하, 어렵지 않죠. 제 말은, 특별히 부정적이거나 은밀한 뒷거래를
캐보라는 뜻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연관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분석해보라는 뜻이죠. 공개적인 자료들이야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겁니다. ^^
 

[교수신문]

 

관행이라는 이름의 일상적 부패
촌평: 학회의 프로젝트 유혹

2006년 04월 16일   강명구 아주대 이메일 보내기

오십 줄이 넘으면 이런 저런 연유로 상가(喪家)에 들르는 일이 많아진다. 업종이 업종인지라 많은 경우 문상객들은 학계에서 낯익은 얼굴이기 십상이다. 조문하고 정담을 나누다보면 왁자지껄 악수공세가 펼쳐지는 인물이 나타난다. 십중팔구 학계를 발판으로 정계나 관계(官界)에 진출하여 한자리 하는 사람들이다. 애써 외면하는 나는 항상 처세에 뒤쳐진 거북한 딸깍발이가 된다. 대단한 순결주의자도 아닌 내가 이런 학계 인심의 쏠림에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악수공세를 받는 “전직(前職)” 학자가 학문적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개인적 판단 때문인 경우가 많다. 허나 보다 깊은 연유는 대단치 않아보이는 일상(日常)의 집적이 종국에는 학계를 아는 새 모르는 새 “대단치도 못한” 부패의 유혹에 순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단치도 못한” 부패의 유혹은 우리 학계 주변에 널려있다. 트럭으로 수백억씩 져 나르는 정재계(政財界)의 대담함과 무모함은 없어도 학회를 유지하려면 관행의 이름으로 허용되는 하찮은 일상적 부패의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한마디로 학회를 유지하려면 솔솔치 않게 돈이 든다. 국제회의라도 하려면 모시는 “귀한 분”들의 면면체면치레를 생각하고 교통과 행사준비의 편의를 위하여 호텔을 빌려야하고, 발표문에 대한 사례비 외에 청중의 밥값도 내주는 것이 관례이다. 청중이나 회원들이 참가비를 내지 않으면 이른바 스폰서를 구해야한다. 행사에 드는 돈은 확실한 이윤이 보장되는 직접투자라기보다는 여론형성이나 장기적 안목의 우군형성을 위한 간접투자의 성격이 짙다. 당연히 “눈먼 돈”이 타겟이 된다. 눈먼 돈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관가의 판공비거나 기업의 접대비이기 십상이다. 눈먼 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쳇말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선후배나 제자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알음알음으로 줄을 댄다.


또 다른 유혹은 정부나 재계의 프로젝트 유혹이다. 미국 속담대로 “돈이 얘기한다.(Money talks.)”고 합법적인 제도적 절차를 밟아 프로젝트를 수주하였어도 전문가 집단인 학계는 구태여 발주자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결론을 미리 짐작하게 된다. 행사지원용 부패의 유혹이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일과성 관행이라면 이것은 보다 구조적이고 심각하다.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온당치 못한 국가정책이나 기업관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분석으로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한 환경영향평가가 슬금슬금 재앙의 축적으로 나타난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나 기업의 시장적 필요성에 대한 학계의 객관적이며 동시에 우호적 판단이 미분적(微分的) 공평과 동시에 적분적(積分的) 불공평으로 드러난 것이 어디 한 두 번 이었던가? 거대한 문제점에 비하면 학계가 얻는 것은 대단치도 못한 획득이다. 프로젝트 수주의 대가로 회원인 연구자의 연구비중 일정 부분을 오버헤드로 거두어 학회 운영비로 쓰는 정도이다. 이 와중에 관행적으로 액수가 적혀있지 않은 ‘백지’ 영수증이 오가기도 한다. 물론 학계행사의 경우와 진배없이 프로젝트 수주에 있어서도 상가에서 악수공세를 받는 “전직” 학계 인물이 중요 역할을 한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이다. 비판하면서 닮아간다고 학계는 비판적 분석과 감시의 대상인 제도나 집단을 관행의 이름으로 복사해가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 한국의 학계는 지식인 집단인체 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일반적 수준을 상회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종류는 비슷해도 정도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이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억울하다고 참여정부가 들이대던 항변과 유사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대접 받으려거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계는 학문적 관련업종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고슴도치 사랑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하찮은 부패의 유혹에 찔리고 너무 멀면 관찰과 분석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얘기하자. 학계는 눈먼 돈 탐내지 말고 검소하게 회원의 회비로 밥 먹고 회의하고 운영해야한다. 그래야 학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상가집에서 출세한 “전직” 학자를 만나도 서둘러 악수하러 손 내미는 일이 줄 것이다.

강명구 아주대 교수(사회학)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06-04-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가까우면 하찮은 부패의 유혹에 찔리고 너무 멀면 관찰과 분석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어째든 학회 주변에 얼쩡된다는 것은 (저 자신을 포함하여) 부패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언제든지 덫에 걸릴 수 있고 그나마 무능력으로 말미암아 학회의 중심에 다가서지 못해 부패의 유혹을 방지하는 고슴도치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지...

balmas 2006-04-18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흐흐, 너무 겸손한 말씀 아닌가요?
 

한겨레

 

프랑스는 배운대로 행동했다

‘최초고용계약’ 좌초시킨 청년학생들
학교서 배운 자유·평등·우애 정신이 무능한 노조·정당, 국민을 움직였다
기득권 표심 잡으려는 우파정권의 오만을 우리 언론은 ‘사회보장 실패’로 오독

 

http://www.hani.co.kr/arti/BOOK/115552.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들이 장식용이냐?!"휴일 문닫는 국공립대도서관 불만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일반 시민에게 개방돼야" 공공성 외면 지적 일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도서관들이 주말과 휴일이면 문을 닫고 시민들의 이용을 제한해 공공성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209061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4-1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도서관이 공공도서관은 아닐지 모르지만, 국립대학 도서관은 국가의 세금이

운영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국민들 일반에게 서비스해야 한다고 본다.

일반 시민들이 평일에 도서관을 찾기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면,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도 당연히 개방이 돼야 한다.

 

서울대 도서관(자료실)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은 평일과 마찬가지로 개방했고

공휴일에도 12시에서 8시까지 개방했다. 사실 이렇게 개방해야 자료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운영 인력이 부족하다든가, 토요일이나 공휴일에 사용이 적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안 된다고 본다. 토요일, 일요일에 개방했을 때에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추가근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외에도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방안(가령 평일에 쉬고

주말에 대신 근무한다든가) 같은 것도 생각해볼 수 있고, 방안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사용 인원이 적다는 것도 개방을 금지할 만한 이유는 안 된다. 사실 주말에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해서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학위논문이나 연구논문을 쓸

경우에는 평일이나 공휴일이 따로 없다. 꼭 필요한 책이나 정기간행물 자료

(전자저널로도 이용할 수 없는 것)가 도서관에 있는데, 주말에는 이용하지 못할 때

참 답답하기 짝이 없다.

 

관리하는 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대학 도서관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의

연구가 제일의 존재 이유이고, 국립대 도서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국민 일반을 위한

봉사의 이유도 있으니까, 주말에도 개방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waits 2006-04-1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의 제기의 여지를 스스로 없애고 있었던 것도 같네요. 검색사이트 뉴스에서 카피 봤었는데, 여기서 보니 더욱 동감. 평일 낮시간의 도서관은 언감생심인 저 역시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말예요. 인력 문제는 하다못해 사회적 일자리 같은 방식으로라도 의지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balmas 2006-04-1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공감해주셔서 감사.^^

chika 2006-04-1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국공립대 도서관 열람이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되었나요? 알아봐야겠네요?

그리고 대학 도서관뿐 아니라 일반 도서관 열람 시간도 직장인을 위해 늦춰줘야 하는거 아닐까요? 예전에 일본의 도서관 운영을 보여줬었는데, 인력의 부족을 그쪽에서는 이용자가 직접 도서 열람실을 정리하고 책임지는 방식으로 하더라고요. (물론 저녁 10시 이후에 도서관을 이용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에요) 언제나 시민이 필요로 할 때, 문을 열어주는 도서관, 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엄청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바람 2006-04-1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맡길 데 없어 아예 도서관은 이용도 못하는 아줌마들을 위하야 도서관 옆에 놀이방도 허하라고 하면 너무 쎄게 나가는 건가요? 기왕에 요구하는 거 좀 쎄게 해야 뭐가 좀 되지 않을까요. 시장에서 배운 물건값 깍는 경험에서 보건대^^*

balmas 2006-04-1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오오, 일본은 역시 대단하네요.
돌바람님/ ㅋㅋ 그럼요, 쎄게 나가셔야죠. 특히 아줌마 분들이 ... ^^;;

Koni 2006-04-1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공립대 도서관 개방은 찬성하는데, 인력의 문제는 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이라도, 직원은 사람이니까요.
자원봉사제도라든가, 퇴직 사서들의 특별고용이라든가...
아무래도 휴일이나 야간 근무는 쉽지 않죠.

balmas 2006-04-17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그렇죠. 그건 신중하게 처리해야죠. 다른 국가기관들은 하나같이 다
주말에 쉬는데, 도서관 직원들만 나와서 근무하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겠죠.

승주나무 2006-04-17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다니게 될 직장이 국립도서관이 있는 동네라, 슬슬 이용을 해볼까 하는데.
아직도 국립도서관과 일반시민들의 거리는 먼 것 같아요.
도서 대여 같은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요. 자료를 도서관 안에서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좀 불만..
그리고 balmas 님//도서관 이용에 대한 팁 있으면 알려주시죠^^

balmas 2006-04-17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ㅎㅎ 저도 국립도서관은 별로 이용해본 적이 없어서 ... ^^;
대학 도서관은 직원이나 재학생에게만 대출해주지만,
국립도서관은 일반시민 대출할 수 있지 않나요?

조선인 2006-04-17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5일제가 되면서 주말근무는 모두 휴일수당이 붙으니까 도서관 이용시간을 줄이는 추세더라구요. 주5일제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고, 경비절감으로만 악용되는 거 같아 속상합니다. ㅠ.ㅠ

balmas 2006-04-18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맞아요. 주 5일제 근무가 그런 측면이 있죠.